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남자, 존 워커(John Walker).
간만에 블렌디드 위스키를 마셨다. 사 놓은지는 꽤 됐는데. 작년 말인가, 올해 초인가... 아무튼 외투를 입은 쌀쌀한 날씨였다. 친구를 만나러 압구정에 간 김에 '조니워커하우스'에 들러 구매했다.
케이스가 상당히 작고 날렵해 보이는 데다 무게도 가벼운 편이라 처음엔 500ml인가, 심지어 350ml인가 싶었는데 700ml가 맞다. 가격은 놀랍게도 정가 33,000원. 이런 가격의 스페셜 에디션이 있었던가.
조니워커에서 새롭게 출시한 블렌더스 배치(Blender's Batch)의 첫 번째 시리즈다. 레이블 우측에 No.1 표시가 선명하다. 검색해 보니 바에서 블렌딩에 사용되는 스피릿을 위스키로 대체해 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위스키라는 이야기가 있다. 난 그냥 마스터 블렌더가 초이스한 배치라는 뜻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렇게 레이블에 마스터 블렌더 지미 베버리지(Jimi Beveridge)의 사인도 떡하니 들어가 있고 말이지. 게다가 보틀 별로 고유 번호가 새겨져 있다. 내가 산 것은 263602번 보틀.
레드 라이 피니시(Red Rye Finish)라는 말 그대로 퍼스트 필 버번 캐스크에서 숙성하던 위스키를 마지막 6개월 동안 라이 위스키 캐스크에서 숙성하여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더했다. (버번도 충분히 부드럽고 달콤한데 거기에 추가로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더했다구요??) 개발을 위해 총 203종의 몰트 & 그레인 위스키로 50회 이상의 실험을 거쳤다고. 최종적으로 블렌딩을 위해 선정한 위스키는 4종인데, 특히 조니 워커의 키 몰트인 카두(Cardhu)와 지금은 문을 닫은 증류소 포트 던다스(Port Dundas)의 그레인 위스키를 메인으로 사용했다. 카두는 생기 넘치는 신선한 과일 풍미를, 포트 던다스는 크리미하고 바닐라 풍미를 더한다.
홈페이지에 백레이블과 유사한 설명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가벼운 안주와 함께. 잔은 리델 베리타스 스피릿 글라스를 사용했다.
Johnnie Walker, Blender's Batch No.1 Red Rye Finish / 조니 워커 블렌더스 배치 no.1 레드 라이 피니시
반짝이는, 상당히 옅은 골드-앰버 컬러. 어릴 적 명절에 입었던 한복 마고자에 달려 있던 호박이 떠오른다. 처음 코를 대면 돼지 본드 같은 힌트가 싸악 스쳤다가 사라지고, 버번 위스키 같은 톡 쏘면서도 달콤한 향기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입에 넣으면 역시 향긋한 바닐라와 달콤한 과일 풍미에 톡 쏘는 스파이스가 은은하게 깔린다. 여기까지는 확실히 버번 위스키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우스필에서 인상이 확연히 갈린다. 버번에 비해 가벼운 바디에 풍만하거나 두툼한 느낌도 덜하다. 다만 버번스러운 여운만은 목넘김 후에도 백드래프트를 타고 확실히 올라온다. 별 생각 없이 마시면 버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스크는 버번인데, 마시다 보면 날렵한 체형은 스카치랄까. 버번에서 특유의 느끼함(?)을 덜어냈다고 생각해도 될 듯 하다. 아메리칸 위스키의 두툼한 풍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위스키라는 설명이 납득이 되는 스타일. 아메리칸 위스키의 스카치적 해석이랄까.
가격부터 품질까지 상당히 마음에 드는 위스키다. 겨울 한 잔씩 홀짝이기도, 하이볼 용으로 사용하기도 좋을 것 같다. 현재 Batch No.3이 나온 듯 한데 No.2, No.3과 같이 한 병 더 사고 싶다. 출시된 지 꽤 지나서 재고가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따라 영국 왕실 납품 공식 인증 마크(Royal warrants)가 눈에 잘 들어오는구먼.
개인 척한 고냥이의 [술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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