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드링커를 위한 위스키 안내서, 글 그림 이야기고래 김성욱.
사실 이 분 블로그에 종종 갔었더랬다. 뭔가 궁금한 술을 검색할 때 걸리는 경우가 많아서. 귀여운 그림체에 꼭 필요한 스펙들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어 간단히 참고하기 좋았다. 언젠가 책이 나오겠거니 싶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네.
솔까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충실하다. 약간의 오타와 외래어 표기가 오락가락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런 건 재판을 찍으면서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살짝 과하다 싶은 일반화는, 이런 류의 초심자를 위한 개론서로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미덕(?)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일단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위스키에 대해 입문자들이 알아야 할 지식들이 알기 쉽게 구성돼 있어 좋다. 어렵거나 쓸데없어 보이는 내용들은 생략하고, 엑기스만 알차게 담은 느낌. 위스키에 익숙한 중수들이 알아둘 만한 상식들도 제법 많고, 알고 있는 지식을 정리하기도 아주 좋다. 일단 위스키의 재료가 뭐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숙성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위스키 풍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는 오크통과 관련된 내용.
유러피안 오크는 퀘르쿠스 로부르(Quercus Robur)와 퀘르쿠스 페트라(Quercus Petraea)로 나뉘는데, 로부르에 비해 페트라가 타닌이 더 강해 알싸한 특징이 있다고 한다. 로부르는 주로 과거에 스페인에서 셰리 숙성용 오크통에 사용되던 품종이다. (요즘은 셰리 오크통이 부족해서 다양한 오크로 셰리 오크를 만든다.) 오크통 생산지로 유명한 프랑스의 다섯 생산지는 두 품종이 모두 자라는데, 주로 리무쟁(Limousin)에는 로부르 종이, 트롱셰(Troncais)에는 페트라 종이 더 많다고. (나머지 세 지역은 네이베Nevers, 보주Vosges, 알리에Allier)
토스팅(toasting)과 차링(Charring)의 차이도 설명해 주고,
버진 오크(viergin oak)와 뉴 오크(new oak), 퍼스트 필(1st fill), 세컨드 필(2nd fill), 서드 필(3rd fill)과 이를 모두 포괄하는 리필(refill)의 의미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사실 아는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헷갈릴 때가 있는 내용인데, 이제 안 잊을 것 같다. 그리고 리필 캐스크에 퍼필도 들어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물론 퍼필을 리필 오크로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무엇보다 오크통 사이즈에 대한 설명이 마음에 든다. 사실 자료 별로 같은 명칭인데 사이즈가 다른 경우가 넘나 많은데, 그 이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예를 들어 쿼터(Quarter)의 사이즈가 왜 50리터와 125리터 두 가지인지에 대한 설명. 하나는 미국 쪽에서 주로 사용하는 200리터 배럴(Barrel, A.S.B.)의 쿼터(1/4)이고, 다른 하나는 500리터 용량의 버트(Butt)의 쿼터이기 때문이다.
혹스헤드(hogshead), 바리크, 펀천, 버트, 파이프 등 위스키 숙성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오크통들의 명칭과 함께 대표적인 사이즈도 명기해 놓았다. 개인적으로는 와인 쪽에서 많이 사용하는 바리끄(Barrique)와 버트, 파이프(Pipe), 드럼(Drum) 등은 익숙한 편이다.
반면 고르다(Gorda)와 턴(Tun)은 생소하다. 턴은 톤(ton) 단위의 유래가 되는 통이라고.
오크통을 쌓는 방식과,
저장고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더니지(dunnage)는 전통적인 스카치 위스키 저장고. 일반적으로 천장이 낮고 습하며, 바닥에는 흙이 깔려 있다. 온도와 습도가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지만, 천장이 낮으므로 저장 효율성이 떨어진다.
랙형 저장고와 팰릿형 저장고. 주로 아메리칸 위스키나 신생 위스키 생산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저장 데이터가 쌓임에 따라 증류주 숙성은 와인 등 양조주의 숙성과 달리 높은 온도와 큰 온도차가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추세다. 따라서 저장 효율이 좋은 데다 오크통 운반도 더 쉽고, 숙성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위와 같은 형태의 저장고가 앞으로 더욱 널리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모양에 따른 단식 증류기의 종류. 증류 과정에서 구리와의 접촉 정도와 환류량 등에 따라 위스키의 풍미와 성질이 변하기 때문에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증류기의 모양이 달라지게 된다.
라인암의 길이, 두께, 상하향 정도 등에 따라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 환류되는 증기의 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미국, 아일랜드, 캐나다, 일본 등 주요 위스키 생산국의 특징과 대표 위스키에 대해서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정말, 딱 필요한 만큼만 소개하기 때문에 술술 읽고 넘어간 다음 필요한 내용만 나중에 다시 찾아보면 된다.
위스키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주요 인물들을 소개해 주는 것도 아주 좋다. 특히 스카치와 버번 쪽의 핵심 인물들은 어느 정도 익혀둘 수 있다. 그들의 이름을 땄거나 그들에게 헌정하는 위스키들이 많으므로, 익혀 두면 언젠간 큰 도움이 될 이름들이다.
무엇보다 한국 위스키에 대해 개괄해 주는 챕터가 있다는 게 참 반갑다. 번역서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내용.
한국 위스키의 역사를 훑어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롭다. 어찌 보면 유사 위스키의 역사이지만...
베리나인이나 VIP, 드슈 같은 이름은 제법 익숙하다. 패스포트는 대학 시절에 처음 마셨던 위스키라 감회가 새롭다. 그땐 마치 뽄드를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싱겁게 느껴진다는 게 아이러니.
이젠 한국에도 다양한 위스키들이 수입되다 보니 위와 같은 위스키들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스카치 위스키의 병입 규정이 바뀐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 같다)
한국 위스키의 현재이자 미래가 될 증류소들이 자라나고 있으니 기대가 된다.
쓰리 소사이어티스 증류소에서 처음 출시한 프로모션성 위스키는 살짝 아쉬웠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간다. 물론 나는 조금 더 숙성해서 700ml 보틀에 담겨 나올 오피셜 라인업을 기다리고 있다.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도 마찬가지.
최근 위스키 값이 전 세계적으로 폭등하고 있는데, 갑부가 아닌 이상 자신의 상황에 맞는 합리적 소비 포인트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장기 숙성 스카치 위스키를 선호하는 편이라 난감한데, 15-18년 정도에서 적당한 위스키를 찾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버번의 경우도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지만, 아직 스카치보다는 좀 나으니 가급적 다양한 위스키들을 경험해 봐야 할 것 같다.
이런 내용을 다루어 주는 것도 좋다. drink responsibly. 뻔한 이야기지만 애호가들이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이야기니까.
전반적으로 구성부터 내용까지 모두 마음에 든다. 엔간한 위스키 개론서나 번역서는 찜 쪄 먹을 만한 책이다. 위스키 애호가라면 일독을 권한다. 전문가라도 귀여운 그림들을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강추!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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