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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시음회·전시회·세미나

'스파이스 특성이 호주 쉬라즈에 미치는 영향' @호주 와인 세미나(2016)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18. 12. 1.



이게 도대체 얼마나 묵은지인가. 2016년 9월 6일에 있었던 호주 와인 그랜드 테이스팅의 부대 행사로 열렸던 호주 와인 세미나. 주제는 '스파이시 특징이 호주 와인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쉽게 말해서 호주 쉬라즈의 '후추향'에 대한 세미나였던 것.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인 데다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인사이트를 주는 세미나였기에 반드시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밀리고 밀리다 2년이 훌떡 지나버렸다. ㅎㄷㄷㄷ...


 


그랜드 테이스팅 행사장. 요 시점에 상당히 바빴던 고로, 세미나만 간신히 시간을 내서 들었고 테이스팅은 거의 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엄청나게 준비된 와인들을 맛보 못 보고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니... 흑흑. 하지만, 행사장 코너에 마련되어 있던 '아로마 부스'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래서 간단한 포스팅을 올해 초에 남겨 두었음;;;






세미나 장소. 만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와인 오스트레일리아 히로 테지마 아시아 지역대표의 오프닝으로 세미나가 시작됐다. 호주 와인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으며 다양한 와인 생산 지역을 지닌 국가로, 한 가지 스타일과 특정 품종(=쉬라즈)으로 한정해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호주 하면 쉬라즈, 쉬라즈 하면 진한 맛과 스파이시, 특히 후추향이다. 그래서 이런 주제에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이 테고.





세미나에 앞서 준비된 시음 와인들.  블라인드, 그러니까 뭔지 모르는 상태로 세미나가 시작됐다.



 


입가심을 위해 준비된 빵. 뻑뻑한 레드 와인 시음에는 꼭 필요한 녀석이다.




쉬라즈는 1831년 처음 생산되어 호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으로 레드 와인의 47%를 차지한다고. 세계 최고 수령의 쉬라즈 또한 바로사 밸리 랑메일(Langmeil) 포도원에 1843년 식재된 나무다. 쉬라즈만 따지만 신생국이 아니라 뼈대있는 집안, 아니 국가인 셈. 



스파이스/흑후추 아로마는 고품질 호주 시라즈의 핵심 스타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와인메이커들은 특징있는 와인, 특히 후추 풍미가 강조되는 서늘한 기후 와인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그렇다 보니 후추 풍미의 원인과 강화방법은 무엇일지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의뢰했다고 한다. 그래서 1999년 호주 와인 연구소(Australian Wine Research Institute, AWRI)에서 연구를 시작했고, 10년에 걸친 연구 끝에 확인되었다.


AWRI는 와인 리서치 전문 기관으로 연구와 그 연구로 발견한 정보를 공유하는 데 특히 큰 노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새로운 트렌드, 이슈에 대한 신속한 대응, 문제 해결 등 와인 업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고.





와인의 스파이시/후추 아로마 원인이 되는 물질은 로툰돈(Rotundone)이다. 이집트에서 3천년 전에 향부자의 뿌리에서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식이용법으로 활용했으며 인도나 중국에서도 약으로 이용했다. 





일반 식물에서도 발견된다. 압도적으로 백후추, 흑후추에 많이 들어있고, 넛그래스 위드(방동사니 씨인 듯), 마조람, 로즈마리, 솔트부쉬, 제라늄, 바질 등의 순이다.  포도에도 함유되어 있지만 후추에 비하면 상당히 미량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양이 적다고 해도 인식이 잘 되기 때문에...





21개의 호주 쉬라즈 와인을 대상으로 스타일을 구분해 보았다. 검은 점이 각각의 와인들로 근처에 위치한 각각의 단어들이 와인의 성격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은 지역으로, 지역의 차이가 와인의 다양성을 형성한다. 





특히 로툰돈은 서늘한 지역에서 잘 발현되는데, 센트럴 빅토리아 같은 지역이 대표적이다. 위 지도에서 동그라미를 친 지역들이 바로 대표적인 서늘한 지역들이다.





로툰돈은 상당히 쉽게 인지된다. 역치가 낮다는 얘기다. 물에서는 L당 8ng, 레드 와인에서는 16ng만 있으면 감지할 수 있다고. 나노그램(ng)은 대단히 적은 양이다. 쌀로 비유하자면 수백만 알 중 한 알 정도라고.




올림픽 규격 수영장 물에 로툰돈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수영장 전체에서 후추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ㅎㄷㄷ 그런데 이거 발견하는 데 7년 걸렸다고 ㅎㅎㅎㅎㅎ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1번과 2번은 와인의 향을 맡으라는 가이드. 2번이 확실히 peppery하다.


1번. 

진한 자주빛 루비 레드 컬러. 달콤한 블루베리, 라즈베리 풍부한 과일과 가벼운 꽃 향기, 그리고 은근한 허브. 스월링 후 가벼운 스파이스가 드러나긴 하지만 주로 붉은 베리 향기가 전체를 주도한다. 약간의 토양 뉘앙스가 더해지는 정도. 커런트, 자두, 촘촘하지만 부드러운 타닌, 미티 힌트에 더해지는 후추 향, 감초. 전반적으로 과일 중심이다.


2번.

컬러는 유사하지만 오렌지 레드 휴가 살짝 있고 조금 더 페일한 느낌인 듯. 향도 비슷한 듯 하지만 후추향이 좀 더 강하게 느껴지며, 스파이시 & 허베이셔스하다. 스월링 후 더 명확해지는 레드 베리, 체리. 1번과 유사하게 가벼운 바디에 잔잔하지만 명확한 산미, 꼿꼿함. 붉은 베리와 자두  풍미에 신선하고 서늘한 인상이 더 강하다.



결론은?



1번 와인은 일반 드라이 와인, 그러니까 대조군이다. 2번 와인은 1번 와인에 로툰돈을 220 나노그램 추가한 것. 리터 당 16ng만 있어도 느낄 수 있다는데 십 몇 배나 되는 220ng을 추가했으니 느껴지지 않을 리가 없다.음... 조미료(?)를 친 같은 와인이었구나.


무슨 와인인지는 마지막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로툰돈에 대한 민감도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와인 전문가 패널들을 대상으로 로툰돈 함량 0.4ng부터 4000ng 이상까지 다양한 농도의 와인으로 실험을 했는데, 4000나노그램이 넘어야 감지한 사람도 상당히 많다! 심지어 패널의 20% 정도는 아예 인지하지 못했다고. 통계적으로 어느 나라든 전체 인구의 25% 정도는 후추향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상당히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사실 와인의 다른 요소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민감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이 흥미로운 것일 지도... ^^;;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에서 후추 향이 많이 날까? 나아가 어떻게 스타일 개선하여 와인에 후추 캐릭터를 넣을 수 있을까? 


물론 로툰돈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와인인 것은 아니지만.





지역에 따른 차이를 보여주는 그래프.




생장기 평균 온도가 낮을 수록 로툰돈 농축량이 더 많다. 생장기 온도와 로툰돈 함량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얘기. 위 그래프의 경우 좌측은 샴페인과 비슷한 수준의 서늘한 기후라고 한다. 가운데가 부르고뉴 수준.




마가렛 리버의 후추 풍미가 바로사 밸리보다 강하다. 




와이너리와 스타일이 같을 때 빈티지에 따른 로툰돈 함량 차이. 로툰돈 함량이 높은 빈티지가 일반적으로 서늘한 빈티지다. 캔버라 부근 서늘한 지역에 위치한 와이너리의 데이터라고.




주로 로툰돈 함량이 증가하는 것은 완숙 후반기이다. 




심지어 같은 포도밭에서도 위치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위 포도밭은 해발 350m 정도의 산으로 둘러쌓인 구릉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1월 평균 기온이 샹파뉴와 유사하다. 6ha의 면적에서 점이 찍힌 위치의 177개 샘플 나무를 추출하여 연구했다. 녹색 선 부근에 구릉이 있으며, 사진으로 보면 상당히 평평해보이지만 상당히 높낮이 차이가 있다고 한다.




색이 진할 수록 로툰돈의 함량이 높은 것인데 30배 이상의 격차가 날 정도로 빈티지 별 차이가 크다.  참고로 2012년이 베스트 빈티지라고. 살짝 이해가 안 가는 건 베스트 빈티지가 보통 평균기온이 더 높을 것 같은데, 그럼 로툰돈 함량이 적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물어볼 걸.





일반적으로 로툰돈은 껍질에서만 발견된다. 씨나 과육에는 없다. 일반적으로 포도 상단이 하단보다 로툰돈 함량이 많다. 윗부분은 잎이 빛을 가릴 가능성이 높고, 상대적으로 하단은 빛을 덜 가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늘이 많이 질 수록 로툰돈 함량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원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로툰돈 함량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역, 빈티지, 심지어 동일 포도밭에서의 입지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난다.





발효가 진행되면서 와인의 로툰돈 함량이 증가한다. 껍질에 있는 로툰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많이 녹아나오기 때문.





효모에 따른 차이는 거의 없다.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고객들이 로툰돈 풍미를, 아니 로툰돈 향이 강한 와인을 좋아할까? 일반적으로 고객들은 후추 풍미를 독특한, 다른 뭔가와 구별되는 캐릭터로 인지해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남아 있는 3개 와인 테이스팅.





정답 공개.





요 와인들이다... 좌로부터 3, 5, 4번.




3번. Glaetzer-Dixon, Mont-Pere Shiraz 2014 Tasmania (좌측, 로툰돈 70ng/L)

남부 타즈매니아 와인으로 마시기 좋고 힘있는 향, 풍부 완숙 과일 풍미가 특징. 오크 풍미가 있지만 두드러지지 않으며 농축적인 풍미에 가벼운 단맛과 스파이시한 풍미가 인상적이다. 아직 와인이 발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4번. Logan Wines, Ridge of Tears Shiraz 2013 Orange (우측, 37ng/L)

다양한 플레이버가 조화된 리치한 와인으로 앞 와인이 레드 베리라면 이 와인은 자두 풍미가 강하고 우아하다. 스파이스가 살짝 느껴지지만 주로 허브/잎 향. 후추 향은 수치대로 약한 편이다. 13빈티지는 최고 중 하나로 꼽힌다고.


5번. Monte Langi Ghiran, Cliff Edge Shiraz 2012 Grampian (가운데, 42ng/L)

12빈은 상대적으로 서늘한 빈티지 중 하나. 편안하고 쉽게 마실 수 있는, 완숙한 검은 과일 풍미의 인텐시브가 훌륭한 와인. 후추 향이 강해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결론:

- 로툰돈은 매우 안정적인 성분으로 포도 껍질에서 쉽게 추출되며, 양조 과정에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

- 로툰돈 함량에 영향을 미치는 포도 재배상의 매개 변수: 포도 수확일, 클론의 종류, 포도나무 생장 활발도, 잎 제거 정도 및 수확량

- 온도 및 햇볕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 소비자는 와인에 잘 융합된 후추 풍미에는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일부의 경우는 후각으로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끝.





세미나를 진행한 AWRI의 콘 시모스(Con Simos) 씨. 포스팅하면서 다시 읽어봐도 상당히 유익했다. 많은 것을 배웠고, 배울 것이 더 많다고 느꼈던 세미나. 더 빨리 정리해서 현장감과 당시 생각을 함께 담았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ㅠㅠ




20160906 @ 호주와인그랜드테이스팅2016

개인 척한 고냥이의 [술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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