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 전 지역을 개괄하는 연재. 요즘 꼬뜨 드 뉘 와인은 마을급조차 구매하기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나마 마르사네와 픽생, 모레 생 드니, 뉘 생 조르주 정도가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 올랐는데 그런 마을들은 눈에 잘 보이질 않는다. 최근 기상 이변으로 생산량도 매해 감소하는 상황이라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그럼에도 관심을 완전히 거두기 어려운 마성의 매력을 지닌 지역, 애증의 지역이 바로 꼬뜨 드 뉘다. 개인적으론 뉘 생 조르주 와인 좀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이 저장용으로 스크랩한 것입니다.
부르고뉴: (4)꼬뜨 드 뉘(Côte de Nuits)
부르고뉴에서 그랑 크뤼(Grand Cru)를 가장 많이 보유한 마을은 어디일까? 와인을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이름은 들어 봤을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가 있는 본 로마네(Vosne-Romanée) 마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정답은 쥬브레 샹베르땅(Gevrey-Chambertin) 마을이다. 샹베르땅(Chambertin)을 비롯해 9개나 되는 그랑 크뤼 포도밭이 포진해 있다. 본 로마네 마을은 6개로 그 뒤를 잇는다. 이외에도 모레 생 드니(Morey-Saint-Denis), 샹볼 뮈지니(Chambolle-Musigny), 부죠(Vougeot), 플라제 에세조(Flagey-Echézeaux) 마을에 도합 9개의 그랑 크뤼가 더 있다. 이 마을들을 모두 포괄하며 전체 부르고뉴 그랑 크뤼 34개 중 24개를 보유한 어마어마한 지역이 바로 꼬뜨 드 뉘(Côte de Nuits)다.
사실 나머지 그랑 크뤼 9개도 모두 꼬뜨 드 뉘 남쪽에 인접한 꼬뜨 드 본(Côte de Beaune)에 속해 있다. 샤블리 그랑 크뤼를 제외하면 그랑 크뤼는 뉘와 본을 합친 꼬뜨 도르(Côte d’Or)에만 있는 셈이다. 부르고뉴 하면 보통 꼬뜨 도르를 떠올리는 게 이해가 간다. 꼬뜨 도르를 직역하면 '황금 언덕'이지만, 원래는 꼬드 도리앙(Côte d’Orient)의 줄임말로 ‘동향 언덕’을 의미한다. 하지만 디종(Dijon) 남쪽-남서쪽으로 완만하게 뻗은 동향 언덕 위로 햇살이 내리쬐는 모습을 보면 황금 언덕이라는 표현 또한 틀리지 않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토양은 주로 지역이 바다였을 때 쌓인 퇴적물에 기반한 석회암(limestone)과 비옥한 이회토(marl)가 섞여 있는데, 그 비율과 성격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여러 지질 시대를 거쳐 융기와 침식, 단층, 풍화 등의 지질 활동이 이루어지며 40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토질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포도밭은 대부분 완만한 언덕을 따라 촘촘하게 조성돼 있다. 특히 해발 250m-350m 사이의 언덕 중턱을 따라 그랑 크뤼와 프르미에 크뤼(Premier Cru)를 비롯한 우수한 밭들이 몰려 있다. 그 위쪽은 보통 단단한 바위를 표토가 가볍게 덮고 있을 뿐이며 기후 또한 서늘해 포도가 완숙하기 쉽지 않다. 아랫부분 또한 비옥한 충적토가 두껍게 쌓여 있어 배수가 좋지 않고 서리 피해도 많아 최고급 포도를 얻기 어렵다. 이런 지역에는 주로 마을(Communal) 급과 지역(Regional)급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이 조성돼 있다.
위 표에서도 볼 수 있듯 포도밭을 세밀하게 나누고 등급을 매긴 곳은 프랑스 내에서는 부르고뉴뿐이다. 이는 포도밭이 아닌 대규모 샤토(Château)를 대상으로 등급을 부여한 1855년 보르도 등급 분류(The 1855 Bordeaux Classification)와 비교하면 더욱 명확하다. 특히 꼬뜨 도르는 편집증적으로 보일 정도로 꼼꼼하게 포도밭을 나누어 놓았는데, 이는 종교,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일단 부르고뉴의 유명 포도밭들은 수도회와 관련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샹베르땅 클로 드 베즈(Chambertin-Clos de Bèze)는 7세기 초반 베네딕트회(St. Benedict Abbey) 베즈 수도원에 봉헌된 포도밭이다. 로마네 콩티를 비롯한 본 로마네 마을의 주요 그랑 크뤼들 역시 베네딕트회 계열의 수도원이 보유하고 있던 포도밭으로 그 역사가 깊다. 12세기 무렵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시토회(Cîteaux Abbey) 수도사들은 신에게 바칠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데 특별히 열성적이었다. 그들은 포도밭 구획 별로 생산되는 와인의 품질과 숙성 잠재력을 파악하고 연구 결과를 자세히 기록해 현재와 같이 포도밭을 세분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부르고뉴에서 가장 큰 그랑 크뤼인 클로 드 부죠(Clos de Vougeot) 또한 시토회 수도사들이 개간한 것이다. 부르고뉴 대공들 또한 와인 품질 향상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신심이 아닌 사적 이익 추구였다. 특히 14세기부터 왕과 왕족, 교황 등 고위 귀족과 성직자들 사이에 부르고뉴 와인의 인기가 폭등했기 때문에 생산되는 와인의 품질과 인기에 따라 포도밭의 평가와 가치는 더욱 극명하게 나뉘게 되었다.
부르고뉴 포도밭(climat)의 평균 크기는 6ha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포도밭을 다시 여러 생산자가 나누어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이 제정한 상속법의 영향이 크다. 18세기 말까지 수도원이나 왕족, 귀족 등이 소유하던 포도밭은 1789년 프랑스혁명 때 몰수돼 민간인들에게 경매로 팔려나갔다. 매수인의 재력이 부족한 경우 포도밭을 쪼개어 구매했기 때문에 포도밭 소유권이 구획 별로 나뉘게 된 것이다. 나폴레옹이 제정한 상속법은 포도밭 분할에 불을 지폈다. 과거에는 관습적으로 장자에게만 상속하던 유산을 모든 자녀에게 균등하게 상속하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에 포도밭 또한 자녀 수 대로 갈라 상속하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포도밭은 오크통 하나를 채우기도 버거울 정도의 아주 작은 크기로 분할되기도 했다. 반면 한 생산자가 포도밭 전체를 보유한 경우 레이블에 모노폴(Monopole)이라는 표기를 자랑스럽게 내걸기도 한다.
포도밭이 민간으로 넘어간 직후 수많은 소유주들은 양질의 와인을 만들 역량과 자금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수확한 포도나 발효 직후 미완성 와인을 그대로 대규모 네고시앙(négociant)에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종 와인 생산은 대부분 네고시앙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당연하게도 20세기 중반까지 부르고뉴 와인 시장은 네고시앙이 주도했다. 하지만 1930년대부터 우수한 포도밭을 보유한 도멘(domaine)을 중심으로 스스로 양조 및 숙성, 병입까지 완료해 자신들의 이름을 붙인 와인을 판매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런 움직임은 성공적으로 이어져 현재는 도멘 자체 이름으로 출시되는 와인이 꼬뜨 도르 생산량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게다가 최근 부르고뉴 와인의 인기가 상승하며 유명 도멘에서 소량 생산하는 와인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서리 피해 등으로 생산량이 줄고 있는 것도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꼬뜨 드 뉘는 디종에서 뉘 생 조르쥬(Nuits-Saint-Georges) 마을에 이르는 꼬뜨 도르의 북부지역이다. 이 지역은 피노 누아(Pinot Noir) 품종으로 만드는 레드 와인이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9개 그랑 크뤼 중 8개에서는 레드 와인만 생산되며, 뮈지니(Musigny) 그랑 크뤼만 레드와 함께 화이트 와인을 소량 생산한다. 마을급 이상의 와인 또한 대부분 레드 와인이며 화이트나 로제 와인은 적다. 포도밭은 남북을 가로지르는 74번(N74) 국도에 의해 극적으로 갈리는데, 마을급 이상 와인을 만드는 양질의 포도밭은 거의 도로 서쪽 언덕 경사면에 있다. 도로 동쪽의 완만한 지역은 대부분 지역급 와인을 위한 포도밭이다. 꼬뜨 드 뉘에서 지역급 와인과 마을급 와인, 그리고 프르미에 크뤼, 그랑 크뤼의 대우는 극명하게 나뉜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산자의 실력과 명성에 따라서도 그 가치와 가격의 차이는 엄청나다. 결국 자신이 취향과 가치관에 맞는 마을, 밭, 생산자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적당한 가격대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면 부르고뉴 꼬뜨 도르(Bourgogne Côte d’Or)와 오뜨 꼬뜨 드 뉘(Hautes-Côtes de Nuits)를 눈여겨보자. 2017년 신설된 아펠라시옹인 부르고뉴 꼬뜨 도르는 꼬뜨 드 뉘와 꼬뜨 드 본에서 재배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Chardonnay)만을 사용한다. 꼬뜨 샬로네즈(Côte Chalonnaise)와 마코네(Mâconnais)를 포함한 부르고뉴 전역의 포도를 사용할 수 있는 일반급 '부르고뉴 블랑(Bourgogne Blanc)'이나 '부르고뉴 루즈(Bourgogne Rouge)'와는 확실히 구분된다. 면적 당 최대 수확량 또한 더 적어 풍미의 밀도가 높은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마을급 바로 아래 바싹 붙어 있는 지역급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뜨 꼬뜨 드 뉘 포도밭은 본 로마네와 뉘 생 조르쥬 서쪽 언덕 위 해발 400m에 이르는 울퉁불퉁한 고원에 펼쳐져 있다. 언덕 아래 포도밭들에 비해 기온이 낮고 일조량이 적은 편이라 과거에는 가벼운 와인이 나온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의 기후 온난화로 기온이 오르면서 진정한 밸류 와인이 나오는 곳으로 탈바꿈 중이다. 예전에도 입지가 좋은 구획이나 일류 생산자의 손길이 닿은 곳에서는 수준급 와인이 나왔기에 밸류 와인 컬렉터라면 눈여겨볼 만하다. 물론 아래 소개하는 마을들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마르사네(Marsannay), 그리고 픽생(Fixin)
마르사네는 꼬뜨 드 뉘 가장 북쪽에 있는 AOC로 마르사네 라 꼬뜨(Marsannay-La-Côte) 마을과 슈노브(Chenôve), 쿠셰(Couchey) 마을을 포함한다. 레드와 화이트는 물론 마을급 와인으로는 유일하게 로제 와인도 생산한다. 특히 피노 누아 100%로 만드는 로제 와인은 가격이 적당하고 품질 또한 좋아 인기가 오르는 추세다. 그랑 크뤼와 프르미에 크뤼 포도밭이 없는 마르사네는 최근까지 비교적 낮은 평가를 받는 마을이었다. 레드 와인은 가벼운 데다 조금 거칠다는 인식이 강했으나 최근 품질이 많이 향상되면서 밸류 와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마르사네 남쪽에 인접한 픽생 마을은 화이트 와인도 소량 생산하나 메인은 역시 레드 와인이다. 마르사네 마을과 마찬가지로 기존 평가는 높지 않았기 때문에 꼬뜨 드 뉘 남쪽에 위치한 프르모(Premeaux), 콤블랑시앵(Comblanchien), 코르골루앙(Corgoloin) 등의 마을과 함께 꼬뜨 드 뉘 빌라쥬(Côte de Nuits-Villages) 와인을 만드는 데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픽생은 5개의 프르미에 크뤼를 중심으로 타닌이 많고 신맛이 강한 중장기 숙성용 와인을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픽생 바로 남쪽 브로숑(Brochon) 마을은 자체 AOC를 가지고 있지 않다. 픽생과 경계를 이루는 포도밭의 포도는 픽생 와인에, 쥬브레 샹베르땅 마을과의 경계에 있는 포도밭은 쥬브레 샹베르땅 와인에 사용하며, 일부는 꼬뜨 드 뉘 빌라쥬 와인이 된다.
쥬브레 샹베르땅(Gevrey-Chambertin)
쥬브레 샹베르땅은 꼬뜨 드 뉘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마을이다. 게다가 언덕부터 74번 국도 동쪽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면적에 포도 재배에 적합한 토양들이 넓게 퍼져 있어 대부분의 포도밭이 마을급 이상의 와인을 생산한다. 그러나 역시 핵심은 숲 아래 완만한 언덕에 자리 잡은 샹베르땅(Chambertin)과 샹베르땅 클로 드 베즈를 중심으로 한 9개의 그랑 크뤼다. 나폴레옹이 사랑한 와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샹베르땅은 화려한 향과 밀도 높은 풍미, 숙성 후의 가죽 뉘앙스가 감도는 고혹적인 부케로 명성이 높다. 이름 뒤에 '-샹베르땅'이 붙는 나머지 7개의 그랑 크뤼는 샹베르땅과 클로 드 베즈를 둘러싸고 있으며, 역시나 격조 높은 와인들을 생산한다.
그랑 크뤼 북서쪽에는 고도가 50m쯤 더 높은 남동향 언덕이 있는데, 여기에 수준급 프르미에 크뤼들이 몰려 있다. 클로 드 바루이으(Clos des Varoilles), 레 카즈티에(Les Cazetiers), 라보 생 자크(Lavaux Saint-Jacques), 클로 생 자크(Clos Saint-Jacques) 등인데, 특히 두 개의 '생 자크' 포도밭은 그랑 크뤼 급으로 평가된다. 쥬브레 샹베르땅에는 일반적인 마을급 와인조차 몇 년의 숙성을 거치면 복합적인 향이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강건한 와인이 많다. 쥬브레 샹베르땅은 레드 와인만 생산할 수 있으며, 부르고뉴 중에서도 특히 인기가 높은 마을 중 하나다.
모레 생 드니(Morey-Saint-Denis)
모레 생 드니 마을은 북쪽의 쥬브레 샹베르땅, 남쪽의 샹볼 뮈지니 사이에서 치이는 느낌이 들지만, 역시나 그랑 크뤼를 중심으로 빼어난 와인을 만든다. 특히 석회질이 풍부한 클로 드 라 로슈(Clos de la Roche) 그랑 크뤼는 힘과 깊이 면에서 최고로 꼽힌다. 마을 이름이 유래한 클로 생 드니(Clos Saint-Denis)의 성격도 이와 유사하다. 럭셔리 기업이 보유한 두 개의 그랑 크뤼도 흥미롭다. 구찌 등을 소유한 아르테미스 그룹은 2017년 부르고뉴의 대표적인 네고시앙 모메상(Mommessin)으로부터 강렬하고 이국적인 풍미의 와인을 생산하는 모노폴 클로 드 타(Clos de Tart)를 인수했다. 그보다 3년 전인 2014년 LVMH 그룹은 클로 드 람브레(Clos des Lambrays)를 인수했다. 그런데 클로 드 람브레의 약 2%에 해당하는 작은 구획을 도멘 토프노 메름므(Domaine Taupenot-Merme)가 점유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클로 드 람브레의 레이블에 모노폴 표기를 할 수 없다.
모레 생 드니 프르미에 크뤼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하지만 평균적인 품질은 우수한 편이며 가성비 또한 훌륭하다. 마을급도 쥬브레 샹베르땅의 견고함과 샹볼 뮈지니의 향긋함을 겸비한 와인으로 평가된다. 명성과 가성비, 음용성을 두루 갖춘 마을을 찾는다면 모레 생 드니가 답이 될 수 있다. 화이트도 만들 수 있지만 대부분은 레드 와인이다.
샹볼 뮈지니(Chambolle-Musigny)
와이너리가 있는 샹볼 뮈지니 마을은 가파른 석회암 골짜기 사이에 끼어 있다. 그 동쪽으로 74번 국도와 접하는 곳까지 프르미에 크뤼 포도밭들이 펼쳐지며, 두 개의 그랑 크뤼는 그 양 끝으로 각각 모레 생 드니와 부죠 마을에 접해 있다. 북쪽에 있는 본 마르(Bonnes Mares) 그랑 크뤼의 일부는 모레 생 드니 마을에 속한다. 밭이 크기 때문에 다양한 스타일이 나오지만 보통 타닌이 많고 힘과 견고한 구조를 갖춘 와인이 나온다. 남쪽에 있는 뮈지니(Musigny) 그랑 크뤼는 풍만하면서도 우아한 바디감과 섬세하면서도 화사한 향기가 매력적이다. 뮈지니에서는 0.7ha의 작은 구획에서 화이트 와인도 생산한다. 이는 오래전부터 이 구획에서 화이트 와인을 만들어 온 도멘 콤트 조르쥬 드 보귀에(Domaine Comte Georges de Vogüé)에게만 허용된 특권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특권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다. 1994년 포도나무를 새로 식재한 후 와인 품질이 뮈지니 블랑의 이름에 걸맞지 않다고 판단한 그들은 스스로 와인 등급을 부르고뉴 블랑으로 강등했으며, 20년 후 2015년 빈티지가 되어서야 뮈지니 블랑의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랑 크뤼 뺨치는 프르미에 크뤼도 있다. 만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해 유명해진 레 자무레스(Les Amoureuses)가 그 주인공이다. '연인'이라는 의미에 걸맞은 사랑스러운 와인으로, 부르고뉴 전체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프르미에 크뤼 중 하나다. 다른 프르미에 크뤼들의 평가도 대체로 높으며, 최근에는 마을급 와인 조차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다른 부르고뉴 와인들도 그렇지만, 특히 샹볼 뮈지니는 본 로마네와 함께 '지금이 가장 저렴한 와인'의 선두주자다.
부죠(Vougeot)
부죠는 그랑 크뤼의 면적이 프르미에 크뤼와 마을급 포도밭 전체를 더한 면적을 능가하는 특이한 마을이다. 이는 면적이 51 ha에 이르며 부르고뉴에서 가장 큰 포도밭인 클로 부죠 그랑 크뤼 덕분이다.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포도밭은 북서쪽에 위치한 성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그런데 면적이 넓은 만큼 구획에 따라 품질 차이가 있다. 경사지 상층부에 위치한 포도밭이 가장 품질이 좋으며, 동쪽으로 갈수록 배수가 좋지 않아 품질이 떨어진다. 클로 부죠를 나누어 소유한 80여 생산자의 역량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도멘을 고르는 것이 좋다.
클로 부죠 이외의 포도밭도 2/3 이상이 프르미에 크뤼다. 피노 누아를 이용한 레드와 샤르도네를 이용한 화이트 와인을 모두 생산한다. 클로 부죠 그랑 크뤼에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해도 부죠 프르미에 크뤼로 강등된다. 어쨌거나 클로 부죠보다 더 보기 어려운 것이 바로 부죠 프르미에 크뤼, 혹은 마을급 부죠 와인이다.
본 로마네(Vosne-Romanée)
꼬트 드 뉘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 본 로마네. 마을 입구의 작은 광장을 시작으로 소박한 골목길을 지나면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명성 높은 생산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리고 그 골목 뒤편으로 이어지는 포도밭의 돌담에 적힌 이름들을 보면 저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을 막기 어려울 정도다. 로마네 생 비방(Romanée-Saint-Vivant)을 시작으로 리시부르(Richebourg),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 라 로마네(La Romanée), 라 그랑 뤼(La Grande Rue), 라 타슈(La Tâche) 등 엄청난 그랑 크뤼들이 연이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중 돌로 만든 십자가 기둥이 엄숙하게 솟아 있는 로마네 콩티와 라 타슈는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Domaine de la Romanée-Conti)가 단독 소유한 모노폴이다. 프르미에 크뤼는 15개가 있는데 모두 훌륭하며, 그중에서도 크로 파랑투(Cros Parantoux), 오 말콩소르(Aux Malconsorts), 레 숌므(Les Chaumes), 클로 데 레아(Clos des Réas) 등은 그랑 크뤼급으로 취급된다.
좀 더 북쪽에 위치한 에세조(Echézeaux)는 클로 부죠 다음으로 면적이 넓은 그랑 크뤼이며, 에세조와 클로 부죠 사이에 그랑 에세조(Grands Echézeaux)가 있다. 둘은 행정적으로는 플라제 에세조(Flagey-Echézeaux) 마을에 속하지만, 포괄적인 의미에서 본 로마네 마을의 그랑 크뤼와 함께 취급된다. 플라제 에세조 마을에서 생산하는 프르미에 크뤼와 마을급 와인 또한 본 로마네의 이름을 달고 나온다. 본 로마네의 와인은 허섭한 것이 없다. 프르미에 크뤼도, 마을급 와인도 모두 훌륭하다. 물론 가격도 그에 상응하지만 애호가들은 부나방보다도 열정적이다.
뉘 생 조르쥬(Nuits-Saint-Georges)
본 로마네 남쪽에 면한 뉘 생 조르쥬는 코드 드 뉘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AOC로 프리모 마을을 일부 포함한다. 대부분은 레드 와인이지만 화이트 와인 또한 생산하는데, 특히 라 페리에르(La Perrière) 같은 프르미에 크뤼에서 피노 블랑(Pinot Blanc) 품종으로 만드는 화이트 와인은 상당히 높은 품질을 지닌 레어템이다.
뉘 생 조르쥬에는 그랑 크뤼가 없지만 41개의 프르미에 크뤼가 언덕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그중 레 생 조르쥬(Les Saint Georges)는 그랑 크뤼급으로 평가받으며, 레 보크랭(Les Vaucrains), 오 뮈제(Aux Murgers), 오 부도(Aux Boudots), 클로 드 라 마레샬(Clos de la Marechale) 등이 유명하다. 뉘 생 조르쥬의 레드 와인은 보통 쥬브레 샹베르땅처럼 강건하고 장기 숙성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장기 숙성용 와인을 원한다면 뉘 생 조르쥬를 주목하자. 하지만 북쪽 경계 부근의 포도밭에서는 본 로마네와 유사한 우아하고 세련된 와인이 나온다. 힘 있는 스타일이든 우아한 스타일이든 와인의 품질에는 양보가 없다.
'술 공부 > 와인21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4. 러시안 리버 밸리의 테루아가 담긴 샤도네이, 마리타나(MARITANA) (0) | 2021.12.03 |
---|---|
233. 발폴리첼라(Valpolicella) 그리고 아마로네(Amarone) (0) | 2021.10.22 |
231. 귀차니스트 혼술러를 위한 추천 와인 아이템 (1) | 2021.09.04 |
230. 루아르 크레망의 대표 주자, 드 샹세니 (1) | 2021.09.04 |
229. 리슬링(Riesling) (0) | 2021.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