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음주/와인

M. Chapoutier, DE L’OREE Ermitage Blanc 2009 / 엠 샤푸티에 드 로레 에르미타주 블랑 2009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19. 11. 3.

 

콩이의 10살 생일과 결혼 10주년을 기념하며 M. Chapoutier De L'Oree Ermitage 2009를 열었다.

 

 

2012년 봄 프랑스를 여행할 때 에르미타주에 있는 샤푸티에의 와인샵에 들러 직접 구입한 와인이다. 계속 셀러에서 잠자고 있다가 7년 만에 조우한 셈. 마음 같아서는 10년 정도 더 묵히고 싶었지만, 와이프는 첫인상의 생생함이 남아있을 때 마시고 싶다고 해서 결혼 10주년에 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에르미타주의 거인, 엠 샤푸티에(M. Chapoutier)

북부 론(Northern Rhone)의 남단 땡-에르미타쥬(Tain-Hermitage) 마을의 기차역 뒤로 솟은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론 밸리의 풍경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굽이쳐 흐르는 강 줄기 사이로 깎아지른 경사지에는 포도나무들이 위태롭게 심어져 있고, 그 아래 형성된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벌써 1년이 훌쩍 넘은 시간이지만 그 강렬했던 풍광은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다.

www.wine21.com

당시 샤푸티에의 담당자와 함께 에르미타주 포도밭을 돌아본 후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을 받았던 '르 파비용 에르미타주 루즈 2009(Le Pavillon Ermitage Rouge 2009)'를 포함해 샤푸티에의 주요 와인들을 시음했었다. 그 중 드 로레는 2008 빈티지도 끼어 있었는데 술을 못 마시는 와이프에게서조차 너무 맛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샤푸티에의 담당자도 드 로레 2009가 사전 테이스팅에서 파커에게 98-100점을 받았다고 맞장구를 쳤고, 마침 결혼 빈티지이니 한 병 사기로 의기투합을 했었다. 

 

 

그렇게 내 셀러에 들어오게 된 드 로레 2009.

 

M. 샤푸티에(M. Chapoutier) 두말 할 필요 없이 론 밸리를 대표하는 생산자 중 하나. 엔트리급부터 아이콘급 와인까지 다양한 레인지의 와인을 생산하는데, 모든 와인을 아주 잘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마디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최상급 생산자. 특히 현재의 오너 미셀 샤푸티에(Michel Chapoutier)가 1989년 가업을 이으면서 그야말로 '품질 및 와인 생산 철학의 급격한 수직 상승'이 일어났다. 와인 애드버킷, 와인 스펙테이터 등 주요 와인 전문지로부터 90점 이상 받은 와인은 셀 수 없이 많고, 100점 만점을 받은 와인도 수십 가지에 달한다. 1990년대부터 소유한 모든 포도밭에 비오디나미 농법을 적용했으며 사회 공헌에도 관심이 많아 세계 최초로 레이블에 맹인을 위한 점자를 적용했다.

샤푸티에의 근거지는 프랑스 론 밸리(Rhone Valley)이지만 보졸레(Beaujolais), 프로방스(Provence), 루시옹(Roussillon), 알자스(Alsace)에서도 와인을 만든다. 이외에 호주와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지역에서도 포도밭을 보유하고 와인을 만들고 있다. 전국구가 아니라 전세계구. 이외에도 다양한 생산자, 셰프 등과 활발한 제휴와 콜라보를 보고 있자면 그들의 열정과 열린 마음, 확장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들의 다양한 와인 중 근거지인 론 밸리를 중심으로 구분한 레인지들이 바로 위의 여섯 카테고리이다. (Alchemy는 론과 남프랑스에 걸쳐 있는 IGP와인들, Specialities에는 론과 남프랑스의 주정강화 와인과 증류주들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 소개하는 '드 로레 에르미타주 블랑'은 샤푸티에의 최상급 카테고리인 팍 & 스페라(Fac & Spera)다.

 

팍&스페라는 라틴어로 'Do & Hope'라는 뜻인데, 샤푸티에의 모토이자 철학이라고. 남북부 론의 특별한 싱글 빈야드에서 생산한 와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비오디나미 농법을 적용해 포도밭의 토양과 해당 빈티지의 기후, 전통적인 노하우에 담긴 정밀성을 와인에 그대로 반영한다. 그야말로 '포도와 빈티지, 떼루아의 스냅숏(snapshot of a grape, in a certain year, in a given terroir)'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특별하고 희귀한 와인이다.

 

 

 

De L'Orée 2009, Rhône Valley - Ermitage: Maison M.Chapoutier's wine

SYNDICAT INTERNATIONAL VIGNERONS EN CULTURE BIO-DYNAMIQUE. In 1998, the members judged it essential to determine, in practical terms, the fundamental principles that any wine producing property must respect in order to be able to describe itself as a biody

www.chapoutier.com

포스팅을 하면서 샤푸티에의 홈페이지에서 드 로레 2009년 빈티지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당시에는 로버트 파커 98-100점이라는 임시 점수가 부여된 상태였는데, 현재는 100점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300cl 기준 가격이 980유로.. 750ml로 환산하면 245유로다. 당시 와이너리에서 구매했던 가격이 198유로니까 47유로 밖에 안 올랐네ㅋㅋ 히스토리를 살펴보니 2010년에도 파커 포인트 100점, 2011년과 2012년엔 99점을 받았다. 그리고 2013년에 다시 100점...  2014-16년에도 모두 97점 이상을 받았으니 정말 대단한 와인이긴 하다..ㅎㄷㄷㄷ

 

 

출처: https://fernandobeteta.com/maps/2018/12/28/detailed-map-of-hermitage-with-lieux-dits

페르난도 베테타(Fernando Beteta)라는 마스터 소믈리에의 사이트에서 퍼온 에르미타주 포도밭 지도(map of Hermitage with Lieux-dis). 사이트에는 각 파셀 별 설명도 간략히 되어 있어 참고할 만하다. '드 로레'는 오른쪽 중간에 붉게 표시된 레 뮈레(Les Murets)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양조하는데, 화강암 베이스에 빙하에 의해 운반된 토사가 빙하가 녹으며 다시 퇴적된 토양(fluvioglacial deposit)이다. 식재된 포도는 60-70년 수령의 마르산느(Marsanne) 100%.

 

잘 익은 포도만 손으로 수확해 압착한 후 24시간 동안 저온에서 안정화한 후 절반은 600리터 오크 배럴에서 주기적으로 바토나주(batonage)를 하며 양조하고, 나머지 절반은 커다란 나무통(vats)에서 양조한다. 이후 10-12개월간 오크 숙성을 거치는데, 초기 6개월간은 주기적으로 바토나주를 한다. 병입 전 여러 번 테이스팅을 해 품질과 병입 시기를 체크한다.

 

기본적으로 30년 이상 60년 정도 숙성 가능한 와인으로, 좋은 빈티지의 경우 50년 이상 75년까지도 숙성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뭐, 우린 빨리 먹기로 했으니까ㅋㅋㅋㅋㅋ

 

 

어쨌거나 밀랍 봉인을 열었다. 좋은 날 마시기 좋은 와인.

 

 

M. Chapoutier, DE L’OREE Ermitage Blanc 2009 / 엠 샤푸티에 드 로레 에르미타주 블랑 2009

 

반짝이는 골드 컬러에 녹색 뉘앙스가 살짝 감돈다. 코를 가져다 대기도 전에 밀도 높게 드러나는 미네랄과 톡 쏘는 스파이스. 뒤이어 잘 익은 핵과와 모과, 밀납 힌트가 수줍은 듯 슬쩍 드러난다. 상당히 몸을 사리는, 단단히 여미고 앉아 열리지 않는 느낌인데 시간이 갈수록 향긋한 꽃과 신선한 시트러스 뉘앙스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마치 7년 전 와이너리에서 만났던 와인을 다시 만나는 느낌. 예상은 했지만 어려도 너무 어리다! 디캔팅을 하니 더욱 생생해지며 또렷해지는 것이 완연한 회춘의 분위기. 입에서는 완숙 핵과와 파인애플 같이 달고 완숙한 노란 과일 풍미에 약간 쌉쌀한 파라핀 뉘앙스와 구운 오크, 스파이시 힌트가 더해진다. 풀 바디에 매끈한 질감과 절제된 유질감, 흠잡을 데 없는 알코올과 신맛, 풍미의 밸런스. 잡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깔끔하며, 개운하면서도 길고 긴 뉘앙스가 오랫동안 이어진다.

 

2시간 30분에 걸쳐 마셨는데, 마지막까지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너무나 매력적인, 그리고 격조 높은 와인. 다시 론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한 병 더 구입하고 싶다. 이번에는 30년 이상 숙성을 목표로.

 

 

... 취향저격 페페로니의 음식들과 마셔서 더욱 좋았던 듯.

 

음식을 기다리며 일단 파테부터 한 접시.

 

 

파테의 절반 이상은 빵 세 쪽과 함께 딸내미 입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짐.. 제대로 happy birthday다ㅋㅋ

 

 

다음은 뽈뽀. 문어 다리 위에 올라앉은 알 같은 것은 화이트 발사믹 볼이 포인트다. 감자에도 문어 향이 배어서 아주 맛있다.

 

 

무엇보다 요 문어는 '드 로레'와 환상 궁합이라 정말 좋았음. 음식이 술을, 술이 음식을 부른다.

 

 

숭어알 파스타. 

 

 

구수한 알과 주키니 호박, 구운 마늘이 아주 잘 어울린다.

 

 

포르치니 리소토. 중간 해장용으로 최고♥

 

 

중화풍 돼지 등갈비. 갈비도 환상이지만 가지의 익힘 정도와 양념은 당췌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할 따름. 밥 위에 얹어서 덮밥으로 먹으면 밥 두 공기는 먹을 것 같은데... 레시피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

 

 

마지막으로 관찰레 오일 파스타.

 

 

관찰레로는 매번 까르보나라나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만 해 먹었는데 요렇게 하는 방법도 있구나. 한 번 시도해 봐야지.

 

 

덕분에 지난 여행의 추억을 되살려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다음 유럽 여행은 두 아이도 함께 하겠지. 기대된다. 여행도, 만나게 될 와인도.

 

 

20191102 @ 페페로니 (합정)

개인 척한 고냥이의 [알코올 저장고]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