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에 못 보던 맥주들이 들어왔길래 집어 왔다. 호주 하나, 한국 하나, 그리고 체코 다섯. 오늘은 체코 다섯 중 우측 2nd & 3rd 맥주들을 마셨다.
먼저 점심먹으며 밝은 녀석부터. 레이블이 전부 체코어로 되어 있어서 읽기가 어렵다. 수출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체코 내수용인 듯. 트라디치니 피보(Tradiční Pivo)는 대충 전통 맥주(traditional beer)라는 뜻일 것 같고... 구글 번역을 돌려 보니 스베틀리 레작(Světlý Ležák)은 라이트 라거(light lager)라는 의미다.
바칼라르(Bakalar)는 체코의 유서깊은(?) 양조장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정보를 알기는 어렵다. 홈페이지를 보면 라코브니크(Rakovník) 소재의 양조장인 듯. 이 마을이 예로부터 맥주 양조로 유명한 지역이었던 것 같다. 필스너의 고장 필센(Plzen)이 라코브니크에서 남(서)쪽으로 5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라코브니크는 프라하로부터 서(북)쪽으로 50mk 정도 떨어져 있다. 필센과 라코브니크 모두 프라하에서 서유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들. 993년에 이미 양조 기록이 남아 있으며 1454년 합스부르크 가문 헝가리/체코/보헤미아의 왕이었던 라디슬라우스(King Ladislaus)로부터 1마일 이내 판매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아마도 1454는 양조장의 창립년도가 아니라 바로 이 해인 듯. 바칼라르는 라코브니크의 양조 전통을 잇는 대표적인 브루어리 정도 되는 듯 싶다. (필센의 필스너 우르켈처럼?)
뒷면도 역시 체코어로 도배. 알코올은 4.9%이고 재료는 정제수, 맥아, 이스트, 홉.
Bakalář Světlý Ležák / 바카라르 스베틀리 레작
오렌지빛 감도는 제법 진한 골드 컬러에 비교적 촘촘한 헤드가 풍성하게 얹어진다. 몇 모금 마실 때 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라거 치고는 지속력있는 기포. 향긋한 꽃 내음과 가벼운 이스트 힌트, 그리고 구수한 맥아 향기, 그리고 코 끝으로 전해지는 알싸함이 전반적으로 마음에 든다. 한 모금 마시면 달콤한 꿀 뉘앙스에 드라이하며 가벼운 미감, 개운한 목넘김과 가벼운 쌉쌀함. 라이트 라거라는 카테고리에 걸맞은 풍미. 상당히 마음에 든다.
그래서 저녁에 한잔 더. 옛날식 또봉이 통닭과 함께 먹었다. 요것 역시 체코어 레이블. 트마베 비체프니(Tmavé Výčepní)는 열처리를 하지 않은 다크 비어(dark draft) 라는 의미다.
재료는 역시 정제수, 맥아, 이스트, 홉. 알코올은 3.8%. 다크 비어는 요렇게 가벼운 게 내 취향에 잘 맞는 듯 하다.
Bakalář Tmavé Výčepní / 바카라르 트마베 비체프니
까만, 사실은 짙은 갈색에 옅은 베이지색 헤드. 역시 지속력은 좋다. 코를 대니 가벼운 캬라멜 뉘앙스와 함께 초컬릿 향이 과하지 않게, 은은하게 감돈다. 입에 넣으면 알코올 도수에 맞게 가볍고 편안한 느낌. 마치 아메리카노 1/3쯤 남은 데다 물 탄 것 같기도 하다. 개운한 미감에 약간의 단 맛, 매우 가벼운 쌉쌀함. 밸런스가 낮은 곳에서 적절하게 잘 맞았다. 모든 요소를 미니멀화했는데 균형은 괜찮은 느낌이랄까. 나에게는 아주 적절한 맥주. 여름용으로도 최적일 듯.
사족. 이 맥주들 홈플에서 병당 천원이다. 4병 묶음 이런 것도 아니고 1병 사도 천원이다. 용량도 500ml. 유통기한이 각각 7월(다크), 8월(라이트 라거)이라 떨이로 파는 것 같긴 한데, 제조한 지 10개월이 다 되어가는데도 맛은 대량 생산 국산보다는 나아 보인다. 부디 이번 재고 다 털고 이후에도 계속 수입 해 주셨으면... 정상 가격으로 올라가도 나는 사서 마실 것 같다.
이런 맥주를 마실 때 마다 매스 시장을 (아직은) 좌지우지하고있는 한국 대량생산 라거들이 밉다. 그들은 자신들이 충분한 기술력을 갖췄고 한국 입맛에 맞춘 나름 질좋은 라거를 만든다고 항변하지만, 그렇다면 왜 수입맥주의 점유율이 계속 올라가는가? 국내 크래프트 비어 씬에 대한 (젊은)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가? 기술력이 있다면 품질로, 다양성으로 입증해 보라.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맥주에 대한, 고객에 대한 진정성이다.
개인 척한 고냥이의 [와인저장고 맥주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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