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음주에 대한 책을 즐겨 읽다 보니 괜찮은 책이 몇 개 걸리는데, 그 중 하나다. 왜 독하디 독한 알코올을 좋아하게 되느냐는 의문에 대한 러프한 대답이랄까. 한권을 다 읽기 어려운 분들을 위한, 요즘 유행하는 요약본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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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술을 마실까? 기분이 나빠서, 기분이 좋아서, 친구를 만나서, 맛있는 음식이 있으니까, 일진이 사나워서, 그냥, 습관적으로. 술꾼의 핑계는 무궁무진하다.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선조 시절 정승을 지낸 송강 정철은 장진주사(將進酒辭)라는 시에서 술꾼의 심정을 절절히 표현했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세어가며 무진무진 먹세그려..." 캬, 인생무상조차도 술 마실 핑계로 삼는 주당의 다짐이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핑계는 다양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많이 마시면 취한다는 것. 성경에서 와인에 대해 처음 언급하는 부분은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의 끝에 현재 터키의 아라랏(Ararat) 산에 정착해 포도나무를 심어 와인을 양조했다는 것이다. 노아는 대단한 애주가였는지 와인을 마시고 취해서는 그만 벌거벗고 잠들어 버렸단다. 처음 나오는 이야기부터 주사라니. 게다가 노아의 술주정으로 인해 애꿎은 아들들의 운명이 크게 갈리고 말았으니 취하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런데 이렇게 (많이) 마시면 취하고, 심한 경우 극심한 숙취에 다음날까지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술을 왜 마시게 되었냐는 말이다. 취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지만 술만 마시면 우는 친구를 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술을 처음 마셨을 때를 떠올려 보자. 과연 맛이 있었던가? 예컨대 중고생 시절 부모님의 눈을 피해 몰래 마신 술이든 사회에서 허용하는 나이가 되어 처음 마신 술이든, 처음부터 술이 달았던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그저 독하고 씁쓰름해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을 뿐.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시면 마실 수록 맛대가리 없던 술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정확히는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다. 일부는 맛있는 줄 모른 채 어울리기 위해 그냥 적당히 마신다. 최근에는 아예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그저 술이 입에, 몸에 맞지 않아서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리고 술의 기원이나 역사 이런 것에 앞서 인류는 어떻게 알코올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을까.
<술 취한 원숭이>는 그에 대한 희미한 실마리를 제시하는 책이다. 왜 인간이 알코올에 탐닉하는지, 술을 마시면 어떤 장점이 있는지에 대해 진화론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이 책의 핵심을 간단히 요약하면 과일을 먹는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들이 알코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각 장치와 섭식 행동을 진화시켰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영양분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알코올이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곳에는 영양분(=당분)이 많기 때문에 알코올에 적응함으로써 생존에 훨씬 유리해졌다는 얘기다. 알코올은 효모가 당분을 분해해서 생긴다. 알코올의 존재는 곧 당분의 존재를 의미한다. 실제로 열대지방의 잘 익은 과일에서 심심찮게 검출되는 알코올이 이를 방증한다. 알코올은 과일의 향기를 멀리까지 실어나르기 때문에 씨앗을 퍼뜨려야 하는 식물의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다. 인류는 알코올을 감지하고 흡수 후 대사(代謝)할 수 있도록 진화함으로써 영양가 높은 음식물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체내에서 알코올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효소가 필요하다. 처음 알코올은 ADH(alcohol dehydrogenase, 알코올 탈수소 효소)에 의해 아세트 알데히드로 바뀐다. 익히 알려져 있듯 아세트 알데히드는 발암물질이다. 당연히 독성이 높다. 이를 빠르게 초산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ALDH(aldehyde dehydrogenase, 알데히드 탈수소 효소)다. 초산은 식초에 많은 물질로 독성이 없다. 이런 과정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술 냄새, 잘 익은 과일 냄새가 풍기면 기가 막히게 날아드는 초파리도 유사한 과정으로 알코올 대사를 한다.
그렇다면 알코올에 적응한 인류는 왜 안전하고 적절한 소비를 넘어서 과음을 하게 된 걸까? 적당히 마시면 될 텐데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와 환경의 변화다. 알코올이 과일 등 음식물에 조금 포함되어 있을 때는 섭취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인위적으로 알코올을 만들 수 있는 양조 기술과 순도 높은 알코올을 얻을 수 있는 증류 기술을 발전시켰다. 덕분에 슈퍼마켓이나 음식점에서 너무나도 쉽게 알코올을 구할 수 있다. 저렴한 술은 지천에 널렸고 축제나 파티 등 술을 마실 기회는 끊이질 않는다. 한마디로 과거에는 알코올의 존재로 유용한 음식을 판단하던 신경 회로가 알코올이 풍족한 환경에서 보상 신호를 과도하게 내보내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폭음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과일(혹은 당분)을 찾고 소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그 어떤 형질이 알코올이 무제한적으로 공급되는 환경에서는 과도한 소비를 촉진하는 비극을 낳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인류 집단 간의 알코올 대사 능력에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과 같은 극동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ADH는 매우 빠르게 작용하지만 ALDH는 대부분 느리게 작용하거나 심지어 없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술을 마시면 독성 물질인 아세트 알데히드는 빠르게 쌓이는데 독성이 없는 초산으로 변화는 과정은 느리게 진행된다. 그래서 얼굴이 빨개지고 쉽게 취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과음을 하면 몸이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제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개인 성향과 경험, 주변 환경 등의 차이도 음주량에 영향을 끼친다. 모든 문제를 진화와 유전자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사실 적당한 음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는 의견이 많다. 와인을 음미하며 서로의 감상을 나누거나, 스포츠 중계를 보며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적당한 알코올 섭취는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술 취한 원숭이>의 저자는 이것을 호르메시스(hormesis)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해로운 물질이라도 조금씩 지속적으로 접하다 보면 좋은 효과를 주는 경우가 있다는 의미다. 원래 인류는 자연에서 음식 속에 들어 있는 알코올을 조금씩 섭취했었기에 과하게 알코올을 섭취할 기회가 없었고, 이는 결국 생리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술을 전혀 안 마시는 사람보다 1~2잔 정도 마시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문제는 그 이상 마시면 급격히 안 좋아진다는 데 있지만.
저자인 로버트 더들리 교수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동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생리학자다. 그가 처음으로 제시한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은 그야말로 아직 '가설'일뿐이다. 하지만 중국, 인도네시아, 파나마 등 열대지방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만든 가설이라 제법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알코올 중독으로 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낸 불행한 가족력이 그의 알코올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더욱 촉진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술은 적당히 마셔야 약주(藥酒)라는 것을. 하지만 이 책은 우리 인류가 유전적으로 그렇게 진화해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술을, 특히나 와인을 즐겨야 할 것인가. 다음에는 이런 질문에 과학적으로 대답한 책을 소개하려 한다. 조금만 마셔야 한다면 제대로 마시고 싶은 '술 취한 원숭이'에게 유용한 팁을 제공하는 책 말이다. 그럼, 다음 이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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