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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242. 컬트 너머의 컬트, 슈레이더(Schrader) & 로코야(Lokoya)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1. 12. 14.

슈레이더와 로코야 같은 나파 밸리 컬트 와인은 물론, 크리스 카펜터가 호주에서 만든 히킨보탐 같은 와인들을 연이어 맛보면서, 이제 소위 '신세계'라고 불리는 지역들이 단지 품질뿐만 아니라 스타일에 있어서도 구세계를 앞지르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물론 프랑스와 이태리, 독일, 스페인 등의 역사와 전통에 기반한 정형성과 지역 별 다양성을 넘어서기엔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게다가 이런 와인들은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슈퍼 프리미엄 급 아이콘 와인들이니.... (털썩) 어쨌거나 넘나 귀중한 경험을 했다. 코로나로 우울한 연말에 좋은 선물을 받은 기분. 그리고 크리스 카펜터는 꾸준히 주목해야 할 와인메이커인 것 같다. 스타일도 관점도 매우 마음에 든다.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이 저장용으로 스크랩한 것입니다.

 

컬트 너머의 컬트, 슈레이더(Schrader) & 로코야(Lokoya)

컬트 와인(Cult wine). 매우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와인을 뜻한다. 컬트의 원래 의미가 광적인 추종자 집단이나 신비한 종교 단체 등을 의미하던 것이었으니, 컬트 와인에 대한 애호가들의 집착이 얼마나 강렬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컬트 와인 중에는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구매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날 소개된 슈레이더(Schrader)의 와인만 하더라도 와이너리의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고객 수만 4천 명이 넘으며, 3년이 지나야 겨우 2병을 구매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수입사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원하는 수량을 구입할 수 없고 와이너리에서 배정하는 수량만 겨우 구입할 수 있다. 이른바 얼로케이션(allocation)이다. 현재 국내에 수입되는 슈레이더 와인 6종과 로코야 와인 4종은 빈티지마다 각 60병만 배정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로버트 파커의 와인 애드버킷(Robert Parker's Wine Advocate)으로부터 100점이라도 받으면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배정 수량이 더욱 줄어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2018년 슈레이더의 간판 와인인 올드 스파키(Old Sparky) 2018 빈티지가 또다시 100점을 받는 바람에 60병 밖에 되지 않던 배정 물량이 반토막이 나 버렸다. 웃픈 현실이다. 원한다고 쉽게 만날 수 없는 와인들, 이렇게 귀한 컬트 와인들을 지난 11월 29일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 7층에 위치한 레스토랑 더 마고 그릴에서 열린 디너에서 만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이 와인들의 광신도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컬트 와인으로 손꼽히는 슈레이더와 로코야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Napa Valley)의 최상급 포도밭에서 재배한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만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나파 밸리의 카베르네 소비뇽이라고 하면 묵직하고 진한 풍미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두 생산자는 모두 견고한 힘과 탄탄한 구조를 갖췄으면서도 섬세하고 신선한 풍미가 매력적인 와인을 만든다. 전형적인 테루아 와인(terroir wine)이다. 

 

100점이 일상인 우등생 카베르네, 슈레이더 

뉴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설립한 슈레이더는 처음 출시한 출시한 벡스토프 토 칼론 카베르네 소비뇽(Schrader Beckstoffer To Kalon Cabernet Sauvignon) 2001년 빈티지가 로버트 파커 99점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다음 해엔 올드 스파키 카베르네 소비뇽(Schrader Old Sparky Cabernet Sauvignon) 2002년 빈티지로 첫 100점을 받았는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올드 스파키는 물론 CCS 카베르네 소비뇽(Schrader Cellars CCS Cabernet Sauvignon)까지 로버트 파커 100점을 받은 것이다. 두 와인이 동시에, 4년 연속이다. 와인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일이다. 지금까지 로버트 파커,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등 유수의 와인 언론으로부터 100점을 받은 것만 총 27차례. 100점이 일상인 우등생 중의 우등생, 컬트 중의 컬트 와인이다. 

 

[ 슈레이더 올드 스파키 카베르네 소비뇽 ]

슈레이더의 와인이 짧은 기간에 이토록 높은 평가를 받으며 컬트 와인의 반열에 올라선 데는 설립자인 프레드 슈레이더(Fred Schrader)와 재야의 숨은 고수였던 와인메이커 토마스 리버스 브라운(Thomas Rivers Brown)의 공이 컸다. 하지만 그 기반에는 빼어난 테루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슈레이더는 나파 밸리 최고로 평가되는 벡스토퍼 토 칼론 빈야드(Beckstoffer To Kalon Vineyard)를 비롯해 벡스토퍼 조지 3세 빈야드(Beckstoffer Georges Ⅲ Vinyard), 벡스토퍼 라 피에드라스 빈야드(Beckstroffer Las Piedras Vineyards), '모나스트리 블록 토 칼론 빈야드(Monastery Block To Kalon Vineyard)' 등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을 생산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네 포도밭의 포도만 사용한다. 특히 올드 스파키, CCS 등 슈레이더의 최고 인기 와인에 사용되는 백스토퍼 토 칼론 빈야드는 배수가 잘 되는 자갈 토양에 포도나무를 촘촘하게 식재해 풍미의 밀도가 높고 개성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생산한다. 토 칼론 빈야드의 이름은 '극상의 아름다움(the highest beauty)'이라는 의미인데, 슈레이더의 와인은 그 의미에 딱 걸맞는다고 할 수 있다.

 

[ (좌) 슈레이더 더블 다이아몬드 카베르네 소비뇽, (우) 슈레이더 CCS 카베르네 소비뇽 ]

슈레이더의 와인들은 카베르네 소비뇽 특유의 강건함을 갖추었으면서도 섬세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드러낸다. 이날 제공된 더블 다이아몬드(Double Diamond)와 CCS 또한 카베르네 소비뇽 100%의 진한 레드 와인임에도 해산물 요리와 훌륭한 페어링을 이루어 좌중을 놀라게 했다. 캐비어를 곁들인 훈제 연어 리예뜨, 코리엔더와 오이 등으로 맛을 낸 참치 타르트, 랍스터와 새우를 넣은 아뇰로티 등과 찰떡궁합을 보인 것. 와인에 대한 예단과 편견을 깰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오크빌 AVA의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드는 더블 다이아몬드 카베르네 소비뇽은 슈레이더의 와인을 받기 위해 대기 리스트에서 3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충성 고객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출시한 와인이다. 출시 즉시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만든 와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이상 숙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2018 빈티지는 붉은 꽃과 은은한 민트 허브, 시나몬 캔디 같은 가벼운 스파이스 아로마가 잘 익은 자두, 블랙커런트 풍미와 함께 고혹적으로 드러나며, 촘촘한 타닌과 깔끔한 신맛이 훌륭한 와인이다. 제임스 서클링 94점, 와인 스펙테이터와 와인 애드버킷으로부터 각각 91점을 받았다.  

슈레이더의 와인 중 올드 스파키와 함께 와인 애드버킷으로부터 가장 많은 100점을 받은 슈레이더 CCS 카베르네 소비뇽은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우아함을 격조 높게 표현한 와인이다. 흥미로운 점은 올드 스파키의 레이블에 그려진 용은 시가를 피우는 창립자 프레드 슈레이더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며, CCS는 그의 와이프인 캐럴 콜스워시 슈레이더(Carol Colesworthy Schrader)의 이니셜이라는 것. 결국 이 와인들은 둘의 아바타인 셈이라, 슈레이더 부부는 어떤 와인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지 은근히 경쟁의식이 있다고 한다. 2017 빈티지의 슈레이더 CCS는 블랙베리, 블루베리, 프룬 등 농익은 검은 과일 풍미를 벨벳 같은 질감과 함께 고급스럽게 드러낸다. 고혹적으로 감도는 감초, 다크 초콜릿, 시나몬 스틱이나 넛멕 같은 웜 스파이스 뉘앙스는 겨울의 감성과도 잘 어울리는 듯하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정찬을 위한 메인 와인으로 준비해도 좋을 것 같다. 2017년 빈티지는 와인 스펙테이터 96점, 와인 애드버킷과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95점을 받았다. 참고로 같은 빈티지의 올드 스파키는 제임스 서클링 97점, 와인 애드버킷 96점을 받아 남편이 판정승을 거뒀다.

 

서늘한 산지의 테루아를 그대로 담은 카베르네, 로코야

1995년 설립한 로코야는 나파 밸리를 대표하는 네 곳의 고산 지대에서 재배한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각각의 테루아를 표현하는 와인이다. 마운트 비더(Mount Veeder), 하웰 마운틴(Howell Mountain), 스프링 마운틴(Spring Mountain), 다이아몬드 마운틴(Diamond Mountain) 등 고도가 높고 경사가 가파른 산악 지역은 일교차가 크고 토양이 척박해 다층적인 아로마, 섬세한 타닌과 싱그러운 산미, 우아한 구조를 지닌 와인을 만들기 딱 알맞다. 로코야는 이런 산악 지역에서 재배한 포도를 효모 첨가 없이 발효해 정제 및 여과 없이 병입하는 등 양조 과정에서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여 테루아를 그대로 드러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로코야가 산악 지역의 테루아를 완벽히 드러내며 평론가들과 고객의 마음을 완벽히 사로잡은 데는 와인메이커 크리스 카펜터(Chris Carpenter)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보르도 품종, 그중에서도 특히 카베르네 소비뇽의 대가인 그는 로코야 외에도 카디날(Cardinale), 마운틴 브레이브(Mt. Brave), 라 호타(La Jota) 등 나파 밸리의 산악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으로 정평이 났다. 원래 생물학을 전공하고 국제 비즈니스/마케팅 MBA를 취득한 그는 우연히 방문한 나파 밸리에서 와인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결국 UC 데이비스(UC Davis)에서 포도 재배학과 양조학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안티노리(Antinori), 캘리포니아의 도멘 카르네로스(Domaine Carneros) 등에서 와인메이커로서 경력을 쌓으며 와인메이커의 길로 들어섰다. 근면 성실한 그는 응집된 과일 풍미와 신선한 산미, 복합적인 뉘앙스를 겸비한 포도를 얻기 위해 높은 산악 지역의 가파르고 외진 곳에 위치한 포도밭이라는 혹독한 근무 환경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덕분에 '마운틴 맨(mountain man)이라는 멋진 별명도 얻었다.

 

[ 로코야의 와인메이커 크리스 카펜터 ]

로코야는 산악 지형이 만들어 낸 천혜의 조건에서 자란 카베르네 소비뇽을 순수하게 표현했다. 겹겹이 쌓여 있는 복합적인 풍미 요소들이 조화롭게 펼쳐지며 긴 여운을 남기는 로코야의 와인들은 황홀한 느낌과 함께 묘한 애틋함을 남긴다. 특히 조화로운 밸런스와 탁월한 구조감은 10년 이상 아름답게 변화해 갈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로버트 파커로부터 9번 밖에(?) 100점을 받지 못한 게 서운할 정도.

로코야 스프링 마운틴 카베르네 소비뇽(Lokoya Spring Mountain Cabernet Sauvignon) 2017 빈티지는 특유의 꽃향기와 함께 상큼한 블루베리, 블랙베리 풍미가 부드럽고 우아하게 드러난다. 늦가을의 정원을 거니는 듯 은은하게 더해지는 낙엽과 부엽토 뉘앙스 또한 매력적이다. 포도밭은 나파 밸리와 소노마 카운티의 경계 지역인 마야캬마스 산맥 동쪽 경사면의 해발 300-640m에 위치하고 있다. 로버트 파커는 로코야 스프링 마운틴 카베르네 소비뇽을 ‘아름답고 순수하며 세련된 스타일’이라 평했으며, 2015년 빈티지는 와인 애드버킷으로부터 98점을 받았다. 

 

[ 로코야 하웰 마운틴  카베르네 소비뇽 & 로코야 스프링 마운틴  카베르네 소비뇽 ]

로코야 하웰 마운틴 카베르네 소비뇽(Lokoya Howell Mountain Cabernet Sauvignon) 2015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 특유의 강렬한 블랙커런트 풍미와 시원한 민트 풍미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입에서는 촘촘한 타닌과 섬세한 산미, 농익은 검은 베리 풍미와 어우러지는 은은한 토스티 뉘앙스가 집중도 높게 표현된다. 포도밭은 나파 밸리 북동쪽 경계를 이루는 산맥의 해발 550m 부근에 있다. 자욱하게 깔리는 안개보다 위쪽에 위치해 포도가 천천히 익으며 다양한 풍미를 형성한다. 게다가 척박하며 배수가 원활한 다공질 화산 토양에 포도가 깊이 뿌리를 내려 영롱한 미네랄이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포도를 얻을 수 있다. 로버트 파커는 로코야 하웰 마운틴 카베르네 소비뇽을 '비현실적인 밸런스를 지닌 와인'으로 표현했으며, 2015년 빈티지는 와인 애드버킷으로부터 98점을 받았다. 두 와인 모두 양갈비, 샐러드를 곁들인 프로슈토, 채끝 등심 스테이크 등 다양한 육류 요리와 영혼의 단짝 같은 환상적인 페어링을 보여주었다. 특별한 날을 위해, 혹은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날을 위해 욕심을 낼 만한 와인들이다.

그저 품질 좋은 와인이 아닌, 경외감을 느끼게 만드는 와인 슈레이더와 로코야. 컬트 너머의 컬트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와인들이었다. 나 역시 그들의 추종자가 되었으니까. 

 

 

컬트 너머의 컬트, 슈레이더(Schrader) & 로코야(Lokoya) - 와인21닷컴

컬트 와인으로 손꼽히는 슈레이더와 로코야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최상급 포도밭에서 재배한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만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나파 밸리의 카베르네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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