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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204. 심신을 녹이는 따뜻한 마리아주, 국물 요리와 와인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1. 6. 3.

원칙적으로 국물 요리와 와인은 잘 어울리지 않는 편인데, 찾아보면 방법이 없지는 않다. 뜨끈한 국물 요리와 와인,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다면 참고할 만한 방법.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이 저장용으로 스크랩한 것입니다.

 

심신을 녹이는 따뜻한 마리아주, 국물 요리와 와인

연초부터 북극발 한파가 매섭다. 절기 중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1월 5일)을 전후해 서울 기준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날씨가 일주일 이상 지속됐다. 큰 눈이 와서 출퇴근 시간이 대전 왕복시간 이상 걸렸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었다. 그나마 요새 날씨가 좀 풀리는 것 같더니, 주말을 기점으로 다시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예보다. 대한(大寒,1월 20일)이가 소한이네 집에 갔다가 얼어 죽기는커녕, 소한이네 추위를 얻어왔나 보다.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마음도 시린데 강추위로 몸까지 오들오들 떨린다. 몸도 마음도 이래저래 서럽다. 

추위로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는 뜨끈한 국물이 제격이다. 따끈한 국물에 밥 한 술 말아서 속을 채우면 따뜻한 기운이 몸 안에서부터 퍼져 나와 굳은 몸이 부드럽게 풀리는 기분이 든다. 이마에 송송 맺힌 땀을 가볍게 닦으며 국물을 술술 마시다 보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따뜻한 국물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은 뭐가 있을까? 사실 매칭하기가 녹록지는 않다. 서양 식탁에서는 와인이 국물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탕에 국을 더하는 격이다. 보통 국물 요리 둘이 만나면 그다지 좋은 궁합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탕과 찌개, 국을 곁들여 먹는 경우가 흔치 않은 이유다.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 덕분에 유명해진 표현 '마리아주'. '결혼'이라는 뜻으로 음식과 와인이 만나 어우러지며 양쪽의 맛을 증폭시킨다는 의미로 쓰인다. 1+1=2를 넘어 1+1=3, 4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마리아주다. 그런데 국물과 국물이 만나면 양쪽 모두의 풍미가 뭉툭해져 버린다. 1+1이 2보다 작아져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뜨거운 국물 요리 다음에 섭씨 16-18도 정도의 레드 와인, 혹은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마시게 되면 와인의 풍미를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주는 역할을 하는 소주나 맥주와는 상황이 다르다. 최악의 경우 시큼한 과일맛만 애매하게 남기 일쑤다. 1+1이 1보다도 작아지거나 아예 마이너스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국물요리와 와인의 매칭은 애초에 포기해야 할까? 대부분의 경우 그게 나을 수도 있다. 혹은 부이야베스 같이 와인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서양식 스튜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에서 찾고 싶다. 찾다 보면 다 길이 있는 법. 와인과 함께할 수 있는 두 가지 국물요리를 소개한다. 하나는 우회 공격, 다른 하나는 정공법이다.

 

국물요리지만 국물이 메인이 아닌 것, 샤브샤브

살짝 옆길로 돌아가는 방법부터 소개한다. 얇게 썬 쇠고기와 각종 야채, 버섯 등을 팔팔 끓는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 요리, 바로 쇠고기 샤브샤브다. 뜨거운 국물이 식탁의 중심에 놓이지만 직접 국물을 떠먹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육수를 통해 다양한 재료들 본연의 맛을 끌어올리는 것이 포인트. 게다가 다 먹고 난 후 진한 육수에 칼국수를 끓이면 자연스럽게 선주후면(先酒後麵)이 완성된다. 계란을 풀어 죽을 끓여도 해장에 일품이다. 애주가에게는 최적의 음식인 셈.

와인과의 매칭도 조금만 너그러워진다면 그리 까다롭지 않다. 맛이 진하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순하기 때문에 가벼운 레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이 두루 어울린다. 쇠고기와 버섯에 초점을 맞춘다면 피노 누아(Pinot Noir)나 보졸레(Beaujolais), 랑게 네비올로(Langhe Nebbiolo) 같은 레드 와인이, 야채류에 초점을 맞춘다면 리슬링(Riesling)이나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같은 화이트 와인이 괜찮다. 스파클링 와인이나 로제 와인도 대체로 어울린다. 너무 무거운 와인만 피한다면 본인이 좋아하는 와인을 곁들여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난로 삼아 훈훈한 온기로 몸을 녹이며 와인을 마셔 보자.

 

다양한 해산물의 진한 국물 맛, 모둠 해물탕

서두에서 잠깐 언급했던 부야베스(bouillabaisse)는 지중해식 생선 스튜로, 마르세이유 등 프랑스 남부 해안지방의 전통 요리다. 원래 어부들이 팔 수 없는 잡고기를 모아 끓여먹던 서민적 음식이었으나, 해안가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샤프란 등 고급 향신료와 남프랑스의 허브, 올리브유 등을 첨가해 고급 음식으로 탈바꿈했다. 1980년대에는 부야베스의 전통과 맛을 지키기 위해 셰프들을 중심으로 부야베스 위원회를 발족하고 재료 등을 규정하기도 했을 정도. 보통 진하게 끓인 국물과 함께 빵을 곁들여 먹은 다음, 함께 끓인 감자 등과 익은 생선살을 발라먹는다. 곁들이는 와인은 주로 프로방스 지역의 로제 와인.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기도 한다.

한국의 해물탕은 프랑스의 부야베스와는 맛과 성격이 다르지만, 유사한 방식으로 와인과 곁들일 수 있다. 단, 회를 먹은 후 남은 재료로 끓이는 국물 중심의 서더리 매운탕이나 지나치게 맵게 끓인 매운탕은 와인 페어링용으로 적합지 않다. 각종 어패류와 문어, 꽃게 등을 듬뿍 넣어 진하게 끓인 전골 같은 해물탕이 적절하다. 진한 국물에 자박하게 적신 생선살, 조갯살을 부야베스처럼 다양한 로제 와인과 곁들이면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카바, 샴페인 등 전통방식으로 만든 화이트 혹은 로제 스파클링 와인 또한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뮈스까데(Muscadet), 베르데호(Verdejo), 알바리뇨(Albarino) 같은 화이트 와인과 곁들이는 것도 좋아한다. 로제 와인과는 상승의 마리아주, 화이트 와인과는 깔끔한 마리아주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따뜻한 마리아주임은 틀림없다. 

 

 

심신을 녹이는 따뜻한 마리아주, 국물 요리와 와인

얇게 썬 쇠고기와 각종 야채, 버섯 등을 팔팔 끓는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 쇠고기 샤브샤브. 맛이 진하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순하기 때문에 가벼운 레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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