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그로니 베리에이션을 찾다가 발견한 흥미로운 칵테일,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는 줄여서 SXSW라고도 하는데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매년 봄에 열리는 영화, 인터랙티브, 음악 페스티벌, 컨퍼런스이다. 상당히 권위 있는 행사인 것 같은데, 나는 칵테일 이름으로 처음 알았네. 이 칵테일과 행사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레시피는 리커닷컴(liquor.com)을 참고했다. 다만 린스를 위한 오렌지 블라썸 워터가 없어서 그냥 오렌지 비터를 1대시 추가하는 걸로 대체했다.
큰 틀에서 보면 네그로니에서 진을 스카치 위스키로 바꾼 트위스트다. 일반적으로 진을 버번 위스키로 바꾼 레시피는 그 자체로 유명한 불바디에(Boulevardier)지만 스카치 위스키로 바꾼 레시피는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다.
게다가 이건 그냥 스카치 위스키가 아니다. 피트 향 충만한 아일라(Islay) 위스키다. 오리지널 레시피는 아드벡 텐(Ardbeg 10)을 콕 집어 언급하고 있지만, 그냥 집에 있는 코리브레칸(Corryvreckan)을 썼다. 피트 향이 도드라지는 아일라 위스키라면 어떤 것이든 나쁘지 않을 듯.
그런데, 향긋 달콤 쌉싸름한 캄파리랑 아일라 위스키가 과연 잘 어울릴까?
일단 위스키, 캄파리, 베르무트를 순서대로 넣는다. 용량은 레시피의 절반인 15ml씩만. 나는 알쓰니까 베이비 용량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어우, 일단 아일라 위스키가 들어간 순간부터 피트 향이 코에 붙어서 떠나질 않는다. 캄파리가 웬만한 다른 재료들은 다 잡아먹는 편인데, 아일라 위스키한테는 역시 안되는구나... 하는 느낌.
홈텐딩에서 빌드 형식 칵테일에 바 스푼으로 하는 스터 따위는 사치다. 그냥 잔을 들어 몇 번 스월링 해 섞어 준 후 마지막으로 오렌지 비터스를 1대시 정도 뿌려 준다. 이거 뿌려준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겠나 싶었는데... 어라, 오렌지 향이 전쟁의 포화 속에 핀 한 떨기 꽃처럼 은은하게 드러난다. 와... 이거 뭐야 싶은 반가움.
오렌지 비터스까지 잔을 스월링해 잘 섞어준 후 1~2방울 정도 얼음 위에 더 뿌려 준다. 피트 향과 어우러지는 오렌지 향이 제법 매력적이랄까. 오리지널 레시피에서 오렌지 블러썸 워터 코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대략 알 것 같다.
이제 맛을 볼 시간. 여전히 대세는 피트다. 하지만 한 모금 입에 넣는 순간 은근한 단맛과 오렌지, 핵과 같은 과일의 단맛이 먼저 드러난다. 그리고 단맛이 사그라질 때쯤 적당히 드러나는 쌉싸름한 뉘앙스. 와, 이거 의외네... 캄파리는 여전히 싸롸있네, 싸롸있어~
하지만 머금은 액체를 꿀꺽 삼키는 순간, 입안은 다시 전장의 포화 속으로 회귀한다. 패잔병들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지만, 입안은 이미 스모키 지옥. 부담스럽네... 하면서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다 보니 어라, 이거 제법 중독성이 있는 듯하다. 달다가 쓰다가 스모키...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오묘하게 어울린다. 공시적인 균형이라기보다는 통시적인 균형이랄까.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강렬한 게 땡길 때 생각날 맛이다. 전쟁 간접 체험;;;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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