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마지막 백악관 만찬. 연설에서 오바마는 한 이탈리아인의 이름을 거론한다. 그의 이름은 필립 마쩨이(Philip Mazzei, 1730-1816). 오바마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독립 선언서 구절이 필립 마쩨이와 공유했던 사상이라며 미국과 이탈리아아의 우정과 미래를 위해 축배를 든다. (salute, cheers!)
위 동영상 썸네일이 바로 필립 마쩨이를 그린 그림인데, 이 그림의 원본은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 중이다. 또한 마쩨이 와이너리에서 필립에게 헌정하는 와인의 레이블로도 쓰이고 있다.
사실 필립 마쩨이의 집안은 600년 넘게 와인을 만들어 온 이태리의 와인 명가이다. 마쩨이(Mazzei) 가문은 14세기 중반부터 와인을 만들었으며 '끼안티(Chianti)'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식 문서의 주인공이다. 현재 토스카나의 카스텔로 디 폰테루톨리(Castello di Fonterutoli)와 벨구아르도(Belguardo)를 중심으로 트레비소-베네토(Treviso-Veneto)의 빌라 마르첼로(Villa Marcello), 시칠리아(Sicilia)의 지솔라(Zisola) 등 네 개의 와이너리를 보유하고 있다.
논현동 와인북카페에서 진행된 마쩨이 와인 갈라 디너에서 그들의 플래그십 시에피(Siepi)를 포함해 토스카나에서 생산되는 일곱 종의 와인들을 맛볼 수 있었다.
우선 리셉션용으로 등장한 화이트 와인.
VELGVARDO VERMENTINO 2015 Vermentino di Toscana / 벨구아르도 베르멘티노 2015
나머지 여섯 종의 와인은 카스텔로 디 폰테루톨리(Castello di Fonterutoli)의 레드 와인들이다.
카스텔로 디 폰테루톨리는 1435년부터 지금까지 마쩨이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끼안티 끌라시코 중심부에 위치한 와이너리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100% 가족 소유의 와이너리이지만 현대적인 마케팅 또한 중요시하며 각종 평론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탈리아의 와인평론지 <감베로 로쏘(Gambero Rosso)>로부터 최고점인 글라스 3개(3 Bicchieri)를 31회나 수상했다. 이는 토스카나 와인 생산자 중 가장 많은 수상 횟수로, 이태리 전체에서 따져도 Top5 안에 드는 탁월한 성적이다. 이외에도 90점 이상의 고득점을 <와인 애드버킷(Wine Advocate)>으로부터 59회,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로부터 70회, <제임스 서클링(JamesSuckling.com)>으로부터 60회나 수상했다. 이쯤 되면 폰테루톨리의 어떤 와인이든 믿고 마시면 된다는 얘기다. 특히 이들의 끼안티 끌라시코는 해당 카테고리의 벤치마크로 정평이 나 있다.
아쉽게도 카스텔로 디 폰테루톨리에는 보유중인 올드 빈티지가 별로 없다고 한다. 2차대전 시기 무쏠리니 군이 점령하여 다 마셔버렸기 때문(이런 썩을...). 위 사진의 셀러는 2007년에 완공한 셀러로 유명 건축가 아그네세 마쩨이(Agnese Mazzei)의 작품이다. 총 3개 층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중력을 이용해 포도와 와인을 자연스럽게 운반하기 위함이다.
맨 윗층의 홀 바닥에는 파이프를 연결할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어 수확한 포도를 발효조가 있는 지하 1층으로 운반한다. 지하 1층에서는 70여 개의 양조 탱크가 있어 8월 말부터 10월까지 수확하는 포도를 차례로 발효할 수 있다. 발효를 마치면 숙성용 오크통이 있는 맨 아래층으로 역시 중력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운반한다. 숙성에는 다양한 크기의 프랑스, 미국, 슬라보니아산 오크통을 사용한다. 오크통 내부를 그을린 정도 또한 셀라마스터가 직접 확인한다. 전체 크기 9,500 평방미터 중 양조와 숙성을 진행하는 65%는 지하에 위치한다. 특히 암반 아래로 흐르는 지하수를 셀러의 습도와 온도 유지에 활용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돌벽을 흐르는 물줄기가 자연적으로 숙성에 용이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 셀러를 마쩨이 가문에서는 '산지오베제 성전(The Sangiovese Temple)'이라고 부른단다. 마쩨이 가문의 자부심이 잔뜩 담긴 표현이다. 영국의 와인평론지 <디캔터(Decanter)>에서도 '현재까지 끼안띠 지역에서 가장 인상적인 셀러(Chianti's most impressive Cellar to date)'라고 언급했으니 외부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커런트, 자두, 검은 체리, 먼지와 토양 힌트. 입에 넣으면 검붉은 베리, 라즈베리 풍미에 오크 바닐라 뉘앙스가 가볍게 더해진다. 시간이 지나며 정향과 시나몬캔디, 철분 같은 미네랄, 가벼운 허브 힌트, 매콤한 스파이스와 스모키 뉘앙스가 은근하게 드러난다. 미디엄 바디에 날렵한 질감이 편안한 와인. 마쩨이 소유 포도밭에서 재배한 산지오베제 70%에 메를로 30%을 블렌딩하며, 마렘마의 포도도 일부 사용한다. 오크 터치가 강하지 않은 폰테루톨리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와인이다.
Mazzei, Ser Lapo Chianti Classico Riserva 2013 / 마쩨이 세르 라포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2013
"On this day, December 16th 1398, 3 florins, 21 soldi and 8 dinars shall be given by Piero di Tno Riccio for 6 barrels of Chianti wine. The aforementioned we pay by written letter of Ser Lapo Mazzei" 음.. 저 글씨를 읽는 것 자체가 신기한데;;;
그리고 카스텔로 디 폰테루톨리의 아이콘 와인 두 가지가 제공되었다.
Mazzei, Castello Fonterutoli 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2012
마쩨이 카스텔로 폰테루톨리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치오네2012
타르 같은 미네랄 힌트에 이어 영롱한 딸기, 체리 등 붉은 베리의 밀도 높은 아로마, 돌로 짓이긴 꽃잎 같은 뉘앙스가 고혹적인 첫 인상을 남긴다. 입에 넣으면 완숙한 붉은 자두, 라즈베리, 체리 등 붉은 과일의 상큼한 맛이 가장 먼저 느껴진다. 뒤이어 감초, 루이보스 티, 정향, 버섯, 초콜릿 힌트 등 다양한 풍미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미디엄풀 바디에 단단한 구조감, 세이버리한 입맛에 조금은 뻣뻣한 타닌. 아직은 숙성이 필요한 상태이지만 그 품격만큼은 은은히 배어나온다. 숙성해서 마시고 싶은 욕구가 물씬. 13빈이 나오면 고려해 볼까. 산지오베제 92%에 말바지아 네라, 콜로리노를 블렌딩했다. 225/500 리터 프렌치 오크(60% new)에 20개월 숙성.
Mazzei, Siepi 2013 Toscana / 마쩨이 시에피 2013
왼쪽은 클래식, 오른쪽은 전통 위에서의 혁신이랄까.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취향의 문제일 뿐, 둘 모두 진정 위대한 와인들이다.
Mazzei, Philip 2013 Toscana / 마쩨이 필립 2013
커런트와 붉은 자두, 붉은 체리, 민트, 블루베리, 영롱한 미네랄. 입에 넣으면 의외의 미티함이 스치며 스모키 모카, 초컬릿, 시나몬 캔디 같은 달콤쌉싸래한 뉘앙스가 검붉은 과일 풍미를 감싼다. 날렵한 인상의 미디엄풀 바디 와인으로 깔끔한 느낌. 토스카나의 밝은 느낌을 제대로 드러내는 범상치 않은 와인. 카베르네 소비뇽 100%로 양조하며 500 리터 프랑스/미국 오크통에서 약 24개월 숙성했다.
바녯로쏘 소스를 곁들인 푹익힌 우설(Lingua di Manzo con salsa 'Bagnet Rosso'). 우설을 못 드시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나도 못 먹는다. 없어서 못 먹음ㅋㅋㅋ 소와 설왕설래(?)하는 기분...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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