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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article 187. 다시 한 번, 축제의 와인 보졸레 누보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0. 11. 8.

올해는 19일이 보졸레 누보 출시일이니 이제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보졸레 누보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지만, 대신 내추럴 씬을 중심으로 보졸레 크뤼에 대한 관심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 축제나 파티는 어불성설이지만, 그런 만큼 놀거리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질 지도. 올해도 누보를 마셔줘야지.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의 블로그 스크랩입니다.


 

다시 한 번, 축제의 와인 보졸레 누보

 

김제에서 농사를 짓는 외가에서 햅쌀을 보내왔다. 햅쌀로 밥을 지으니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게 묵은쌀로 지은 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갓 지은 밥의 향긋한 내음이 식욕을 자극하고, 쌀의 달달하고 구수한 맛이 입안에 가득하니 반찬 없이 먹어도 꿀맛이다. 당분간은 햅쌀로 지은 밥에 갓 담근 김장김치만으로 끼니 걱정은 없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엔 프랑스에서도 갓 양조한 와인을 보내왔었다. 나한테만 보낸 게 아니라 한국 와인 애호가 모두에게 보낸 것이지만. 올해 수확한 포도로 양조해 처음 시장에 나온 와인, 바로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다. 게다가 한국은 보졸레 누보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만날 수 있는 나라 중 하나다. 보졸레 누보는 11월 셋째 주 목요일이 돼야 출시할 수 있는데, 시차 때문에 극동아시아와 오세아니아부터 보졸레 누보가 풀리기 때문이다. 햇와인을 누구보다 먼저 마시는 즐거움이라니, 와인 애호가로서 장난스럽게 거들먹거릴 정도는 될 것 같다. 보졸레 누보는 축제의 술이니까 조금은 과장스럽게 흥을 돋우고 몸을 들씩이며 신나게 마셔도 되지 않을까.

 

[보졸레 누보가 도착했다! (출처: www.beaujolaisnouveau.fr)]

 

그런데 최근에는 ‘누보’의 열기가 예전만 못하다. 예전엔 많은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출시 일정에 맞춘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었다. 백화점이나 와인샵, 심지어는 길거리 편의점에서도 보졸레 누보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와인을 모르는 사람도 보졸레 누보는 알 정도로 그 인기는 대단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인지 보졸레 누보가 나오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출시일이 수능시험일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누보가 외면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케팅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조르쥬 뒤뵈프(Georges Duboeuf)가 주도한 11월 셋째 주 목요일(처음에는 11월 15일) 출시 마케팅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보졸레 누보의 성공을 견인했다. 장기 보관이 어려운 보졸레 누보의 약점을 ‘가장 먼저 마시는 햇와인’이라는 역발상으로 극복한 이 전략은 마케팅 교과서에 소개될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한국 시장에서도 1990년대 중반 처음 수입된 이래 몇 년 동안 광풍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큼 역풍도 거셌다. 마케팅 덕에 팔리는 와인이라는 오명을 얻었던 것이다. 또한 칠레 와인의 성장 등과 더불어 묵직하고 탄닌이 강한 와인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가볍고 신선한 맛에 마시는 보졸레 누보에 대한 관심은 점점 식어만 갔다. 게다가 ‘보졸레=보졸레 누보’라는 인식까지 생겨 보졸레 크뤼 와인들을 비롯한 훌륭한 보졸레 와인들까지 저평가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최근에는 보졸레의 전통적 명가들과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신흥 생산자들 덕에 보졸레 와인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보졸레 누보는 억울하다. 가볍고 탄닌이 적은 것은 보졸레 지역과 가메(Gamay) 품종의 특성, 그리고 햇와인으로서의 스타일을 제대로 살린 것 뿐이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포도알을 으깨지 않고 이산화탄소가 가득한 밀폐된 통 속에서 발효한다. 탄신 침용(carbonic maceration)이라는 양조법인데, 4-6주 정도 짧은 양조 기간을 거쳐 신맛과 떫은맛은 적고 체리와 라즈베리 등 신선한 과일맛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가벼운 와인을 생산한다. 그래서 보졸레 누보는 보통 레드 와인보다 낮은 섭씨 12도 정도의 온도로 마셔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 탄닌이 적고 신맛도 강하지 않아 와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부담이 없다. 육류는 물론 생선이나 각종 해산물 등 다양한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사람과 음식을 가리지 않으니 축제와 파티의 술로써 최적인 셈이다. 마음이 맞는 친구,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햇와인 한 모금 나누는 것이 바로 보졸레 누보를 즐기는 와인 애호가의 행복 아닐까. 단풍이 만발한 실외에서 가을의 정취를 벗 삼아 마시기도 안성맞춤이다. 물론 안전하고 책임 있는 음주는 필수다.

 

보졸레 누보의 인기가 주춤하다지만 아직도 다양한 보졸레 누보가 수입되고 있다. 올해가 지나기 전 누보 한 병쯤 마셔 보는 것이 어떨까. 아직 우리에게는 열 두 척의 배가, 아니 마실 만한 보졸레 누보들이 남아 있다.

 

[국내에 유통중인 보졸레 누보 와인들]

 

알베르 비쇼 보졸레 빌라쥐 누보 Albert Bichot Beaujolais-Villages Nouveau 2018

보졸레의 북쪽에 위치한 보졸레 빌라쥐(Beaujolais-Villages)는 가메 품종 재배에 적절한 화강암 토양으로 배수성이 좋아 과일맛이 좀 더 풍부한 와인을 생산한다. 알베르 비쇼는 부르고뉴에 100ha에 달하는 넓은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는 생산자로 한국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다. 믿고 마셔도 좋다. 알베르 비쇼의 보졸레 누보 시리즈는 2014년까지 <신의 물방울>의 만화가 오카모토 슈가 그린 레이블을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루이 자도 보졸레 빌라쥐 프리뫼르  Louis Jadot Beaujolais-Villages Primeur 2018

루이 자도 보졸레 빌라쥐 프리뫼르 논 필트레  Louis Jadot Beaujolais-Villages-Primeur Non Filtre 2018

누보를 소개하는 자리에 왠 프리뫼르(Primeur)냐고? 놀랄 것 없다. 프리뫼르(Primeur)나 누보(Nouveau)는 둘 다 ‘신선한’, ‘새로운’이라는 의미를 지닌 프랑스어로 보졸레 프리뫼르는 누보와 같은 방식으로 양조하며 출시일 또한 같은 규정을 적용한다. 다만 보졸레 누보는 이듬해 8월이 지나면 중간 상인에게 판매할 수 없는 데 비해 프리뫼르는 1월 31일 이후엔 판매가 금지된다는 점 정도가 다르다. 하지만 루이 자도의 보졸레 빌라쥐 프리뫼르라면 1월 이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것 같다. 향긋한 꽃향기와 풍부한 과일 풍미로 보졸레의 매력을 제대로 드러내는 이 보졸레는 필터링을 하지 않아 더욱 농밀한 논 필트레 버전도 있다.  

 

레 로마랑 보졸레 누보  Les Romarins Beaujolais Nouveau 2018

칼베(Calvet) 등 유명 브랜드를 보유하고 세계 170여 나라에 와인을 수출하는 대형 네고시앙 GCF(Les Grands Chais de France)에서 선보이는 보졸레 누보. 레이블의 컬러가 와인의 풍미를 잘 나타내는 듯 하다.

 

피에르 페로 보졸레 빌라쥐 누보  Pierre Ferraud Beaujolais-Villages Nouveau 2018

로버트 파커가 그의 저서 <부르고뉴(Burgundy)>에서 ‘꾸준히 높은 점수를 받는 탁월한 보졸레’라고 평가한 피에르 페로의 보졸레 누보. 신선하고 가벼운 보졸레 누보 중에서도 섬세하고 유순한 와인으로 평가된다.

 

플레지르 드 비뉴 보졸레 누보  Plaisir de Vignes Beaujolais Nouveau 2018

크라운캡으로 마감한 투명한 스윙탑 보틀이 캐주얼한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소믈리에 나이프가 없어도 병따개로 쉽게 열 수 있는 미덕을 갖췄고, 맥주잔이나 1회용 컵에 따라 벌컥벌컥 마시다 스윙탑 마개로 막아두어도 부담 없을 포스를 풍긴다. 이름마저 ‘포도나무의 즐거움(Plaisir de Vignes)’이니 어찌 즐겁지 아니할까.

 

 

 

다시 한 번, 축제의 와인 보졸레 누보

보졸레 누보는 보통 레드 와인보다 낮은 온도인 섭씨 12도 정도에서 마셔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 탄닌이 적고 신맛도 강하지 않기 때문에 와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부담이 없다. 육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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