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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299. 전통과 테루아를 지키는 토스카나의 명가, 마쩨이(Mazzei)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3. 11. 28.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지역의 선호하는 와이너리, 마쩨이의 오너의 단독 프레스 런치. 살짝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자리였는데 잭 니콜슨을 닮은 이 분, 와인이 들어갈수록 표정이 풀리면서 말이 술술 나온다. 보통 와이너리 오너들은 다양한 일정에서 계속 와인을 시음하거나 마시기 때문에 식사 중에는 자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분은 정말 잘 드셨다. 그래서 사진 속의 저 표정이 나올 수 있었던 듯. 어쨌거나 흥미로웠다. 이런 분들의 기억에 내 이름이나 얼굴이 남아있을 때 현지를 방문해야 하는데... 내년에는 어떻게든 유럽을 여행해 볼까.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이 저장용으로 스크랩한 것입니다.

 

 

전통과 테루아를 지키는 토스카나의 명가, 마쩨이(Mazzei)

마쩨이를 '토스카나의 명가'라고 소개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토스카나의 카스텔로 디 폰테루톨리(Castello di Fonterutoli)와 벨구아르도(Belguardo) 외에도 베네토에 빌라 마르첼로(Villa Marcello), 시칠리아에는 지솔라(Zisola) 와이너리를 보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뿌리는 역시 토스카나다. 무려 25대를 이어 온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의 대표 와이너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찾은 마쩨이의 CEO 필리포 마쩨이(Filippo Mazzei)를 만나 점심을 함께하며 마쩨이 가문과 와인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필리포 마쩨이 CEO는 사업가이기 이전에 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와인 애호가였다.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수록 표정이 밝아지고 더욱 기운이 나는 듯했다.

 

[ 마쩨이의 CEO 필리포 마쩨이 ]

마쩨이 가문의 선조 세르 라포 마쩨이(Ser Lapo Mazzei)가 1398년에 쓴 편지는 '키안티(Chianti) 와인'이 공식적으로 언급되는 가장 오래된 문서다. 이는 마쩨이 가문이 키안티 클라시코의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방증이며, 동시에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의 가치가 옛날에도 상당히 높았음을 의미한다. 필리포 마쩨이 CEO는 “1350년대와 1400년대 와인 가격을 세부 지역별로 조사한 연구를 본 적이 있는데, 키안티 와인의 가격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많이 상승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세르 라포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Mazzei Ser Lapo Chianti Classico Riserva)는 이런 선조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헌정하는 와인이다. 세르 라포라는 이름 자체가 키안티 클라시코와 가문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쩨이는 모든 와인을 상업적이 아닌 철학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값비싼 아이콘 와인이든 저렴한 엔트리급 와인이든 차이가 없다. 진화하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와인 양조 방식의 철학과 근본은 바꾸지 않는다. 일례로 카스텔로 디 폰테루톨리(Castello di Fonterutoli)는 650헥타르의 방대한 영지 안에 포도밭은 최상급 테루아를 골라 110헥타르만 조성했다. 그리고 일곱 종류의 테루아와 220m에서 570m에 이르는 해발 고도, 지형, 일조량 등 여러 요소에 의한 미세 기후에 따라 114개 구획으로 나누었다. 포도나무 클론 또한 구획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식재했다. 산지오베제(Sangiovese) 클론 가짓수만 36가지에 이를 정도다. 마쩨이는 이것을 '조나지오네(zonazione)'라고 부른다. 각각의 기후와 토질을 엄격히 분석해 작은 구획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40여 년이 넘는 오랜 연구와 경험의 결과다. 

 

[ 마쩨이의 토스카나 포도밭(출처: 마쩨이 홈페이지) ]

포도밭 관리 또한 꼼꼼하다. 유기농으로 포도를 재배하며, 자연 퇴비만 사용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수확량의 변화다. 1970년대까지는 헥타르당 3천 그루의 포도나무가 식재돼 있었고, 수확량은 그루 당 2kg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헥타르당 식재 밀도를 7천4백 그루까지 높인 대신, 수확량은 그루당 0.8kg에서 1kg 수준으로 절반 이상 낮췄다. 식재 밀도가 높아지면 포도나무는 생존 경쟁을 위해 뿌리를 깊게 내려 떼루아를 더욱 명확히 표현할 수 있다. 생산량을 줄이니 포도 풍미의 밀도는 더욱 올라간다. 수확은 예나 지금이나 손으로 한다. 구획별로 성숙도에 맞춰 나눠 수확하다 보니 40일이 넘게 걸린다. 양질의 포도가 생리적으로 완숙할 때 수확하는 셈이다. 이렇게 포도밭을 관리하면 노력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지 않냐는 질문에 “돈을 덜 벌더라도 품질에 더 신경을 쓴다”는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시크한 미소와 함께.

 

[ 폰테루톨리 셀러(출처: 마쩨이 홈페이지) ]

2007년 완공한 카스텔로 디 폰테루톨리의 새로운 셀러는 건축 기간만 4년이 걸렸다. 유명 건축가인 아그네스 마쩨이(Agnese Mazzei)가 설계에 참여해 마쩨이 가문의 손길을 더했다. 총면적 9,500 ㎡에 이르는 마쩨이의 거대한 셀러는 3층으로 구성돼 있다. 지하 1층에는 발효 탱크, 지하 2층에는 숙성을 위한 배럴들을 배치해 와인을 중력으로 자연스럽게 옮길 수 있다. 산지오베제는 껍질이 얇고 섬세한 품종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쓴맛이 강하게 드러난다. 때문에 중력을 통한 자연스러운 운반은 품질 유지에 필수적이다. 양조 중 펌핑 오버(pumping-over)를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셀러의 습도는 벽면을 흐르는 천연 암반수에 의해 자연스럽게 유지돼 와인 숙성에 최적 환경을 제공한다. 그들은 이 셀러를 '산지오베제 사원(The Temple of Sangiovese)'이라고 부른다. 자부심이 담긴 표현이다. 그럴 만하다. 영국의 와인 전문지 <디캔터(Decanter)>로부터 '시대를 대표하는, 키안티 지역에서 가장 인상적인 셀러'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니까.

 

[ 필리프 와인 레이블(출처: 마쩨이 홈페이지) ]

최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필리프(Philip)에 대해서도 물었다. 필리프는 키안티 클라시코 생산지역에서 재배한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100%로 양조한 슈퍼 투스칸 스타일 와인이다. 맛과 품질도 좋지만 양 볼이 빨갛게 물든 필리프 마쩨이(Philip Mazzei)의 귀여운 초상화로 장식된 레이블 또한 인상적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레이블을 그린 화가는 한국계 여성이라고 한다. 필리프를 처음 만들 때 5천 유로의 상금을 걸고 콘테스트를 진행했는데,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초상화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이 그림이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필리포 마쩨이 CEO는 화가의 이름을 기억해 내진 못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와인의 레이블을 한국계 화가가 그렸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이 와인 역시 마쩨이 가문의 선조에게 헌정하는 와인이다. 특히 필리프 마쩨이는 존 F. 케네디, 버락 오바마 같은 미국의 대통령들이 특별히 언급할 만큼 미국 건국과 독립 정신의 확립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의사였지만 와인이나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소양을 쌓았다. 런던으로 건너간 그는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벤자민 프랭클린과 인연을 맺었고, 그를 통해 토마스 제퍼슨을 알게 되었다. 와인 애호가이며 버지니아에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던 토마스 제퍼슨은 필리프 마쩨이를 그의 포도밭으로 초대했다. 그는 세 대의 배에 40여 명의 인부를 대동하고 토마스 제퍼슨을 도우러 미국으로 떠났다. 그의 배에는 토스카나의 포도나무 묘목과 올리브 나무 등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그가 도운 것은 포도 재배만이 아니었다. 몇 달 뒤 그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함께 미국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토머스 제퍼슨이 '만인은 천부적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독립적'이라는 미국 독립 선언서 정신의 영감을 얻은 것도 필리프 마쩨이로부터였다. 

이렇듯 미국과의 인연과 선조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기 위해 필리프카베르네 소비뇽 100%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 맛과 스타일에는 토스카나의 뉘앙스가 명확히 살아 있다. 확실히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다.

 

[ 마쩨이 세르 라포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출처: 마쩨이 홈페이지) ]

사실 마쩨이의 와인들 대부분이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이날 함께 마신 벨구아르도 베르멘티노(Belguardo Vermentino)와 세르 라포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도 마찬가지다. 필리포 마쩨이 CEO는 카스텔로 디 폰테루톨리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Castello di Fonterutoli 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또한 추천했다.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와 자주 비교된다. 하지만 필리포 마쩨이 CEO는 '그란 셀레지오네는 브루넬로에 비해 더 프레시하고 섬세하다. 때문에 요즘 같은 지구 온난화 상황에서 더 적절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며 그란 셀레지오네 와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가문의 전통을 지키며 키안티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는 마쩨이. 올 가을엔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 그들의 와인을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 필리프처럼 양 볼을 기분 좋게 물들이며 말이다.

 

 

전통과 테루아를 지키는 토스카나의 명가, 마쩨이(Mazzei) - 와인21닷컴

마쩨이를 '토스카나의 명가'라고 소개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토스카나의 카스텔로 디 폰테루톨리(Castello di Fonterutoli)와 벨구아르도(Belguardo) 외에도 베네토에 빌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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