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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article 154. 지옥을 맛보다, 인페리 버티컬 테이스팅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16. 10. 3.

상당한 품질의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쪼.

소매업장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





지옥을 맛보다, 인페리 버티컬 테이스팅


 

흥미로운 와인을 만났다. 인페리(Inferi). 이탈리아어로 지옥이라는 뜻이다. 지옥불이 타오르듯 검붉은 레이블에는 인간 군상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서로를 밀쳐내며 주먹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 마치 서로 지옥에 먼저 떨어지고 싶다는 듯 경쟁적으로 아래를 향하고 있다. 기묘한 느낌이다. 왜 굳이 와인 이름을 지옥이라고 지었을까?

 

인페리는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쪼(Montepulciano d’Abruzzo), 그러니까 이탈리아 아부르쪼(Abruzzo) 지역에서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 품종 100%로 양조한 와인이다. 수 세기 동안 아부르쪼에서 포도밭을 소유해 온 마라미에로(Marramiero) 가문은 전통적인 양조방법과 현대적인 기술을 조화시켜 와인의 품질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한번 마시면 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와인이 탄생했다.

 

이는 한국 시장에서의 반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처음 수입된 해인 2009년 코리아 와인 챌린지 이탈리아 와인 부문에서 인페리 2005년 빈티지가 대상(Trophy)을 차지한 것이다. 이후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수입사인 와이넬은 이탈리아 와인 전문지 의 평가를 인용해 인페리를 ‘천국과 같은 지옥의 레드 와인’으로 묘사한다.

 

 

지난 3월 22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내에 위치한 달빛정원(구 해와 달) 레스토랑에서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인페리의 일곱 개 빈티지를 시음할 수 있는 버티컬 테이스팅(vertical tasting) 디너가 열렸다. 인페리가 생산되는 아부르쪼는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온화하며 빈티지 별 편차가 크지 않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이날 테이스팅한 일곱 개 빈티지들은 각자의 특성을 지니되 그 품질 차이는 크지 않았다. 선별된 포도로 양조된 인페리는 프렌치 오크와 슬라보니안 오크에서 14-18개월 숙성 후 6개월의 병입 안정화를 거친다. 완숙한 포도를 사용하기 때문에 오크 풍미와 함께 과일 본연의 맛이 조화롭게 드러난다.

 

예전부터 주변의 많은 추천이 있었지만 인페리를 시음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이 날의 운명적 만남을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일곱 해의 인페리가 남긴 인상은 강렬했다. 쉽게 곁을 주지 않는 2011년 빈티지에서부터 비교적 완숙미가 느껴지는 2005년 빈티지까지, 시음해 갈 수록 심연으로 빠지는 느낌이었다. 한 번의 만남으로 깊은 나락에 떨어졌달까. 하긴, 이런 달콤한 나락이라면 지옥에서의 한때인들 어떠할까. 인페리라는 이름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시음한 일곱 개의 빈티지를 소개한다.

 

 

Marramiero, Inferi 2011 Montepulciano d'Abruzzo

커피 캬라멜 같은 달콤한 향기에 가벼운 베리 뉘앙스가 곁들여진다. 입에 넣으면 자두, 붉은 베리 풍미에시원한 허브와 톡 쏘는 스파이스, 동물성 힌트. 타닌의 깔깔한 느낌과 쌉쌀한 맛이 햇수로 6년이 흘렀음에도 아직 많이 어린 느낌. 꽉찬 미디엄풀 바디에 밸런스가 좋아 10년 이상 매력적으로 변화해 갈 스타일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05년 빈티지까지 시음해 본 결과 그 예상은 적중했다. 

 

Marramiero, Inferi 2010 Montepulciano d'Abruzzo

마른 허브, 김, 시나몬, 정향 등 스윗 스파이스와 허브 향이 먼저 드러나며 은은한 자두,레드 베리, 블랙 체리 등 새콤함을 느낄 수 있는 아로마들이 뒤따른다. 그러나 입에서는 블랙베리, 프룬 등의 풍미에 모카 힌트가 곁들여져 검은 뉘앙스가 강하다. 오크 느낌이 가볍게 살아 있고 촘촘한 타닌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함을 말해 준다.

 

Marramiero, Inferi 2009 Montepulciano d'Abruzzo

생생한 붉은 베리와 체리, 자두 아로마, 붉은 꽃잎의 화사한 첫 인상. 루이보스 티, 블랙베리, 검붉은 베리의 풍미가 풀 바디를 타고 흐른다. 비교적 둥글어진 타닌과 꽉 죄는 산미가 완벽한 밸런스를 이룬다. 생수 같이 영롱한 미네랄과 농익은 과일의 발사믹한 느낌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빈티지. 추가 숙성 여력이 충분하며 이날 테이스팅한 빈티지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Marramiero, Inferi 2008 Montepulciano d'Abruzzo
블루베리, 자두 아로마에 거친 허브와 꽃 향기가 감돈다. 토스티한 뉘앙스 뒤로 자두와 프룬 풍미가 잔잔한 산미를 타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다른 빈티지에 비해 살짝 가벼운 인상이지만 그만큼 편안하고 즐거운 스타일.

 

Marramiero, Inferi 2007 Montepulciano d'Abruzzo

붉은 꽃으로 포푸리를 만든 듯 플로럴한 아로마, 자두, 붉은 베리, 그리고 강렬한 체리. 영롱한 미네랄과 가벼운 바닐라 힌트가 곁들여지며 아직도 부케보다는 과일 향이 전면에 나선다. 은근한 허브, 붉은 과일 풍미가 달콤한 오크와 줄타기를 하는 형국이랄까. 부드러러운 질감과 꽉차는 바디감, 적절한 산미가 조화를 이룬다.

 

Marramiero, Inferi 2006 Montepulciano d'Abruzzo

바닐라, 블루베리, 블랙베리, 프룬 등 농익은 과일, 토스티 힌트. 스월링 후에는 시원한 허브향이 피어난다. 이제 막 숙성을 통한 부케가 드러날 듯 말듯 미묘한 인상이다. 입에서는 동글동글한 타닌이 편안하며 완숙한 과일의 발사믹한 뉘앙스에 스모키한 모카 풍미가 곁들여진다. 향과 맛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 현재를 즐기기에도 좋지만 밸런스가 뛰어나 몇 년 이상의 추가 숙성도 기대할 만 하다.

 

Marramiero, Inferi 2005 Montepulciano d'Abruzzo
버섯과 매콤한 스파이스, 가버운 부엽토의 내음이 잘 익은 와인의 느낌을 드러낸다. 그러나 향긋한 바이올렛 향과 커런트, 자두 등의 과일 풍미 또한 아직 생생하게 살아 있다. 시나몬 등 스윗 스파이스와 연기 미네랄 또한 복합미를 더한다. 타닌은 존재감은 있으나 부드럽게 녹아들었고 풍미 또한 부드러워 아름답게 숙성한 와인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훌륭하다.

 


김윤석 기자  wineys@w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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