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네 와인공방에 갔다가 흥미로운 진을 추천받아 업어왔다. 이름하여 베르타스 리벤지 스몰 배치 아이리시 밀크 진(Bertha's Revenge Small Batch Irish Milk Gin). 이름에서부터 미스터리가 가득하다. '스몰 배치 아이리시'는 그렇다 치고, 베르타는 누구? 왜 누구에게 복수(revenge)를...? 그리고 밀크 진(Milk Gin)은 또 뭥미???
일단 수입 경위도 오묘하다. 수입사는 한독와인. 한국 와인 수입사 1세대로 부르고뉴를 중심으로 다양한 와인 포트 폴리오를 갖춘 회사다. 그러니까 와인 전문 수입사지 진이나 위스키, 코냑 같은 증류주 수입사는 아니란 말씀. 하지만 워낙 한국 내에서의 입지가 탄탄하다 보니 다양한 주류 생산자들로부터 수입 의뢰 메일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부분은 그냥 거절을 하는데, 요 진은 무슨 일인지 대표님이 관심을 보여서 수입하게 되었다는 것. 대표님이 왜 수입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는 며느리도 모른다고...
어쨌거나 '베르타스 리벤지 진'은 2015년 저스틴 그린(Justin Green)과 앤토니 잭슨(Antony Jackson)이 함께 설립한 발리볼레인 하우스 스피리츠 컴패니(Ballyvolane House Spirits Company)에서 생산한다. 둘은 케이터링과 호스피털리티, 마케팅, 와인업계 등에서 두루 경력을 쌓은 후, 스몰 배치 증류소(small-batch distilling)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아일랜드 남부 캐슬리언스(Castlelyons) 부근에 발리볼레인을 설립했다. 발리볼레인은 어린 암소들이 뛰노는 곳(the place of the leaping heifers)이라는 뜻인데, 원래는 낙농업장이었다. 저스틴과 앤토니는 음식에 대한 전통적인 자연주의 철학을 실천하는 장소로 이곳을 선택했다고.
그러면 베르타(Bertha)는 누구? 레이블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나이 지긋한 암소다. 희귀한 아일랜드 고유 품종인 드로이만(Droimeann) 품종인데, 1993년 섣달 그믐날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9마리의 새끼를 낳아 기네스 북에 등재되었다. '빅 베르타'라고도 불린 이 유명한 소는 종종 지역 박람회에 참석(?)하고, 성 패트릭 데이 축제의 선두에 서고, 지역의 암 구호 단체 모금에도 힘을 보탰던 모양이다. 발리볼레인의 두 소유주는 진의 이름을 결정하면서 지역의 전통과 생산지의 낙농업 혈통을 이어받았음을 반영하고 싶었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요소를 넣고 싶었다고.
녹색 왁스에 찍힌 소 발굽 모양도 아주 귀엽다. 역시, 마케팅을 한 사람들이라 요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듯 ㅇㅇ
그런데 지역 전통과 낙농업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표현은 그냥 미사여구가 아니다. 실제로 베르타스 리벤지 진에는 유청(whey)을 발효해 만든 알코올을 사용한다!! 그들은 "그녀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그녀를 영혼으로 돌려보냈다!!"To immortalise her memory, we have brought her back in spirit, literally!!)"는 위트 넘치는 농담을 했는데, 이는 spirit가 영혼과 증류주라는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음을 활용한 언어유희다.
하면 왜 이름이 '베르타의 복수'인가? 처음엔 진을 만드느라 우유를 빼앗겨서인가? ...-_-;;; 싶었는데, 여기엔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저 반어법 정도... 라고 해야 할까.
증류소 이름은 레이블 하단에 테이블로 붙여 놓았다. 증류소 이름보다는 브랜드 네임을 훨씬×100 강조하는 배치. 네이밍 및 제품 개발에 10개월 정도 걸렸는데, 이는 암소의 임신기간과 유사하다고. 베르타스 리벤지 진의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은 런던에서였다고 한다. 그들은 템즈 증류소(Thames Distillery)의 헤드 디스틸러 찰스 맥스웰(Charles Maxwell)을 만났는데, 그가 진의 베이스 스피릿(base spirit)으로 유청 알코올(whey alcohol)을 언급한 것. 게다가 유청 알코올이 처음 개발된 곳이 아일랜드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유레카!!
그들은 사방에 조언을 구하고 관련 책을 탐독하고, 증류 배치를 1리터 단위로 조절하며 주변 지역과 먼 지역의 보타니컬(botanicals) 등을 실험하는 등 연습을 계속했고, 결국 유장 알코올과 향긋한 보타니컬 아로마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포인트를 찾아냈다. 결국 2015년 4월 27일, 19번 배치가 첫 제품으로 탄생했다. 나랑 생일이 같다!!
내가 구입한 보틀은 배치 넘버 2060번. 와... 첫 배치 이후 2,000번 넘게 증류했구나.
재료는 유장 알코올, 샘물, 주니퍼, 고수(coriander,), 비터 오렌지, 자몽, 스위트 오렌지, 레몬, 라임, 감초(liquorice), 흰 붓꽃(orris), 안젤리카(angelica), 시나몬, 카다몸, 정향, 커민(cumin), 아몬드, 엘더플라워, 알렉산더(Alexanders, 미나리과 식물). 여기에 유치한 열정(childish enthusiasm)과 웃음(laughter), 사랑(love)을 더했다ㅋㅋ 홈페이지에는 선갈퀴(sweet woodruff)도 적혀 있는데 백 레이블에는 빠져 있다.
수익금의 일부는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아래는 공식 테이스팅 노트. 빨리 마셔보고 싶지만 바로 마실 수가 없으니.
Nose – Jaunty juniper leads, followed quickly by the spicy and warming notes of cardamon, cumin and sweet citrus. The complexity of Bertha is evident and enthralling. She demands to be tasted.
Palate – our whey alcohol base comes to the fore on the palate. Like a conductor of an orchestra, she holds and releases the different notes to maximum effect. Effortlessly smooth from the start, sweet orange, coriander and peppery Alexanders are joined in a warming motherly caress of cumin, clove and cardamon. The generous nature of the spirit washes over the palate, finishing in a gentle spice-tinted heat that delivers a considered murmur of approval from your taste buds.
디스틸러들이 추천하는 음용법은 물을 적당량 섞어서 식후주(digestif)로 즐기는 것이다. 진 토닉이나 마티니 용으로도 아주 좋다고 한다.
홈페이지에서 몇 가지 추천 칵테일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추천 진 토닉의 비율이 1:4인 게 마음에 든다. 나만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었어... ㅋㅋㅋ 토닉 워터도 나와 같이 드라이 스타일의 피버 트리 인디언 토닉(Fever Tree India Tonic)을 쓴다.
빨리 마셔 보고 싶다. 그런데 따 놓은 진이 3개나 있어서 차마 못 열고 있다. 게다가 십 스미스(SipSmith) 진은 아직 리뷰도 못했... 하나를 빨리 마셔 없애고(?) 요걸 먼저 열어야지ㅋㅋㅋㅋ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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