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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275. 싱글 빈야드의 개성을 담은 컬트 와인, 아나코타(Anakota)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3. 4. 22.

소노마 나이트 밸리에서 카베르네 소비뇽만을 사용해 마이크로 크뤼를 표현하는 와인을 만드는 아나코타. 보르도와 토스카나, 같은 나이트 밸리의 아이콘 와인들과 그 스타일과 품질을 비교할 수 있는 세미나가 열렸다. 취향에 따라 선호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아나코타 와인의 개성과 품격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이 저장용으로 스크랩한 것입니다.

 

싱글 빈야드의 개성을 담은 컬트 와인, 아나코타(Anakota)

지난 3월 3일, 와인비전 아카데미에서 흥미로운 이벤트가 열렸다. 잭슨 패밀리 와인즈(Jackson Family Wines) 소속 마스터 소믈리에 피에르-마리 파티유(Pierre-Marie Pattieu, MS)가 한국을 방문해 나이츠 밸리(Knights Valley)의 컬트 와인 아나코타(Anakota)를 소개하며 세계 유명 산지의 프리미엄 와인들과 비교 시음을 진행한 것이다. 비교군으로 선택된 와인은 보르도 그랑 크뤼 샤토 랭쉬 바주(Chateau Lynch Bages), 슈퍼 투스칸의 원조 사시카이아(Sassicaia), 소노마 카운티에서 이미 높은 명성을 얻은 피터 마이클 레 파보(Peter Michael Les Pavots) 등 모두 쟁쟁한 와인들이었다. 과연 이런 프리미엄 와인들 사이에서 아나코타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사뭇 궁금했다.

 

[ 와인메이커 피에르 세이양 ]

아나코타는 마이크로 크뤼(micro-cru)를 추구하는 와인이다. 오직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만을 사용해 나이트 밸리 테루아의 특징을 온전히 드러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와인메이커 피에르 세이양(Pierre Seillant)이 있다. 보르도와 가까운 프랑스 남서부 가스코뉴(Gascogne) 지방 출신인 그는 가족 소유의 와이너리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을 비롯한 보르도 품종의 재배법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이후 루아르의 샤토 드 타르주(Chateau de Targe), 보르도의 네고시앙이자 대규모 생산자 라울 & 장 콴카르(Raoul & Jean Quancard)의 다양한 샤토들에서 20년 넘게 경험을 쌓았다. 그는 8개 아펠라시옹(appellation)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며 각 지역별 테루아의 미묘한 뉘앙스를 드러내는 노하우를 터득했고, 이는 마이크로 크뤼 철학의 기반이 되었다. 1990년 중반 제스 잭슨(Jess Jackson)을 만나 소노마 카운티 테루아의 잠재력을 확인한 그는 잭슨 패밀리 와인즈와 함께 현재 캘리포니아 최고의 와인 중 하나로 평가받는 베리테(Vérité)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몇 년 뒤, 같은 소노마 카운티에서 만든 싱글 빈야드 와인이 바로 아나코타다. 이외에도 토스카나의 테누타 디 아르체노(Tenuta di Arceno), 보르도 생테밀리옹(Saint-Émilion)의 샤토 라세그(Chateau Lassegue) 등에서 잭슨 패밀리 와인즈와 성공적인 프로젝트들을 진행했다. 그야말로 전 세계의 주요 와인 산지에서 테루아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와인을 만든 테루아 장인인 셈이다.

 

[ 아나코타 포도밭 지도   (출처: 아나코타 홈페이지)  ]

아나코타는 피에르 세이양의 마이크로 크뤼 철학이 가장 극명하게 반영된 와인이다. 베리테를 만들며 소노마 카운티 테루아의 개성을 확실히 이해한 그는 싱글 빈야드에서 재배한 단일 품종만으로 테루아의 특징을 온전히 드러내는 와인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선택한 곳이 세인트 헬레나 산(Mount St. Helena) 서쪽 기슭 나이트 밸리에 위치한 포도밭으로, 마야카마스 산맥(Mayacamas Range)을 경계로 나파 밸리에 인접한 지역이다. 서늘한 바다에서 멀어 소노마에서는 가장 따뜻한 지역으로 꼽히지만, 나파 밸리보다는 확실히 시원하기 때문에 포도가 완숙함과 동시에 복합적인 풍미와 산미를 갖출 수 있다. '달의 먼지(moon dust)'라고 불리는 이 지역의 토양은 거친 화산토에 자갈들이 뒤섞여 있어 배수가 잘 된다. 온화한 기후와 충분한 일조량, 배수가 잘 되는 복합적인 토양이 어우러져 카베르네 소비뇽과 같은 보르도 품종 재배에 최적 조건을 제공한다.

 

[ 헬레나 다코타 빈야드와 헬레나 몬타나 빈야드의 토양 ]

아나코타에서 만드는 싱글 빈야드 와인은 헬레나 다코타 빈야드(Helena Dakota Vineyard)와 헬레나 몬타나 빈야드(Helena Montana Vineyard) 두 가지다. 두 포도밭은 가까운 곳에 있지만, 고도와 일조량, 토양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헬레나 다코타 빈야드는 해발 230m에 위치한 5헥타르 크기의 포도밭이다. 부드러운 적갈색 미사질 양토(red/brown silt loam) 토양에 남동쪽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식재된 포도나무들이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렸다. 반면 헬레나 몬타나 빈야드는 조금 높은 해발 300m 부근 24헥타르 크기의 포도밭이다. 토양은 바위와 자갈이 많이 섞인 황백색 양토(white/yellow gravelly loam)인데 비교적 단단하기 때문에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식재된 포도나무들은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했다. 이런 포도밭의 차이가 와인의 성격에는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시음에는 샤토 랭쉬 바주 2017년, 사시카이야 2017년 , 피터 마이클 레 파보 2018년과 함께 아나코타의 헬레나 다코타 빈야드 2017년, 헬레나 몬타나 빈야드 2017년과 2018년 와인이 제공되었다. 우선 2017 빈티지의 두 와인은 프렌치 오크(70% new)에서 13개월 숙성하는 등 양조 방법이 유사하다. 때문에 둘 사이의 차이는 대부분 테루아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헬레나 몬타나는 2017년과 2018년 빈티지 비교를 통해 그 차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참고로 아나코타는 숙성용 오크통을 구입하지 않고, 빈티지 특성에 맞게 직접 제작해 사용한다.

 

먼저 시음한 샤토 랭쉬 바주 2017 빈티지는 비교적 어려웠던 상황을 이겨내고 탄생한 역작이다. 상쾌한 허브와 고혹적인 붉은 꽃잎, 매콤한 스파이스에 농익은 과일 풍미가 은은한 바닐라 오크와 함께 아름답게 표현됐다. 바디는 무겁지 않지만 날카로운 산미와 벨벳 같은 타닌이 탄탄한 구조를 형성해 포이약의 개성적 스타일을 완벽히 드러냈다. 사시카이아 2017 빈티지는 향긋한 바이올렛, 농익은 검붉은 베리 풍미와 발사믹 뉘앙스가 원만하게 어우러지며, 조금 더 부드럽고 친근한 인상을 남겼다. 아나코타와 이웃한 와이너리 피터 마이클이 만든 레 파보 2018 빈티지는 화사한 꽃향기가 특징적으로 피어나며 매콤한 스파이스와 은은한 바닐라, 적절히 익은 과일 풍미가 우아하게 드러나는 와인이었다. 입에서의 실키한 인상과 명확하지만 과하지 않은 오크 뉘앙스 또한 잘 만든 와인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중요한 점은 이런 빼어난 와인들에 아나코타 와인들이 전혀 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수준급 와인들의 비교 시음에서는 우열을 가리는 것보다는 각각의 스타일 차이와 개별 와인들이 지닌 개성적인 요소들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아나코타의 와인들은 앞의 세 와인들과 당당하게 맞서 개별 빈야드와 빈티지의 차이를 명확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나코타 헬레나 다코타 빈야드 2017(Anakota Helena Dakota Vineyard 2017) 빈티지는 잉크 같은 미네랄과 향긋한 꽃향기, 화한 민트 허브와 함께 진한 블랙커런트, 블랙베리 아로마가 섬세하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실키한 질감을 타고 완숙한 과일 풍미와 스파이시한 뉘앙스가 우아한 피니시를 선사한다. 신선한 과일 본연의 맛이 허브와 스파이스, 은은한 오크 힌트와 어우러져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느낌이다. 반면 아나코타 헬레나 몬타나 빈야드 2017(Anakota Helena Montana Vineyard 2017) 빈티지는 은은한 바이올렛 꽃향기와 민트 허브, 삼나무 같은 스파이스가 완숙한 라즈베리, 블랙 체리, 블랙커런트 풍미와 하모니를 이룬다. 입에 넣으면 묵직하고 탄탄하며 풍만한 인상이 헬레나 다코타와 명확히 비교된다. 타닌 또한 더욱 풍성하며 생생한 산미와 좋은 구조를 형성한다. 이국적인 스파이스와 허브, 오크 바닐라 뉘앙스와 가죽 같은 뉘앙스 또한 견고한 스타일과 잘 어우러지는 느낌. 두 와인 모두 오크 뉘앙스는 절제되어 있으나 헬레나 다코타가 비교적 가볍고 우아한 반면, 헬레나 몬타나는 묵직하고 탄탄하다. 근처에 위치한 포도밭에서 같은 품종을 사용해 유사하게 양조한 와인이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다니 놀랍다. 물론 두 와인의 빼어난 품질이 더욱 놀랍지만. 

아나코타 헬레나 몬타나 빈야드 2018 빈티지는 밀도 높은 아로마가 인상적이다. 향긋한 붉은 꽃향기와 복합적인 스파이스, 특징적인 로스팅 커피 뉘앙스가 검붉은 베리 풍미와 조화를 이루며 힘 있게 드러난다. 입에서는 좀 더 드라이한 미감에 촘촘한 타닌과 싱그러운 산미가 탄탄한 구조를 형성하며, 은은한 삼나무 오크 뉘앙스가 다층적인 레이어를 완성한다. 2017년은 겨울의 많은 비로 가뭄이 해갈된 빈티지라고 한다. 재배 기간에도 온화한 날씨가 지속되었고, 포도의 산미를 보존하기 위해 비교적 이른 시기인 9월 6일에 수확을 진행했다. 2018년 또한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해였다. 충분한 강수량으로 개화와 열매 맺기가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졌고,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서늘한 날씨가 이어져 포도의 생리적 성숙이 고르게 잘 진행됐다.

 

[ 아나코타 와인 세미나를 진행한 피에르-마리 파티유 마스터 소믈리에 ]

아나코타가 만들어지는 포도밭과 와인메이커에 대한 설명을 듣고 비교 시음까지 진행하고 나니, 이 와인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해 갈지 궁금해졌다. 아나코타는 현재 신동와인을 통해 한국에도 소개되고 있으니 , 일부 선택받은 애호가들은 그 변화를 즐길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눈앞에 그 기회가 온다면 부디 놓치지 않길 바란다.

 

 

싱글 빈야드의 개성을 담은 컬트 와인, 아나코타(Anakota) - 와인21닷컴

아나코타는 마이크로 크뤼(micro-cru)를 추구하는 와인이다. 아나코타에서 만드는 싱글 빈야드 와인은 헬레나 다코타 빈야드(Helena Dakota Vineyard)와 헬레나 몬타나 빈야드(Helena Montana Vineyard)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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