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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article 185. 주정강화와인: (4)셰리[Sherry]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0. 11. 8.

포트, 마데이라에 비해 좀 더 복잡해 보이는 셰리. 하지만 피노/올로로소 양대 산맥만 기억하면 의외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쨍한 피노 셰리에 샤퀴테리를 즐기고 싶지만, 그런 모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아니, 피노 셰리를 구하는 거 자체도 사실 쉽지 않다. 통재라...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의 블로그 스크랩입니다.

 

 


주정강화와인: (4)셰리[Sherry]

 

 

셰리(Sherry) 와인. 공식 명칭은 헤레스-세레스-셰리(Jerez-Xérès-Sherry) DO다. 헤레스(Jerez)는 스페인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지역명이며 그 지역에서 생산하는 특별한 와인을 지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이 와인을 프랑스에서는 세레스(Xérès), 영국에서는 셰리(Sherry)라고 불렀다. 명칭에서부터 셰리가 누렸던 국제적 인기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셰리는 어떤가? 모든 주정강화 와인이 그렇듯 유행에서 한 걸음, 아니 네댓 걸음 이상 물러난 느낌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그렇다. 국내에서 포트(Port)는 그나마 디너의 마무리를 위해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마데이라(Madeira)도 최근 몇 년간 일부 생산자의 와인을 중심으로 애호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반면, 셰리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시음회나 세미나 등을 제외한 개인적인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 셰리를 주문하거나 가져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독특한 개성을 지녔음에도 트렌드에 뒤떨어져 버린 인상이랄까. 2000년을 이어 온, 19세기 중반엔 영국 와인 시장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던 셰리의 매력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닐 터, 시대를 풍미했던 셰리의 매력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것도 와인 애호가로서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새로운 유행의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침 레트로(retro)를 넘어 뉴트로(newtro)가 유행하는 시대니 말이다.

 

 

셰리 하면 떠오르는 것, 솔레라(Solera)

솔레라는 양조한 셰리를 숙성하고 하우스(=생산자)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오크통(butt)을 여러 단으로 쌓아 발효를 마친 셰리를 숙성하는데, 아래단으로 갈수록 오래 숙성한 와인이 담겨 있다. 가장 오래 숙성한 와인이 담긴 맨 아래단의 이름이 바로 솔레라이며, 전체 프로세스를 지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병에 담을 때는 가장 아래단의 오크통에서 와인을 꺼내며, 한 번에 꺼내는 와인의 양은 각 오크통의 1/3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또한 매회 최대치를 꺼낸다면 1년에 3회를 초과해서 꺼낼 수 없다. 셰리의 품질과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정인 셈이다. 비워진 양만큼 바로 윗단(Criadera)의 와인으로 보충한다. 하나의 통으로부터만 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 통들로부터 골고루 받는다. 이런 식으로 아래 통의 빈 부분을 차례로 채워나가고 가장 윗단의 빈 부분은 새 와인(Añada)으로 채운다. 이렇게 와인은 새로운 빈티지가 섞이고, 같은 단의 오크통끼리도 블렌딩 되어 일관성 있는 맛을 갖게 된다. 쉐리 하우스의 스타일로 완성되는 것이다.

 

[ 솔레라 시스템  (출처: https://www.sherry.wine) ]

 

세상 독특한 셰리의 떼루아

셰리를 생산하는 헤레즈는 스페인 안달루시아(Andalucia)에서도 서쪽 끝이다. 지도를 펴고 포르투갈과의 최남단 국경과 지브롤터를 이은 직선의 거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주요 생산자들은 헤레즈와 해안도시 산루카 데 바라메다(Sanlucar de Barrameda), 엘 푸에르토 데 산타 마리아(El Puerto de Santa Maria)에 있으며, 이 세 도시 주변으로 포도밭이 조성돼 있다. 무덥고 건조한 아열대에 가까운 기후인데, 600mm에 달하는 비 또한 대부분 겨울에 내린다. 대표적인 토양은 백악질로 구성된 알바리사(albariza). 강렬한 태양 아래 하얗게 빛나는 이 토양은 배수가 잘 되면서도 수분을 잘 간직하는 아이러니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비가 오면 진흙처럼 되어 질척이다가, 물이 아래로 빠지고 표면이 건조되면 딱딱하게 굳어 땅 아래의 수분 증발을 막기 때문이다. 따라서 덥고 건조한 환경의 포도나무가 수분 부족으로 겪는 스트레스를 줄여 준다. 알바리사 포도밭에서 재배하는 셰리의 주품종은 팔로미노(Palomino). 특별한 개성이 없는 중성적인 품종인데 재배와 수확 자체는 까다로워 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그런 만큼 헤레즈 지역의 개성을 입히기엔 최적의 품종이라 할 수 있다. 알바리사를 닮은 하얀 캔버스 같은 품종이랄까.

 

[ 알바리사 토양  (출처: https://www.sherry.wine) ]

 

하지만 모든 포도밭이 다 하얗게 빛나는 것은 아니다. 점토질이 주를 이루는 어두운 토양인 바로(barro)도 있다. 알바리사와 달리 비옥한 토양이라 포도재배가 쉽고 생산량이 많다. 대신 생산되는 와인의 섬세함은 떨어지기 때문에 주로 블렌딩용이나 편하게 즐기는 와인을 만든다. 바로는 점차 곡물 밭으로 바뀌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백악질 위로 산화철이 섞인 모래질 토양이 덮여 있는 아레나(arena)에서는 모스카텔(Moscatel)과 페드로 히메네즈(Pedro Ximenez, PX)를 재배한다. 이들은 주로 햇볕에 반건조하거나 건포도로 말려서 스위트 와인 양조 혹은 블렌딩 용으로 사용한다.

 

 

셰리의 양대산맥, 피노(Fino)와 올로로소(Oloroso)

셰리는 다양한 스타일이 있지만 피노와 올로로소를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발효를 마친 어린 와인의 알코올 함량은 보통 11%에서 14% 사이가 된다. 이 초기 단계에서 와인의 표면에는 플로르(flor)라고 하는 효모 막이 형성되는데, 이것이 셰리의 산화를 방지하고 톡 쏘는 듯한 독특한 풍미를 준다. 이후 셰리의 운명은 까빠따즈(capataz)라고 불리는 셀러마스터의 손에 달려 있다. 까빠따즈는 베넨시아(venencia)라고 하는 실린더 모양의 용기가 달린 긴 막대로 플로르 막을 뚫고 와인 샘플을 채취해 코피타(copita)라고 하는 잔에 따라 시음한다. 마치 묘기와도 같은 모습인데, 이 묘기의 결과의 따라 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와인의 성격에 따라 섬세한 와인은 피노, 좀 더 진하고 묵직한 와인은 올로로소가 된다. 이후 피노는 플로르에서 오는 가볍고 신선한 성격을, 올로로소는 산화를 통해 묵직하고 너티한 풍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양조한다.

 

[ 베넨시아로 코피타에 셰리를 따르고 있는 까빠따즈   (출처: https://www.sherry.wine) ]

 

피노가 피노답게, 올로로소가 올로로소답게 되기 위해서는 강화하는 알코올의 양부터 달라야 한다. 플로르는 알코올이 15%를 넘어서면 살 수 없기 때문에, 피노는 플로르가 살아 활동할 수 있는 15% 이하로 주정을 강화한다. 올로로소는 반대로 18% 정도로 주정을 강화해 플로르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 이후 솔레라 시스템을 통해 숙성을 진행하며 상급 피노는 3-5년, 올로로소는 10년까지 숙성한다. 일부 고급 와인의 경우 25년 이상 숙성하는 경우도 있다.

 

 

쉐리의 스타일, 달콤하거나 톡 쏘거나

셰리는 드라이할까, 스위트할까. 이 질문에 스위트라고 답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정답은 둘 다. 셰리가 스위트한 이미지가 된 것은 아마도 대중적인 크림(Cream) 셰리나 시럽처럼 달고 진한 페드로 히메네즈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볍고 톡 쏘는 청량감이 특징인 피노 셰리의 경우 매우 드라이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피노 셰리를 서로 다른 개성에도 불구하고 샴페인과 비교하는데, 효모와의 오랜 접촉을 통해 그 풍미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나 섬세하고 가벼운 맛으로 식욕과 활력을 돋우는 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피노를 플로르가 사라진 이후까지 숙성한 정통 아몬티야도(Amontillado)나, 피노가 되지 못해 슬픈(?) 팔로 코르타도(Palo Cortado) 등도 모두 드라이하다. 다양한 셰리의 스타일들을 간단히 확인해 보자

 

피노(Fino): 투명에 가까운 연노랑색에 그린 뉘앙스가 살짝 감돈다. 플로르의 영향을 듬뿍 받은 피노는 가볍고 상큼한 청사과와 시트러스, 허브, 아몬드 향에 톡 쏘는 느낌이 일품이다. 깔끔하고 상쾌한 맛이 식전주로 안성맞춤. 많은 전문가들의 피노 스타일을 셰리의 정수로 평가한다.

 

만자니야(Manzanilla): 해안가에 위치한 산루카(Sanlucar) 지역에서 만드는 피노 스타일의 셰리. 산루카는 내륙지역과 달리 일 년 내내 플로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기온(섭씨 15-20도)을 유지하기 때문에 플로르의 영향이 더욱 도드라지는 셰리를 생산할 수 있다. 향긋한 카모마일 아로마와 좀 더 신선하고 미묘하며 짭짤한 뉘앙스가 특징이다. 만자니야 데 산루카 데 바라메다(Mazanilla de Sanlucar de Barrameda)라는 별도의 DO를 사용한다. 플로르가 소멸하기 시작할 때까지 6-7년 간 장기 숙성한 만자니야는 파사다(Pasada)라고 한다.

 

[ 숙성 중인 와인 위에 형성된 플로르   (출처: https://www.sherry.wine) ]

 

아몬티야도(Amontillado): 피노를 7년 정도 숙성하면 플로르가 사멸하면서 아몬티야도가 된다. 플로르가 섭취할 양분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플로르가 사멸한 후 추가 숙성을 통해 좀 더 짙은 갈색 컬러와 함께 산화 뉘앙스를 드러낸다. 호두, 헤이즐넛 등 너티한 풍미와 버터, 허브, 나무 등의 힌트가 매력적이다. 드라이하고 톡 쏘며 밀도 높은 풍미는 마치 피노와 올로로소가 섞인 아수라 백작 같다. 그래서인지 아몬티야도와 어린 피노, 올로로소를 섞은 상업적인 아몬티야도도 있다. 드라이한 오리지널 아몬티야도에 비해 상업적인 아몬티야도는 보통 당도를 높여 미디엄 혹은 미디엄 드라이로 출시한다.

 

팔로 코르타도(Palo Cortado): 피노로 분류됐던 섬세한 와인이 결과적으로 플로르가 형성되지 않아 만들어진다. 아몬티야도의 날카로움과 올로로소의 부드럽고 농밀한 풍미를 모두 지닌 보기 드문 스타일이다.

 

페일 크림(Pale Cream): 피노 셰리에 농축된 포도즙을 섞어 당도를 높인 미디엄 바디 스타일이다. 피노의 신선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쌉쌀한 느낌을 완화해 편안한 인상을 준다. 영국에서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60년대에 DO가 된, 오랜 역사를 지닌 셰리 중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스타일이다.

 

올로로소(Oloroso): 짙은 적갈색의 풀바디 스타일로 처음부터 산화 작용을 거쳐 진하고 부드러우며 농밀하다. 올로로소는 스페인어로 향기롭다(odorous)는 뜻.

 

크림(Cream): 드라이한 올로로소에 페드로 히메네즈나 모스카텔(Moscatel)을 블렌딩해 미디엄 혹은 미디엄 드라이 정도로 당도를 높인 스타일이다. 캐러멜이나 누가, 로스트 넛의 풍미와 함께 포도의 달콤함이 화려하게 드러난다. 달콤한 포도즙과 포도 증류주를 섞어 만드는 상업적인 크림 셰리도 있다.

 

페드로 히메네즈(Pedro Ximenez, PX): 햇볕에 건조한 동명의 포도로 만드는 매우 스위트한 풀 바디 스타일의 셰리. 바닥이 거의 비치지 않을 정도로 블랙에 가까운 진한 색을 띠며 건포도, 말린 무화과, 다크 베리 잼, 감초, 스위트 스파이스, 시럽과 초콜릿 등 달콤한 풍미가 넘쳐 난다. 잔당은 최소 리터 당 212g이며 보통은 400g에 육박한다. 달콤함의 절정을 경험할 수 있다.

 

 

뭐랑 마실까? 

샤퀴테리. 최근 유행하는 샤퀴테리와 피노 셰리는 찰떡궁합이다. 멜론 위에 올린 하몽은 피노의 완벽한 반려자. 혼자라면 올리브 몇 알 접시에 담아 놓고 홀짝여도 좋다. 피노의 짭짜름한 뉘앙스는 앤초비와도 잘 어울리는데, 일반 해산물 요리와도 괜찮다. 스페인 사람들은 다양한 타파스, 그러니까 가벼운 요리들과 함께 즐긴다. 올로로소는? 고기 스튜나 꼬리곰탕처럼 진한 고기 요리나 향이 좋은 버섯, 숙성 치즈 등을 추천한다. 아몬티야도나 팔로 코르타도는 좀 더 가벼운 고기 요리나 치즈, 샐러드 등과 즐길 수 있다. 스위트한 스타일은? 여느 달콤한 주정강화 와인처럼 다양한 디저트와 함께, 혹은 와인 그 자체만 즐겨도 좋다. 극단적으로 달콤한 페드로 히메네즈는 밀도 높은 블루치즈나 쌉쌀한 다크 초콜릿과 함께 즐기기 적당하다. 혹은 아이스크림이나 와플 등에 시럽 대신 토핑 재료로 활용하면 성인을 위한 특별한 디저트가 될 것이다.

 

 

음용 및 보관방법

기본적으로 셰리는 셀러링을 하기보다는 마시고 싶을 때 바로 구입할 것을 추천한다. 특히 피노 계열의 셰리는 병입한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것일수록 좋다. 피노 계열은 섭씨 6도 정도로 차게, 올로로소와 아몬티야도, 팔로 코르타도, 페드로 히메네즈 등은 12도 정도로 시원하게 마신다. 산화에 약한 피노는 오픈하면 다 마셔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 늦어도 하루 이틀 안에 마시는 것이 좋다. 올로로소나 아몬티야도 등은 오픈 후에도 서늘하고 빛이 없는 곳에 보관하면 한 두 달 정도는 즐길 수 있다. 페드로 히메네즈는 몇 년 까지도 견딘다. 냉장고를 이용하시라.

 

 

 

주정강화와인: (4)셰리[Sherry]

최근 유행하는 샤퀴테리와 피노 셰리는 찰떡궁합이다. 멜론 위에 올린 하몽은 피노의 완벽한 반려자. 혼자라면 올리브 몇 알 접시에 담아 놓고 홀짝여도 좋다. 피노의 짭짜름한 뉘앙스는 앤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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