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안 레스토랑 알파르코에서 진행된 스키오페토(Schiopetto) 와인 메이커스 디너.
조금 늦게 도착했더니 스키오페토의 크리스티앙 마달레나(Christian Maddalena) 씨가 이미 설명중이었다. 엇, 근데 친한 누님이 옆자리에 ㅋㅋㅋㅋ
스키오페토는 1965년 프리울리(Friuli)의 콜리오 지역에 설립된 와이너리. 이탈리아에서 화이트 단일 품종으로 양조한 와인 레이블에 품종명을 처음 표기한 역사적인 생산자라고 한다.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가 유행하기 훨씬 전인 1968년부터 피노 그리지오 단일 품종 와인을 생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키오페토에서, 아니 콜리오(Collio)에서 가장 중요한 품종은 역시 프리울라노(Friulano). 예전엔 토카이(Tocai)라고 불렸던 품종인데 지금은 헝가리의 토카이 와인과의 혼동 우려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되었다(지못미). 이날 디너에서는 세 가지 빈티지의 버티컬 테이스팅을 통해 콜리오 프리울라노 품종의 세월에 따른 변화와 숙성 잠재력을 느껴 볼 수 있었다. 잘 만든 프리울라노는 10년은 물론 20년 이상 숙성이 가능하다고. 스키오페토는 콜리오의 정상급 생산자이므로 이들의 프리울라노를 통해 품종의 특징과 저력을 가늠할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포도밭에서 나오는 와인이라면 당연히 맛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스키오페토 사이트의 콜리오 지도. 이런 풍의 그림지도 너무 좋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제임스 써클링(James Suckling) 98점이라는 배너가 떡 하니 뜬다. 창립자인 마리오 스키오페토(Mario Schiopetto)에게 헌정하는 아이콘 라인업인 듯.
와이너리를 설립한 마리오 스키오페토는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을 여행하며 유명 와이너리들의 와인을 맛보고 기술 등을 습득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지역에 온도 조절기와 스테인레스 탱크를 처음 도입했으며 토카이 프리울라노(Tocai Friulano)를 비롯한 프리울리 모던 화이트 스타일을 확립했다. 포도밭에서는 고밀도 식재와 품종 혼합 식재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으며 매뉴얼에 따른 철저한 관리를 추구했다. 온도조절기나 스테인레스 탱크 등은 최근에는 당연시되는 것들이지만 온도 조절기 없이 오픈 배트(open vat)에 발효하던 전통적 양조방식을 사용하던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일이었다. 마치 콜럼부스의 달걀처럼 처음 누군가 시작하기 전에는 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참고로 이들은 가야(Gaja)와 안티노리(Antinori) 등 와인 명가들에 화이트 와인 양조법을 전수하기도 했다고. 명가는 명가를 알아보나 보다.
간단한 설명을 마치고 디너 시작. 프리울라노 3종 버티컬 테이스팅 외에도 피노 그리지오와 미수입 와인 2종, 그리고 마지막의 히든 와인까지 더해져 정말 뜻깊은 경험을 선사했다. 좋은 자리를 만들어 준 비노비노 관계자 분들께 감사.
먼저 미수입 와인 2종, 리볼라 잘라(Ribolla Gialla)와 블랑 데 로시스(Blanc des Rosis)로 디너가 시작되었다.
Schiopetto, Ribolla Gialla 2016 Venezia Giulia IGT / 스키오페토 리볼라 지알라 2016
새콤한 매실, 자두, 청포도, 시트러스 과육, 레몬 필, 인동덩굴과 은은한 꽃가루 향기. 입에서는 멜론, 복숭아 등의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과일 풍미에 시간이 지나 온도가 올라가면서 오렌지 뉘앙스도 드러난다. 가볍고 산뜻한 미디엄 바디에 적절한 산도가 선사하는 개운한 여운이 싱그럽다. 안티파스토로 제공된 망고 프로슈토와 환상궁합이었음. 아직 리볼라 잘라 품종은 익숙치 않지만 오렌지 와인을 포함하여 마실 때마다 껍질을 포함한 레몬, 오렌지 등 시트러스 계열의 풍미가 공통적으로 느껴진다. 앞으로 더욱 경험해 보고 싶은 품종.
리볼라 잘라는 프리울리의 토착 품종으로 슬로베니아에서는 레불라(Rebula)라고 부른다고. 전통적으로는 100% 단일품종으로 만들기 보다는 다른 품종과 블렌딩하거나 산화 뉘앙스가 강한 오렌지 와인으로 양조한다. 마달레나 씨는 오렌지 와인이나 말로락틱 발효를 하는 와인들이 품종의 순수함을 표현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며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 후 바로 출시하는 스키오페토 와인의 순수성을 에둘러 강조했다. 특유의 산도와 오일리한 특징에 대해서도 언급.
Schiopetto, Blanc des Rosis 2015 Venezia Giulia IGT / 스키오페토 블랑 데스 로시스 2015
가벼운 스파이시 뉘앙스에 파라핀 미네랄 힌트. 입에서도 가벼운 쌉쌀함이 느껴진다. 모과, 풋사과 등 풋풋한 과일 풍미. 미디엄 바디에 제법 날카로운 구조감이 인상적이다. 견과와 감초나 두충 같은 약재 힌트가 아주 가볍게 더해진다. 리볼라 잘라에 비해서는 조금 더 익숙하고 친근한 와인.
프리울라노, 피노 그리지오,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피노 비앙코(Pinot Bianco) 등 네 가지 품종을 블렌딩했다. 프리울라노와 피노 그리지오가 70% 이상이며 각 품종을 별도 양조하여 블렌딩한다. 바디감이 있지만 들꽃 향과 섬세한 풍미, 너티함과 긴 미네랄 여운이 매력적인 와인이라고.
둘 다 애호가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품질과 스타일이다. 마케팅만 잘 이루어진다면 괜찮을 듯.
리볼라 잘라와 블랑 데 로시스 등 '블랑 데 로시스' 라인업은 위와 같은 콜크를 사용한다. 'Diam' 코르크와 유사해 보이는데 코르크 테인트(cork taint)를 100% 방지한다고.
아마도 엔트리 라인업부터 실험적으로 적용한 후 장기적으로는 전체 코르크를 변경해 나가지 않을까 싶다.
이제부터는 Collio DOC의 와인들.
Schiopetto, Collio Pinot Grigio 2015 / 스키오페토 콜리오 피노 그리지오 2015
보리수 같은 골드 컬러 때문인지 아로마에서도 보리수 같은 뉘앙스가 느껴진다. 은은한 백도 풍미에 뉴트럴한 인상, 가벼운 미네랄과 쌉쌀함이 편안하다. 편안한 이스티 뉘앙스에 시간이 지날 수록 향긋한 서양배와 세이버리한 풍미가 디벨롭되기 시작한다. 요 라인업의 와인들은 8개월 정도 효모 찌꺼기와 함께 숙성해서 집중력있는 맛과 향을 표현한다.
그리고 프리울라노가 2015, 2013, 2008(매그넘) 버티컬로 제공되었다.
Schiopetto, Collio Friulano 2015 / 스키오페토 콜리오 프리울라노 2015
은은한 푸른 빛이 감도는 페일 옐로우 컬러(조명상 컬러는 잘 안 보이지만). 일단 입에 넣는 순간 '맛있다'는 느낌이 빡 왔다. 멜론, 청포도 등 희고 푸른 과일의 시원한 상큼함과 엘더플라워 등 고혹적으로 감도는 꽃 향기가 매력적이다. 작은 페페론치노 절임 같은 풋풋하고 매콤한 힌트도 느껴진다. 아직 많이 어림에도 불구하고 화사함과 풍성함, 넉넉함이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그릇'이 큰 와인. '15년 빈티지는 비행기로 공수해 온 샘플이라고.
Schiopetto, Collio Friulano 2013 / 스키오페토 콜리오 프리울라노 2013
비교적 진한 금빛이 살짝 디벨롭되었다. 생강과 벌집 같은 파라핀, 가벼운 꿀 뉘앙스. 노란 꽃 향과 오렌지 풍미와 함께 약간의 산화 뉘앙스도 느껴진다. 비교적 정제된 산미에 짭쪼롬한 뉘앙스도 드러난다. 2013년은 더웠던 해로 크리미/버터리하며 살구 등 스윗한 과실 풍미가 비교적 많이 드러났다는 설명. 반면에 산미가 낮은 편으로 다른 빈티지에 비해 약간 과숙한 감이 있고 플랫한 느낌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아쉬운 모습도 있지만 숙성 이후의 모습을 언뜻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Schiopetto, Collio Friulano 2008 (Magnum) / 스키오페토 콜리오 프리울라노 2008 (매그넘)
로스팅한 너티 풍미에 토스티, 스모키 뉘앙스가 제법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코어의 핵과와 시트러스 과실 풍미는 여전히 잘 표현되며 다른 풍미들과 조화를 이룬다. 미디엄풀 바디에 단단한 구조감, 적절한 산미가 짜임새를 느끼게 하며 크리미한 뉘앙스가 디벨롭되어 편안함이 더해졌다. 잘 익은 프리울라노의 매력과 함께 추가 숙성 여력 또한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특히 메인인 농어 요리와 매칭하니 과일 풍미가 살아나면서 아주 잘 어울렸음. 마달레나씨도 '08년이 서늘하고 비가 많았던 해로 풀이나 토마토 잎 같은 풋풋함과 페트롤 터치가 드러나지만 입에서의 집중도가 좋아 메인 디시와 잘 어울릴 듯 하다고 언급했다.
50여 년 간 프리울라노를 만들어 온 스키오페토 와인의 넉넉한 품격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세 빈티지가 다른 풍미와 개성을 보여주었는데 오직 빈티지의 특성과 세월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잘 보관된 프리울라노는 30년 까지 숙성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프리울라노 뿐만 아니라 이날 소개된 스키오페토 와인은 전반적으로 맑고 방순한 스타일로 품종과 지역의 특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예정에 없던 매그넘 한 병이 추가로 제공되었다. 감사♥
Mario Schiopetto, Bianco 2009 Venezia Giulia IGT (Magnum) / 마리오 스키오페토 비앙코 2009 (매그넘)
14K 골드 컬러에 가벼운 바닐라 힌트와 크리미한 뉘앙스. 청귤 같은 청량함과 모과의 풋풋함, 사과의 달콤한 아로마가 조화롭게 드러난다. 미디엄풀 바디에 편안한 질감과 산미, 스모키 모카 뉘앙스. 토착 품종인 프리울라노에 국제품종의 대명사인 샤르도네를 블렌딩하여 유산 발효와 오크 숙성을 진행한 와인이다.
마리오 스키오페토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도전정신 또한 강한 사람으로 두 품종의 블렌딩을 위해 20년 이상 연구했다고. 70년 수령의 콜리오 지역 프리울라노와 평지에서 재배한 샤르도네를 블렌딩했으며 코에서는 샤르도네, 입에서는 프리울라노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전체 라인업. 화이트 와인만으로도 이렇게 흥미로운 디너가 충분히 가능하다.
함께한 음식들.
프로슈토와 제주산 애플망고(Prosciutto e Jeju Apple Mango). 정신이 나갔었는지 망고에 프로슈토를 얹어 먹으면서 '복숭아'가 참 맛있다... 고 했음. 모양과 크기, 질감만 봐도 복숭아는 절대 아닌 것을 ㅋㅋㅋㅋㅋ 근데 '와~ 이렇게 큰 복숭아가 다 있네!' 이러고 있었으니... 얼이 빠져도 단단히 빠짐ㅠㅠ
치즈소스를 곁들인 따뜻한 아티초크 무스(Spormato di Carciofi con Fonduta).
샤르데냐산 보타르가(숭어알) 링귀네(Linguine alla Bottarga). 짭쪼롬한 바다 내음이 가득해서 엔초비를 넣었나 했는데 숭어알이었음. 부담스러워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개인적으로는 굿.
신선한 농어 요리(Filetto di Branzino). '08빈 프리울라노와 정말 좋은 궁합을 보여주었음. 와인의 플로럴한 뉘앙스를 마구 피워내 준.
디저트와 커피로 마무리.
정신 사나웠고 컨디션도 별로였던 피곤한 날이었는데 기운을 불어는 와인과 맛있는 음식 덕분에 너무나 즐거웠던 디너. 다른 생각보다는 온전히 즐기는 데 집중했다. 해피해피♥
20170515 @ 알파르코
개인 척한 고냥이의 [와인저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