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두 병의 베이비 배드 보이(Baby Bad Boy).
베이비 배드 보이는 '보르도의 악동'이라고 하기엔 이제 최정상급 와인메이커가 되어 버린 장 뤽 뛰느뱅(Jean Luc Thunevin)이 만드는 엔트리급 레드 와인이다. 그가 만드는 샤토 발랑드로(Chateau Valandraud)는 2012년 생떼밀리옹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Saint-Émilion Premier Grand Cru Classé) B로 승급됐다. 제도권 상층부에 진입한 악동이랄까.
2013년에 장 뤽 뛰느뱅과 함께 샤토 발랑드로를 버티컬 테이스팅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영광스러운 경험.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한 샤토 발랑드로는 1991년 첫 빈티지가 나왔는데, 3년 만인 1994년 빈티지가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로부터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를 능가하는 평가를 얻으며 일약 최고의 와인으로 떠올랐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보르도에서 이렇게 신진 와인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 샤토 발랑드로가 시작한 '가라지 와인(garage wines)'은 르 돔(Le Dome) 등으로 이어지며 선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실 베이비 배드 보이 전에 배드 보이(Bad Boy)가 있었다. 언젠가 로버트 파커가 샤토 발랑드로를 시음하면서 그를 ‘악동(bad boy)’이라고 지칭했는데, 뛰느뱅은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중적인 스타일로 출시한 와인에 ‘배드 보이(Bad Boy)’라는 이름을 붙인 것. 레이블이 캐주얼하고 가격 또한 비싸지 않은 편이지만 품질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세미용(Semillon), 뮈스카델(Muscadelle),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품종으로 만드는 크레망(Cremant of Bordeaux)인 배드 걸(Bad Girl)도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두 병의 베이비 배드 보이, 같은 와인일까? 레이블의 컬러는 반대로 뒤집혔지만 디자인은 거의 같다. 이름도 같고. 그렇다면 역시 같은 와인?
백 레이블을 보면 빈티지의 차이가 있다. 검은 레이블은 2016년 빈티지, 흰 레이블은 2018년 빈티지다.
그리고 더 큰 차이는 그 아래 적힌 문구. 2016년 검은 레이블은 Vin de France, 그러니까 AOC 와인이 아닌 테이블급 와인이다. 반면 2018년 흰 레이블은 보르도(Bordeaux) AOC다. 장 뤽 뛰느뱅의 근거지인 보르도 와인이라는 얘기.
원래 베이비 배드 보이의 2009년 첫 빈티지는 보르도의 메를로(Merlot)와 남프랑스 루시용(Roussillon)에서 재배한 그르나슈(Grenache)를 블렌딩해 만들었다. 그러니 태생적으로 보르도 AOC가 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블렌딩 비율은 상황에 따라 바뀐 것 같고, 2016년 빈티지는 (랑그독에서 재배한) 메를로 100%로 양조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화이트 레이블의 이산화황 무첨가 버전은 메를로 85%에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10%,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5% 등 보르도 품종들을 블렌딩해 만든다.
하지만 정말 큰 차이는 앞 레이블에 있다. 화이트 레이블 오른쪽 상단의 작지만 중요한 표시, 'sans soufre ajoute'.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수입사의 설명에 의하면 '내추럴 와인'이라는데, 그저 양조 과정에서 이산화황을 사용하지 않은 것인지 진정한 의미에서 내추럴 와인답게 만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어쨌거나 이산화황 무첨가 베이비 배드 보이는 2018년이 첫 빈티지다. 그리고 웬일인지 2017년에는 베이비 배드 보이가 출시되지 않은 듯. 그래서 베이비 배드 보이가 아예 이산화황 무첨가 버전으로 변경된 것인가 했는데 2018년 빈티지는 기존 검은 레이블 버전도 함께 출시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의 정보는 검색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직접 마셔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원래 사람들 좀 모아놓고 의견을 교환해 가며 마시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영 기회가 생기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라도...
일단 코르크 상태는 둘 다 양호하다. 기존 스타일인 2016년의 코르크가 좀 더 길고 자연 코르크인 반면, 이산화황 무첨가 버전의 코르크는 더 짧고 코르크 조각을 붙여 만든 일종의 합성 코르크다. 내추럴 버전의 코르크를 더 내추럴하게 써야 하는 거 아님??
어쨌거나 맛을 보자.
J. L. Thunevin, Baby Bad Boy Sans Soufre Ajoute 2018 Bordeaux
장 뤽 뛰느뱅 베이비 배드 보이 상 스푸르 아주떼 2018 보르도
검붉은 빛 감도는 밝은 루비 레드 컬러. 처음엔 은근한 환원취가 드러나는데 날리고 나면 붉은 자두와 커런트, 시간이 지나며 완숙 딸기 등의 붉은 베리 풍미가 드러난다. 오크 뉘앙스는 드러나지 않으며 신맛이 잘 살아있고 바디감도 미디엄(풀) 정도로 가벼운 편. 그런데 약간 부쇼네인 것처럼 왕겨 같은 뉘앙스가 있고 입에 머금었을 때에 비해 향이 덜 피어나는 느낌이 든다. 먹을 만은 하지만 확실히 즐겁지가 않은 느낌.
확실히 제 컨디션이 아닌 느낌.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만나야 확실한 비교가 될 텐데... 살짝 아쉽다.
이번에는 꺼멍이 차례.
J. L. Thunevin, Baby Bad Boy 2018 Vin de France
장 뤽 뛰느뱅 베이비 배드 보이 2016 뱅 드 프랑스
2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가넷 림에 진한 루비 레드 컬러. 코를 대면 확연한 검은 베리 아로마와 흑연, 삼나무 향에 토스티 한 뉘앙스가 드러난다. 향에서부터 이산화황 무첨가 버전보다 묵직한 느낌. 입에 넣으면 풍만한 풀 바디에 부드러운 타닌이 벨벳 같은 질감을 선사하며, 알코올은 살짝 느껴지지만 밸런스가 좋아 편안하다. 2만 원 전후의 가격대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전형적으로 잘 만든 보르도 품종의 데일리 와인인데, 딱 마실 때가 되어서 넘나 맛있다.
이 정도 차이라면 이산화황 무첨가 버전의 상태가 괜찮았더라도 기존 버전의 압승일 것 같다. 결론은, 그냥 기존 게 더 맛있다. 내추럴은 제대로 만든 다른 거 먹자.
사족을 달자면, 이 와인이 손에 들어오는 데는 우여곡절이 좀 있었다. 기존 베이비 배드 보이의 존재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산화황 무첨가 버전이 있는지는 몰랐는데, 올해 초에 GS25 스마트오더에서 팔고 있는 걸 발견하고 호기심에 주문해 본 것. 그런데 수입사 착오로 기존 베이비 배드 보이인 검정 레이블이 왔다. GS25 직원에게 교환을 요청했는데, 두 와인이 뭐가 다른지 이해를 못하는 상황. 교환을 위해 설명하는 데도 20분이 넘게 걸렸다. 어쨌거나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한 뒤에는 정말 성심성의껏 처리해 주어서 수입사인 금양에서 다음날 바로 교환을 해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블랙 레이블은 그냥 드리겠다고... 덕분에 즐거운 비교 시음의 기회를 얻었으니 감사한 일.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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