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st Abbey, Carnevale Brett Saison / 더 로스트 애비 카니발레 브렛 세종

캡슐에 그려진 십자가 문양부터 심상치 않다.

 

더 로스트 애비(The Lost Abbey). 빈스 마르살리아(Vince Marsaglia)와 브루마스터 톰 아더(Tomme Arthur)가 벨지언 에일(Belgian Ale) 스타일의 맥주에 영감을 받아 1997년 샌디에고의 산 마르코스(San Marcos)에 설립한 브루어리다. 메인 라인업은 벨기에 수도원 스타일의 맥주와 배럴 숙성 맥주, 사워(Sour) 등이지만,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주 종목 중 하나인 임페리얼 스타우트 또한 잘 만든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톤 앤 매너가 상당히 기묘&경건(?)한데, 자신들을 십자군(Crusade)이라고 지칭하고 선악과와 인간의 자유의지를 들먹이는 등 제법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맥덕들에게 사랑을 넘어 추앙을 받는 컬트적 브루어리가 된 이유 중 일부는 로스트 애비라는 이름과 이런 오묘한 분위기 덕이 아닐까 싶다. 물론 빼어난 맛과 품질이 기반이 되기 때문이지만.

레이블도 성서의 이야기 등을 소재로 한 중세 풍의 그림으로 장식하기 때문에 다른 맥주들과 상당히 차별적인 분위기다.

 

카니발레(Carnevale)는 로스트 애비 브루어리에서 사순절과 부활절 기간에 양조해서 겨울이 올 즈음에 출시하는 시즈널 맥주다. 가벼운 세종(Saison) 스타일인데, 브렛(brett) 효모를 써서 독특한 풍미를 더했다. 베네치아 가면을 쓴 사람들로 장식된 인상적인 레이블은 겨울밤 동안 브렛 효모의 영향을 받아 변화한 풍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거라고 한다.  

 

수 세기 동안 베네치아 사람들은 사육제(Canevale)를 통해 하룻밤 동안 사회적 지위를 벗어버리는 축제를 즐겨 왔다고. 이날만큼은 모두들 가면을 쓰고 가난뱅이는 왕자가 되고, 지식인은 광대가 되며, 정숙한 부인은 격정적인 연인이 될 수 있었단다. 안동 하회탈과 비슷하다. 과연 브렛 가면을 쓴 세종대왕은 어떤 맛일지...

2020년 빈티지이고 수입사 레이블의 품질 유지기한은 3년이다. 브루어리의 설명은 시간이 지날수록 복합미가 좋아진다고. 

 

집이 아니라 놀러 와서 마신 거라 성배 스타일 잔이나 고블릿 잔이 없어서 그냥 일반 잔에 따랐는데, 거품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온다. 그냥 막 따른 게 아니라 잔을 기울여 조심스럽게 따랐는데도 이 정도...

 

The Lost Abbey, Carnevale Brett Saison / 더 로스트 애비 카니발레 브렛 세종

약간 탁하고 앰버 뉘앙스가 살짝 감도는 골드 컬러. 하얀 헤드가 부드럽고 풍성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올라앉는다. 코를 대면 말린 오렌지 슬라이스, 완숙한 노란 핵과, 열대 과일의 달콤한 풍미 뒤로 브렛 특유의 오묘하게 꿉꿉하고 꼬릿한 향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마셔 본 브렛 에일 중 브렛 풍미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부담스럽거나 거부감이 느껴졌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이보다 브렛 풍미는 약했지만 거부감이 느껴진 것도 있었음...) 따를 때 형성된 거품에 비해 입안의 탄산감은 가볍고 부드러운 편이며, 쌉쌀한 피니시가 깔끔한 여운을 남긴다. 전반적인 밸런스가 좋아 애매함이 없고 입안에서의 구조감 또한 명확한 잘 만든 맥주다. 이렇게 되면 로스트 애비의 다른 맥주들도 궁금해지는데...

원재료는 정제수, 보리맥아, 포도당, 홉, 효모. 아마릴로(Amarillo)와 심코(Simcoe) 홉을 썼다. 알코올 8%. 용량 720ml.

 

GS25 스마트 오더로 구입했다. 최근 마트, 편의점의 스마트 오더에 흥미로운 주류들이 확실히 많이 들어온다. 아직 가격은 들쭉날쭉한 편이지만, 일부러 보틀샵이나 주류 전문점에 찾아가야 살 수 있는 술들도 종종 보이기 때문에 잘만 이용하면 슬기로운 주류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특별한 술을 집 앞 편의점에서 쉽게 받을 수 있으니까. 찾아가는 수고와 시간을 고려하면 충분히 활용할 만하다. 가격 경쟁력과 검색 정확성만 조금 높여 준다면 바랄 게 없을 듯.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