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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주/우리술·한주

퇴계 선생과 농암 선생의 우정이 담긴 명주, 일엽편주(一葉片舟)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1. 9. 26.

추석 당일에 마신 우리술, 일엽편주(一葉片舟). 명절에 잘 어울리는 한잔이었다.

 

출처: ellyeoppyunjoo.com

일엽편주는 경북 안동에 위치한 농암종택에서 빚는 가양주다. 약주, 탁주, 소주 세 가지가 있는데, 시중에 내놓으신 지는 2년이 채 안 되는 것 같다. 2018년 4월 농암종택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판매하는 술이 없었으니까.

 

농암종택(聾巖宗宅)은 조선 중기의 문인 농암 이현보 선생의 종택이다. 원래는 분천마을에 있었는데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안동 이곳저곳으로 건물을 이건해 두었다가 나중에 문중의 종손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낙동강 상류 청량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택 앞에 펼쳐진 절벽과 그 앞을 흐르는 잔잔한 물줄기가 절경을 이룬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이틀쯤 묵다 보면 몸 안에 쌓인 스트레스가 모두 빠져나갈 것 같다.

 

출처: ellyeoppyunjoo.com

일엽편주에는 퇴계 이황 선생과 농암 이현보 선생이 함께 한 일화가 얽혀 있다. 1547년 7월 여름, 농암 이현보, 퇴계 이황, 금계 황준량 선생이 조그만 배를 타고 자연을 만끽했다. 어느덧 날은 저물고 구름이 달빛을 가리어 물빛이 흐릿하여 촛불을 밝히고 술을 부은 술잔을 조그만 나무 뗏목에 올려 띄워 보내며 풍류를 즐겼다는 것. 

이중에 시름없으니 어부의 생애로다
일엽편주를 만경창파에 띄워 두고  
인간세상 다 잊었으니 세월 가는 줄 알리오
- 어부가, 농암 이현보

농암선생이 지은 어부가와 딱 어우러지는 모습인데, <농암집>에도 "술잔에 술을 부어 조그만 나무 뗏목에 올려 띄워 보내니 퇴계가 아래에서 웃으면서 받아 마시기를 왕복 서너 차례"라는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일엽편주는 '물 위를 떠가는 작은 나뭇잎 같은 조각배'를 뜻하는 표현이다. 술 주(酒)가 아니라 배 주(舟)다.

 

일엽편주 병목에 붙은 레이블의 글씨는 퇴계 선생이 농암 선생에게 써준 글을 집자해 활자로 만들어 한지에 직접 찍어낸 후 하나하나 아교풀로 붙였다고 한다. 모두 수작업인 셈인데, 레이블 하나까지도 사람의 정성이 녹아있는 것이다. 

 

병목을 감싸고 있는 고급스러운 한지와 실 또한 모두 수작업의 산물. 넘나 고급스러워 품격 있는 선물용으로도 좋을 것 같다. 이미 권숙수 등 여러 미슐랭 레스토랑에서도 일엽편주를 사용하고 있다고. 

 

일엽편주는 안동 지역의 쌀(멥쌀, 찹쌀)과 직접 법제한 누룩, 맑은 물만 사용해 빚는다. 전 과정 수작업을 통해 소량 생산하며, 2차례 발효와 40일간의 숙성을 거쳐 100일 동안 정성을 다해 만드는 비열처리 무여과 생주다.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드는 술이다 보니 생산량도 적어 상시 판매하지 않는다. 우리술이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는 있지만,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언제 판매되는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인스타그램 @ricewinery에서 판매 공지를 한다니 팔로우 필수.

 

일엽편주(一葉片舟) 약주

은은한 볏짚 색 컬러부터 마음에 든다. 코를 대면 향긋한 꽃 향기와 어우러져 아주 산뜻하고 가볍게 드러나는 누룩 힌트. 그리고 복숭아 같은 달콤한 과육의 풍미와 함께 쌀의 적절한 단맛, 감칠맛이 아름답게 드러난다. 부드러운 단맛과 어울리는 둥근 바디감과 우아한 질감, 섬세한 여운까지... 정말 매력적인 술이다.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술.  

일엽편주 때문에라도 농암종택에 조만간 다시 방문해야 할 것 같다.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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