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년 만에 다시 찾은 교토 사케 전문점 슈텐 니시카와(酒呑 にし川).
연말연시 연휴 중이라 문을 닫은 곳이 많았지만 슈텐 니시카와의 문은 열려 있었다. 대신 사람이 넘나 많았고, 일행 당 2시간 제한이 있었다. 그나마 다른 예약이 있었는지 1시간밖에 머무를 수 없었던 상황. 그래도 일단 자리에 앉았다. 목적한 사케를 맛보기 위해서.
아라마사(新政) 3종 세트. 5종의 아라마사 중 3종을 골라 한 잔씩 마실 수 있는 세트를 2천 엔대의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작년에는 천 엔 대였는데 다소 가격이 올랐다.
아라마사슈조(新政酒造)는 에도 시대 말기 1852년 창업한 아키타(秋田)현의 사케 양조장이다. 현재 대표(쿠라모토, 蔵元)는 8대 사토 유스케(佐藤祐輔). 도쿄대를 졸업한 수재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2007년 합류해 2012년 쿠라모토가 되었다. 원래는 사케 양조에 뜻이 없었는데 32세에 사케의 매력에 눈을 뜬 후 가업을 잇게 되었다고. 역사와 전통을 갖춘 양조장이지만, 끊임없이 혁신적인 시도를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의 젊은 오너 덕인가 했는데, 이전부터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 온 양조장이었던 듯.
아라마사의 양조 원칙은 크게 세 가지.
1. 아키타 산 쌀만 사용하는데 80%는 계약 재배한다. 양조장이 위치한 곳에서 생산했고 출처가 명확한 쌀만 사용하는 셈.
2. 쌀과 쌀누룩, 물만 사용하는 준마이슈(純米酒)만 생산한다. 양조 알코올을 첨가하는 혼죠조슈(本釀造酒)는 만들지 않는다.
3. 키모토(生阮) 방식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사케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방법은 속양법(소쿠죠速醸)인데, 인공 산미료를 첨가하여 잡균을 억제한다. 10일 전후로 빠르게 사케를 만들 수 있어 널리 활용된다. 하지만 키모토 방식은 사케를 완성하는 데 4~5주 정도 걸린다. 그만큼 인력과 비용도 더 든다. 하지만 아라마사의 술에 가장 잘 맞는다는 생각으로 키모토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이외에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가수를 하지 않으며 삼나무판을 사용한 양조용 술통 제조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무엇보다 아라마사의 명성을 드높여 준 것은 아라마사의 양조장에서 배양된 '협회 6호 효모(協會6号酵母)'다. 1935년에 아라마사의 5대 쿠라모토이자 양조 연구가였던 사토 우사부로가 키모토 방식으로 주조하던 중에 모로미(醪)에서 발견한 것이 지금의 협회 6호 효모가 되었다. 10~12°C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도 발효가 잘 되는 새로운 성질의 6호 효모는 사케 양조의 헤게모니가 후시미(伏見), 효고(兵庫) 등 간사이(關西) 지역에서 북쪽의 도호쿠(東北)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거나 내가 고른 사케는 'No. 6' X-Type, S-Type, 그리고 Private LAB 히노토리(陽乃鳥). 생각해 보니 2세트를 시켜서 5종을 다 맛보고 가장 맛있었던 1종을 한 번 더 마실 걸 그랬다. 당시엔 정신이 없어서 생각도 못했... ㅠㅠ
아라마사는 Colors, No. 6 그리고 Private LAB까지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의 사케를 만든다.
Colors는 아라마사의 맛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히이레(火入れ) 방식의 기본급 사케. 빈티지 사케인데 네 가지 색의 기본 골격 안에서 매해 다른 사케를 만드는 듯.
No. 6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6호 효모'의 매력을 제대로 살린 가장 인기 있는 기본 나마자케(生酒)로 R-Type, S-Type, X-Type이 있다. 각각 Regular, Superior, eXcellent의 이니셜이며 R-Type은 준마이, S-Type은 준마이긴조(純米吟釀), X-Type은 준마이다이긴조(純米大吟釀)다.
Private LAB은 혁신적이고 대담한 방법으로 양조한 사케로, 새로운 맛을 추구하며 사케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게 되었다고. 아라마사의 양조 철학을 가장 잘 전달하는 카테고리다. 레이블의 이미지는 풍수의 상징인 사신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新政, No. 6 X-type 2022-2023. 백도, 흰 자두 같은 핵과 풍미가 부드러운 질감을 타고 우아하게 드러난다. 신선한 산미와 섬세한 단맛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편안한 밸런스를 이룬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좋은 사케라는 걸 느낄 수밖에 없달까. 너무 술술 넘어가서 너무 빨리 마셔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천천히 마셨다.
정미율은 45%. 알코올은 13%, 2022년 수확한 주조호적미를 사용해 나무통에서 양조했다.
新政, No. 6 S-type 2022-2023. 주질은 X-Type과 상당히 유사한데 산미가 살짝 가볍고 약간 스파이시한 뉘앙스가 느껴지는 것 같다. 이 사케를 마실 때는 S와 X의 양조법 차이를 알지 못했었는데도 X-Type이 확실히 더 입맛에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자본주의는 돈인 걸까 ㅠㅠ
정미율은 55%. 알코올은 13%, 2022년 수확한 주조호적미를 사용해 나무통에서 양조했다.
新政, PRIVATE LAB 陽乃鳥 2022-2023. 앞의 두 사케에 비해서는 뭔가 '술 다운' 느낌이 더 강한 느낌이었다. 단맛이 제법 느껴지면서도 상당히 깔끔한, 모순적인 느낌이랄까.
검색해 보니 술로 술을 빚는 귀양주(貴醸酒)인데, 좀 더 복잡하고 진한 단맛을 지닌 술이 완성된다고. 어, 그렇다면 혼죠조 방식으로 만든 거 아닌가?? 귀양주와 본양조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알코올은 13%로 동일하며, 정미보합은 60%다. 역시 2022년 수확한 주조호적미를 사용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케는 역시나 X-Type. 하지만 모두 맛있었다. 역시 아라마사.
일단 사람 수 별로 음료를 시켜야 한다고 해서 술을 못 마시는 동행인 몫으로 시킨 사케.
일본주도가 +20이나 되는, 대단히 드라이한 나마자케였는데... 말잇못. 아라마사 때문이었는지 넘나 오징어라 잔을 다 비우지도 못하고 나왔다.
이것저것 안주삼아 시킨 음식들. 요건 야키도리라고 해서 시킨 건데 원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상추와 파를 메인으로 한 곁들임 야채는 왠지 모르게 한국 스타일을 느끼게 한.
슈텐 니시키와는 다 좋은데 영어로 된 메뉴판이 없다. 작년에 왔을 땐 사람이 적고 영어를 잘하는 직원이 있어서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사람은 바글바글한데, 영어를 잘하는 직원이 없어서 음식 주문에 애를 먹었다. 음식을 하나하나 물어보며 시킬 상황이 아니라 대충 찍어서 주문한 것.
요건 안주 3종 세트라고 해서 시킨 것. 맨 왼쪽은 가다랑어를 올린 나물볶음 같은 거였는데 가다랑어가 킥이었다. 가운데는 아마도(?) 돼지고기 조림인데 간간해서 밥을 주문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마지막의 오이절임의 의외로 맛있고 술안주로도 좋았다. 역시 쯔께모노에 진심인 일본...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았지만, 원하는 스타일의 안주는 아니었어서 아쉬웠다. 다음에는 제발 영어 메뉴판 좀 갖추어 놓으시길. 외국인들도 많이 방문하는 것 같은데 메뉴 이미지라도 좀 구비를 하시던가.
1시간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다양한 아라마사를 마셔 본 것 만으로 목적 달성. 다음에 교토에 오면 또다시 방문하게 되지 않을까.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다면 말이지.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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