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주 제조 마스터 과정 마지막 수업, 진 제조 과정 실무. 방배동 한국 가양주 연구소 강의실에서 소형 알렘빅 증류기에 진 바스켓을 달아 직접 6리터를 증류했다.
진은 제조 원가는 저렴하지만 비교적 비싸게 팔 수 있는 술이다. 게다가 숙성할 필요도 없어 증류소의 현금 흐름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 최초의 몰트 위스키 증류소인 쓰리 소사이어티에서도 위스키 출시 전 '정원 진'이라는 진을 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국내 주류법 상 진은 일반증류주에 속하므로 주정으로도 생산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제조원가는 훨씬 저렴해진다. 물론 직접 증류해 원료의 풍미가 드러나는 원액으로 만든 진이 훨씬 고급이긴 하지만. 허브 침출 효과가 좋은 증류주 도수는 40~60% 정도이므로, 주정을 사용할 때도 해당 도수로 희석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진 제조 방법은 크게 3가지.
- 침출 : 술에 허브를 직접 담근다. 씨앗 등 증기로 추출하기 힘든 경우에 주로 사용한다. 하루 정도 침출하는 게 좋은데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밀봉하는 것이 중요하다. 침출은 온도가 높을수록 작 되지만 섭씨 20도 정도의 실온이면 충분하며, 겨울 등 온도가 낮을 때는 추출 시간을 늘리는 게 좋다.
- 알코올 증기 통과 : 진 바스켓에 보태니컬들을 넣고 증류기의 증기를 통해 향을 추출하는 방법이다. 입, 꽃, 줄기 등 부드러운 재료에 주로 사용한다.
- 조합 : 침출과 증기 등으로 만든 다양한 원주들을 블렌딩해 만든다. 예를 들어 코리앤더, 주니퍼베리, 오렌지 필 등을 같이 쓸 때 각각 따로 만든 후 추후에 최적의 비율을 찾는다.
진이라고 하면 한국에서 노간주나무 열매라고 불리는 주니퍼 베리는 기본적으로 들어가며, 오렌지 필, 레몬 필 등 시트러스 계열 재료는 사용하는 것이 좋다. 고수 열매인 코리앤더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동남아 음식점에서 만나는 고수 향과는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레몬 같은 시트러시함이 강하며, 향긋한 허브가 곁들여지는 느낌. 맥주에 사용하는 홉은 조금만 넣어도 향이 매우 강하니 주의해야 한다.
허브는 증류할 술 대비 0.1%~1% 정도 사용한다. 1% 이상 사용하면 향이 너무 과해 지니 주의해야 한다. 1리터 당 10g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는 뜻. 300리터를 증류한다면 0.3~3kg 정도의 허브가 필요하다는 얘긴데, 최소량과 최대량의 차이가 상당히 커서 레시피를 잡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진을 위한 증류주는 다단식 증류기를 사용해 원료의 향이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는 깔끔한 술을 만드는 것이 좋다. 향미 재료로는 지역의 다양한 특산물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꽃, 허브, 과일이나 착즙 과즙은 물론 바다에서 나는 해초 등도 충분히 사용 가능하다. 아일랜드에는 다시마로 만든 진도 있다고. 심지어 대게 같은 재료도 충분히 활용 가능할 수 있다. (정말?)
씨앗을 침출할 때는 빻지 않아도 되지만, 침출을 하지 않을 때는 빻아서 쓰는 것이 향이 잘 난다. 오렌지 필, 레몬 필 등은 보통 말려서 쓰지만, 말려서 쓰지 않을 땐 사용할 무게의 10 정도는 써야 원하는 양이 난다. 예컨대 1g 쓰려면 10g을 넣어야 한다는 얘기.
침출용 술로 주정을 사용할 때는 특유의 주정취를 없애기 위해 활성탄 여과를 한 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약주나 청주를 만들 때도 알코올 함량을 높이고 바디를 강화하기 위해 주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도 활성탄으로 여과한 주정을 사용한다고.
<진의 모든 것>이라는 책에 진에 많이 사용되는 재료들이 소개되고 있으니 참고.
진을 증류할 때는 감압 증류가 메리트가 있다고 한다. 감압증류는 원료의 향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소주를 증류할 때는 의외로 은은한 과일향을 잘 표현한다고. 진의 경우도 가볍고 섬세한 향을 내는 데 상당히 유리하다고. 씨앗 등을 사용하면 메탄올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초류를 1~3% 정도 충분히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은 숙성이 필요 없는 술이며, 하더라도 3개월 이내로 짧게 한다. 너무 오래 하면 외려 보태니컬의 향이 손실되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진 바스켓. 구멍이 제법 크다 ㅎㅎ
소장님이 사용하신 허브. 뭔가 줄기와 잎 부분의 허브가 많이 사용됐다.
나중에 완성된 진에서 민트 향이 상당히 진하게 느껴졌다. 특징이 명확한 진.
증류 시작.
냉각통도 상당히 고전적인 스타일 ㅎㅎㅎ
중앙에서 진 2리터를 내리는 동안, 수강생들은 각각 자신의 진 레시피 만들기를 했다. 300ml를 플라스크에 증류해서 100ml의 진 만들기다.
재료들. 계피, 진피, 시트라 홉, 회향, 레몬 필, 오렌지 필, 통후추, 정향, 산초. 주니퍼 베리와 코리앤더는 별도로 준비됐다.
진 레시피를 만들기 위한 시트.
내가 고른 재료들. 시트러시한 진을 만들고 싶어서 진피와 코리앤더의 비율을 높였고, 모든 재료를 고루 사용했다.
플라스크에 증류하는 중. 상당히 빨리 된다.
고른 재료에 따라 우러나는 색이 상당히 다르다.
내 건 비교적 선명한 노란색이었는데, 오렌지 빛이 강하거나 연둣빛이 진하게 감도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사용한 레시피. 처음 만든 것은 향은 나쁘지 않았는데 입에 넣었을 때 진 다운 깔끔한 맛이 부족했다. 그래서 두 번째는 레몬 필과 오렌지 필, 진피, 산초의 비율을 조금씩 줄이고 주니퍼 베리의 비율을 살짝 높여 보았음. 계피는 다르게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비슷한 비율을 사용한 것 같다. 두 번째 것은 향도 훨씬 명확하고 입에서의 질감 또한 훨씬 나았다.
나중에 실제로 진을 만들게 된다면, 최적 블렌딩 비율을 찾아 표준 레시피를 정립한 다음 재료의 상태와 결과물의 미묘한 차이에 따라 비율을 조금씩 수정하면서 완성본을 만들어야 할 듯. 상당히 세심한 작업이 될 것 같다.
전체 수강생의 작품을 쭉 전시하고 시향/시음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고, 전체적인 평가도 제일 잘 받았던 것은 의외로 레몬 필과 오렌지 필 등 시트러스 계열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정향을 아주 많이 써서 특징을 드러낸 진이었다. 확실히 너무 많은 재료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보다는 몇 가지 대표적인 재료의 풍미를 명확히 살리는 게 고객의 선택을 받는 데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진은 별도의 카테고리가 아닌 기타 증류주로 취급되고 있고, 특별히 언급할 수 있는 명칭 또한 없는 상태다. 물론 해외로 수출할 때는 Gin이라는 명칭을 그냥 사용하는 게 맞겠지만, 국내 마케팅이나 세일즈 시에는 뭔가 한국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명칭이 있는 게 유리할 것 같긴 하다.
그리고 수업 후에 진행된 간단한 수료식. 병영 소주의 따님이 같은 반에 계셨는데, 감사하게도 졸업 선물로 병영 소주 세트를 보내주셨다. 아버지와 함께 마시며 진지하게 테이스팅 해 봐야지...
수료증. 3개월에 걸친 100시간의 교육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렸다. 술샘, 예산 사과 와이너리(추사), 술아원, 농촌진흥청, 태산 양조장, 한영석 누룩 연구소 등을 방문해 직접 증류하는 모습을 직접 견학할 수 있었던 건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나중에 꼭 내 술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결국 망설이던 명주반 수업을 등록하게 만들었다는. 평일 저녁 수업이라 쉽지 않겠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졸업 작품(?)과 병영 소주. 졸업 작품 진으로는 조만간 진 토닉과 네그로니를 만들어 볼 예정.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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