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카 포뮬라(Antica Formula). 지난번 세찌상회 방문 때 사 온 베르무트 로쏘(Vermouth Rosso)다.
집에서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초기에는 사실 베르무트 로쏘가 너무나 입맛에 맞지 않아서 다시 구매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네그로니(Negroni)에 맛을 들인 데다 맨해튼(Manhattan)이나 뷰 카레(Vieux Carré) 등 다른 칵테일에도 베르무트 로쏘가 제법 쓰이다 보니, 다시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티니 로쏘(Martini Rosso)나 친자노 로쏘(Cinzano Rosso) 같은 거 말고 좀 제대로 된 녀석으로.
그래서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네임드 베르무트를 4가지 정도 리스트 업 했는데, 첫 번째로 선택한 녀석이 바로 요 안티카 포뮬라다. 아무래도 베르무트의 원조라니 가장 먼저 써 봐야 할 것 같았고.
사실 이것저것 다 사서 비교해 보고 싶은데, 이것도 일종의 주정강화 와인이다 보니 보존성이 그다지 좋지 않다. 보통 1~3개월 이내에 소비하라는 가이드도 제대로 못 지키는 상황인데, 이걸 여러 개 사서 한꺼번에 오픈하면 2/3 정도는 버려야 할 상황이다. 게다가 용량도 1L인 경우가 많다. 아니, 보존성도 안 좋은 베르무트를 왜 750ml도 아니고 1L로 만드는지... 375ml로 만들어도 아쉬울 판국에.
어쨌거나,
흥분했는지 깜빡하고 보틀 전신샷을 찍지 않고 알루미늄 포일을 뜯어버렸다;;; 레이블은 아주 클래식하다. 첫 출시 시절의 레이블을 재현한 거라고. 예전에는 철제 틴에 담겨 있었는데, 최근엔 환경 이슈(?) 등으로 철제 틴과 함께 수입할 경우 세금이 대폭 상승하기 때문에 틴은 수입되지 않는다고 한다.
가격은 세찌상회에서 5.8만 원.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지만 해외가와 비교하면 오히려 리즈너블한 수준이다. 예전부터 5만 원대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던 듯.
안티카 포뮬라는 1786년 안토니오 베네데토 카르파노(Antonio Benedetto Carpano)가 토리노(Torino)에서 처음 개발한 일종의 주정강화 와인으로, 베르무트의 시조로 불린다. 몇 년의 연구를 통해 완성된 그의 베르무트는 당시 유럽 왕실 등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인기가 치솟았고, 1898년 그의 자손들이 공장을 설립해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나중에 프랑스의 노일리 프랏(Noilly Prat) 쪽이 드라이 베르무트 계열로 갈려져 나가면서, 안티카 포뮬라는 스위트 베르무트 계열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그래서 대략 '프렌치 베르무트 = 드라이 베르무트 = 베르무트 비앙코', '이탈리안 베르무트 = 스위트 베르무트 = 베르무트 로쏘'로 일반화할 수 있다. 실제 생산국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에 따른 분류임을 유념해야 한다.
어쨌거나 안티카 포뮬라는 2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최초의 레시피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재료는 와인, 설탕, 알코올, 내추럴 향신료, 물. 홈페이지에 따르면 사용하는 와인은 로마냐(Romagna), 풀리아(Puglia), 시칠리아(Sicily)에서 수급한다고 한다. 토리노에서 처음 개발한 베르무트의 원조가 왜 '베르무트 디 토리노(Vermoouth di Torino) DOC'가 아닌지 궁금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안티카 포뮬라를 대표하는 향신료인 바닐라는 마다가스카, 파푸아 뉴 기니, 타히티 등 열대 섬에서 나오는 최고 품질만 사용한다. 이외에도 사프란 등 최고급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다고.
레이블 하단에는 로트 번호와 보틀 넘버가 쓰여 있다. 배치 별로 품질 관리를 하는 듯.
일단 기존의 친자노 로쏘와는 어떻게 다른지 잘토 디저트 와인 글라스에 따라서 맛을 보았다.
Carpano, Antica Formula / 카르파노 안티카 포뮬라
밀도가 높지 않아 투명한 브라운 앰버 컬러에 짙은 오렌지 휴. 코를 대면 바닐라 향과 함께 달콤한 체리와 설탕 묻힌 말린 살구, 건포도, 말린 무화과 풍미에 살구씨나 아몬드 뉘앙스, 톡 쏘는 스파이스와 정향 같은 스위트 스파이스가 진하게 곁들여진다. 입에 넣으면 예상치 못한 신맛과 오렌지 속껍질 같은 쌉쌀함, 그리고 약간의 수렴성이 드러난다. 목 넘김 후에야 비로소 처음에는 강하게 느끼지 못했던 단맛이 살짝 드러나는 듯. 길게 이어지는 신맛과 단맛, 쌉쌀함의 밸런스가 절묘하게 맞는 느낌이다. 이 정도면 칵테일에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냥 식후주로 가볍게 한 잔 마셔도 괜찮을 수준. 기존에 사용했던 친자노 로쏘와는 아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풍미의 스펙트럼도, 품격도 차원이 다른 베르무트다. 이걸로 네그로니를 만들면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심지어 미토(Mi-To)나 아메리카노(Americano)를 만들어 마셔도 맛있을 것 같다.
혹자는 바닐라 향이 너무 강해서 네그로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던데, 생산자는 물론 다수의 평론가들도 네그로니, 맨해튼 등에 최적이라는 의견이다. 아, 마르티네즈(Martinez)도 빼놓을 수 없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게 될 것 같다. 1L라 병을 비우는 데 아무리 빨라도 6개월은 걸릴 것 같으니... 잘 지내봅시다.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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