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의 핫한 내추럴 와인 바, 팁시(Tipsy)

한남동에 위치한 내추럴 와인 바, 팁시(Tipsy).

 

tipsy는 '약간 취한' 정도의 뜻인데, 정말 적당히 취하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

 

군더더기 없는 테이블 세팅.

 

바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야외 테라스(?) 쪽에 2인 중심의 테이블이 몇 개 있다. 상당히 좁은, 아지트 분위기의 술집.

 

메뉴판. 맨 위에는 예약자인 친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메뉴를 상황에 맞게 바꾼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손님 하나하나를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어서 여려 모로 기분이 좋다. 주문한 모든 음식이 다 개성 있고 맛있었는데, 양이 적기 때문에 여럿이 가면 하나씩 다 먹어보게 될 것 같다. 

 

와인을 고를 땐 원하는 취향을 얘기하면 여러 병을 제안해 주는데, 소믈리에님이 상당히 상세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신다. 리스트도 상당히 충실한 편. 대략 8만 원대~수십만 원대의 와인까지 다양하다. 대충 훑어봤지만 특히 펫낫/스파클링/화이트 리스트가 좋았던 듯.

 

 

스타트로는 펫낫/스파클링을 추천받았다. 단연 눈길을 잡아끈 것은 맨 오른쪽의 멍멍이 레이블. 피노 그리로 만든 펫낫인데 껍질의 핑크빛을 예쁘게 살린 것도 마음에 들었다.

 

결정.

 

Christophe Lindenlaub, En liberte Pet Nat 2020

펫낫 특유의 미소 된장(?) 같이 가볍게 꿈꿈한 뉘앙스가 가볍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톡 쏘는 느낌에 입 양옆이 순간적으로 조여드는 느낌이 들 정도의 상큼한 신맛. 딱 쌉쌀함을 뺀 자몽 주스 같은 풍미가 느껴졌으며, 피니시에서 자몽 속껍질 같은 수렴성이 아주 가볍게 느껴졌다. 레이블만큼이나 풍미도 마음에 들었던 펫낫.

네이버에서 생산자를 검색해 보니 내추럴 쪽에서는 제법 유명한 생산자라는 정도의 소개만 나올 뿐. 레이블에 소개된 홈페이지를 접속해 보니 공사 중... 그래, 오늘은 알자스(Alsace)에서 좋은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시바견(?)이 등에 매고 있는 인형은 쿠마몬인데, 일본 쿠마모토 현의 캐릭터라고. 우리나라로 치면 펭수처럼 의외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ㅋㅋ

 

아귀 간 슈. 한 입에 없어지는 게 아쉬웠을 정도로 맛있었다. 풍미는 진하지만 부드러워서 스타터로 제격.

 

사워 도우. 다시마 버터가 신의 한 수다. 근데, 빵 좀 더 주세요ㅠㅠ

 

블루치즈 소스와 민트를 더한 비트. 반찬(?)으로 좋다ㅋ

 

모렐 버섯을 곁들인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태운 대파와 유자를 곁들인 고노와다 파스타. 밸런스 완벽하다. 이런 건 1인 1접시 먹어야 하는데...

 

나의 원픽, 양고기 만두, 위에 올라앉은 당근과 쯔란이 킥. 따로 먹어도, 곁들여 먹어도 맛있다. 만두소에 쫄깃한 고기와 오돌뼈처럼 오돌오돌한 뭔가가 섞여 있어서 아주 재미있다. 이것도 역시 혼자서 한 판 먹어야 직성이 풀릴 만한 맛. 양도 그렇고.....

 

두 번째는 레드 와인으로. 보졸레를 마시고 싶었는데 다른 지역/품종에 비해 보졸레 라인업은 살짝 아쉬웠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미셀 가이에의 트루소(Michel Gahier Trousseau). 오래전부터 궁금했는데 이제야 만나는구나.

도멘 미셀 가이에(Domaine Michel Gahier)는 쥐라(Jura) 지역 몽티니 레 자르쉬르(Montigny-les-Arsures) 마을에 있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1874년 현재 소유주 미셀의 증조할아버지가 포도농사, 목축 등을 비롯한 복합 농사 형태로 와인 양조를 시작했고 현재 4대째 이어지고 있다. 미셀은 1983년 아버지와 함께 포도재배와 양조를 시작했는데 이 시기부터 유기농법, 비오디나미 농법 재배와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는 실험적인 양조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그의 자연 친화적 성격과 화학비료 등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는데, 초기 내추럴 와인메이커들이 그렇듯 주변 지인들과 소믈리에들 사이에서 이단아로 취급받았다고. 그의 내성적인 성격과 은둔자적 기질도 그런 평가를 더욱 부추겼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명실상부 쥐라를 대표하는 생산자로 인정받고 있다.

소유한 포도밭은 약 7ha 정도인데, 트루소 품종은 총 2.7ha다. 클뤼소(Clussot)는 평균 50년 수령의 남서향 밭이며 그랑 베르제(Grands Vergers)는 70년 수령의 남서향 밭, 비뉴 드 루이(Vigne de Louis)는  40년 수령의 북서향 밭이다. 이 밭들은 트루소 품종에 최적으로 배수가 잘 되는 자갈 층 아래 깊은 이회암이 형성되어 열기를 잘 보존해 준다. 드라이한 토양에 포도뿌리가 깊이 내려가 집중도와 미네랄이 뛰어나면서도 섬세함과 우아함이 잘 어우러지는 와인을 생산한다. 이외에 샤르도네(Chardonnay) 포도밭이 3.3ha, 사바냥(Savagnin) 포도밭이 0.25ha이며, 뱅 존(Vin Jaune)도 소량 생산한다. 

 

마크 토마스 와인 글라스 등장. 동행인의 마음을 확 사로잡은 글라스다.

 

Michel Gahier, Tousseau Les Grands Vergers 2019 Arbois

위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70년 수령의 그랑 베르제 포도밭의 트루소로 만든 와인이다. 처음엔 약간의 환원취와 함께, 살짝 거슬리는 쥐똥내-_-가 드러나는데, 천천히 스월링을 하며 걷어내고 나면 예쁜 붉은 꽃과 석고 같은 미네랄이 하늘하늘 예쁘게 드러난다. 블랙커런트와 붉은 자두 풍미가 섬세하게 드러나며, 완숙한 작은 붉은 베리와 체리 아로마가 싱그러운 신맛과 어우러져 수줍게 매력을 뽐낸다. 바디는 가볍고 타닌도 쫀쫀하지만 많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다. 부르고뉴 보졸레 쥐라... 요 쪽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와인.

 

한 모금 마시며 디캔팅을 부탁드렸더니, 그렇지 않아도 첫 잔 서브 후에 디캔팅을 해 드릴 생각이셨다고 한다. 그리고 디캔팅을 안 한 첫 잔을 다 마신 후에 디캔팅한 것을 따라주셨는데 확실히 향이 더욱 화사하게 피어난다.

 

우엉과 미나리를 곁들인 메로. 트루소와도 괜찮았지만 스파클링이나 화이트랑 훨씬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오이지와 트러플을 곁들인 표고버섯. 와인과 아주 잘 어울리는 안주였다.

 

마지막 한 입,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맛있고 즐거웠다. 셋이서 정말 엄청 떠들었다. 손님들 중 우리가 가장 시끄러웠던 듯^^; 다음에 또 가야지.

 

20220401 @팁시(한강진역)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