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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시음회·전시회·세미나

키오네티(Chionetti) 버티컬 테이스팅 디너 @라 모라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16. 12. 6.


피에몬테 돌리아니(Dogliani)의 명가, 키오네티(Chionetti) 버티컬 테이스팅 디너.

5대손 니콜라 키오네티(Nicola Chionetti) 씨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즐거운 자리였다.



솔직히 돌체토(Dolcetto) 품종을 버티컬 테이스팅 하게 되리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일부 유명 생산자의 비교적 오래된 빈티지 돌체토를 마시며 감탄한 적도 있고

최근엔 맛있는 디아노 달바(Diano d'Alba)의 돌체토를 경험한 적도 있었지만...


돌체토는 편하게 빨리 마시는 품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2015년 부터 2006년까지 다섯 빈티지를 몰아 마신다니 매우 흥미진진했음.



그리고 결론적으로,

나의 돌체토에 대한 편견은 박살이 났다.


키오네티는 19세기부터 돌리아니에서 명맥을 이어 온 돌리아니의 터줏대감이다.
 1912년 쥐세페 키오네티(Guiseppe Chionetti)가 산 루이지(San Luigi) 포도밭을 구매한 후 5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키오네티의 기틀을 다진 사람은 쥐세페의 손자인 현재의 오너 퀸토 키오네티(Quinto Chionetti) 씨.
와인을 병입해 판매하기 시작했고 세 개의 와인(Sorì Briccolero, San Luigi, Vigna la Costa)을 확립했다.
미국 등지로 수출을 시작하며 돌리아니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

1988년 안타까운 교통사고로 퀸토의 아들 안드레아가 세상을 떠났으나
1999년부터 며느리 마리아(Maria)가 퀸토를 돕기 시작했고 
2013년부터는 손자인 니콜라(Nicola)가 물려받아 와인을 만들고 있다.



손자 니콜라와 할아버지 퀸토... 닮은 듯 다른 인상이다.


돌리아니는 돌체토를 만드는 지역 중 가장 중요하다.
니콜라 키오네티 씨는 돌리아니가 특별한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역사.

기원전 2~4세기 켈트족과 로마인이 이미 돌리아니에서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했으며
1593년 이미 돌체토(dozzetto)라는 품종명이 문헌에 등장했을 정도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둘째는 떼루아.

지역적으로 랑게(Lange)에 속해 있는 돌리아니는 바롤로 남부 몽포르테 달바(Monforte d'Alba)와 가깝다.
토양 성분 또한 진흙(Clay)과 이회토(Marl)에 모래 층이 제한적으로 섞인 석회질 토양으로
몽포르테의 지네스트라(Ginestra), 세라룽가(Serralunga)의 카시나 프란치아(Cascina Francia) 등
바롤로의 주요 크뤼들과 유사한 구성을 보인다.


셋째는 노력과 정성.

위와 같은 유구한 전통과 빼어난 떼루아에서 재배한 돌체토 100%로 양조하는 것이 돌리아니 DOCG다.
다른 지역은 일반적으로 좋은 구획에 네비올로(Nebbiolo)를 심기 때문에 돌체토는 순위가 밀리지만
돌리아니에서는 돌체토가 가장 중요한 품종이기 때문에 돌체토가 최우선이고 가장 좋은 곳에 심는다.
재배부터 양조까지 온 힘과 정성을 기울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결과물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일반적인 돌체토는 탄닌이 적고 산미도 약한 편으로 프루티함을 강조한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돌리아니는 양질의 탄닌과 높은 산도를 지니고 있어 중장기 숙성도 가능하다.
키오네티 와인의 경우 보통 10년 이상 15-20년까지도 숙성된다고.


단, 니콜라 씨는 그렇다고 돌체토 달바 등 다른 돌체토들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스타일이 '다른' 것 뿐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 다만 돌리아니가 더 특별할 뿐이라는 얘기^^




키오네티의 포도밭이 위치한 산 루이지 포도밭(위).
산 루이지 포도밭 중 남동향 경사면에 위치한 브리콜레로와 라 코스타(아래).

햇볕이 잘 드는 완만한 구릉지로 돌리아니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듯 하다.
참고로 산 루이지(위) 사진은 북쪽에서 남쪽을 보며 찍은 사진인 듯 싶다.
브리콜레로와 라 코스타 사진인 아래 사진에 위 사진과 같은 나무가 존재하는 걸로 보아
위 사진의 나무 부분이 브리콜레로라는 얘기인데 브리콜레로는 남동향이라고 했으니까.


키오네티는 약 15ha의 포도밭에서 연간 8만5천병의 와인을 생산하며
돌체토 외에 약간의 랑게 네비올로(La Chiusa)도 생산한다.

최근에는 바롤로 몽포르테 달바와 카스틸리오네 팔레토(Castiglione Faletto)지역에
포도밭을 구입하여 2019년과 2020년 첫 빈티지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심지어 돌리아니와 겹치는 알타 랑가 부근에 리슬링을 재배할 계획도 있다니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 뿐 아니라 호기심과 도전정신도 상당히 충만한 집안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가을 수확철 즈음에 바롤로에서부터 돌리아니쪽으로 운전해 내려오면
포도나무의 컬러가 노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는 인상적인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역에 따른 품종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풍경이라고 한다.
떼루아의 영향인지 다른 알바 지역의 돌체토보다 포도 수확 시기도 1주일 이상 늦다.




각설하고, 시음의 현장으로(이제야...).




서래마을 라 모라(La Morra)... 첫 방문이다.





깔끔하다... 모던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





하지만 역시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와인들.

참석자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와인들부터 스캔하기 시작.


도열한 병들과 쌓여 있는 코르크들이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

엇, 그러고 보니 중간에 디암(?) 코르크가 섞여 있다.

근래 빈티지부터 코르크를 바꾼 걸까... 미리 발견하고 물어봤어야 했는데 아쉽다.

 이번에 구매한 와인들을 오픈해 보면 알 수 있겠지? ㅋㅋㅋ




사진 재활용-_-



자리에 앉으니 화이트 와인을 먼저 내어 주신다.

지오반니 알몬도의 로에로 아르네이스.




Giovanni Almondo, Roero Arneis "Bricco dell Ciliegie" 2014

살구 같은 잘 익은 핵과, 유자, 세이버리한 미감에 플로럴 허브 뉘앙스가 은은하게 비친다.
미디엄풀 바디에 미네랄리티가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깔끔한 피니시.

번외 품목이지만 상당히 맛있다... 요것도 한 병 살 걸 그랬나ㅠㅠ
정확히는 못 들었는데 요집 아들과 니콜라 키오네티 씨가 초딩 동창이라고 했던 듯ㅎㅎ




그리고 음식과 함께 본격적으로 키오네티의 돌체토들을 즐겼음.
버티컬로 마시는 만큼 와인에 집중하기 위해 음식 사진은 나중에 별도로.



Chionetti, Briccolero Dogliani DOCG 2015

스파이시한 첫 향과 함께 짓이긴 꽃잎의 풋풋함과 미네랄 뉘앙스가 강하게 드러난다.
라즈베리, 자두, 블랙베리 등 검붉은 과실 풍미가 밀도 높게 드러나며 시나몬과 토스티 힌트가 더해진다.
놀라운 것은 상당히 느껴지는 탄닌과 생생하게 느껴지는 산미, 그리고 탄탄한 미디엄 바디.
확연하게 어린 느낌으로 좀 더 숙성이 필요해 보이지만 음용성이 나쁘지는 않다.


남동향인 브리콜레로 밭은 주로 오전에만 햇볕을 받기 때문에 좋은 산미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매우 건조하며 남서쪽보다 경사가 깊어 내부의 하얀 석회질 토양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라고. 
또한 전면적인 재식재 보다는 필요한 부분만 한 그루씩 서서히 교체하기 때문에
비교적 오랜 수령의 나무들로부터 밀도 높은 풍미의 포도를 얻을 수 있다. 



영빈을 맛본 것 만으로 예사 와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음.





Chionetti, Briccolero Dogliani DOCG 2013

달콤한 바닐라 향에 더해지는 부엽토 뉘앙스, 말린 꽃잎과 철분 미네랄.
다크 체리, 자두, 라즈베리, 블랙베리 풍미에 시나몬과 정향 힌트.
탄닌은 여전히 촘촘한 편이지만 마시기 좋을 정도로 부드럽다.
산미와 알코올, 타닌과 과실 풍미가 조화를 이루며 힘있는 과실 풍미에서 잠재력이 느껴진다.

2년 터울인데도 2015년에 비해서는 확연히 변화된 모습.
그렇다고 급격히 노쇠한 것이 아니라 매력적으로 진화한 인상이다.
오히려 아직은 신선하고 어린 느낌이 강하다.

2013년은 봄비로 인해 시작이 늦었으며 더운 여름을 거쳐 늦게 수확이 이루어졌다고. 



참고로 2011년 빈티지부터 Dolcetto di Dogliani DOC는 Dogliani DOCG가 되었다.
Dogliani DOCG 제정은 2005년에 이루어졌지만 2011년 전까지는 둘이 공존하고 있다가
2011년이 되어서야 돌체토 디 돌리아니가 돌리아니로 완전히 통폐합된 것.

당연하게도 DOCG 승급에 키오네티 가문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단다.




Chionetti, Briccolero Dolcetto di Dogliani DOC 2010

시나몬롤 처럼 구수한 시나몬과 정향 힌트, 피 같은 미네랄, 고혹적인 장미 아로마. 
사우어 체리와 영롱한 레드 베리의 산미는 아직 어린 느낌으로 붉은 과일의 매력을 제대로 드러낸다.
시간이 갈 수록 라즈베리, 블루베리 등 짙은 베리 풍미가 더해지며
미디엄 정도의 바디이지만 구조감이 좋고 탄닌도 충분해 추가 숙성 여력 또한 충분해 보인다.

비교적 시원한 빈티지에 속한다는데 확실히 2013년에 비해 서늘한 인상을 준다.


2010년은 돌체토 디 돌리아니 표기를 할 수 있었던 마지막 빈티지로
키오네티 브리꼴레로는 2010년 이전까지 돌체토 디 돌리아니로 표기했다.





Chionetti, Briccolero Dolcetto di Dogliani DOC 2008

마른 김, 민트, 부엽토 힌트, 가죽 뉘앙스.
입에서는 커런트, 자두 등 명확한 과실 풍미에 토핑된 시나몬 힌트.
탄닌은 아직 존재감이 있으며 시원하고 깔끔한 산미가 톡톡 튀는 생동감을 부여한다.
미디엄 바디에 이제 시음 적정기에 도달한 듯 흥겨운 와인.

니콜라 씨에 따르면 '08년은 10년보다 더 비가 많고 서늘해 어려운 빈티지였다.
하지만 덕분에 멘솔 향과 꽃향기가 매력적이며 긴 피니시를 지닌 우아한 와인이 나왔다고. 



어려운 것은 어려운 대로 이렇게 꽃을 피우게 마련이다.




Chionetti, Briccolero Dolcetto di Dogliani DOC 2006

시원한 민트, 매콤한 스파이스, 붉은 자두 껍질.  
완연한 숙성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플로럴한 뉘앙스가 감돈다.
 블랙베리와 블루베리 풍미에 시나몬 캔디의 달콤한 느낌, 그리고 커피 힌트. 
미디엄풀 바디에 단단한 골격은 언뜻 잘 숙성된 보르도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돌체토가 이 정도로 우아하게 숙성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음.

06년 역시 시원한 빈티지라고.




다섯 돌리아니들은 잘만든 와인들이 그러하듯 각자 빈티지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무엇보다 돌체토라는 품종 때문인지 2년 사이에 변화되는 모습이 극명히 드러나면서도

균형이나 구조가 허물어지지 않고 단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상당히 흥미로웠다.


꼭 장기 숙성형 품종이라고 일컬어지는 탄닌 패밀리가 아니더라도

훌륭한 떼루아에서 수준급 생산자가 만드는 와인은 그 잠재력이 무궁무진함을 다시 한번 실감.



...

키오네티의 와인들과 곁들여진 라 모라의 음식들 또한 훌륭했음.




테이블을 화사하게 밝혀 준 꽃다발... 보기만 해도 즐겁다.

앞에 계신 ㅈㅅㅁ쏨님도 보기만 해도 즐겁다^^





비노비노의 시그니쳐 세팅ㅎㅎㅎㅎ





마치 고목을 껍질 채 잘라 놓은 듯한 빵.


배도 고픈 데다 맛도 좋았지만 이후의 음식들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꾸욱 참고 반 조각만 먹었음.

 나머지 반은 소스들을 싹싹 긁어 먹는 용도로 사용ㅎㅎㅎ






브라따 치즈와 단 새우.





플레이팅이 뭔가 허전해 보였지만 맛은 전혀 허전하지 않았음♥






맛있었던 2013빈... 시음회 이후로 sold out 되었다고.

요것과 함께 궁금했던 San Luigi 2013빈티지도 한 병 구매.






오리 리예뜨(Rillettes).


리예트는 파테와 비슷한 것으로 고기 등을 잘게 다져서 지방에 낮은 불로 익힌 후 차게 식혀 만든다.

요런 거 너무 좋아하는 나는 건강 잘 챙겨야겠지...






무쇠팬에 구운 문어.


와, 이 문어 정말 대박... 식감이 아주 끝내준다.

사실 라 모라의 모든 요리들이 다양한 맛과 질감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듯.






살시치아 라구, 레자노 치즈, 허브 크럼블 스파게티니.






흑돼지 콩피.


비주얼만큼 맛도 훌륭... 특히 흑돼지는 거의 녹아 없어지는 수준.






캬라멜 아이스크림과 티라미수.


하아, 권숙수의 디저트 이후로 이렇게 훌륭한 마무리는 오랜만인 듯.

감탄인지 한숨인지 모를 무언가가 무심코 튀어나왔다.




와인과도 절묘하게 어우러진 정말 훌륭한 디너였음.

또 가고 싶다.






키오네티의 와인들을 소개한 리플렛... La Costa와 La Chiusa도 언젠가 만나게 되길.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20161122 @ 라 모라(서래마을)

개인 척한 고냥이의 [와인저장고]






뱀다리.


요 포스팅을 쓰느라 과거에 마셨던 돌체토들을 검색하던 중,

과거에 키오네티를 마셨던 포스팅이 발견되었음.


그때도 이미 그 품질에 감탄, 높은 평가를 했었네... 그랬는데 기억도 못하다니;;;

여러분, 머리가 나쁘면 이렇게 고생을 합니다.


혹은 찰나의 인연을 소중히 여겼다면, 그 때 열심히 찾아보았다면,

이미 그들의 와인을 곁에 두고 즐기고 있었을텐데.

리빙 포인트: 맛있으면 찾아서 먹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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