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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증류주 제조 마스터 과정

죽력고 송명섭 명인의 태인 양조장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2. 3. 1.

죽력고와 송명섭 막걸리로 유명한 송명섭 명인의 태인 양조장.

 

마당에 쭉 늘어선 항아리가 인상적인데 예전에 일하던 분들이 먹던 음식(?)을 담던 항아리라고.

 

한편에는 소줏고리를 가열하는 아궁이가 있다.

 

황토를 개어서 돌과 기왓장 사이를 메워 만든 소박한 아궁이다. 

 

송명섭 명인은 죽력고로 무형문화재이자 대한민국 식품 명인으로 지정된 분이다. 

 

나름 신경을 쓰신 듯한 드레스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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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작업현장을 빠르게 휙 둘러봤는데, 양조장 자체는 보여주지 않으셨다. 

 

여긴 누룩을 만들고 법제하는 곳. 

 

법제하는 곳에는 벌레 등이 들어가지 않도록 망을 씌워 두었다. 

 

누룩을 부숴 놓은 건데 밀알이 또렷하게 살아있다. 밀을 분쇄하지 않고 그대로 쓰신다는 듯.

누룩은 매우 호기성이기 때문에 누룩균이 잘 들어가도록 푸석하게 만든다고 한다. 사실 옛 문헌에는 누룩을 따뜻한 곳에서 띄우라고 되어 있고 일반적으로도 그렇게 하지만, 명인은 겨울 영하의 온도에도 밖에 놔둔다고 한다. 겨울이라도 공기만 잘 통할 수만 있으면 누룩이 잘 뜬다고. 그러시면서 늦가을에 띄운 메주를 겨울에도 처마 끝에 매달아 두는 것을 예로 드셨다.

 

누룩은 손가락 2마디 두께로 만든다. 가운데 얇아지는 부분도 밖에서부터 두 마디 길이부터다. 사용하는 밀은 최아(催芽) 상태. 최아란 싹이 뚫고 나오기 직전의 낱알인데, 누룩이 낱알 스스로 가지고 있는 효소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아를 사용하는 거라고.

 

실내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강의 시작. 너무 호통을 많이 치셔서 전날 마신 술이 저절로 다 깼을 정도. 그래도 참 유익한 강의였던 것 같다.

 

띄우고 있는 누룩을 하나 들고 들어오셔서 현미경으로 보여주셨다.

 

실제로 낱알 모양이 살아있는 게 그대로 보인다.

 

들고 계신 병은 식초를 증류한 것. 식초를 증류하면 식초 향이 넘어간다고 한다. 시어버린 술을 증류하면 안 된다는 얘기. 먹기도 아까운 술을 증류해야 좋은 술이 나온다는 지론이다.

다른 곳에서 들은 내용과는 살짝 다르지만, 요지는 증류용 술도 정성껏 잘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돌로 만든 소줏고리. 실제로 사용하시는 것 같다.

 

일종의 진 바스켓이라고 할 수 있는 바구니가 중간에 끼어 있다. 죽력고를 만들 때는 저기에 죽력에 담근 대잎, 솔잎, 생강, 석창포, 계심 등 약재를 넣어 넣어 풍미를 추출한다. 

 

죽력고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죽력. 만드는 데 5일 정도 걸린다고. 만드는 방법은 소개 책자에 잘 나와있다. 3년 이상 자란 튼튼한 대나무를 골라 마디와 마디 사이를 자르고 2cm 두께로 쪼갠다. 쪼갠 대나무로 항아리 안을 촘촘하게 채우고 항아리 입구를 막는다.

 

그리고 황토를 버무려 항아리 전체에 붙이고 콩떼를 두르고 불을 지핀 다음 왕겨를 부어 불길이 서서히 타들어가도록 한다. 이후 황토를 떼어낸 다음 죽력을 따라내면 완성.

죽력 만드는 데는 5일 정도 걸리는데, 그동안 다른 약재가 마른다. 그렇게 마른 약재를 죽력에 담그면 죽력을 쭉 빨아먹어 죽력이 잘 흡수된다고.  

 

위에서 설명한 대로 소줏고리 중간 부분에 재워놓은 약재를 넣은 후 증류한다. 그런데 이렇게 증류하면 증류주의 색은 투명해야 하는데 희한하게도 죽력고는 가벼운 호박색을 띤다. 증류주라면 투명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컬러가 있는 것.

그렇다고 증류 후에 다른 재료를 첨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죽력고에 컬러가 있는 이유는 명인도 명확히 모르고 과학적으로 설명도 되지 않는다.  다만 류인수 소장님의 추측에 따르면, 증류 중에 죽력액 등이 튀어서 증류액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라고. 

 

그런데 사온 병을 보니 침전물도 상당히 많다. 이 정도 침전물이면 죽력이 튀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죽력을 섞는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진실은 저 너머에...

 

태인 양조장에서는 죽력고를 만드는 모습을 견학하거나 시음을 할 수 없다. 심지어는 팔지도 않으신다. 본인은 명인이지 장사꾼이 아니므로 자신의 술을 팔기 위해 시음을 시키지 않는다고. 터미널 앞 태인 마트에서 살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죽력고는 전통주이므로 온라인으로도 살 수 있지만, 가격이 몇 년 전 보다 많이 올라서 한 병에 9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태인 마트에서는 7만 9천 원에 판매하고 있어서, 한 병 사 왔다. 

오래전부터 스윙 탑 보틀을 쓰고 계신데 솔까 디자인이 좀 아쉽다. 술의 품질에 상응하는, 최소한 포장 박스와 어울리는 병으로 바꾸시면 어떨까 싶지만... 병 디자인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시는 듯.

 

이외에 밑술 양조에 대한 얘기도 하셨다. 보통은 고두밥을 널어놓고 식히는 경우가 많은데, 명인님은 고두밥을 찬물에 그대로 넣어서 식힌다. 청명향 만드는 문헌을 참고하신 것인데, 빨리 식는 데다 맑은 물이므로 균에 오염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이때 식힌 물은 식히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나중에 1:1 비율로 물을 섞는다고.

발효 온도는 여름에도 섭씨 20도를 넘지 않는다. 저온 발효를 선호하시는데, 동치미도 살얼음이 얼락 말락 할 때 익은 게 맛있는 것처럼 술도 낮은 온도에서 발효해야 맛있기 때문이라고. 과거 주방문을 찾아봐도 술 온도 얘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조선시대에 가장 술을 많이 만드는 시기는 동짓달 얼음이 얼락 말락 한 시기라고. 왜냐 하면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시기가 대보름인데, 그 100일 전에 술을 만들기 때문이다. 대보름에는 귀밝이술이라고 해서 아이들까지도 술을 먹이니까. 유명한 삼해주도 엄동설한에 만드는 술이라고.

증류 시 냉각수 온도 또한 18도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지하수를 냉각수로 사용하는데 온도가 섭씨 14도 정도라고.

술이 기화하기 시작하는 온도는 -141도. 술의 향기는 따라 놓은 잔에서부터 날아가기 시작하므로 양조 및 증류 온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 

 

깜짝 놀란 게 가야(Gaja)에서 만든 그라빠(Grappa di Barbaresco)가 있었다는 것.

 

나중에 맛을 보았는데 톡 쏘는 스파이시함과 부드러운 주질이 역시 좋았다. 그런데 술지게미를 증류한 술이 한국에도 있다고. 50도 이상의 술이 나오는데 쌀과 누룩의 풍미가 많이 드러난다고 한다. 최근에 들은 바로는 원래 술지게미로 술을 만드는 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는데, 최근에 법이 개정되어 술지게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곧 술지게미를 활용한 증류주가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깜짝 놀랐던 건 한 잔씩 맛보라고 돌려주신 병영 소주. 레이블도 없는 병에 들어 있었는데 밸런스가 너무 좋고 주질이 부드러워서 달콤한 맛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나중에 병영 소주 따님의 얘기를 들어 보니 오래전에 증류해서 선물한 보틀이고 숙성 또한 오래된 것 같다고. 현재는 맛도 스타일도 상당히 달라졌다고 한다.

 

태인 합동 주조는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지정돼 있다. 그런데 시음도 구매도 안 되면 방문자들이 살짝 황당할 것 같은데...

 

점심은 내장저수지 바로 옆에 위치한 호수장에서.

 

민물 매운탕이 상당히 맛있어서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비웠다. 한영석 누룩 연구소에서 가져오신 술도 반주로 곁들였는데 사진 찍을 정신도 없었던 모양. 그중 한 종류는 상당히 맛있었는데...

 

주변 경치가 참 아름답다 싶었는데, 검색해 보니 내장산 국립공원 부근이다.

 

나중에 단풍이 들 무렵 다시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운탕도 한 그릇 하고.

 

20220213 @ 태인 합동 주조 (정읍시)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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