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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189. 와인에서 탄생한 보석, 핀(Fine)과 마르(Marc)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0. 12. 12.

구할 수만 있다면 거대 하우스의 코냑보다는 좋아하는 와인메이커의 핀을 마시는 게 와인 애호가의 입장에서는 훨씬 즐거울 것 같다. 품질이야 유명한 코냑도 충분히 훌륭하겠지만, 뭔가를 즐길 땐 애정과 기호, 희소성 등 품질 외 다른 요소도 중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프랑스 여행이 쉽지 않은 지금, 핀이나 마르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 혹은 상당한 가격 때문에 엄두를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한 번 물어나 볼까 싶은 생각도.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가 본인의 블로그에 스크랩한 것입니다.

 

 

와인에서 탄생한 보석, 핀(Fine)과 마르(Marc)

 

2007년 친구들과 부르고뉴를 여행할 때였다.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열광하는 포도밭과 와인 생산자들이 즐비한 본 로마네(Vosne-Romanée) 마을에 머무르며 인근 마을의 도멘들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숙소가 도멘 안 그로(Domaine Anne Gros)의 게스트 하우스였고, 미셀 그로(Domaine Michel Gros)와 그로 프레르 에 쇠르(Domaine Gros Frère et Soeur) 등 그로 가문의 도멘을 둘러보며 마을 단위부터 그랑 크뤼까지 다양한 와인들을 시음했으니 나름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런데 그 훌륭한 와인들 사이에서도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머릿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 있었다. 그것은 와인이 아니었으나 와인에서 나온 것이었다. 와인을 양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로 만든 핀(Fine)과 마르(Marc)였다.

 

처음 핀과 마르를 접한 것은 본 로마네의 옆동네인 샹볼 뮈지니(Chambolle-Musigny) 마을에서였다. 도멘 아미오 세르빌(Domaine Amiot-Servelle)을 방문해 그들의 훌륭한 와인들을 시음하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려는데 주인장이 다른 두 병을 가져왔다. 무슨 특별한 와인일까 싶어 레이블을 살펴보니 샹볼 뮈지니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마을이나 포도밭의 명칭도 아니었다. 적혀 있는 이름은 마르 드 부르고뉴 1992년(Marc de Bourgogne 1992)과 핀 드 부르고뉴 1993년(Fine de Bourgogne 1993), 당시로서는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그런데 따라주는 잔이 달랐다. 와인 시음용 잔이 아니라 보울이 크고 둥근, 코냑을 마실 때 주로 사용하는 스니프터였다. 핀을 먼저 받았는데, 붉은색이 거의 돌지 않는 짙은 브라운 앰버 컬러로 와인보다는 코냑에 가까운 색이었다. 그리고 슬쩍 코를 대는 순간 알코올을 타고 밀도 높게 뿜어져 나오는 향긋한 오크 바닐라와 고혹적인 꽃향기, 그리고 말린 과일과 달콤한 캐러멜 풍미에 압도되어 버렸다. ‘아, 이건 증류주구나’하고 깨달으며 한 모금 입에 넣으니 높은 알코올 도수가 무색할 만큼 매끈한 질감, 그리고 피니시까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초콜릿 풍미가 인상적이었다. 뒤이어 받은 마르 또한 약간 거칠긴 했지만 유사한 풍미를 드러냈다. 놀라서 이게 뭐냐고 묻자 핀은 와인을, 마르는 발효 후 포도를 압착하고 남겨지는 씨와 껍질 등을 증류하여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아, 와인이 맛있는 동네는 증류주도 참 잘 만드는구나’하는 생각이 머리에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도멘 아미오 세르빌의 핀 드 부르고뉴와 마르 드 부르고뉴

 

와인, 그러니까 포도를 양조한 술을 증류하여 만드는 대표적인 술은 코냑(Cognac)과 아르마냑(Armagnac)이다. 이외에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에는 보통 지역명 앞에 핀을 붙여 표시한다. 압착 후 남은 포도 찌꺼기를 증류해 만들면 마르다. 마르는 액체가 아니라 껍질이나 씨 같은 고형물을 증류하여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와인을 증류한 핀에 비해 과일 풍미가 적게 드러나는 반면 입 안에서의 느낌은 강한 편이다. 위에서 소개한 핀 드 부르고뉴, 마르 드 부르고뉴를 비롯하여 샹파뉴(Champagne), 보르도(Bordeaux), 꼬뜨 뒤 론(Cotes du Rhone), 프로방스(Provence), 알자스(Alsace) 등 다양한 지역에서 핀과 마르를 만든다. 증류주라는 의미의 오드비(eau-de-vie)를 병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Fine eau-de-vie des Cotes du Rhone’과 같은 식이다.

 

핀과 마르 또한 와인처럼 원산지 통제 규정이 적용된다. 그런데 레이블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대신 AOR(Appellation d'Origine Reglementee par Decret)라는 생소한 명칭이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AOC가 제정되던 무렵 코냑과 사과 증류주인 칼바도스(Calvados) 등을 비롯한 증류주들의 원산지도 함께 규정해 놓은 것이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대부분 AOC로 대체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레이블에서 AOR 명칭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원산지 통제 명칭이 사용되므로 당연히 생산지역이나 포도 품종, 양조 및 증류 방법, 숙성 방법, 알코올 레벨 등이 엄격히 규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핀 드 부르고뉴의 경우 알코올 도수는 최소 40% 이상이며 72%를 넘어서는 안된다. 또한 최소 3년 이상 오크 숙성을 거친 후 위원회의 검사를 통과해야 해당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신의 물방울> 17권에 소개된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의 핀 드 부르고뉴

 

대규모의 회사가 만드는 코냑이 잘 만들어진 블렌디드 위스키라면, 비교적 희소하며 생산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핀과 마르는 싱글 몰트 위스키에 비교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핀과 마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생산량이 적은 데다 높은 알코올 함량 때문에 와인보다 세금이 높아 수입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미 로마네 콩티(Domaine de la Romanee-Conti), 꼼뜨 조르쥬 드 보귀에(Domaine Comte Georges de Vogue) 등 유명 생산자들의 핀 드 부르고뉴를 구해 시음한 애호가들이 제법 있을 정도로 핫한 아이템이다. 핀과 마르는 정찬 디너나 와인 모임의 마무리용으로 안성맞춤이다. 특히 앞서 마신 와인과 같은 생산자의 핀이나 마르라면 금상첨화. 순수하면서도 밀도 높은 풍미가 강한 인상과 긴 여운을 남겨 줄 것이다. 흔치는 않지만 훌륭한 와인 생산자의 핀과 마르가 국내에도 일부 수입되고 있으니 찾아볼 만하다. 프랑스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와인에서 탄생한 보석, 핀(Fine)과 마르(Marc)

대규모의 회사가 만드는 코냑이 잘 만들어진 블렌디드 위스키라면, 비교적 희소하며 생산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핀과 마르는 싱글 몰트 위스키로 비교할 수 있다. 정찬 디너나 와인 모임을 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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