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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냥의 취향/음식점

제주시의 조용하고 편안한 와인 바, 폴레(Paulee)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2. 4. 3.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와인바, 폴레(Paulée). 근처는 상당히 번잡한 편인데, 와인바의 외관은 포스가 넘친다.

 

주변 분위기 때문인지 창을 고급진 자줏빛 커튼으로 모두 가려 두었다. 외부에는 메뉴판이 놓여 있어 미리 종류와 가격을 확인할 수 있다.

 

착석. 딱 필요한 커틀러리와 앞접시만 정갈하게 놓여 있다. 혼자 이렇게 정찬을 즐기는 건 오랜만인 듯.

 

내부는 번잡스러웠던 외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메뉴판은 테이블 별로 하나씩 세워져 있다. 계속 메뉴판을 달라고 부를 필요는 없는 상황. 홀을 소믈리에 한 분이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선택인 것 같다.

 

가게 이름인 폴레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와인바이므로 주류 주문은 필수다. 와인 반입도 허용은 되나 콜키지가 5만 원이다. 한 마디로 꼭 마시고 싶은 기념 와인이 아니라면 들고 오지 말라는 얘기. 그래도 완전 금지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반입을 허용한다는 건 나름 유도리 있게 운영하신다는 의미인데, 경험을 해 보니 실제로 그랬다. 젊은 소믈리에님이 조근조근 설명도 잘해 주시고, 와인에 대한 열정도 넘쳐 보였달까.

 

요리는 단출하지만 먹고 싶은 것투성이다. 가격도 상당히 리즈너블 하고, 나중에 보니 양도 적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서양식 말고기 육회, 현무암 뇨끼, 

 

수제 소시지와 흑돼지 육포를 골랐다. 와인 한 병을 비우며 혼자 즐기기엔 충분함을 넘어 넉넉했던 양.

 

와인 리스트. 글라스 와인으로 뫼르소(Meursault)를 사용하는 게 특이했는데, 생각해 보니 가게 이름과도 연결되는 것이 나름 센스 있는 선택이었다. 낯익은 생산자와 모르는 생산자가 섞여 있었는데, 소매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레스토랑용 와인들로만 구성돼 있다.

 

가격은 6만 원대 중반에서 시작해 40만 원대까지 올라간다. M. Chapoutier의 Ermitage "L'Ermite" 2010 같은 건 '싯가'다^^;; 주력 가격대는 7-16만 원 정도니까, 이런 스타일의 와인바 치고는 정말 리즈너블 한 편이다.

 

최근 인기가 많은 쥐라 지역과,

 

론 지역 리스트. 소믈리에님이 최근 론에 관심이 많다는데, 그래서 리스트 말미에 두 생산자를 스페셜 셀렉션으로 따로 뽑아두었다. 

 

부르고뉴. 상승하고 있는 가격이 실감이 난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내 사랑 부르고뉴...ㅠㅠ

 

스페셜 셀렉션은 도멘 포리(Domainr Faury)와 도멘 자메(Domaine Jamet). 도멘 포리는 가격도 괜찮아서 많이들 선택할 것 같다. 나도 포리를 시켜 볼까 살짝 흔들렸는데, 더 궁금한 와인이 있어서...^^

와인 리스트에서 조금 아쉬웠던 건 글라스 와인을 레드, 화이트로 1~2종씩은 갖췄으면 어땠을까 싶다는 것. 또한 혼자 온 고객이나 다양한 와인을 즐기고 싶은 고객을 위해 하프 보틀 리스트를 만들거나 글라스 페어링 코스를 운영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글라스 와인을 운영하려면 고객 수에 따른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주말에만 운영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리스크를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와인을 고를 때 마시고 싶은 스타일을 얘기하면, 소믈리에님이 여러 와인을 꺼내와서 직접 설명해 주신다. 그냥 말로만 하는 것보다는 레이블을 보여주면서 하는 설명이 더욱 와닿고 좋은 듯. 사실 레이블의 모양도 와인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으니. 그리고 이름은 몰랐지만 레이블을 보고 아는 와인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도 있는 거고. 

소믈리에님은 도멘 포리의 생 조셉(Saint Hoseph)과 코트 로티(Cote Rotie)를 밀었지만, 그리고 나도 매우 흔들렸지만...

 

결국 조금 더 궁금했던 요 와인을 선택했다.

 

빈티지가 쓰여 있지 않아서 이상하다 했는데 2011년을 중심으로 2004년, 2007년 빈티지를 혼합했다. 사용한 품종 또한 피노 누아(Pinot Noir)를 메인으로 풀사르(Poulsard)와 트루소(Trousseau) 같은 쥐라 토착 품종들을 블렌딩 했다. 과거에 샤토 오너를 위한 하우스 와인의 전통에 기반해 만든 와인이라고. 숙성할 필요 없이 곧바로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가벼운 와인이다.

 

 

Vin Rouge "Réserve" | Château d'Arlay

La Réserve est issue d'un assemblage classique des 3 raisins rouges du Jura : Pinot Noir, Trousseau et Poulsard. A cette méthode courante dans le Jura, nous avons apporté notre touche personnelle : elle est composée d'une assemblage de 3 millésimes, 2

www.domaine-arlay.com

위는 홈페이지 설명. 아래는 백 레이블의 구글 번역.

A little Poulsaed, Trousseau and a lot of Pinot Noir, a touch of 2004, a little 2007 and especially 2011, that's how we carefully crafted this Reserve. It perpetuates our tradition of "house wine", prepared in the past by the wine merchants of the Château for the master of the place who honored his guests with it.

 

Chateau d'Arlay, Reserve Cotes du Jura

밝은 루비 컬러에 가벼운 페일 림이 보이는 듯하다. 스모키 미네랄과 영롱한 붉은 베리, 체리 풍미가 세이버리 한 허브 아로마와 감초 힌트와 어우러진다. 제법 강한 산미와 드라이한 미감, 그리고 상대적으로 밀도 높게 두드러지지 않는 과일 풍미. 덕분에 목 넘김 후 피니시까지 깔끔하게 떨어진다. 스월링을 하다 보니 가벼운 땅콩 향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고. 잘 익은 부르고뉴 지역 단위 피노 누아와 유사한 느낌이랄까.

 

글라스가 상당히 예뻐서 베이스를 보니 요런 로고가 있다. 제법 고급 잔인 듯. 

 

바게트를 별도로 주문하지 않았는데 기본으로 제공해 주셨다.

 

서양식 말고기 육회. 와인식초와 딜에 절인 배가 바닥에 깔려 있고, 간장 아이올리 소스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잣을 곁들였다.

 

바닥에 깔린 배가 신의 한 수. 곁들여 먹으면 담백한 말고기의 맛과 어우러져 훨씬 풍성해진다.

 

와인과도 적절한 궁합.

 

화이트도 한 잔 시킬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와인을 가지고 오셨다. 글라스로 파는 뫼르소를 한 잔 서비스로 주시겠다는 것. 감사하게도 귀한 와인을...

 

지금보다 온도가 조금 높은 상태에서 현무암 뇨끼와 궁합이 좋다며, 한 모금 정도 남겨서 온도를 조금 올려서 같이 먹으면 좋다고.

 

오크드 샤르도네 글라스 역시 신경 써서 고른 티가 역력하다. 

 

Domaine Albert Grivault, Meursault Clos du Murger 2017

특유의 깨 볶는 향이 가장 먼저 드러난다. 비누 같이 퍼퓨미 한 아로마와 석고 미네랄이 살구 같은 핵과 풍미, 산뜻한 산미와 매력적으로 어우러진다. 가벼운 화이트 초콜릿 같은 힌트가 느껴지는 듯하며 뫼르소 하면 떠오르는 버터리한 뉘앙스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 밸런스가 상당히 좋은데 왠지 모르게 달콤한 노란 과일 퓌레 같이 포근한 질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피니시가 살짝 짧은 느낌이었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화이트 와인. 

도멘 알베르 그리보는 뫼르소의 터줏대감 같은 와이너리로 현지에서의 평가는 더욱 높다고 한다. 1879년 구입한 Clos des Perrieres는 모노뽈인데, 그랑 크뤼 급 평가를 받고 있다고. 

 

백 레이블을 보니 와이너(Winer)에서 수입하는 와인이다. 역시... 이승훈 소믈리에님 와인 잘 고르신다.

 

현무암 뇨끼. 먹물로 컬러를 낸 옥수수 감자 뇨끼에 말린 토마토와 체다 모르네 소스를 곁들였다.

 

와, 일단 비주얼부터 감탄이 절로... 맛 또한 훌륭하다. 쫀득한 식감에 구수하고 크리미 한 맛... 소스까지 핥핥 했다능. 

 

제주산 흑돼지 육포. 생각했던 스타일이랑은 좀 다른데, 소믈리에님이 일반적인 육포 스타일이 아니라고 미리 말씀해 주셨다.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외려 안주가 부족할 때 시키기엔 여러 모로 좋은 아이템이다. 양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고.

 

제주산 백돼지로 만든 수제 소시지. 제주콩 된장 토마토 소스와 매쉬드 포테이토를 곁들였는데 이게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저 된장 토마토 소스는 따로 사고 싶을 만큼 감칠맛이 폭발하는 담백한 맛인데, 소시지와도 무지 잘 어울린다.

 

디저트도 서비스로 드셨다. 천혜향에 견과류를 뿌렸는데 상큼 고소한 것이 마무리로 딱 좋았다. 남김없이 싸악 흡입함.

 

화장실 내부. 화장실이 외부에 있는 경우 청결하지 않거나 시설이 노후된 경우가 많은데, 여긴 호텔 화장실 뺨칠 정도로 청결했다. 아로마 향까지 피우셔서 향기도 좋고. 이런 것까지 신경 쓰시는구나... 싶어서 다시 한번 감동했던.

 

제주도청에서 가까운데, 여행객들이 묵는 숙소나 대중음식점들이 많이 위치한 곳이다. 일부러 숙소를 이곳에 잡아서라도 방문하고 싶은 곳.

혼자 왔는데도 전혀 심심하거나 뻘쭘하지 않을 정도로 환대를 받았다. 소믈리에님은 셰프님과 친분이 있어 돕고 있는 상황인데, 언젠가 자신의 가게를 내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한다. 현재의 폴레도, 미래의 소믈리에님의 가게도 단골 삼고 싶은 곳이다. 다음 제주 방문 때도 들르지 않을까 싶네. 

 

20220326 @ 폴레(제주시 연동)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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