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 블랑(Lillet Blanc).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세미용(Semillon) 품종으로 만든 보르도(Bordeaux) 화이트 와인 85%에 오렌지 껍질 등을 침출한 시트러스 리큐르(citrus liqueur) 15%를 블렌딩해 만든 식전주(aperitif)다.
릴레는 1872년 증류업과 유통업을 하던 폴 & 레이몽 릴레(Paul and Raymond Lillet) 형제가 보르도 남쪽 포당삭(Podensac)에 설립한 회사다. 처음 릴레 블랑을 탄생시킨 아이디어는 브라질에서 살다 온 성직자이자 의사 케르만(Father Kermann)이 만든 퀴닌 (quinine) 성분을 포함한 침출 리큐르에서 얻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보르도는 와인 비즈니스의 중심지였고 퀴닌은 말라리아를 포함한 열병 치료제로 각광을 받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둘의 결합은 상당히 전도유망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1887년 그들은 키나 릴레(Kina Lillet)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했다. 키나는 퀴닌을 함유했다는 의미로, 이름부터 건강에 좋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대부분의 식전주는 붉은색이었는데, 키나 릴레는 보르도의 특정 지역에서 생산한 화이트 와인으로 만든 것이었기에 또 하나의 주목 포인트가 되었다. 키나 릴레는 곧 프랑스를 넘어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 인기를 얻었고, 대서양을 오가는 배에서 서빙되었으며 미국 바텐더들의 칵테일 재료로도 사용되었다.
1970년대 초반 회사는 이름에서 '키나'를 뗐는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퀴닌의 효능에 대한 대중의 호응이 줄어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85년에는 품질 향상을 위해 퀴닌과 당분의 함량을 낮추는 방향으로 레시피를 조정했다. 당 함량을 낮춘 것은 대중의 입맛이 덜 단 것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변한 탓도 있겠지만, 쌉쌀한 퀴닌의 함량이 줄어든 만큼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만나는 릴레 블랑은 오리지널 '키나 릴레'에 비해 덜 쌉쌀하고 덜 단 버전이다.
표기된 원재료는 포도주, 설탕, 과일추출물(오렌지, 자몽, 라임, 복숭아, 자두, 푸룬), 주정, 천연붉은기나피향, 비타민C, 무수아황산(산화방지제). 진짜 퀴닌이 아닌 퀴닌 향이 첨가돼 있다. 참고로 퀴닌은 국내에서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물질이므로, 진짜 퀴닌이 함유된 물질은 공식 수입될 수 없다.
최근 마트와 주류 전문점 등에 풀렸었던 글라스 패키지. 릴레 스티커와 와인잔 모양의 칵테일용 글라스가 들어있다.
개봉샷.
동봉된 글라스는 조금 투박하긴 하지만 일반 와인잔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제조사는 크리스탈렉스(Crystalex)라는 체코 회사. 스티커는 노 관심 ㅋㅋㅋㅋㅋ
릴레 블랑은 와인을 베이스로 한 리큐르이기 때문에 알코올 함량은 17%로 높지 않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베르무트(Vermouth) 같이 광의의 주정 강화 와인(fortified wine)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는 수준. 시원하게 칠링해서 릴레 블랑 자체만으로 신선하게 식전주 즐겨도 된다.
하지만 역시 추천하는 것은 롱 드링크 스타일의 칵테일.
릴레 비브(Lillet Vive)라는 칵테일인데 얼음을 채운 잔에 릴레 블랑과 토닉워터를 1:2 비율로 섞으면 되는 간단한 레시피다. 딸기나 오렌지, 오이 등 사용할 수 있는 과일이나 신선한 야채를 곁들여도 좋지만 생략해도 무방하다. 취향에 따라 토닉워터를 일반 탄산수나 스파클링 와인으로 바꿔도 된다.
그럼 한 번 만들어 봐야지. 아, 테이스팅 먼저 하고....
Lillet Blanc / 릴레 블랑
녹색 빛이 살짝 감도는 골드 컬러. 향긋한 감귤 풍미와 은은하게 감도는 허브 뉘앙스가 매력적이다. 입에 넣으면 농밀한 질감에 상응하는, 꿀 같은 (하지만 단맛은 제어된) 뉘앙스와 상큼하면서도 쌉싸름한 시트러스 껍질과 솔잎 힌트가 어우러져 오묘한 밸런스를 이룬다.
기대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리큐르. 와인 러버라면 시원하게 칠링해서 디저트 와인 대용으로 마셔도 좋을 것 같다.
다음은 토닉워터를 섞어 릴레 비브(Lillet Vive)를 만들 차례.
얼음을 채운 롱 드링크, 혹은 와인 글라스에 릴레 블랑을 50ml 정도 채운 후,
나머지를 토닉 워터로 채우면 완성. 제조사에서 추천하는 릴레 블랑과 토닉 워터 비율은 1:2이지만 취향에 맞게 가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1:2 비율은 토닉 워터 맛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서 아쉬웠다. 2:3 정도로 조절해야 릴레 블랑 특유의 상큼하면서도 과즙미 뿜뿜한 풍미가 더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듯.
하지만 내가 릴레 블랑으로 만들고 싶은 칵테일은 따로 있다.
바로 콥스 리바이버 #2(Corpse Reviver #2). 진, 쿠엥트로, 릴레 블랑, 압생트, 그리고 레몬주스를 사용하는 레시피다. 베스퍼(Vesper)도 궁금하긴 한데 너무 독할 것 같아서...
그리고 프렌치 커넥션(French Connection). 원래 프렌치 커넥션은 아마레토(amaretto)+코냑(Cognac)의 조합이지만, 릴레 블랑과 코냑에 앙고스투라 비터(Angostura Bitters)와 오렌지 비터(Orange Bitters), 그리고 허니 시럽을 첨가하는 변형 레시피도 있다. 이 쪽이 좀 더 상큼하고 마시기 편할 듯.
릴레 블랑은 여름에 시원하게 즐기기 좋은 리큐르로 꼽히는데, 여름엔 딴짓(?)을 하느라 이제야 오픈했다. 마셔 보니 늦게 오픈한 게 넘나 아쉬운 것... 하지만 사시사철 활용하기도 좋은 리큐르인 것 같다. 몇 잔은 식전주로 가볍게 마셔도 좋을 것 같고. 일단 콥스 리바이버부터 만들어 보자.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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