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C 압구정로데오점에서 콜키지 프리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소문을 듣고 반차를 내고 찾아가 보았다. 결론은 집이나 회사가 근처인 사람들은 퇴근길에 펍 들리듯 가볍게 들러서 한 잔 마시고 가기 좋겠다는 것. 매장에서 파는 기네스를 마셔도 좋고, 와인 1~2병을 들고 가서 마셔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와인 모임은 아무래도 무리. 분위기 자체가 다르니까. 기사 외에 블로그 포스팅으로도 관련 내용을 올려 두었다.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이 저장용으로 스크랩한 것입니다.
얼마 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의 노른자위 압구정 한복판에 콜키지 프리 음식점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건 그 콜키지 프리 음식점이 바로 KFC 압구정로데오점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콜키지 프리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검색을 해 보니 '켄터키 버거 펍(Kentucky Burger Pub)'을 지향하는 KFC 압구정로데오 점이 그 주인공이었다. 다른 지점과는 달리 기네스 드래프트나 짐빔 하이볼 같은 술을 판매하고 콜키지 프리 서비스도 제공한다. 주종은 제한이 없다. 와인은 물론 위스키, 맥주, 소주, 막걸리 등도 가능하다. 다만 전용 글라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음식을 주문하는 키오스크의 음료 카테고리에서 콜키지 프리를 선택하면 탄산음료용 플라스틱 컵을 제공한다. 그러니 콜키지 프리로 와인을 마실 생각이라면 와인 글라스를 챙겨가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콜키지 프리 서비스는 KFC 전 매장에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압구정로데오점에서만 제공하는 것임을 반드시 기억하자.
어쨌거나 콜키지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니, 궁금해서 찾아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금요일 오후에 와인을 사들고 KFC 압구정로데오점을 방문했다. 지참한 와인은 미국 캘리포니아 센트럴 코스트(Central Coast)에서 생산한 칼레라 샤르도네(Calera Chardonnay). KFC가 미국 출신 프랜차이즈이니 와인도 나름 맞춰서 준비했고, 화이트 와인용 와인잔과 칠링을 위한 아크릴 백, 와인 오프너 등도 미리 준비했다.
그런데 가게 내부를 둘러보니 앉을 자리가 없었다. 점심시간이다 보니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던 것이다. 물론 혼자 앉을 수 있는 바 테이블에 듬성듬성 자리가 보였지만, 좁은 테이블에 음식과 함께 잔이나 병을 세팅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주변인들의 시선이었다. 와인잔과 와인병을 꺼내 놓고 혼자서 술판(?)을 벌이기엔 내 얼굴이 그리 두껍지 않았다. 아무래도 평일 낮이다 보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때마침 카운터 오른쪽 기둥으로 가려진 테이블에 자리가 난 게 다행이었다. 얼른 자리를 잡고 와인잔과 칠링용 아크릴 백을 세팅했다.
와인에 곁들일 음식으로 치킨 텐더와 비스킷, 그리고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했다 치킨과 칼레라 샤르도네도 잘 어울렸지만 따뜻한 비스킷과의 궁합은 환상적이었다. 구수하고 버터리한 비스킷의 풍미는 칼레라 샤르도네의 농밀한 열대과일과 오크 뉘앙스와 안성맞춤이었다. 한 시간도 안돼 음식들이 사라지고 와인 반 병이 비워졌다. 남은 반 병은 천천히 즐길 생각으로 닭껍질 튀김을 추가 주문하고 의자에 기대앉으니 그제야 여유가 좀 생겼다. 매장을 둘러보니 오른편은 일반적인 패스트푸드 매장과 비슷한 구조지만, 왼편은 맥주 펍과 유사한 바 테이블에 하이 체어들이 놓여 있었다. 어두운 저녁에 조명만 좀 낮춘다면 술 한잔 하기에도 괜찮은 분위기일 것 같았다. 실제로 술을 마시거나 콜키지 프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주로 7시 이후에 방문한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와서 아이들은 버거와 탄산음료를 마시고, 부모는 치킨과 함께 와인이나 주류를 즐기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고. 퇴근길에 와인 한 병 사들고 와서 사이드 디시와 함께 가볍게 한 잔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어쨌거나 백주 대낮에 치킨과 햄버거 세트를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외롭게 와인을 마신 나처럼 뻘쭘하지는 않겠지.
닭껍질과 함께 와인을 마시다 불현듯 '콜키지 프리는 과연 와인 애호가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애호가들은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하지 않고 굳이 번거롭게 와인을 가지고 가서 마시는 걸까? 술기운이 도는 머리에서 JTBD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종편 방송사 JTBC의 오타가 아니다. 경영학과 마케팅 분야에서 활용하는 프레임워크 'Jobs To Be Done'의 이니셜을 딴 JTBD이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특정 상황에서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면서 해결하려는 본질적인 일'이 JTBD다. 예컨대 공구점에서 드릴을 사는 사람이 수행하려는 본질적인 일은 성능 좋은 드릴을 사는 게 아니다. 벽이나 물건에 쉽게 구멍을 뚫는 것이다.(드릴 수집가가 아니라면 말이다) 와인 애호가에게도 음식점에 공짜로 와인을 반입하는 것 자체가 본질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선호하는 음식점에서 먹고 싶은 음식과 함께 좋아하는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마시는 게 본질일 것이다.
문제는 그 쉬워 보이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우선 와인 리스트가 잘 갖춰져 있는 음식점이 흔치 않다. 레스토랑이나 비스트로가 아니라면 와인이 아예 없는 곳도 많다. 그러니 콜키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음식점을 찾는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와인값 자체가 비싸다는 데 있다. 음식점에서 와인을 비싸게 판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와인의 절대가격 자체가 비싸다는 의미다. 와인은 수입품이다. 수입 과정에서 물류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술이기 때문에 세율 또한 높다. 그렇기에 저렴한 와인이라도 보통 마트나 편의점에서 1~2만 원은 한다. 당연히 음식점에서는 이윤을 붙여 좀 더 비싸게 팔아야 한다. 소주와 비교해 보자. 편의점에서 2천 원 정도에 팔리는 소주는 음식점에서 5천 원 내고 마시는 게 어렵지 않지만, 마트에서 2만 원짜리 와인을 음식점에서 5만 원 내고 마시기는 절대가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키워드는 '합리적인 가격'이다. 개인에 따라, 상황에 따라 합리적 가격에 대한 기준이 천차만별일 것이다. 저렴한 가격이 최고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KFC 압구정로데오 점에 방문한 나처럼 필요한 잔과 기물을 스스로 준비하고, 셀프서비스로 음식을 나르며 주변인의 눈치를 보더라도 감내할 만하다. 하지만 고품질의 서비스가 동반된다면 그에 맞는 가격을 지불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파인 다이닝에서 숙련된 소믈리에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정성껏 제공한 와인의 맛은 같은 와인이라도 훨씬 좋게 느껴진다. 높은 비용을 지불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시중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와인들로 리스트를 구성한 비스트로는 어떤가. 이 또한 방문할 만한 합리적 가치가 있지 않을까. 내가 직접 골라 구매한 와인으로 콜키지를 이용해도 좋겠지만, 때때로 음식점에서 갖춰 놓은 와인을 마셔 보는 것도 와인을 다채롭게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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