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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주/와인

Fanny Sabre, Bourgogne Blanc 2016 / 파니 사브르 부르고뉴 블랑 2016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0. 6. 14.

주말 오후의 음주 준비. 더운데 시원한 음식들로 가볍게 먹고 싶어서.

미니 살루미, 호두와 함께 준비한 치즈는 브리야 사바랭(Brillat-Savarin). 미식가의 이름이 붙은 트리플 크림 치즈의 대표작인데, 'rich & creamy'라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진다. 아는 기름 재벌님 만났다가 맛보게 되었는데, 한 입 먹는 즉시 이건 다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그리고 오이와 양파, 파프리카를 넣어 마요네즈로 무친 감자 샐러드. 나에게 이건 어린 날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는 콤포트 푸드.

 

그리고 구운 닭가슴살을 파프리카, 로메인, 홀 그레인 머스터드 소스와 곁들여서 돌돌 말은,

또띠야!!

 

먹기 좋게 3등분했는데 요거 진짜 별미다.  둘둘말이 김밥마냥 계속 들어감.

 

이렇게 건더기만 먹을 수 없지.

와인 준비. 의도한 건 아닌데 브리야 사바랭 치즈와 환상의 궁합을 보인 와인 페어링이 되었다.

 

도멘 파니 사브흐(Domaine Fanny Sabre)는 프랑스 부르고뉴 꼬뜨 드 본 지역의 뽀마르(Pommard)에 자리를 잡은 생산자다. 자신의 이름을 도멘 이름으로 내건 파니 사브르 씨는 여성 와인메이커로, 원래는 법학을 공부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돌아와 와이너리를 물려받았다고. 도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부르고뉴의 손꼽히는 생산자 중 하나인 필립 파칼레(Philipe Pacalet)씨와 함께 일하며 그의 영향을 받았고, 배양 효모를 사용하지 않는 등 자연주의적 농법/양조법을 적용한다. 

포도밭을 잘 관리해서 땅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미생물이 잘 살아야 포도밭 살아 있고 역동적이며 건강한 포도를 만들어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매년 포도밭에서 기후 조건에 맞게 일을 하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비오디나미 농법을 적용하는데, 최근에는 좀 더 내추럴한 양조법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것 자체가 기본 철학은 아니란다. 단지 마셨을 때 몸이 편안하고 언제 어느 곳에서 마셔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와인을 만들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소비자들이 메이커 자신이 추구한 느낌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원한다고 한다. 

도멘이 추구하는 와인은 미네랄의 순수함과 과일의 신선함이 길게 이어지는 은은하고 우아한 스타일. 화이트 와인 발효는 올드 배럴에서 진행하며, 레드는 우드 또는 콘크리트 통에서 세미 카르보닉 마세라시옹을 진행한다. 모든 와인은 올드 배럴에서 최소 12개월 이상 숙성하며, 병입 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 각각의 배럴을 블랜딩해 3-4개월 안정화한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병입하며, 정제와 여과는 하지 않는다. SO2는 극소량만 사용한다.

 

도멘 소개만 봐도 입맛이 돌 정도로 좋아하는 타입일 게 거의 확실하다. 빨리 마시고 싶어 현기증이 난다;;;

 

Domaine Fanny Sabre, Bourgogne Blanc 2016 / 도멘 파니 사브르 부르고뉴 블랑 2016

밝은 금빛에 가볍게 감도는 가벼운 그린 뉘앙스. 코를 대면 의외의 너티 힌트와 스파이스, 허베이셔스한 탑 노트가 느껴지는데, 금세 향긋한 흰 꽃, 잘 익은 천도복숭아 같은 핵과, 우아한 미네랄 뉘앙스로 대체된다. 열어서 바로 마시기보다는 가볍게 에어레이션을 해서 마시는 것이 좋을 듯. 입에 넣으면 시트러스의 상큼함, 사과 꿀 같은 달콤한 뉘앙스가 순수한 미네랄과 함께 드러난다. 맛은 분명 드라이한데 꿀 같은 풍미가, 그것도 끈적이는 느낌 없이 산뜻하게 느껴지는 아이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화사한 플로랄 아로마와 영롱한 미네랄리티는 더욱 디벨롭되는 느낌.

레지오날급 부르고뉴 블랑이 이렇다면 빌라주, 프르미에 크뤼들은 도덕책.... 역시 와이너의 와인들은 엄청나다.

 

저녁에는 잔을 리델 베리타스 오크드 샤르도네 글라스로 바꿔서 가볍게 맛만 보았다. 원랜 안 마시려 했는데 낮의 그 느낌이 자꾸 떠올라서... 그런데! 풍미의 프로파일이 확연하게 바뀌었다!! 꽃 향기와 미네랄보다는 낮에는 강하게 드러나지 않던 내추럴한 뉘앙스가 확연히 고개를 내밀고, 잘 익은 과일 풍미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 또한 나쁘지 않지만, 낮의 느낌이 좀 더 파니 사브흐 씨가 추구하는 스타일 아니었을까.

와, 이게 또 이렇게 되는구나... 매우 내일은 다시 잘토 유니버설 글라스로 돌아가 봐야지. 

 

개인 척한 고냥이의 [알코올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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