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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주/와인

이와모 @ 프렙(Prep)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18. 2. 22.



오랜만에 부암동 프렙(Prep). 이영라 셰프님의 멋진 음식과 편안한 분위기가 잘 어우러지는 곳.



입구에서 나를 맞이한 예쁜 꽃이 담긴 샴페인병은 아마도 오래 전에 내가 마신 녀석들이 아닐까. 프렙에서 Baron Dauvergne Fine Fleur 원 보틀과 하프 보틀 둘 다 마셨었는데... ㅎㅎㅎ 



내가 가장 늦게 도착해서 앉자마자 디너 시작.



BYOB로 준비된 와인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이 둥그런 녀석은 바로,




몽도르(Mont d'Or) 치즈. 말 그대로 하면 금산치즈.


쥐라 지역에서 8월 15일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채취한 우유로 만드는 연성 치즈로 크리미한 맛이 특징이다. 같은 지역에서 봄부터 여름까지 채취한 우유로는 숙성해서 즐기는 단단한 꽁떼(Comte) 치즈를 만든다고. 해발 1000m 이상의 산간 마을에서 생산하는 시즈널 치즈로 바슈랭 뒤 오두(Vacherin du Haut-Doubs)라고도 부른다. 비가열 우유를 약하게 압착해서 에피세아(epicea: 전나무의 일종) 판자 위에 올려놓고 소금물을 적신 포목이나 손으로 문질러 뒤집어가며 숙성시킨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비가열 치즈이기 때문에 국내 반입이 어렵다. 국내에서 구하기 쉽지 않다는 말씀. 그런데 이 녀석은 어디서?? ㅎㅎㅎ 




보통 껍질을 벗겨 내고 스푼으로 떠서 먹는데 이날처럼 오븐에 멜팅해서 즐기기도 한다고. 취향에 따라 화이트 와인이나 마늘 등을 첨가해서 멜팅하기도 한다. 우리는 순수한 맛을 먼저 즐기기 위해 우선 치즈만 멜팅하기로.






몽도르 치즈와 곁들여 먹을 구운 야채와 감자, 빵, 그리고 살라미와 햄 등도 준비됐다.  감자는 심을 살려서 익히는 게 핵심이라고.





치즈가 멜팅되길 기다리며 과자와 다른 치즈로 일단 입맛을 다심. 





그리고 스타터로 샴팡 한 잔. 사둔 지 5년은 되었을 Champagne Cedric Bouchard, Inflorescence La Parcelle Brut. 처음엔 그냥 괜찮네... 싶었는데 본연의 매력이 시간이 지날 수록 아름답게 피어난다. 감동...





때맞춰 나온 오븐에 구운 굴. 샴페인은 물론 이후의 화이트들과도 잘 어울렸다. 위에 올려진 양파 플레이크가 매우 적절했음. 최근 들어 생굴보다 익힌 굴이 좋다. 특히 세 개 이상 먹을 때는 더더욱. 생굴은 한 개가 딱 적당한 듯.





드디어 멜팅된 몽도르 치즈 등장! 크고 아름다워...




오오 저 쏟아지는 치즈...♥




준비된 플레이트 출동하시고,




치즈 듬뿍 얹어서 냠냠.


감자, 빵과 찰떡궁합이고 개인적으로는 브로콜리와 참 맛있게 먹었다. 처음엔 크리미한 질감에 풍부한 우유맛, 쌉쌀한 견과(껍질) 힌트와 유순한 꼬릿함이 느껴진다. 





샴페인, 화이트 와인과 함께 즐기다 보면 너티함이 마구마구 살아나는 기분. 특히 치즈 생산지 부근에서 만드는 '아르부아 사바냉'과 함께 먹으니... 최고♡ 치알못이라 잘 모르지만 사우르스, 에뿌아스 등에 비해 숙성향은 적으며 우유의 고소함과 향긋한 과일 뉘앙스를 온화하게 드러내는 치즈인 듯.




치즈 한 통이 금새 순삭돼 버림. 마지막엔 아르부아 사바냉 와인 조금 부어 보글보글 끓이다시피 멜팅해서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음ㅋㅋㅋ



***몽도르 치즈는 프렙의 정규 메뉴가 아니니 가서 막 주문하고 그러면 안된다능!***





동양풍의 문어 요리도 미네랄 강한 니콜라 졸리 사브니에르(Nicolas Joly Savennieres)와 함께 즐겨 주시고. (사실은 사이드 디시로 나온 거지만... 타파스처럼 받아들였음 ㅋㅋㅋ)





하이라이트 스테이크 케익! 라솁 센스... 고기테리언 누님의 생일축하 케익으로 제격. 아름다운 모양은 마치 호주의 '울루루' 같았음...  세상의 중심에서 고기는 왜 써나;;;




조각 조각 잘라서 맛있게 냠냠. 





때맞춰 등장한 숙성된 남불 레드들. 블라인드로 제공되었는데 한 녀석은 빈티지를 완벽하게 오인했음. 잘 숙성된 레드에 대한 판단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 





봄을 부르는 듯한 아름다운 디저트. 유난히 추웠던, 유난히 우울했던 겨울이 빨리 지나가기를.




딸기와 과자로 구성된 스톤헨지ㅋ





디저트로 끝난 줄 알았더니 샤프란 팍팍 넣은 빠에야가 남아 있었다. 

 




엄청 맛있었지만하지만 내 배는 이미 포화상태... ㅡㅅㅡ;;; 맛만 보고 절반 이상이 독거인의 도시락(?!)이 되었음 ㅋㅋㅋ




하아, 정말 즐겁고 편안하고 배불렀던 디너.





이날의 와인들.





Champagne Cedric Bouchard, Inflorescence La Parcelle Blanc de Noirs Aube Brut NV

샴페인 세드릭 부샤르, 인플로르성스 라 파흐셀 블랑 드 누아 오브 브뤼 NV


알싸한 미네랄과 순수한 핵과 풍미가 신선한 산미와 함께 날선 구조감을 형성한다. 빈티지 표시가 되어 있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05빈티지. 7년간 숙성하여 '12년 4월에 데고르주망을 했다. 구매하고 5년 정도는 셀러에서 숙성시켰는데 아직 너무나 싱싱해 어린 느낌까지 든다. 처음에는 품질과 품격은 있되 그저 괜찮은 정도의 맛이라고 느꼈는데 시간이 좀 지나며 호손 같은 고혹적인 꽃향기와 서양배, 잘 익은 사과 같은 달콤한 과일 향이 섬세하면서도 화사하게 피어난다. 와, 단정하면서도 화사한, 아이러니한 와인이다. 더 숙성해서 마신다면 어떤 느낌일까. 




백레이블 상단에 표시된 데고르주망 시기(AVRIL  2012)와 숨겨진 빈티지(V 05). 꼬뜨 드 브샬랭Cote de Bechalin)이라는 밭에서 난 포도로만 양조한 듯. 이는 1파셀, 1품종, 1빈티지 원칙을 고수하는 세드릭 부샤르의 철학과 연계되어 있다. 피노 누아(Pinot Noir) 100%.


2000년부터 와인 양조를 시작한 세드릭 부샤르는 한 포도밭에서 동일한 해에 수확한 한 가지 품종의 포도만을 사용하여 양조한다. 품질에 극단적으로 집착하여 재배단계에서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수확량을 적절히 조절하고 손으로 일일이 포도를 분류하며 심지어 포도 파쇄는 발로 한다. 효모를 따로 첨가하지 않으며 포도의 순수성을 가리지 않기 위해 오크 또한 사용하지 않는다. 정제/여과 없이 병입하며 도자주를 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떼루아와 그 해의 포도맛을 순수하게 드러내는 샴페인인 셈.



'꼬뜨 드 브샬랭'은 아버지의 밭으로 inflorescence는 자신의 밭에서 난 포도로 만드는 와인인 Roses de Jeanne와 구별되는 라인업. 대량 생산 중심의 양조에서 벗어나 최고의 와인을 추구하는 아들 세드릭을 인정한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밭에서 수확한 포도까지 그에게 양조를 맡겼기 때문이라고. 최근에는 소유까지 완전히 그에게 상속되어 이 와인도 2007년 빈티지부터는 Roses de Jeanne 레이블로 출시되고 있다.





Domaine de la Pinte, Arbois Savagnin 2008 / 도멘 드 라 빵뜨 아르부아 사바냉 2008 

반짝이는 진한 골드 컬러에서부터 유질감이 느껴지는 듯 하다. 은은한 유산향, 마치 요거트 캔디를 먹는 듯한 첫 인상. 이어 화한 허브&스파이스가 스친 후 향긋한 레몬과 살구, 바나나 등 노란 과일 풍미가 아름답게 피어난다. 부드럽고 풍만한 질감을 타고 가벼운 산화로 인한 구수한 견과 뉘앙스가 감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순한 치즈 같은 섬세한 풍미가 드러나며 적절한 산미와 미네랄리티까지 갖춘 매력적인 와인. 몽도르 치즈와도 아주 잘 어울렸다. 왠지 한국 음식, 특히 발효 음식과 궁합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친절한 백레이블. ha당 수확량이 30hl로 왠만한 그랑 크뤼보다 적다. 손으로 수확하며 토양은 푸른 이회토(blue marls). 백레이블이 매칭할 음식과 서빙 온도(섭씨 12도)까지 소개할 정도로 프랑스 답지 않게 친절하다.  


토착 품종인 사바냉 100%를 푸드르(foudre, 5천리터 이상의 대형 오크통)와 드미 뮈(demi-muid, 150-300리터 오크통)에서 5년간 숙성했으며 우야주(ouillage, 술이 줄어든 통에 같은 종류의 술을 보충하는 것)를 진행해 산화 뉘앙스가 아주 강하지는 않다.


도멘 드 라 빵뜨는 1953년 14ha의 사바냉 포도밭을 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밭은 현재 쥐라에서 가장 큰 사바냉 포도밭(La Pinte à la Capitaine)이 되었다고. 현재는 34ha까지 소유 면적이 넓어졌으며 샤르도네(chardonnay)는 물론 풀사르(Poulard) 같은 레드 품종도 재배한다. 포도밭은 해발 400m 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9년부터 유기농을, 2009년부터는 비오디나미 농법을 적용하고 있다.





Nicolas Joly, Les Vieux Clos 2014 Savennieres / 니콜라 졸리 레 비에유 클로 2014

블라인드로 받았다. 탁한 연두빛 감도는 여린 골드 컬러에 아주 가볍게 탄산감이 있어 잔에 거품이 서렸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단 내추럴 생산자 같기도. 코를 대면 강렬한 미네랄감, 오렌지, 자몽 껍질 등 시트러스 계열의 풍미가 동반되며 화한 허브가 갈 수록 살아난다. 입에 넣으면 느껴지는 쌉쌀함, 그리고 제법 높은 알코올 도수와 산미가 스타일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구조감을 선사한다. 과일 풍미의 밀도도 낮은 편은 아닌데 들이대지 않는 편이고 식물성 뉘앙스와 가벼운 꿈꿈함도 드러난다. 음, 이건 내추럴이라고 하기엔 좀 단단하고 각잡힌 느낌인데... 혼란스러운 가운데 레이블을 공개했는데 니콜라 졸리;;

 

처음 영접하는 니콜라 졸리를 이렇게. 몇 년 전에 졸리 마시기 열풍이 식었다는데 난 아직도 못 만나고 뭐 했던 거니ㅠㅠ




매우 완숙한 슈냉 블랑(Chenin Blanc)을 수확량을 엄격하게 조절(30hl/ha)하여 3-5번 선별 수확한 포도로 양조했다. 늦수확을 통해 표현하려고 한 것은 과일 풍미보다는 미네랄리티! 주지하다시피 비오디나미 농법을 초기(1980년)에 도입해 많은 생산자에게 퍼뜨린 그루 역할을 했다. 래킹이나 바토나주, 이산화황 첨가 등은 최소화하고 가벼운 필터링만 하여 병입한다.


역시 친절한 백레이블이다. 가능하면 디캔팅 해서 마시라고. 권장 음용 온도는 섭씨 14도. 마지막까지 잔에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온도가 올라가면서 본 모습이 더욱 잘 드러나는 느낌이었음. 꿀레 드 세랑 마시고 싶다.





Domaine Jean-Michel Alquier, Les Bastides d'Alquier Faugeres 2005 / 도멘 장 미셀 알퀴에 레 바스티드 달퀴에 포제르 2005

블라인드로 받았다. 아름다운 루비 레드에 페일 림, 아름다운 바이올렛 아로마 뒤로 매콤한 스파이스, 커런트, 라즈베리 등 (검)붉은 베리 풍미에 상쾌한 허브 향이 곁들여진다. 입에 넣으면 부드러운 질감에 둥근 탄닌, 그리고 괜찮은 산미. 가죽 뉘앙스도 살짝 느껴지는 것이 시라 중심의 론(아마도 북부 론!)이 아닌가 싶었고, 7-8년 정도 지나 마시기 좋게 익은 녀석... 이라고 생각했는데, 12년 지난 랑그독이었음. 오, 마이, 갓.


블렌딩 비율은 시라 80%, 그르나슈 20%. 론 지향적인 생산자로  65년 이상의 올드 바인에서 생산한다고. 대단히 숙성이 잘 된 듯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음. 이런 와인을 디텍팅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Domaine de Courbissac, Orphee Minervois la Liviniere 2002 / 도멘 드 쿠르비삭 오르페 미네르부아 라 리비니에르 2002

한 눈에 보기에도 탁한 기운이 물씬 드러나는 브라운에 가까운 벽돌색. 코를 대면 훈제한 고기, 감초/한약재, 화한 허브 향. 그리고 상당한 너티 뉘앙스가 산화의 정도를 말해 준다. 뭔가 힘들어 보이는, 절정기를 확실히 지난 녀석인데 보관 상태 등이 안 좋아서 훅 가버린 것 같기도 하다. 최소 10년은 넘었을 텐데... 연식이 쉽게 가늠이 되지는 않는다.


결론은 2002 미네르부아. 3년 차이인데 차이가 너무 심하다. 한 녀석은 곱게 익어가는데 다른 녀석은 폭싹 늙어서 죽을 날 받아놓은 느낌. Orphée는 그리스 신화의 음유시인 오르페우스를 의미하는데... 오르페우스가 이렇게 쉽게 가다니ㅠㅠ 무르베드르와 시라, 그리고 때때로 그르나슈를 섞는 듯 한데 이 빈티지의 블렌딩 비율은 명확화지 않다.





어쨌거나 신나게, 즐겁게 마셨다. 



좋다.




20180209@프렙(부암동)

개인 척한 고냥이의 [와인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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