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날아온 반가운 손님.
지난 5월 와인북카페 디너에선 이태리의 명가 마쩨이(Mazzei)의 와인들을 만났었다. 이번엔 아시아 지역 브랜드 매니저 야코포 판돌피니(Jacopo Pandolfini)씨와 함께 마쩨이의 와인을 시음하는 자리를 가졌다.
특히 지난 디너가 토스카나 지역에 집중했다면 이번 디너는 토스카나를 포함해 베네토의 빌라 마르첼로(Villa Marcello), 시칠리아의 지솔라(Zisola) 등 마쩨이가 소유한 이탈리아 전역의 와인들을 맛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달까.
참석자가 모이고, 조금 늦게 야코포 판돌피니 씨 등장. 요건 디너 이후 찍은 자발적 설정샷(?)임.
서글서글한 인상에 웃는 모습이 짐 캐리를 닮은 것 같기도. 사실 그는 어마어마한 금수저(!)인데, 대부가 그 유명한 피에로 안티노리(Piero Antinori) 후작. 그 덕에 안티노리에서 10년을 일했고 지금은 사촌지간인 마쩨이 가문에서 아시아 퍼시픽 담당자를 맡고 있다.
마쩨이의 경영진들. 앉아있는 분이 회장인 라포 마쩨이(Lapo Mazzei). 서있는 좌측이 필리포 마쩨이(Filippo Mazzei), 우측이 프란체스코 마쩨이(Francesco Mazzei)로 둘 다 라포 마쩨이 씨의 아들이다.
참고로 필리포 마쩨이 씨는 바론 리카솔리(Barone Ricasoli)의 CEO이기도 하다고. 으음, 마쩨이와 안티노리, 게다가 리카솔리의 실질적 연계라니... 키안티에서의 명성과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지. 그렇기에 끼안티/끼안티 클라시코가 저가의 투박한 와인이라는 대중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그란 셀레지오네(Gran Selezione) 같은 제도도 도입하고 충분한 자본과 기술력도 투입할 수 있는 것이겠지. 끼안티의 터줏대감으로서 600년 이상 이어 온 마쩨이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오늘은 끼안티 외 다른 지역으로도 눈을 돌려 봐야지.
먼저 베네토의 밀라 마르첼로(Villa Marcello).
마르첼로는 필리포의 아들이자 마쩨이 가문의 25대 손인 지오반니 마쩨이(Giovanni Mazzei)의 어머니 집안으로 몇 백년 이상 프로세코를 생산해 온 가문이라고. 레이블의 물결 무늬는 가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마르첼로(Marcello) 라는 이름 자체가 바다(mare)와 하늘(cielo)의 결합이기 때문에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물결 모양을 본따 저런 로고를 만들게 되었단다.
Villa Marcello Prosecco Brut 2016 / 빌라 마르첼로 프로세코 브뤼 2016
일반적인 프로세코 치고는 드라이한 인상(보통 프로세코는 extra dry인데 요녀석은 brut)에 스모키한 힌트가 살짝 스친다. 은은한 마른 허브와 자스민 티 아로마, 상큼한 시트러스, 청사과 풍미에 플로럴 뉘앙스가 스친다. 피니시의 가벼운 쌉쌀함과 좋은 산미가 좋은 인상을 남긴다. 글레라(Glera) 85%에 블렌딩된 피노 블랑코(Pinot Blanco) 15%는 와인에 복합미를 더하고 산미를 높여 주는 역할을 한다고.
식전주로도, 튀김이나 태국 음식과 같은 스파이시 푸드와도 아주 잘 어울린다. 일전엔 사시미&스시와 함께 마신 적이 있는데 드라이한 미감과 상큼한 산미가 사시미의 담백함과 최고로 잘 어울렸다. 레이블 또한 컬러 조합은 고급스럽고 디자인은 캐주얼한 느낌이어서 어떤 자리에나 잘 어울릴 듯.
두 번째 화이트는 토스카나의 벨구아르도(Belguardo).
마쩨이 소유의 와이너리에는 각각 독특한 심볼이 있다. (앞에서 본 마르첼로의 물결 무니와 뒤에 볼 지솔라의 지문 등등) 벨구아르도의 레이블에 그려진 저 독특한 기하학적 심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연구를 차용한 작품. 그림 속의 각 꼭지점들은 중심까지의 거리가 같고 각 삼각뿔(?)들의 크기 또한 같다. 그러나 그림상으로는 모두 다른 모양으로 보인다.
각 꼭지점까지의 거리와 도형의 크기가 같다는 것은 벨구아르도에서 만드는 모든 와인에는 똑같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모두 달라 보이는 것은 와인의 독립적인 캐릭터를 의미함과 동시에 보는 사람의 관점, 그러니까 취향에 따라 그 감상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마디로 벨구아르도에서는 생산하는 모든 와인에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고객의 개성 또한 존중한다는 의미. 레이블/심볼 하나에서도 와인에 대한 철학과 고객에 대한 열린 생각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역시 마쩨이.
Belguardo Vermentino 2016 Toscana IGT / 벨구아르도 베르멘티노 2016
아름다운 노란 액체에서 향긋한 꽃 향기와 미네랄 뉘앙스, 그리고 잘 익은 살구 향이 은은하게 풍긴다. 입에 넣으면 가벼운 유질감과 함께 코에서보다는 정제된 풍미가 깔끔하게 드러난다. 적절한 산미로 깔끔한 여운을 남기는 피니시. 역시 매력적인 화이트다.
베르멘티노는 피노 그리지오와 함께 이탈리아에서는 비교적 대중적인 화이트 품종이다. 베르멘티노는 주로 해안가에서 잘 자라는데 토스카나를 비롯해 리구리아와 샤르데냐의 해변을 따라 재배하는 경향이 있다고. 샤르데냐의 베르멘티노는 프루티한 풍미와 좋은 구조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 반면, 마렘마의 베르멘티노는 달콤한 과일향을 드러내면서도 입안에서는 드라이한 터치와 미네랄 뉘앙스를 풍기는 경향을 보인다고. 참고로 벨구아르도는 '아름다운 경치'라는 의미라고. 이집의 베르멘티노가 재배되는 아름다운 해안의 포도밭도 보고 싶구만.
이제 레드를 맛볼 시간.
먼저 지난 5월 디너에서 맛보지 못했던 모렐리노 디 스칸사노(Morellino di Scansano DOCG) 부터. 레이블만 보아도 알 수 있듯 벨구아르도의 와인이다.
Belguardo Bronzone 2013 Morellino di Scansano Riserva
산지오베제(Sangiovese) 100%로 양조한 이 와인에서는 토스티한 오크와 구수한 밤 같은 견과의 첫 향이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뒤따르는 화한 허브와 바이올렛 아로마 블랙베리 등 잘 익은 검은 베리의 풍미. 시간이 지날 수록 희안하게도 붉은 과일 뉘앙스도 드러나는데 목넘김 후의 플로럴&프루티한 여운이 일품이다. 마시기 편한 정도의 정제된 산미로 한국 시장에서도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모렐리노 디 스칸사노는 키안티(Chianti),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몬탈치노(Montalcino),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와 함께 토스카나의 5대 산지오베제 산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바다와 가까운 지역으로 온화한 기후를 보여 과일이 더욱 잘 익기 때문에 끼안티보다 바디가 좋고 라운드하며 산미는 낮은 편이다. 따라서 산지오베제 답게 음식과도 적절히 잘 어울리지만 음식 없이 와인만 즐기기에도 괜찮다.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마쩨이의 아이콘 와인을 만날 차례.
2007년 완공된 '산지오베제 사원(The Sangiovese Temple)'에서 만들어지는 최고의 산지오베제.
폰테루톨리의 셀러는 모든 과정에서 펌프를 사용하지 않고 중력에 의해 포도알과 와인을 이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최고의 결과물, 마쩨이의 본가이자 끼안티 클라시코의 정수 카스텔로 폰테루톨리(Castello Fonterutoli).
Castello Fonterutoli 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2013 / 카스텔로 폰테루톨리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치오네 2013
화한 민트 허브와 바이올렛, 장미, 진한 커런트, (검)붉은 베리 향기에 바닐라 오크가 예쁘게 뭍어난다. 입에 넣으면 은근한 산미와 완숙한 베리 풍미와 오묘한 발사믹 뉘앙스. 무겁지 않지만 촘촘한 탄닌과 밀도 높은 아로마가 최상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친근하며 음용성이 좋으면서도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잘만든 끼안티 클라시코의 전형. 시간이 지날 수록 화사하게 피어나는 붉은 꽃 향기가 한없이 기분을 끌어올린다.
산지오베제(Sangiovese) 92%에 말바시아(Malvasia Nera)와 콜로리노(Colorino)를 8% 블렌딩한다. 한 그루의 포도나무에서 800g라는 적은 양의 포도만을 수확하여 양조하며 1년에 6만병 정도만 생산한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와인.
참고로 마쩨이는 '끼안티 와인'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최초의 공식 문서인 '1398년 영수중'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마쩨이의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
필립 마쩨이(Philip Mazzei)에게 헌정하는 미국 우표. 지난 포스팅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마지막 백악관 만찬에서 필립을 언급하는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었는데 그만큼 미국 독립에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였다. 당시 상당히 자유롭고 혁신적인 사상을 가졌던 그는 종교 박해를 피해 런던과 파리 등에 거주했으며 조지 워싱턴이나 토머스 제퍼슨 등과 교류하면서 미국 독립 사상에 영향을 끼친다.
필립(Philip)은 그에게 헌정하는 와인으로 미국에서 사랑받는 품종임과 동시에 범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100% 사용했다.
Philip 2013 Toscana IGT / 필립 2013
은은하게 감도는 검붉은 꽃 향기 뒤로 완연한 블랙커런트 아로마. 검붉은 베리, 화한 민트, 감초 풍미 또한 품종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은근한 오크 뉘앙스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며 천천히 스월링을 하면 매콤한 스파이스 스모키함이 강하게 살아나기 시작한다. 잘 익은 과일 풍미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와인.
잘 알려진 대로 레이블은 루브르에 걸린 초상화를 기반으로 피렌체의 아메리칸 아트 스쿨에 다니는 학생이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우표 속의 인물과는 상당히 달라 보는데... 여러분, 와인을 마시면 이렇게 귀여워집니다;;; 보틀 떼샷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필립의 병만 유난히 작은데 필립이 단신이라 병의 키도 작다는 뜬소문이 있다고ㅋㅋㅋㅋㅋㅋ
이제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으로 갈 차례.
시칠리아의 찌솔라(Zisola)는 좀 더 다이렉트한 심볼을 사용했다. 바로 오너인 프란체스코 마쩨이의 지문. 텃세가 심한 시칠리아에서 현지인 와인메이커를 고용하는 등 현지에서 동화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토스카나 출신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드러내기 위해 지문을 사용했다고. 그런데 사실 프란체스코 지솔라 와이너리를 구입한 이유는 이웃에 살고 있던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던데.... 믿거나 말거나ㅋㅋㅋ.
Zisola 2014 Noto Rosso DOC / 찌솔라 2014 노토 로쏘
처음엔 야채 쥬스 같은 풋풋함과 매콤하고 스윗한 스파이스가 가장 먼저 드러난다. 거기에 베리 사탕이나 절인 오렌지필 같은 톡 쏘면서 달콤한 향이 더해져 다양한 아로마가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구운 아몬드 뉘앙스에 라즈베리, 블랙베리 풍미, 시나몬 캔디, 구운 김, 모카 힌트. 완숙 과일 풍미를 갖추고 있음에도 산미가 잘 살아있으며 높은 알코올(14.5%)을 지닌 와인 답게 구조가 단단하고 묵직하다. 네로 다볼라(Nero d'Avola) 100%.
시칠리아 와인은 자주 접하지만 노토(Noto) 지역의 와인은 생소하다. 시칠리아 남동쪽 톡 튀어나온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위도상으로는 튀니지보다도 아래에 있다. 이 와인이 노토의 스타일을 대변한다면 한국 시장에서는 제법 반응이 좋을 듯.
역시 지역을 떠나 모든 와인들이 훌륭하다. 와잘잘. 붉게 물든 필립의 눈매가 자꾸 나를 유혹하...
디너 장소였던 녹사평 역 근처 쏘왓(SO WAT)도 참 괜찮았음.
간판과 입구가 잘 보이지 않아 지나치기 십상이다. 발견하고 나면 왠지 스피크이지 바 처럼 은밀한 곳에 들어가는 느낌.
하지만 사실은 태국음식점.
나름 크리스마스 분위기-_- 부처님과 함께하는 메리 크리스마스~
의자 등받이의 보살님(?)들도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계신 듯. 야코포가 살짝 늦어 준 덕분에 여유롭게 사진도 찍고 참석자들과 담소도 나눌 수 있었다. 심지어는 자발적 '멍-' 도 좀 때리고. 요즘 이런 여유가 너무도 필요했기에 늦어줘서 고마웠다능♥
태국 음식은 단맛, 짠맛, 신맛 등 다양한 맛이 어우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와인과도 흥미로운 매칭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날의 매칭도 좋았고 다양한 재미를 주었음.
무서워서(?!) 유일하게 먹지 못한 똠양궁. 다름 음식 이름들은 하나도 기억이......
함께 해 준 야코포 씨에게도 다시한번 감사를. hope to see you soon.
20171206 @SO WAT(이태원)
개인 척한 고냥이의 [와인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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