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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article 161. 명가의 합리적 와인,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17. 2. 24.

1등급 샤토를 만드는 가문에서 보르도, 그리고 전세계의 잠재력있는 지역을 찾아 가능성 있는 와인을 만들고 있다. 그것이 지향하는 바가 합리적 가격에 좋은 와인을 만들고 싶은 것인지, 혹은 미들급에 투자하여 그랑 크뤼급 와인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어쨌건 현재 접근 가능한 가격에 좋은 와인들을 제공한다는 건 좋은 일이겠지. 인상적인 와인들이었다. 와인 자체도, 와인에 얽힌 집안들도.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의 블로그 스크랩입니다.




명가의 합리적 와인,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


야잘잘. 한 프로야구 선수의 ‘야구는 원래 잘 하던 사람이 잘 한다’는 발언에서 유래한 줄임말이다. 야구팬 사이에서는 유명한 말인데 사실 와인에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와잘잘이랄까. 와인도 원래 잘 만들던 가문이 잘 만든다. 그 대표적인 예가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Rothschild),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로 대표되는 로칠드(Rothschild) 가문이다. 하지만 이런 1등급 그랑 크뤼 샤토만 로칠드 가문의 소유는 아니다. 원래 금융업으로 융성한 로칠드 가문은 와인 분야에 있어서도 전 세계적인 확장을 거듭해 왔다. 특히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공동 소유하고 있는 에드먼드 로칠드(Edmond Rothschild)는 1970년대 꽁빠니 비니꼴 바롱 에드먼드 드 로칠드(Compagnie Vinicole Baron Edmond de Rothschild, 이하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로 표기)를 설립해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와인들을 만들고 있다.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가 생산하는 와인들은 크게 두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보르도의 알려지지 않은 샤토들을 발굴하여 공격적인 투자로 그 품질을 끌어올린 와인들. 다른 갈래는 세계의 유명 와인 산지에 그들의 품격을 더한 프리미엄 와인들이다.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의 아시아 지역 총괄 플로랑 무쟁(Florent Mougin) 씨에게 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그는 ‘매일 라피트를 마실 수는 없다’며 우아하고 기품이 있으면서도 음식과도 좋은 궁합을 보이는 합리적인 가격의 와인을 생산하는 것이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의 중요한 가치라고 언급했다.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의 와인들을 시음하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치 와인으로 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의 아시아 지역 총괄 플로랑 무쟁 씨]

 

 

보르도의 숨은 보석을 발굴하다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의 시작은 보르도였다. 와이너리를 물색하던 그들에겐 70년대 보르도의 1등급 그랑 크뤼인 샤토 마고(Chateau Margaux)를 구입할 기회도 있었다. 만약 구입했다면 로칠드 가문은 세 개의 1등급 사토를 소유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그들이 선택한 길은 ‘잠자는 공주’와 같은 숨겨진 샤토를 찾는 것이었다. 이미 유명한 샤토보다는 잠재력을 지닌 와이너리를 찾아 프리미엄 와인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그런 그들의 눈에 띤 샤토들이 바로 리스트락-메독(Listrac-Medoc)의 샤토 클락(Chateau Clarke)과 물리스-엉-메독(Moulis-en-Medoc)의 샤토 말메종(Chateau Malmaison)이었다. 이후 퓌스겡 생떼밀리옹(Puissegauin Saint-Emilion)의 샤토 데 로헵(Chateau des Laurets) 등을 추가로 매입하며 보르도 좌안과 우안 모두에서 수준급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다.

 

 

Chateau des Laurets 2012 Puisseguin Saint-Emilion

검은 과일 아로마에 은은한 향신료와 가죽 힌트가 더해진다. 입에 머금으면 체리와 검붉은 베리 풍미가 무겁지 않은 바디에 실려 편안하게 드러난다. 둥근 탄닌과 가벼운 산미는 균형잡힌 온화한 스타일을 완성한다. 메를로(Merlot) 80%에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20%으로 보르도 우안 다운 블렌딩 비율. 30%만 새 오크에서 숙성하고 30%는 두 번째 사용하는 배럴, 나머지는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 16개월 숙성하여 과일의 신선함을 잘 드러냈다. 2003년 매입 후 미셀 롤랑(Michel Rolland)의 컨설팅을 받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진행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Chateau Malmaison 2012 Moulis en Medoc

붉은 꽃과 커런트, 자두 아로마에 매콤한 스파이스와 힌트가 곁들여진다. 검은 베리 풍미에 은은한 바닐라가 곁들여지며 미디엄풀 바디에 개운한 민트 피니시가 매력적이다. 샤토 데 로헵보다는 조금 더 단단한 구조와 힘을 느낄 수 있다. 메독(Medoc) 지역의 전형적 특징을 갖추고 있지만 블렌딩 비율을 보면 메를로 80%에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20%로 오히려 메를로의 비율이 훨씬 높다. 이는 토양 분석 결과에 기초한 것으로 보통 메독 지역은 자갈 섞인 모래 토양이 많지만 샤또 말메종은 메를로에 적당한 진흙 중심의 토양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의 베스트셀러 와인 중 하나로 꼽힌다.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의 와인들. 좌로부터 리마페레, 바로네스 나딘, 샤토 데 로헵, 샤토 말메종, 그랑 코르테.]

 

 

제휴를 통해 해외로 확장하다

해외 진출 시엔 현지의 유력 생산자 등과 제휴를 통한 시너지를 추구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루퍼트 & 로칠드(Rupert & Rothschild Vignerons)는 몽블랑, 까르띠에, IWC 등 명품 브랜드로 유명한 리치몬드 그룹의 루퍼트 가문과의 파트너십으로 탄생했다. 아르헨티나의 플레차스 드 로스 안데스(Flechas de los Andes)는 생떼밀리옹 그랑 크뤼 클라세(Saint-Emilion Grand Cru Classe) 인 샤토 다쏘(Chateau Dassault)의 소유주이자 미라지 전투기 등 항공업으로 알려진 다쏘 가문과의 합작이다. 최근에 설립한 뉴질랜드의 리마페레(Rimapere)는 뉴질랜드의 명성 높은 와이너리 크래기 레인지(Craggy Range)의 오너 테리 피보디(Terry Peabody)와의 조인트 벤처이다. 이렇듯 세계 각국의 명가와 함께한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의 와인을 통해 거물들의 협력이 어떤 훌륭한 결과를 만들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Rimapere Sauvignon Blanc 2014 Marlborough

풋풋한 풀 향기에 흰 꽃과 패션프루츠, 라임, 구아바 등 열대과일, 멜론 등의 풍미가 잘 드러나는 쥬이시한 소비뇽 블랑. 적절한 산미와 과일 풍미, 알코올의 밸런스가 좋다. 말보로 소비뇽의 특징에 프랑스의 손길을 더해 섬세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완성했다.

 

리마페레는 마오리족 원주민 언어로 5개의 화살표를 뜻하며 이는 당연히도 로칠드 가문의 문장에 표현된 다섯 화살을 의미한다. 2012년 말보로 중심에 위치한 와이너리와 14헥타아르(ha)의 포도밭을 매입하면서 와이너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9ha는 소비뇽 블랑, 나머지 5ha에서는 피노 누아를 재배하고 있다.

 

 

Rupert & Rothschild Baroness Nadine Chardonnay 2014 Western Cape

화사한 꽃다발, 달콤한 꿀과 누가(Nougat), 잘 익은 파인애플 아로마에 가벼운 이스트와 아몬드 같이 섬세한 너티(nutty) 뉘앙스, 은근한 미네랄도 느껴진다. 입에서는 열대 과일, 핵과, 모과 등 풍성한 과일 풍미. 완숙을 넘어 캔디드된 과일 풍미가 드러나면서도 산미 또한 잘 살아있어 깔끔한 미감을 선사한다. 신선함을 살리기 위해 유산 발효를 하지 않으며 80%는 오크에서 나머지 20%는 달걀 모양 콘크리트에서 숙성한다. 온도가 유지되는 달걀 모양 콘크리트에서 숙성된 와인은 그 안에서 스스로 순환하기 때문에 바토나쥬(Batonnage, 효모 찌꺼기를 휘저어 풍미를 더하는 방법)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온도가 서서히 올라갈 수록 화사하게 피어나는 아로마가 일품이다. 적절한 알코올(13%)과 과하지 않은 바디에 풍부한 과일 풍미로 편안함과 품격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포도 재배에서부터 양조에 이르기까지 섬세함과 우아함을 극대화한 와인이다. 플로랑 무쟁 씨는 “내기에서 돈을 따고 싶으면 블라인드로 국가 맞추기를 하라. 아무도 맞추지 못할 것”이라는 농담으로 바로네스 나딘의 구세계적 스타일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바로네스 나딘은 바롱 에드먼드의 부인 이름이기도 하다.

 

루퍼트 & 로칠드 와이너리는 프랑슈후크(Franschhoek) 밸리의 시몬스버그(Simonsberg) 산 기슭 프레데릭스버그(Fredericksburg)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은 약 3백년 전 부터 위그노들이 와인을 생산하던 유서깊은 곳이다. 포도밭은 높은 고도와 대서양의 영향으로 서늘한 온도가 유지되며 산미가 잘 살아있는 포도를 얻기 위해 이른 아침에 손으로 수확한다. 바로네스 나딘 외에 전형적인 보르도 스타일의 레드 와인 클라시크(Classique)와 프리미엄 레드 와인 바롱 에드먼드(Baron Edmond)를 생산한다.

 

 

Flechas de los Andes, Gran Corte 2010 Vista Flores(Mendoza)

울창한 침엽수림에 들어온 듯 삼나무 향과 미네랄 뉘앙스가 인상적이다. 뒤이어 블루베리, 블랙베리, 건자두, 바닐라, 가벼운 스모키 아몬드와 후추, 정향, 시나몬, 가죽과 담배 힌트 등 다양한 아로마가 드러난다. 미디엄풀 바디에 단단한 구조, 촘촘한 탄닌, 완숙 과일 풍미에 드라이한 미감, 힘이 느껴지는 진한 여운. 어찌 보면 보르도 와인 같기도 한데 술에 절인 과일(preserve fruit)같은 개성적인 풍미가 차별성을 드러낸다. 알콜(14.5%)은 높은 편이지만 과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밸런스가 좋다. 말벡 60%를 중심으로 시라(Syrah)와 카베르네 프랑을 블렌딩하여 프렌치 오크에서 18개월 숙성했다. 그랑 코르테는 ‘Great Blend’라는 의미로 플레차스 드 로스 안데스의 플래그십 와인이다.

 

플레차스 드 로스 안데스는 안데스 산맥 기슭 멘도자(Mendoza) 우코 밸리(Uco Valley)의 비스타 플로레스(Vista Flores)에 위치하고 있다. 1999년 당시 미개발지였던 그곳에 전기를 놓고 관개를 하며 와이너리를 건축했다. 비스타 플로레스는 최근 섬세한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각광받고 있다. 해발 1100미터의 고지대로 낮에는 반소매, 밤에는 자켓을 입어야 할 정도로 일교차가 커 포도 풍미가 응축되며 산미 유지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설립 단계부터 미셀 롤랑의 도움을 받았으며 말벡 품종을 중심으로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김윤석 기자  wineys@w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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