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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205. 와인이 일상 음료가 되려면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1. 6. 3.

와인을 집이나 대중 음식점 등 어느 곳에서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쓴 글. 이미 10년 전에 비해서는 상당히 전진했다. 매장의 인식도, 소비자의 의식도 상당히 변화했으니까. 이제 '종량세'라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기다.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이 저장용으로 스크랩한 것입니다.

 

와인이 일상 음료가 되려면

'와인을 소주처럼'. 15년 전쯤 회사 내 와인 동호회를 만들며 내걸었던 구호다. 원샷을 하자거나 과음을 하자는 말은 물론 아니었다. 와인을 마실 때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지 말고 부담 없이 마시자는 의미였다. 당시에는 와인이 소수 애호가들만 즐기는 음료에서 벗어나 막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시절. 시중 서점에는 와인 개론서가 넘쳐났고, 신문 기사는 만화 <신의 물방울>을 대기업 임원들의 필독서로 추천할 정도였다. 심지어 지상파 TV에서 와인을 소재로 <테루아>라는 드라마를 방영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와인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초기엔 와인에 대해 형식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따르고 저렇게 마셔야 한다는 소위 '와인 매너'에 대한 담론이 넘쳐났다. 스템을 잡고, 잔을 돌려 향기를 맡은 후, 입안에서 호로록거리고, 뭔가 예술적인 테이스팅 노트를 뱉어내야 한다는 그런 얘기들 말이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 때문이었는지 동호회 설립 초기에는 모일 때마다 품종이나 지역 등 주제를 정해 스터디를 하고, 테이스팅 노트를 써서 와인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모임이 지속되는데도 영 활기가 생기질 않았다. 회사 동호회는 친목 도모가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다들 쭈뼛쭈뼛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한강변에서 탕수육과 짜장면을 시켜 신문지를 깔고 편하게 와인을 마셨다. 그제야 비로소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가 도는 기분이 들었다. 그 모임을 기점으로 동호회 성격을 스터디 그룹에서 친목회로 확 바꾸어버렸다. 그렇다고 퍼마시고 취하는 분위기로만 흘렀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와인과 친해지면서 본인의 취향에 맞는 품종이나 지역,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다. 최소한 와인을 자주 즐기며 본인의 스타일을 찾아 나가려는 노력은 하게 되었달까. 일부 회원은 특정 생산자나 떼루아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공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재까지 이 와인 동호회는 꾸준히 활동 중이다. 

요즘은 그때처럼 형식을 중요시하거나 딱딱하게 마시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와인이 일상적으로 마시는 음료 중 하나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지난 10년간 와인 수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게 그 반증이다. 올해 'A'마트의 카테고리 별 매출 순위에서 와인이 10위 안에 들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해당 마트에서 와인을 구입한 소비자가 연간 360만 명을 넘어선다니, 와인이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쉽게 카트에 집어넣는 생필품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게다가 편의점과 마트에서 주류 스마트오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원하는 와인을 집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스마트오더에서 제공하는 와인 리스트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대중적인 와인부터 희소한 와인, 프리미엄 와인에 이르기까지 제법 구색을 갖췄다. 와인이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일정 수준의 벽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 파인 다이닝을 제외하면 레스토랑이나 비스트로에서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많지 않고, 와인을 마시더라도 업장에서 주문하기보다는 콜키지 서비스 가능 매장에서 가져온 와인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와인이 없거나, 있더라도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 와인 값이 이치에 맞지 않게 비싸다거나, 레스토랑에서 바가지를 씌운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언론에서는 잊을만하면 국내 와인 값에 거품이 끼었다며 해외가와 비교하지만, 반대로 국내에서 1,500원 정도인 소주 한 병이 외국에서 얼마인지 확인해 보면 그런 단순한 논리로 판단하긴 어려운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소매점에서 1,500원인 소주를 4,000원에 판다며 음식점을 비판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레스토랑에서 소매점보다 와인 값을 비싸게 받는다고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있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진상'이라고 부른다.) 판매채널 별로 와인 가격이 다른 것은 코트 한 벌의 가격이 백화점과 창고형 마트, 일반 매장에서 각각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라면 와인 리스트를 제대로 구비한 음식점이 그리 흔치 않으며, 구비한 음식점의 경우도 선택지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는 정도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내에 유통되는 와인 가격은 대체로 수입원가와 유통 및 판촉비용, 마진 등을 고려하여 적정하게 책정된다.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는 세금이 아닐까. 종가세 말이다. 와인은 포도로 만드는 음료이므로 비교적 제조원가가 비싼 편이다. 운송비, 보험료 등 수입을 위한 비용도 많이 든다. 냉장 컨테이너를 쓰거나 항공 운송을 하게 되면 비용은 훨씬 커진다. 그런데 거기에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이 붙는다. FTA로 관세는 면제받는다 치더라도 주세, 교육세, 부가세 등을 합치면 세금은 원가 대비 50%에 육박한다. 그것을 기준으로 유통비용과 마진이 더해지니 와인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와인이 대중화되는 상황에 이런 방식의 세금이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와인 업계도 이미 오래전부터 종량세로의 전환을 요구해왔다. 와인 수입사 중에는 작은 규모의 업체가 많다. 또한 와인의 특성상 다양한 제품을 조금씩 수입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래저래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을 낮추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가격 기준의 종가세보다는 용량 중심의 종량세가 유리하다. 또한 종량세 전환은 희소하거나 개성 있는 와인을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있는 유인책이 된다. 가격이 조금 높더라도 종가세일 때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누릴 수 있는 선택지가 그만큼 넓어질 것은 자명하다. 

고객의 선택권 확대는 국산 와인 생산 활성화를 통해서도 일어난다. 맥주 업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맥주의 경우 2019년 종량세로 전환하면서 세금 감면 효과를 본 중소규모 수제 맥주 양조장들이 다양한 맥주들을 활발하게 출시하고 있다. 마트는 물론 편의점 매대에서도 수제 맥주 양조장의 맥주를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격 경쟁력이 생겼다. 정부도 종량세 전환하면서 수제 맥주 업계 활성화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는데 그대로 된 셈이다. 와인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미 전국 각지의 뜻있는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다양한 와인이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청수 등 국내에서 개발한 품종은 양조용으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량세 전환은 국내 와이너리는 물론 와인 업계 전체를 활성화하는 데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간단히 정리해 보자. 와인이 더욱 친근한 생활 속의 음료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가격 인하와 함께 더욱 폭넓은 스타일, 다양한 가격대의 와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카테고리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종량세 전환은 이를 위한 주춧돌이 될 것이다. 

 

 

와인이 일상 음료가 되려면

관세를 제외하더라도 주세, 교육세, 부가세 등을 합치면 세금은 원가 대비 50%에 육박한다. 그것을 기준으로 유통비용과 마진이 더해지니 와인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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