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비노 ㅎㄷㅁ 이사님과 업계의 마당발 ㅅㅈ누나의 감사한 초대로 참석한 스페리(Speri) 와인 디너.
디너 장소는 올림픽 공원 북2문 부근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알 파르코.
개인적으로 스페리는 익숙치 않은 생산자이고 알파르코도 첫 방문이라 둘 모두 궁금증이 물씬 솟아올랐음.
환영주로는 빌라 산디의 프로세코 발도비아데네가 쓰였고
이어 음식과 함께 스페리의 발폴리첼라와 아마로네 다섯 종이 본격적으로 제공되었다.
음식이 먼저 서빙되고 매칭된 와인들이 잔에 채워지기 시작하면
스페리의 마케팅 매니저인 루카 아르디리(Luca Ardiri) 씨가 와인을 설명하는 식으로 진행.
스페리는 1874년 설립되어 4대째 가족 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유서 깊은 와이너리다.
자신의 포도밭에서 손수확한 포도로만 양조하며 비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총 60ha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모두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주로 150-350m의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이크로 클라이밋(microclimates)을 표현하기 위해
포도밭의 이름을 명기한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날 마신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수페리오레와 아마로네에 명기된 '산투르바노(Sant'Urbano)'가
바로 스페리의 대표적인 싱글 빈야드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 참고.
...
나는 20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막 첫 번째 음식이 제공되던 찰라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보니 칼퇴를 했는데도 지각을...ㅠㅠ
안티파스토.. 치즈 소스를 곁들인 따뜻한 아티초크 무스.
아티초크를 익히면 감자 맛과 비슷하다고들 하는데 정말 감자 느낌이 들었음.
꽃처럼 생긴 봉오리 채소가 어찌 이런 맛이 나는 걸까ㅋㅋ 어쨌거나 치즈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홀릭홀릭.
고픈 배를 충실히 채워줌과 동시에 위장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을 듯.
ㅅㅈ누나가 폰 플래시로 조명을 넣어 주시니 색감이 더 이쁘게 사는구만.
하지만 다음 사진부터는 여지없이 화이트 밸런스 안 맞는 사진으로 회귀ㅎ
음식과 함께 발폴리첼라 클라시코를 먼저 음용한 후
리셉션 와인으로 나왔던 프로세코도 맛볼 수 있었다.
Speri, Valpolicella Classico 2013
시원하게 칠링해서 낸 발폴리첼라.. 라이트한 레드를 칠링해서 마시는 건 내 취향과도 잘 맞는다.
미국 체리 같은 컬러가 짙지 않게 드러난다.
코를 대면 사우어 체리, 라즈베리, 약간 꿈꿈한 농가향, 감초와 인삼 같은 뉘앙스.
머금으면 스윗 스파이스와 아몬드 향이 체리와 붉은 베리 풍미와 함께 감도는 듯 하다.
미디엄 바디에 청량감이 넘치는 발폴리첼라도 언뜻 지역 단위 부르고뉴와도 겹치는 느낌이 있다.
어떤 자리에서나 편안히 마실 수 있으면서도 최소한의 격이 느껴지는 발폴리첼라.. 좋아하는 타입이다.
Villa Sandi, Prosecco Valdobbiadene Superiore Cuvee Oris NV
발폴리첼라를 먼저 마신 후여서인지 달콤한 과일 맛이 부각되는 느낌이었다.
달콤한 서양배, 은은한 백도, 잘익은 사과, 그리고 아카시아 같은 흰꽃.
당도 레벨이 궁금한데 아마 익스트라 드라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크리미한 질감과 잔잔한 기포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ㅎㄷㅁ 이사님이 엔트리급 뀌베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데 엔트리가 이정도면 훌륭한 수준인 듯.
4-5년 전 감베로 로쏘 세미나에서도 빌라 산디의 프로세코 발도비아데네를 만난 적이 있는데 좋은 기억이 남아있다.
다시 스페리로 돌아와서,
안티파스토.. 시칠리아식 밥튀김 에피타이저, 아란치니.
엄마가 해준 비빔(볶음)밥이 연상되는 편안한 맛이다.
Speri, Valpolicella Classico Superiore Ripasso 2013
나무 뉘앙스, 블랙베리, 시가와 스모키 뉘앙스가 마치 시가에 불을 붙인 듯한 인상을 준다ㅋ
(시가 피울 줄도 모르고 친구들 몇 번 피우는 것만 경험했는데 어찌 이런 생각이 들었을꼬;;)
입에 넣으면 묵직하면서도 부드럽고 둥근 질감을 타고 가벼운 타닌의 수렴성이 느껴진다.
풀 바디에 캔디드 레드 베리, 자두, 말린 과일 뉘앙스에 쌉쌀한 피니시.
알콜은 그닥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으며(13.5%) 신기하게도 산미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뒤늦게 머스크 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것 같기도.
밸런스 좋고 비교적 부담 없는 스타일의 리파소다.
여성적이라며 이름까지 리파싸(Ripassa)라고 붙인 제나토의 것과 비교해도 더 온화한 느낌이랄까.
프리모 피아토.. 소고기로 속을 채운 수제 라비올리.
엔초비 향이 감돌아서 혹시 진한 레드 와인과 부딪치는 건 아닐까 살짝 우려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음.
Speri, Valpolicella Classico Superiore Vigneto Sant'Urbano 2011
아마로네를 만드는 포도밭인 산투르바노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발폴리첼라다.
특이하게도 1개월 정도 아마로네를 만드는 것과 같이 드라이 프로세스를 거친 포도로 만든다.
물론 아마로네는 3-4개월 정도를 건조하기 때문에 기간은 훨씬 짧은 편이지만
아마로네의 뉘앙스를 가볍게나마 느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마로네를 접하려는 초심자에게 권할 만 하다고.
한정적인 수량의 특별한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수페리오레.
붉은 꽃의 섬세한 향이 스치듯 지난 후 자두, 핵과 과육의 달콤한 아로마가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입에서는 처음엔 커런트와 블루베리 등 강한 베리 류의 풍미가 지배하다가
시간이 갈 수록 온화한 붉은 베리가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다.
곁들여지는 스윗 스파이스와 개운한 허브, 말린 베리의 스모키 힌트와 오묘한 신맛.
미디엄풀 바디에 과일 풍미가 방순하며 맑고 개운한 느낌을 준다.
깔끔하고 단정한,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의 와인이다.
레이블도 매력적이고... 자주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운.
세콘도 피아토.. 폴렌타를 곁들인 알파르코 특선 양갈비 구이.
양고기 특유의 향과 허브, 마늘 향이 뿜어져나오니 군침이 미친듯이 샘솟음.
와인이고 뭐고 일단 이것부터 뜯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고 와인부터 테이스팅... 했는데
와인이 코와 혀에 닿으니 또 양갈비 따위(?!)는 뒷전이 되어버릴 정도로 좋았달까.
두 개의 다른 빈티지... 2010과 2004,.
스페리의 루카 아르디리 씨는 우선 과거 빈티지들과 위 와인들을 간단히 비교 소개했다.
'02는 비가 많이 온 정말 안 좋은 빈티지였고,
'03은 반대로 너무나 더워서 아마로네에 적당하지 않은 빈티지였다고.
(사실 '02는 역대급 최악의 빈티지고 '03도 이태리 전역이 무더웠던 해니까)
반면에 '04는 봄에 적당한 비가 내려 개화하고 열매를 맺는 데 좋은 환경이었다고.
'10 또한 이태리 전체의 베스트 빈티지 중 하나로 봄에는 적당한 비가 내렸고
여름은 섭씨 25-35도 사이를 오르내리며 열을 식혀줄 적당한 비도 내려서 완숙 풍미와 산미의 밸런스를 맞췄다고.
참고로 '15년 역시 완벽한 아마로네가 나올 만한 빈티지로 '10과 많이 닮았다고 한다.
스페리의 아마로네는 4년의 숙성 기간을 거치는데
그중 24개월은 대용량의 토노(tonneua)에서, 18개월은 슬라보니안 캐스크에서 숙성한다.
나머지 6개월은 병입 후 안정화 기간이라고 보면 될 듯.
숙성을 통해 스페리의 아마로네는 일반적인 아마로네가 드러내는 파워보다는 복합미와 우아함을 발현한다.
완성된 와인은 기본적으로 20년 이상의 에이징 포텐셜을 지니고 있다고.
또한 도수가 높다고 해서 과숙이나 과추출의 느낌을 주진 않는데
이는 포도 수확 시기를 적절히 조절하여 완숙도와 산미의 균형을 맞추기 때문이다.
포도를 말려 풍미와 당도를 농축한다고 해서 포도 자체를 과숙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Speri, Amarone della Valpolicella Classico Vigneto Snat'Urbano 2010
처음엔 향이 잘 드러나지 않다가(혹은 음식 냄새에 가려져 있다가)
붉은 꽃과 레드 베리, 톡 쏘는 스파이스 아로마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입에 넣으면 앞의 와인들에 비해 쫀쫀한 타닌이 먼저 맞이한다.
커런트를 중심으로 딸기, 블루베리, 아사히 베리 등의 과일 풍미에 가죽 힌트가 살짝 묻어난다.
매끈한 질감에 모카와 코코아 뉘앙스의 꾹 눌러주는 피니시가 긴 여운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아직 어린 와인 답게 생생한 과일 풍미가 농축적으로 전달되면서도
알콜과 미세한 잔당의 느낌, 산미가 환상적인 밸런스를 이루어 마시기가 매우 좋다.
난 아마로네는 좀 오래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내 셀러에 보관중인
아마로네 세 병이 모두 10-15년 정도 되었어도 아직 딸 생각을 안 하고 있는데
스페리의 아마로네는 외려 조금 어릴 때 마시는 게 더 매력적일 수도 있겠다.
맛있다... 금새 비워버렸다.
Speri, Amarone della Valpolicella Classico Vigneto Snat'Urbano 2004
부엽토, 매콤한 스파이스, 커런트, 허브, 마른 꽃잎이 담긴 포푸리 백.
타닌은 여전히 쫀쫀하며 블랙베리, 블루베리 풍미와 함께 쌉싸름한 드라이 피니시.
12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과일 코어는 살짝 약해진 대신
가죽, 커피, 시나몬, 아몬드, 감초 등 다른 향들이 코어를 둘러싸고 있다.
일견 얼얼할 정도로 풍미의 밀도가 높고 강도 또한 세지만
높은 알콜(15%)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의 우아한 밸런스가 부담을 확 줄인다.
첫 인상은 조금 조숙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매력이 배가된다.
아직 몇 년 쯤은 너끈할 듯... 역시, 아마로네는 묵혀야 맛있다ㅋㅋㅋ
디저트 그리고 홍차로 마무리.
즐겁다.
스페리의 와인들은 전반적으로 복합적이고 미묘하며 우아함을 지녔다.
지나치게 빽빽하거나 묵직하지 않고 구조 또한 단정한 느낌.
박진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와인 반 공기 반'이랄까.
와인을 이벤트성으로 가끔 마시는 사람이 아닌 상시 음용하는 애호가들에게 어필할 만한 와인이다.
스페리의 마케팅 매니저 루카 아르디리 씨.
동안에 배우 같은 느낌이랄까... 친근하게 테이블을 돌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좋은 발폴리첼라 와인을 알게 되어 기쁘다.
20160830 @알파르코(올림픽공원)
개인 척한 고냥이의 [와인저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