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금요일 저녁, 술 마시기 좋은 날.
술 마시기 좋은 프라이빗한 스패니시 비스트로, 숲으로 간 물고기. 헌책방 건물 3층에 있는데 계단을 오를 때 나는 오래된 책 냄새가 정겹다. 입구부터 비스트로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분위기도, 음식도, 오너 셰프님도 너무나 좋다.
전등 아래 놓인 호두가 왠지 비스트로의 분위기와도, 비오는 날씨와도 잘 어울린다.
스페인 음식점 답게 스페인 지도ㅋㅋ
우리가 앉을 자리.
와인잔 다섯 개.
오늘의 와인들. 왼쪽은 내가 들고 온 와인인데, 블라인드로 마셨음ㅋㅋ 한 병은 교통체증으로 살짝 늦는 멤버가 들고 오는 중.
멤버를 기다리며 헝가리에서 온 사슴고기 살라미(?)와 치즈와 함께 리오하 화이트 한 잔 곁들인다. 비스트로에서 서비스로 주신 El Coto Bianco였는데 사진을 못 찍었네.
드디어 다 모였다. 스타트.
앤초비 소스가 뿌려진 버섯 샐러드.
메인 디시인 양고기 스테이크. 먹고 마시고 떠드느라 맛있었던 음식 사진을 거의 못 찍었다;;; 문어야 감바스야 빠에아야 미안해ㅠㅠ
오늘의 와인들.
Le Bout du Monde, Tam-Tam 2014 Cotes du Roussillon
예전에 내추럴 특집 와이니 정모 때 이미 마셨던 와인인데 그날도 이날도 참 맛있었다. 화사한 꽃 향기에 라즈베리 등 검붉은 베리 풍미, 내추럴다운 이스트 뉘앙스. 탄산 침용으로 남프랑스의 와인임에도 두툼하거나 jammy하지 않고 외려 생생하고 가벼우며 새콤하다. 알코올도 12.5%밖에 안 되고 투박하지만 편안하며 음식과도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 앤초비 소스 샐러드와도 전혀 무리 없이 어울렸음.
찾아보니 웹페이지가 있다. 편암(schist) 토양에서 자란 평균 30년 수령의 시라 100%로 양조했다. 손수확 후 송이째로 온도조절되는 피버글라스 탱크에서 3주간 발효하는데, 피자주도 흐몽타주도 하지 않는다. 7년된 228리터 바리크에서 11개월 숙성 후 최소한(1mg/hl)의 이산화황만을 첨가하여 여과 정제 없이 병입한다. 수확량이 ha당 25hl로 거의 그랑 크뤼급인데 생산량도 7천 병 밖에 안 된다. 부지런히 마셔야겠군.
Tenuta Terre Nere, Etna Rosso Feudo di Mezzo ~Il Quadro delle Rose~ 2009
루비 코어에 림에는 가넷 오렌지 컬러. 마른 김, 허브, 붉은 베리와 꽃, 매실 아로마와 함께 토스티 오크 뉘앙스가 은근히 강하게 드러난다. 미디엄(풀) 바디에 많진 않지만 촘촘한 타닌과 타르 미네랄, 드라이한 인상. 그 때문인지 처음엔 약간 쓰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잘 익은 붉은 베리와 자두 등 붉은 과일의 달콤함이 살아난다. 밸런스가 살짝 아쉬웠고, 조금 더 에이징해서 전체적인 요소가 잘 녹아들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블라인드로 내어놓으니 역시나 피노 누아, 바르바레스코 같은 의견이 많이 나온다. '피노+네비올로=에트나 로쏘'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건 아닌 듯. 테누타 테레 네레는 에트나(Etna)의 대표적인 생산자 중 하나로, 8년 전 쯤 처음 에트나 와인을 마실 때 자주 만났던 녀석이다. '테레 네레'는 검은 토양이란 뜻으로 현무암 등으로 구성된 어두운 에트나의 토양을 의미한다. 홈페이지를 보니 요 와인은 자체적으로 '프르미에 크뤼' 급으로 분류하고 있는 듯. 50-80년 수령의 포도밭에서 ha당 5톤 미만의 포도만 생산한다. 6-7년 전쯤 구매해서 결혼 빈티지라 오래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의 음식들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오픈했음.
Vega Sicilia, Tinto Valbuena No. 5 Ribera del Duero 2008 / 베가 시실리아 틴토 발부에나 넘버 5 리베라 델 두에로 2008
오크 바닐라가 진하게 어우러진 블랙베리, 블루베리, 프룬 등 진한 검은 과일 풍미가 아로마에서부터 풍미에 이르기까지 명확하게 연결된다. 탄탄한 구조에 밀키한 풀바디, 알콜과 산미, 탄닌의 밸런스 또한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며 음용하기도 딱 좋은 상태라 멤버 모두를 만족시켰다.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누가 마셔도 '좋다, 맛있다'고 밖에 할 수 없을 와인. 밀도 놓은 여운이 길게 이어져 좋은 인상을 남긴다.
1864년 설립된 베가 시실리아야 두말할 것 없이 스페인을 대표하는 와이너리 중 하나. 설립 초기 보르도 품종을 들여와 틴토 피노(Tinto Fino, 템프라니요)와 함께 심었다. 발부에나 No.5는 베가 시실리아의 세컨드 와인 같은 와인이다. 베가 시실리아가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에 소유한 210ha의 포도밭 중 140ha가 우니코(Unico)와 발부에나를 위해 사용되며 나머지 70ha는 또다른 와인인 알리온(Alion)에 사용된다. 그러니까 알리온은 베가 시실리아와 다른 떼루아, 발부에나는 같은 떼루아인 셈. 다만 발부에나는 좀 더 어린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더 짧은 숙성을 거쳐 만든다.
발부에나는 온도조절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 내추럴 이스트로 발효하며 유산발효 또한 진행된다. 이후 7개월을 대형 나무통(vats)에서 숙성한 후 프렌치 오크(50%) & 아메리칸 오크(50%) 새 배럴에서 15개월을 더 숙성한다. 이후 3개월은 세미-뉴 배럴(?)에서, 6개월을 대형 나무통에서 추가 숙성한다. 2008년 빈티지는 템프라니오(Tempraniilo) 93%에 메를로(Merlot)와 말벡(Malbec)을 7% 블렌딩했다.
발부에나에 대해서는 베가 시실리아 홈페이지와 영국의 대표적인 주류회사 bbr의 사이트를 참고함.
Vendanges du Roy, Chateaneuf-du-Pape 2010
특징적인 남불 허브, 매콤한 스파이스, 딸기와 체리 등 붉은 과일과 자두, 석고 미네랄과 흑연 뉘앙스. 입에 넣으면 말린 무화과 풍미가 더해지며 밀크 초컬릿 힌트가 피니시에 살짝. 구조감과 밸런스가 좋으며 과일 풍미가 풍성함에도 드라이한 인상이 있다. 무엇보다 편안하고 맛있다.
멤버가 프랑스 남부 론 현지에서 조달한 녀석인데 아쉽게도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상당히 인상적이었음. 현지가도 90유로로 제법 비싸다. 심지어 병도 레이블도 제대로 쳐다보질 않았네. 정보 챙길 새도 없이 마셨을 정도로 맛있었다고 해 두자;;;
즐거운 저녁이었음.
20181002 @ 숲으로 간 물고기(신촌)
개인 척한 고냥이의 [술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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