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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article 156. 신사의 품격, 샴페인 찰스 하이직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17. 2. 17.

논 빈티지 샴페인의 품질 조차 엄청난 찰스 하이직. 하지만 네드 굿윈씨와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자주에 의한 마미야르 반응에 대한 이야기였다. 도자주를 하지 않는 와인들은 숙성이 잘 되지 않아 복합미가 떨어지고 지나친 산미가 밸런스를 깬다는 것. 일정 부분 수긍이 가지만, 경험한 일부 샴페인의 경우 도자주 없이도 훌륭한 밸런스와 풍미를 드러냈던 기억도 있다. 어쨌거나 찰스 하이직은 여러모로 훌륭한 와인. 가격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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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품격, 샴페인 찰스 하이직


 

찰스-카밀 하이직(Charles-Camille Heidsieck, 샤를-까미유 에드직)은 최초로 미국에 샴페인을 수출한 인물이다. 찰리(Charlie)라는 애칭으로 불린 그는 190cm의 훤칠한 키에 멋들어진 모자를 쓰고 날렵한 지팡이를 든 신사였다. 미국 사교계에 등장한 댄디한 신사가 내놓은 샴페인은 큰 인기를 끌었다. 수정액이 ‘화이트’이고 붙이는 메모지가 ‘포스트잇’이듯 당시 미국에서 샴페인은 그냥 ‘찰리’였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알 수 없듯이 그가 왜 러시아 등 주요 삼페인 시장을 뒤로 하고 미국 시장에 눈길을 돌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도 1851년 설립된 신생 샴페인 하우스의 창업자로서 과열 경쟁을 피해 블루오션을 창출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는 시장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대단한 수완가였음에 틀림 없다. 게다가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당시 남군한테 억류되어 4개월 간 고초를 겪고 파산의 위기에 몰리지만, 결국 와인 대금을 현재의 덴버(Denver) 시의 땅으로 보상받아 샴페인 사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젠틀함과 도전정신, 사업수완을 갖추었으며 심지어 운까지 받쳐 주는 인물이라니. 태생적으로 샴페인과 잘 어울리는 사나이다.

 

또 한 명 샴페인과 어울리는 신사가 방한했다. 바로 찰스 하이직의 브랜드 앰버서더이자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 MS)인 네드 굿윈(Ned Goodwin) 씨. 수려한 외모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지닌 그는 실제 모델 경력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훈남이다. 서울 한남동 레스토랑 수마린에서 찰스 하이직 샴페인과 매칭한 오찬을 즐기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찰스 하이직의 샴페인 중 굿윈 씨가 가장 힘주어 소개한 것은 바로 자신들의 논 빈티지(non vintage)인 브뤼 리저브(Brut Reserve). 논 빈티지 샴페인은 샴페인 하우스의 얼굴과도 같다. 가장 많이 팔릴 뿐 아니라 하우스의 스타일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빌리자면 샴페인 찰스 하이직은 댄디한 미남임이 틀림없다.

 

[샴페인 찰스 하이직의 브랜드 앰버서더 네드 굿윈 MW] 

 

찰스 하이직의 논 빈티지 샴페인이 특별한 이유는 리저브 와인(Reserve wine)에 있다. 일반적인 샴페인 하우스의 경우 논 빈티지 샴페인에 5년 이상 숙성한 리저브 와인을 10% 정도 사용하는데 찰스 하이직 브뤼 리저브는 평균 10년 이상 숙성한 리저브 와인을 40%나 블렌딩한다. 찰스 하이직의 리저브 와인은 좋은 해에 뛰어난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양조한 와인을 온도가 조절되는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 5년에서 15년 정도 숙성하여 만들어진다. 이렇게 오크 없이 장기 숙성하는 리저브 와인은 샴페인에 꿀과 바닐라 등 복합적인 아로마를 부여함과 동시에 깔끔하고 산뜻한 여운을 지닌다. 리저브 와인에 쓰이는 포도 품종은 각각 50%의 피노 누아(Pinot Noir)와 샤르도네(Chardonnay). 피노 뫼니에(Pinot Meunier)는 장기 숙성에 적합하지 않아 쓰지 않는다. 병입 후 최소 6년 동안 지하 20m에 위치한 백악질 카브(chalk cave)에서 숙성한다. 이 백악질 카브(Crayères no.9)는 천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의 일부로 항상 섭씨 10도를 유지해 이상적인 숙성 환경을 제공한다.

 

이런 찰스 하이직 브뤼 리저브 스타일을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신사가 있다. 바로 당대 최고의 샴페인 블렌더로 평가되는 다니엘 띠보(Daniel Thibault). 그는 브뤼 리저브를 최고의 논 빈티지 샴페인으로 만들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백지 수표를 위임받아 최고의 포도를 구매해 와인을 양조해 리저브 와인의 비축량을 늘려 나갔다. 또한 그는 1990년대 중반 최초로 병입년도와 숙성 후 이스트 찌꺼기를 제거하는 데고르주망(dégorgement) 시행년도를 샴페인 레이블에 기재하기도 했다. 이는 고객들에게 샴페인의 숙성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정보를 주기 위한 배려였다. 최근에는 병입 및 데고르주망 시기를 표기하는 생산자들이 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야말로 파격이자 혁신이었다. 최고의 논 빈티지 샴페인을 생산하고 고객에게 명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했던 다니엘 티보의 철학은 다음 대 쉐프 드 까브(chef de cave, 셀러 마스터)인 레지 카뮈(Régis Camus)와 티에리 로제(Thierry Roset)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찰스 하이직의 스타일로 유지되고 있다. 2015년부터 찰스 하이직의 쉐프 드 까브가 된 시릴 브륀(Cyril Brun)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찰스 하이직의 샴페인은 감성을 위한 매개(vehicle for emotion))이며 후각과 미각 보다는 영혼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며 찰스 하이직의 뛰어난 품질은 물론 감성적인 스타일에도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고 찰스 하이직의 빈티지 샴페인들을 홀대(?)할 이유는 없다. 빈티지 샴페인은 그 해의 특징을 반영하기에 애호가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선사한다. 찰스 하이직의 빈티지 샴페인들은 충분한 숙성을 거치며 빈티지의 개성을 고려하여 출시 시기를 가늠한다. 실제 이날 제공된 2005년 빈티지 샴페인은 2004년 빈티지에 앞서 시장에 출시되었다. 비교적 우수한 해로 평가되는 2004년 빈티지를 최적의 상태로 시장에 내보내기 위해서는 추가 숙성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아이콘 와인인 블랑 데 밀레네흐(Blanc des Millenaires)는 100% 샤르도네를 15년 이상 숙성하여 고귀한 품격을 극대화하였다. 찰스 하이직의 빈티지 샴페인들은 논 빈티지 샴페인에 비해 섬세하고 우아한 인상에 방순한 풍미를 드러낸다. 예컨대 브뤼 리저브가 정장을 차려 입고 훈훈한 미소를 띤 신사라면 블랑 데 밀레네흐(Blanc des Millenaires)는 하늘하늘한 실크 레이스 드레스를 입고 수줍게 미소짓는 귀부인이랄까.

 

어쨌거나 창립자의 스토리부터 와인메이커의 철학, 브랜드 앰버서더의 열정, 심지어 세련된 레이블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찰스 하이직은 깊은 인상을 남기는 샴페인임에는 틀림 없다. 이제 리델 잔에 담긴 찰스 하이직을 한 모금 들이킨다면 샴페인에 담긴 신사의 품격이 영혼 가득 느껴질 지도 모른다.

 

 

 

Charles Heidsieck Brut Reserve N/V

밝게 빛나는 진한 금빛 액체 속에서 피어오르는 활기차면서도 섬세한 기포. 청량한 사과와 시트러스 속 껍질 같은 알싸한 아로마가 지나간 뒤로 잘 구워진 크루아상의 표면 같이 구수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진하게 피어오른다. 입에 넣으면 잘 익은 자두와 열대 과일의 풍미가 이스트 뉘앙스와 함께 농밀하게 드러난다. 풍부한 질감과 톡 쏘는 탄산이 오묘하게 어우러지며 강한 산미가 생생함을 더한다. 40%의 리저브 와인과 블렌딩하는 나머지 60% 와인에는 피노 누아, 샤르도네, 피노 뫼니에가 각각 1/3씩 쓰인다.

 

브뤼 리저브의 풍미는 데고르주망 이후 적절한 도자주(dosage, 당분 첨가)를 통해 완성된다. MS인 네드 굿윈 씨는 사견임을 전제로 ‘이제껏 마셔 본 제로 도자주(dosage) 샴페인 중 인상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밝혔다. 숙성을 통한 효모의 자가분해로 생성되는 마노프로테인(Mannoprotein)이 도자주를 통해 당분과 만나야 더욱 다양하고 풍성한 풍미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 도자주를 하지 않으면 지나친 산미가 균형을 깨뜨리고 숙성이 잘 안 되어 복합미가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샴페인이 주는) 기쁨이 없다’는 얘기다. 찰스 하이직 브뤼 리저브는 베이스 와인의 성격에 맞춘 도자주를 시행하여 복합적인 풍미와 밸런스를 추구한다.

 

 

Charles Heidsieck Rose Brut Reserve N/V

반짝이는 구리 빛이 감도는 세련된 핑크 컬러. 신선한 체리와 잘 익은 자두, 딸기잼, 그리고 스윗 스파이스 뉘앙스. 완숙한 베리의 진한 풍미 사이로 크리미한 인상이 은근히 깔리는 매력적인 로제 샴페인이다. 브뤼 뤼저브에 비해 과일의 신선함이 좀 더 도드라지는 스타일. 브뤼 리저브와 같은 리저브 와인이 20% 사용되며 아름다운 로제 컬러를 위해 레드 와인을 5-6%정도 블렌딩한다. 지하 까브에서 5년 이상의 숙성을 거쳐 출시된다. 네드 굿윈 씨가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샴페인이며 자신을 브랜드 앰버서더의 길로 이끌었다고.

 

 

Charles Heidsieck Brut Millesime 2005

브뤼 리저브보다 좀더 밝은 금빛. 백도와 레몬제스트의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아로마가 오래 지속된다. 입에서는 은은한 핵과와 무화과, 그리고 너티 힌트와 크리미한 여운. 은은한 이스트 뉘앙스가 섬세하고 밀도있게 퍼져나가며 첫 모금부터 마지막까지 생동감 넘치는 산미가 이어진다. 10년이 넘은 빈티지임에도 아직 어린 느낌이 강하다. 피노 누아 60%에 샤르도네 40%를 블렌딩했다.

 

 

Charles Heidsieck Blanc des Millenaires 1995

반짝이는 금빛 액체에 섬세한 기포가 천천히 피어오른다. 브리오슈, 사과 콤포트, 그리고 잘 만든 긴조(吟醸)주의 뉘앙스가 섬세하지만 명확하게 드러난다. 핵과와 말린 과일 등 확실한 과일 풍미가 전면에 부각된 후 시간이 지날 수록 생강, 오렌지 마말레이드, 크림 브륄레와 같이 복합적인 풍미가 다층적인 레이어를 형성한다. 실키한 질감과 정제된 산미 때문인지 한 모금이 다음 모금을 불러 나도 모르게 술술 마시게 된다. 말이 필요없다. 오직 마셔보면 알 것이다. 꼬뜨 데 블랑(Cote des Blancs)의 그랑 크뤼(Grand Cru) 네 곳과 프르미에 크뤼(Premier Cru) 1곳에서 엄선된 샤르도네 100%로 양조하며 지하 카브에서 15년 숙성 기간을 거쳤다. 굿윈 씨는 블랑 데 밀레네흐의 특징을 ‘이스트의 마법(magic of yeast)!’ 그리고 ‘크림 브륄레 풍미’로 요약하며 특히 1995년은 끊이지 않는 에너지를 주는 와인이라고 평가했다.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10-15년 이상의 추가 숙성 여력이 충분하다.

 

 


김윤석 기자  wineys@w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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