뱅상 지라르댕(Vincent Girardin)의 아들 피에르, 뱅상 당세(Vincent Dancer)의 아들 테오는 절친 관계다. 행사 내내 티키타카를 보여주는 모습에는 철없는 젊은이의 느낌이 완연했다. 하지만 와인만큼은 진심이다. 부르고뉴 와인 업계의 금수저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은 물고 나온 수저 색깔에 만족하지 않고 더 먼 곳,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테오는 이미 포화 상태인 부르고뉴 바깥으로 자신의 세계를 거침 없이 넓혀 나가고 있다. 시음한 와인들 모두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품질과 개성을 보여주었다. 기회가 있다면 꼭 마셔 볼 만한 와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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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정상에서 더 먼 곳을 바라보는 두 신예, 피에르 지라르댕 & 테오 당세

최근 K-POP 뮤직 비디오를 보다가 불현듯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렇게 어린 뮤지션이 이렇게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를 선보인다고? 노래, 안무, 표정조차 이렇게 완벽하다니. 나이를 떠나 절로 경외감이 든다. 생각해 보니 와인업계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프리미엄 와인 산지,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에서조차 어리지만 빼어난 실력을 갖춘 와인메이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두 와인메이커 피에르 지라르댕(Pierre Girardin)과 테오 당서(Théo Dancer)가 대표적이다. 둘의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컬래버레이션 디너가 서울 청담동 레스토랑 뱀파이어 위켄드에서 열렸다.

그들의 성만 봐도 아버지가 누구인지 짐작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피에르의 아버지는 뱅상 지라르댕(Vincent Girardin), 테오의 아버지는 뱅상 당세(Vincent Dancer)다. 묘하게도 둘의 아버지 이름이 같다. 두 거장의 명성은 부르고뉴 와인 애호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피에르와 테오는 다섯 살 때부터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인지 디너 내내 이런저런 장난을 치며 찐친의 케미를 드러냈다. 피에르는 1998년생, 테오는 2살 어린 2000년 생이다. 각각 26세, 24세. 아직 어린 나이이고 아버지는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거장이니,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며 그 명성에 기대어 와인을 만드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들의 와인 철학은 확고했다. 농담 삼아 '아버지가 간섭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피에르는 웃으며 '아버지가 이렇게 하라고 하면 나는 반대로 저렇게 했다'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더는 간섭하지 않았다고.
물론, 무조건 아버지에게 반항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피에르의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는 가문의 전통과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노하우에 기반한 것이다. 와인메이커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2016년부터 포도밭과 와인 셀러에서 일하며 아버지의 가르침을 온전히 흡수했다. 뱅상 지라르댕은 2011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도멘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와인메이커의 꿈을 키우는 아들을 위해 4.5헥타르의 가장 좋은 포도밭을 남겨두었다. 피에르는 2017 빈티지를 시작으로 자신의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테오 당세 또한 2020년부터 아버지의 이름으로 출시하는 뱅상 당세 와인의 양조를 전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르고뉴, 쥐라(Jura), 사부아(Savoie), 보졸레(Beaujolais) 지역에 진출해 본인이 좋아하는 포도 품종을 직접 수확해 와인을 만든다. 본인의 이름을 건 테오 당세, 그리고 록 브레이아(ROC BREIA)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뱅상 당세, 테오 당세, 록 브레이아까지 세 가지 레이블의 와인을 모두 생산한다. 피에르와 테오는 이구동성으로 서로의 와인 스타일은 자못 다르다고 밝혔다. 하지만 포도밭을 중요시하고 테루아와 품종의 특징을 드러내려는 철학은 동일하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와인이 제공됐다. 이날 디너에서는 피에르와 테오의 와인을 한 쌍으로 묶어 총 다섯 번 제공했다. 첫 번째는 화이트 와인. 둘 다 샤르도네(Chardonnay)로 만들었다. 테오가 만든 록 브레이아 샤르도네(ROC BREIA Chardonnay) 2022는 흰 자두, 서양배 같은 달콤한 과일 풍미가 물씬 피어오른다. 신선한 허브 뉘앙스가 살짝 더해지며 크리미한 질감과 뉘앙스가 매력적인 여운을 남긴다. 둥글고 부드러우며 선이 굵으면서도 풍미가 섬세하게 표현되는 아름다운 와인이다. 마꽁(Macon)의 70년 수령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를 사용해 500리터 오크통에서 발효 및 숙성했다. 함께 나온 피에르의 르 노이에 샤르도네(LE NOYER Chardonnay) 2022는 구수한 오크 뉘앙스 아래로 완숙 핵과 풍미와 스모키 미네랄 힌트가 매력적으로 어우러진다. 입에 넣으면 잘 익은 과일 풍미와 함께 신선한 신맛이 피니시까지 이어져 깔끔한 여운을 선사한다. '와, 이건 클래식 부르고뉴 샤르도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쥐라에서 재배한 포도를 사용했다. 놀라서 물어보니 아마 부르도뉴 화이트 와인과 같은 양조 방식을 사용했기에 그런 뉘앙스를 느낀 것 같다고 답했다. 100% 줄기를 제거하지 않은 포도를 456리터 오크통에서 11-12개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8-10개월 효모 잔여물과 함께 숙성한다. 르 노이에 샤르도네를 숙성한 오크통 중 새 오크 비율은 30%. 새 오크 비율이 낮지 않은 편이지만 배럴 사이즈가 2배이고 오크통 형태를 잡은 후엔 추가 토스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오크 뉘앙스가 과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병입 시 정제와 여과는 하지 않는다.
피에르는 빈티지별로 모든 화이트 와인을 같은 방식으로 양조한다. 부르고뉴와 쥐라의 차이 또한 두지 않는다. 이는 레드 와인도 마찬가지다. 차이는 새 오크의 비율 정도다. 피에르는 부르고뉴의 포도밭 가격이 너무 오른 데다 2021년 최악의 빈티지를 경험하면서 다른 지역을 알아보던 중 쥐라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쥐라는 부르고뉴와 유사한 위도이고 테루아도 훌륭한 반면 포도밭 가격은 아직 합리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르고뉴 꼬뜨 도르(Cote d'Or)는 보통 동향인데 쥐라는 서향인 경우가 많아 더 서늘하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점점 더 큰 장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2021년 피에르와 테오는 함께 쥐라로 영역을 넓혔다.

두 번째 제공된 와인들 역시 화이트 와인이다. 테오 당세 사바냥 쥐라시크(THEO DANCER Savagnin Jurassique) 2022는 테오가 쥐라에서 재배한 사바냥으로 양조한 와인이다. 고혹적인 흰 꽃 향기와 백도, 파인애플 같은 달콤한 과일 풍미가 향긋하게 드러난다. 입에서는 명확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신맛이 긴 여운을 선사한다. 포도 자체의 선명한 풍미가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와인이다. 압착 직후 침전하지 않은 주스를 1~4년 사용한 350리터 혹은 500리터 크기의 오크통에서 발효하고 12개월 정도 숙성한다. 이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보관하다가 병입한다. 테오는 숙성 시 새 오크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피에르가 사용했던 오크통을 많이 받아 간다고.
레이블에는 쥐라의 아펠라시옹 대신 뱅 드 프랑스(Vin de France)가 적혀 있다. 이는 수확한 포도를 부르고뉴의 양조장으로 가져와 양조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꽁의 포도로 만드는 록 브레이아도 마찬가지다. 피에르 또한 쥐라 와인을 자신의 부르고뉴 양조장에서 양조하기에 레이블에 뱅 드 프랑스로 표기한다. 일반적으로 아펠라시옹 표기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과 가문의 명성이라면 이런 결정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나온 피에르 지라르댕 본 프르미에 크뤼 레 그랑 제쁘노(Pierre Girardin Beaune Premier Cru Grandes Epenotes) 2022는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이 소위 '깨 볶는 향'이라고 자주 표현하는 고소한 향이 명확히 드러난다. 여기에 완숙한 복숭아, 신선한 시트러스, 흰 꽃과 신선한 허브 힌트, 가벼운 바닐라 오크 뉘앙스가 은은하게 곁들여지는 격조 높은 화이트 와인이다. 이 와인 양조에 쓰인 포도밭은 남쪽으로 뽀마르(Pommard)에 인접해 있다. 때문에 여태까지 레드 품종인 피노 누아(Pinot Noir)가 식재돼 있었다. 하지만 직접 포도밭을 확인한 피에르는 석회질이 많이 섞인 토질이 샤르도네에 더 적합하다고 확신했다. 과감하게 샤르도네를 심은 후 생산한 첫 빈티지가 바로 2022년이다. 그리고 이날 모인 모든 사람들은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세 번째 제공된 와인들은 둘 다 뫼르소(Meursault)였다. 뱅상 당세 뫼르소 레 코르방(VINCENT DANCER Meursault Les Corbins) 2022는 흰 자두 과육 같은 순수한 과일 풍미가 우아하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매끈하고 부드러운 질감과 깔끔한 신맛이 명확한 구조감을 형성한다. 피니시에 살짝 스치는 벌꿀 같은 여운이 오묘함을 더한다. 양조 방식은 앞서 나온 사바 쥐라시크와 동일하다. 테오의 뫼르소가 다소 개성적인 면모를 보였다면, 피에르의 와인은 전형적인 뫼르소의 스타일을 드러낸다. 피에르 지라르댕 뫼르소 레 나르보(Pierre Girardin Meursault Les Narvaux) 2022는 예의 깨 볶는 뉘앙스와 함께 완숙 복숭아 풍미, 석고 같은 미네랄과 스모크 오크 힌트가 어우러지며 입에서는 선명한 레몬 같은 신맛이 생동감 넘치는 인상을 남긴다. 과일과 오크 풍미의 균형감이 절묘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역시 화이트 맛집으로서 당세와 지라르댕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 번째는 레드 와인이다. 록 브레이아 피노 누아(ROC BREIA Pinot Noir 2022)는 붉은 베리와 체리의 농익은 풍미와 은은한 발사믹 뉘앙스가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잔잔한 타닌과 신선한 신맛이 탄탄한 구조를 형성한다. 편하고 친근해 술술 넘어가는 맛있는 와인. 마꽁의 35년 수령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를 50%만 줄기를 제거해 사용한다. 발효 및 침용, 숙성은 500리터 재사용 오크통에서 진행한다. 함께 제공된 피에르 지라르댕 뽀마르 프르미에 크뤼 레 그랑 제쁘노(PIERRE GIRARDIN Pommard Premier Cru Les Grandes Epenots) 2022는 향긋한 붉은 장미꽃 향기와 붉은 베리, 라즈베리 아로마가 그윽하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촘촘하지만 벨벳처럼 부드러운 타닌이 인상적이다. 밀도 높은 검붉은 베리 풍미가 은은한 정향, 오크 뉘앙스와 어우러져 잔잔한 여운을 선사한다. 아직 많이 어리지만 그 숙성 잠재력은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와인을 생산하는 구획과 본 프르미에 크뤼 레 그랑 제쁘노를 생산하는 구획은 아주 가깝게 붙어 있지만 토양은 어두운 붉은색의 점토 석회질로 다소 다르다. 이런 토양에서 재배한 포도는 너무 강하게 압착하면 타닌이 지나치게 추출될 수 있어 부드럽고 세심하게 압착한다. 줄기를 제거하지 않은 포도를 100% 사용해 침용 및 발효한 후 새 오크 비율 50%의 오크통에서 9개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4개월 숙성한다.

대미를 장식한 레드 와인 2종. 뱅상 당세 뽀마르 레 페리에르(VINCENT DANCER Pommard Les Perrieres) 2022. 방순한 딸기와 라즈베리, 검붉은 체리 풍미가 그윽하게 드러나며 덤불 허브 힌트가 가볍게 더해진다. 입에 넣으면 산뜻한 신맛과 실크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우아하게 드러난다. 피노 누아의 프루티한 매력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와인. 마시면 마실수록 빠져드는 와인이다. 피에르 지라르댕 끌로 드 부조 그랑 크뤼(PIERRE GIRARDIN Clos de Vougeot Grand Cru) 2022는 라즈베리, 검붉은 체리 아로마에 신선한 허브, 감초, 가죽 힌트가 가볍게 더해져 복합적인 인상을 선사한다. 입에서는 아직 단단한 코어가 느껴지지만 부드러운 타닌과 조화를 이루는 신맛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다. 그랑 크뤼답게 숙성 이후가 기대되는 와인. 끌로 드 부조 중에서도 부조 성 동쪽 뮈지니(Musigni) 아래쪽에 위치한 몽티오뜨 오뜨(Montiotes Hautes) 구획의 포도로 양조한다. 줄기를 제거하지 않은 포도를 100% 사용해 침용 및 발효한 후 새 오크 비율 80%의 오크통에서 9개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4개월 숙성한다.

그들은 디너 내내 영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서툰 한국어 몇 마디를 섞어 유쾌하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행사 마지막에 참석자들과 즐겁게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20대의 유쾌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와인을 설명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그들은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집요하게 찾아나가는 멋진 와인메이커들이다. 그야말로 앙팡 테리블(enfants terribles). 이미 정상의 위치에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훌륭해질 피에르 지라르댕과 테오 당세의 와인을 기대한다.
부르고뉴 정상에서 더 먼 곳을 바라보는 두 신예, 피에르 지라르댕 & 테오 당세 - 와인21닷컴
전통적인 프리미엄 와인 산지,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에서조차 어리지만 빼어난 실력을 갖춘 와인메이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두 와인메이커 피에르 지라르댕(Pierre 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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