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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264. 조지아 와인이 정말로 특별한 이유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2. 10. 10.

조지아의 전통 토기 '크베브리'에 양조하는 조지아 와인. 왠지 뭔가 꼬릿하고 거칠 것 같지만, 생각보다 훨씬 향긋하고 말끔하며 깊은 풍미가 길게 이어진다. 르카치텔리, 키시, 므츠바네 같은 화이트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오렌지 와인들은 정말 빼어나다. 그리고 사페라비 품종으로 만든 레드 와인은 굳이 양조방식을 따지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 일부러라도 찾아서 마셔 볼 만한 와인들이다.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이 저장용으로 스크랩한 것입니다.

 

조지아 와인이 정말로 특별한 이유

조지아는 8000년 이상의 와인 양조 전통을 자랑하는 국가다. wine, vin, vino 등 각 나라 언어로 와인을 뜻하는 단어들도 조지아어 ghvino에서 유래했다. 와인의 발상지, 와인의 요람으로 불리는 이유다. 게다가 조지아는 8000년 동안 고유의 와인 양조 전통을 고스란히 유지해 왔다. 일반적인 양조법과는 달리, 조지아에서는 화이트 와인조차 포도즙을 껍질 등 포도 잔여물과 길게 접촉하는 방식으로 독특한 개성을 지닌 와인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크베브리(Qvevri)라는 조지아 고유의 토기가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조지아의 전통 와인 양조법 

2020년 11월, '침용한 화이트 와인(white wine with maceration)'이 국제 와인 기구(International Vine and Wine Organization, OIV)에 의해 여덟 번째 '특별한 와인' 카테고리에 등재됐다. 특별한 와인이란 스파클링 와인이나 아이스 와인처럼 일반적인 와인 양조법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방식을 사용해 만든 독특한 와인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침용한 화이트 와인은 어떤 방법으로 만드는 것일까? OIV의 설명에 따르면 크게 네 가지 포인트로 요약할 수 있다.

  1. 청포도 품종으로만 양조할 것
  2. 침용은 껍질, 씨 등 포도 잔여물과 접촉한 상태로 이루어질 것
  3. 최소 1개월 이상 침용할 것
  4. 양조한 와인은 오렌지 앰버 컬러를 띄고 타닌이 느껴질 것

이는 2017년 조지아에서 제안한 것을 승인한 것으로, 침용을 통해 화이트 와인에 독특한 개성이 더해진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이는 조지아 와인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방식이야말로 조지아의 와인 양조 전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양조 전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크베브리다. 그런데 이미 유네스코는 2013년 '크베브리를 사용한 조지아의 전통 와인 양조법'을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그렇다면 크베브리란 무엇일까? 어떤 점이 특별한 와인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일까?

 

크베브리(Qvevri)란 무엇인가

크베브리는 원래 와인 양조뿐만 아니라 곡물 등을 저장하는 데도 사용하던 조지아의 전통 토기다. 하지만 역시 우리가 포커스를 맞춰야 할 것은 와인과 관련된 부분이다. 다른 나라도 암포라처럼 와인과 관련된 토기가 있지만, 조지아 크베브리의 성격은 사뭇 다르다. 조지아 국립 와인 에이전시의 타마르 메트레벨리(Tamar Metreveli) 씨에 의하면, 전통적인 암포라는 주로 운반 및 저장에 사용했다.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크베브리는 운반 및 저장뿐만 아니라 양조 및 숙성에도 사용했다. 손잡이도 없고, 보통 땅에 묻어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크베브리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장인들만 만들 수 있다. 크기는 보통 200리터에서 3000리터 사이인데 더 크거나 작은 것도 있다. 그러고 크기를 어림잡아 만들기 때문에, 정확한 용량은 제작 후에나 확인할 수 있다. 똑같은 모양의 크베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를 완성하는 데 보통 2~3개월이 걸리며, 다시 2~3주 동안 건조한 후에 거대한 야외 가마에서 굽는다. 며칠간 식힌 후 안쪽에 밀랍을 극소량만 사용해 얇게 펴 바른다. 밀랍을 바르는 목적은 내부 코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작 중 생겼을지도 모를 움푹 파인 흠집을 메우려는 것이다. 크베브리 겉면에도 석회를 바르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선택사항이다. 2021년 크베브리는 PGI로 지정되었으며, 크베브리를 제조할 때는 조지아 영토 내에서 조지아산 재료만 사용해야 한다. 현재 크베브리 제조는 카헤티(Kakheti), 이메레티(Imereti), 구리아(Guria) 등 3개 지역에 한정돼 있다. 

[ 양조 중인  크베브리 구조도 ]

크베브리는 와인 양조 및 숙성에 최적 조건을 제공한다. 크베브리는 보통 마라니(marani)라고 부르는 조지아의 전통 와인 셀러에 묻어서 사용하는데, 이런 환경이 온도 조절 장치 같은 효과를 낸다. 자연적으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 주고 급격한 온도 변화를 막아주는 것이다. 때문에 발효 및 숙성이 원활하게 진행된다. 우리 조상들이 김장 김치를 보관하기 위해 항아리를 땅에 묻었던 걸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땅에 묻은 김장독의 김치가 장독대에서 익힌 김치나 일반 냉장고에 보관한 김치보다 훨씬 맛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크베브리의 모양 또한 중요하다. 크베브리는 전체적으로 달걀 모양에 가까운데 아랫부분은 뿔처럼 뾰족한 형태다. 달걀 모양의 발효조에서는 발효가 진행되며 내부 온도가 상승하면 쉽게 대류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면 바토나주(batonnage)라고 하는 효모 뒤섞기 작업이 저절로 일어나는 효과가 생긴다. 또한 시간이 지나며 뾰족한 바닥에는 포도씨와 줄기, 포도 껍질, 효모 잔여물(lees) 등이 차례로 쌓여 와인과 층이 생긴다. 때문에 이런 것들이 와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 오랜 기간 동안 타닌과 폴리페놀 성분만 천천히, 부드럽게 추출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는 와인의 안정성에 대단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크베브리로 와인을 만들 때는 어떤 첨가물도, 양조자의 개입도 필요 없다. 그저 크베브리의 뚜껑을 잘 닫아 밀봉해 두기만 하면 된다.

 

크베브리 와인 양조

크베브리를 통한 와인 양조법은 지역별로 차이를 보인다. 당연하다. 토양과 기후, 토착 품종 등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쪽 카헤티 지역의 경우 껍질과 씨, 줄기 등 포도 잔여물을 모두 크베브리에 넣어 사용하는 반면, 중서부에 위치한 이메레티(Imereti)는 포도를 파쇄해 즙을 낸 후 포도 잔여물은 1/3 정도만 넣으며, 보통 줄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일단 여기서는 조지아의 대표적 생산지인 카헤티를 중심으로 양조법을 살펴보려 한다.

조지아 와인은 75%가 화이트, 나머지 25%가 레드 와인이다. 카헤티 또한 르카치텔리(Rkatsiteli), 키시(Kisi), 므츠바네(Mtsvane) 같은 화이트 와인 생산량이 더 많다. 그러니 화이트 와인 양조법부터 이야기하는 게 순리에 맞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잘 익은 포도를 수확하는 것이다. 특히 양조자의 개입이 적은, 자연적인 양조법은 포도의 건강이 더욱 중요하다. 그다음 양질의 포도를 나무통에 넣고 파쇄한 후 즙과 포도 잔여물을 모두 크베브리에 넣는다. 혹은 파쇄하지 않은 포도를 줄기채 넣은 후 크베브리 안에서 파쇄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포도 전체를 온전히 활용하는 셈이다. 이후 포도에 붙어 있던 효모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효가 일어나는데, 위로 떠오르는 포도 껍질 등은 매일 몇 회 정도 눌러 가라앉혀 마르지 않도록 한다. 약 2주 정도 지나 발효가 완료되면 뚜껑을 덮고 밀랍으로 밀봉한다. 이제 다음 해 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다음 해 3월까지, 혹은 양조자의 판단에 따라 그보다 더 오래 숙성한 후 깨끗한 다른 크베브리나 통으로 옮겨 담거나 병입하면 완성이다.

이렇게 껍질 등과 함께 양조한 와인은 매우 탁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앞에서 설명했듯 씨와 껍질 등 잔여물은 아래로 가라앉아 쌓이며, 와인은 자연스럽게 안정적인 상태로 진화한다. 때문에 맑고 깨끗한 와인을 얻을 수 있다. 밝은 금빛부터 매력적인 호박색에 이르기까지 품종, 숙성 기간 등 조건에 따라 다양한 컬러의 와인이 나온다. 단지 와인에 유익한 성분만 남아 맛과 보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사페라비(saperavi) 같은 레드 품종의 양조방식은 조금 다르다. 레드 와인의 경우 알코올 발효 중에만 포도 잔여물을 접촉시킨다. 보통 1~2주 정도 발효한 후 포도 잔여물을 제거한 다음 크베브리에서 추가 숙성한다.

[ 조지아의 전통 와인 셀러, 마라니 ]

크베브리는 청소하기 어려워서 위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땅에 묻혀 있는 커다란 크베브리를 청소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실제로 현대식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보다는 확실히 어렵다. 하지만 와인 양조에서 위생의 중요성은 조지아 와인 생산자들도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크베브리는 물론 마라니의 청결 유지에도 극도로 신경 쓴다. 크베브리는 전통적으로 석회를 푼 물로 씻어내는데, 살균 효과가 있는 세인트 존스 워트(St. John's wort) 같은 허브나 벚나무 가지로 만든 커다란 나무 브러시를 청소 도구로 쓴다. 세척 후에는 추가 살균 효과를 위해 황을 넣어 태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깨끗하게 세척이 되었을까? 그렇다. 전통적인 세척의 마지막 단계는 크베브리를 헹군 물을 마셔 보는 것이었다고 하니까.

 

오렌지 와인을 넘어, 조지아 와인의 색다른 개성과 매력

크베브리를 이용한 와인 양조의 장점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내추럴 오렌지 와인의 거장 요스코 그라브너(Josko Gravner)에 의해서다. 2000년 5월 와인의 발상지를 찾아 조지아를 방문한 그는 오렌지 빛이 감도는 와인을 마신 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별 기대 없이 마신 와인이 천국의 음료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는 크베브리보다 더 완벽한 와인 양조 및 숙성 용기는 없다고 확신하고 바로 크베브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2001년 크베브리로 양조를 시작한 후 4년 뒤엔 모든 와인을 크베브리로 생산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초기에는 많은 비난이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가 알다시피 찬사로 가득하다. 

이렇듯 조지아의 전통적인 와인 양조 방식과 크베브리는 오렌지 와인 양조, 내추럴 와인 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방식인 동시에 특별한 매력이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조지아 와인의 특별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525개에 이르는 토착 품종은 조지아 와인에 역동적인 다양성을 부여한다. 그중 최소 100종 이상이 상업 양조에 사용되는데, 80% 이상이 산악지대인 조지아의 다양한 테루아와 맞물려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는 와인으로 태어난다. 

이토록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조지아 와인,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지아 와인 4편] 조지아 와인이 정말로 특별한 이유 - 와인21닷컴

크베브리를 이용한 와인 양조의 장점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내추럴 오렌지 와인의 거장 요스코 그라브너(Josko Gravner)에 의해서다. 2000년 조지아를 방문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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