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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시음회·전시회·세미나

4 Hands "기름파티" @제육원소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19. 9. 1.

9월의 첫 날,

 

 

쌍림동 '제육원소'에서 열린 의미 있는 행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가깝다.

 

 

그런데 행사 이름이 오묘하다. "기름파티" 라니... 

 

제육볶음을 중심으로 다양한 퓨전 요리를 만드는 제육원소와 국내산 깨의 맛을 그대로 살린 참기름과 들기름을 만드는 쿠엔즈버킷, 그리고 슈토의 임정서 셰프와 광명동굴 와인연구소장 최정욱 소믈리에가 함께 만든 음식과 와인 페어링 이벤트다. 

 

우리가 평상시에 자주 먹는 참기름, 그리고 들기름. 누구에게나 익숙할 이 기름이 왜 페어링의 주제가 된 걸까?

 

 

일반적으로 참기름과 들기름은 깨를 볶아 고소한 향을 내서 착즙한다. 이렇게 하면 깨를 볶는 과정에서 영양소는 파괴되고, 높은 온도에서 기름의 맛이 획일화되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볶는 과정에서 깨가 타게 되면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발생해 건강에도 큰 악영향을 끼친다.

 

이번 '기름파티'에 사용한 쿠엔즈버킷의 참기름과 들기름은 국내산 참깨와 들깨만 100% 사용해 저온 압착 방식으로 착유해 만든다. 이렇게 기름을 짜내면 영양소 파괴 없이 재료 본연의 맛을 드러내는 기름을 얻을 수 있다. 벤조피렌 발생 위험도 없는 것은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제대로된 기름을 맛 보여주고 싶었던, 그리고 단골 친구들과 편안한 한 끼를 나누고 싶었던 제육원소 가족들의 마음이 잘 드러난 이벤트다. 게다가 광명동굴 와인연구소장 최정욱 소믈리에님이 엄선한 한국 와인 페어링이 더해져 더욱 맛있고 흥겨운 행사가 되었다는.  공식 행사가 끝나고 '술판'이 이어진 건 인지상정.

 

행사는 9월 1일 그리고 9월 8일 양일간 점심/저녁 총 4차례에 걸쳐 진행되며, 나는 가장 먼저 진행된 1일 점심 행사에 참석했다.

 

 

행사를 위해 칠링되고 있는 한국 와인들. 참기름과 들기름이 메인 테마였지만 사실 내 흥미를 강하게 잡아 끈 것은 한국 와인과 음식 페어링이었다. 

 

 

소년 같은 인상의 최정욱 소믈리에님이 준비부터 서빙까지 수고해 주셨다.

 

 

온몸으로 와인을 열고 계신 ㅂㅁㅇ기자님ㅋㅋㅋㅋㅋ

 

 

애피타이저로 준비된 예쁜 청귤. 상큼한 신맛이 입맛을 돋우기에 제격.

 

 

요리를 준비 중인 '제육원소' 김동영 오너 셰프님과 '이자카야 슈토' 임정서 헤드 셰프님. 

 

 

참석자가 모두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리스트에 없던 와인을 서빙해 주셨다. 다래(≒키위)로 만든 '7004S'라는 와인인데 은근한 단맛과 강하지 않은 신맛이 편안했다. 막 들어와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당분 보충을 하니 피로가 풀리는 느낌. 알코올 함량 8%.

 

경상남도 사천에 위치한 영농조합 오름주가에서 만드는데 7004라는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다. 20여 년 전 통합된 삼천포(3004)와 사천(4000)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어 하나로 통합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거라고. 포털 검색을 해 보니 연관검색어로 '다래와인 7004D'와 '다래와인 3004'이 함께 뜬다. 7004D는 알코올 12%의 드라이 와인이며 3004는 7004S의 하프 보틀인 듯.

 

 

오늘의 메뉴. 취지에 맞게 간결하면서도 재료의 맛을 살릴 수 있는 음식들.

 

 

아래 맑은 것이 참기름, 위에 진한 것이 들기름이다. 나란히 따라놓으니 컬러 차이가 확연하다. 

 

그리고 왼쪽은 생 참기름/들기름, 오른쪽은 살짝 볶은 것.

 

 

갓 지은 밥에 소금만 살짝 넣어서 만든 작은 주먹밥. 

 

 

그 주먹밥에 기름만 곁들여서 각각의 맛을 즐기는, 그야말로 오일 테이스팅.

 

가장 먼저 먹은 생참기름은 향긋한 내음과 함께 고소함이 살짝 감도는 풋풋하고 방순한 인상이었다. 참기름이 원래 이렇게 순수한 느낌이었나 하고 놀랐을 정도.  살짝 볶은 참기름은 살짝 감돌던 고소함을 배가시키는 동시에 스모키 '힌트'를 더했다. 반면 들기름은 편안한 구수함이 화사하게 퍼지며 입안에서의 유질감과 풍미가 더 두툼했다. 볶은 참기름은 그 구수함이 더 피어나기보다는 단단하게 뭉치는 느낌이다.  

 

볶은 효과에 대해 비교하자면 참기름은 은은하던 고소함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원래 화사한 풍미의 들기름은 고소함이 응축되어 전달되는 느낌이랄까.

 

 

볶은 들기름을 사용한 나물 무침 3종과 볶음 3종. 연두부 소스가 곁들여진 것이 쑥갓, 참나물, 건가지 무침. 나머지는 곤드레나물, 취나물, 고사리 볶음. 손이 많이 가는 나물 요리를 고소한 들기름으로 정갈하면서도 풍성하게 맛을 냈다.

 

무친 나물 3종과 곁들인 와인은 경북 김천에 위치한 수도산와이너리의 '크라테(Krater) 화이트 2016'. 미디엄 드라이 화이트 와인으로 향긋한 청포도 향과 달싹한 자두 캔디의 풍미가 입맛을 돋운다. 정확한 정보 검색이 안 되는데 산머루와 샤인 머스캣 등의 품종을 사용하시는 듯.

 

볶은 나물 3종과는 전주 써니 헬프에서 만든 '무화과 로제'를 곁들였다. 금빛 앰버 컬러에 도라지 껍질을 벗길 때처럼 쌉싸래함과 떫음이 향에서부터 느껴졌는데 입에서는 떫거나 쌉쌀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두툼한 바디감에 제법 느껴지는 단맛과 균형을 이르는 새콤한 신맛, 붉은 베리 풍미에 곁들여지는 가벼운 장향(酱香). 무화과로도 이렇게 개성적인 와인을 만들 수 있구나.. 놀랐다.

 

 

생 들기름과 유자를 살짝 곁들인 신선한 오징어. 나름 괜찮다는 초밥집에서도 유자를 너무 강하게 써서 메인 재료의 풍미를 잡아먹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요 디시는 유자와 들기름, 오징어 맛의 조화가 매우 절묘했다.

 

 

곁들인 와인은 충남 예산사과와인의 '추사 로제 스위트'. 레드 러브라는 속까지 붉은 사과 품종으로 만들어 와인의 컬러가 반짝반짝 영롱한 붉은 구릿빛이다. 새콤달콤한 사과향, 가벼운 쌉쌀함과 수렴성이 스치는 첫인상 이후 달콤한 사과꿀 풍미가 느껴진다. 심플하지만 깔끔하고 날 선 느낌. 추사 선생의 기품을 반영한?

 

 

ㅂㅁㅇ 기자님 페이스북에서 불펌함;;;

반으로 가른 레드 러브 품종. 껍질 뿐만 아니라 속도 붉은빛을 띠기 때문에 술을 담그면 영롱한 붉은빛을 띤다. 그것이 바로 추사 로제의 컬러가 된 것. 이런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 생각을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다. 사과 자체는 먹기에 조금 질긴 편이고 산미가 강하다고. 하지만 워낙 예쁘다보니 어떻게든 모양을 살려 먹어 보고 싶기도 하다.

 

 

다음 메뉴는 모듬 튀김. 볶은 소금과 볶은 참기름 소스를 곁들여 먹는 것이 신의 한 수. 튀김옷 반죽에도 생 참기름을 넣어 맛을 냈다.

 

 

가지 튀김. 역시 가지는 튀기는 게 제맛이다.

 

 

튀김엔 역시 스파클링이라며 등장한 와인. 강원도 홍천 샤또 나드리의 '너브내 스파클링 드미 섹 화이트'. 물파스같이 화한 허브향에 청귤, 라임 같이 싱그럽고 상쾌한 아로마. 거품은 조금 거칠고 성근 편이지만 달지 않은 사과의 깔끔한 맛이 개운하다.

 

 

단호박 튀김. 

 

평상시 단호박을 많이 즐기지 않는데 달콤한 단호박에 고소한 내음이 더해져 완전 맛있었음.

 

 

연근 튀김.

 

연근 구멍에 다진 새우를 넣어 튀겼다. 그 정성때문에라도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요리.

 

 

이번에는 스파클링 와인과 같은 생산자가 같은 품종으로 만든 거품이 없는 일반 드라이 와인이 나왔다. '샤또 나드리 너브내 화이트'. 포도 품종 특유의 이취를 날리고 나면 머스크 멜론이나 패션 프루트 같은 이국적인 열대과일 풍미가 화려하게 드러난다. 골드 컬러, 들큰한 잉어 사탕(녹인 설탕 굳힌) 뉘앙스에 씁싸래한 단맛이 개성적인 와인. 

 

너브내 와인들을 양조하는 데 사용한 '청향'은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2009년 와인 양조용으로 개발한 포도 품종으로 씨가 없는 청포도다. 양조용으로 개발했지만 씨가 없어 먹기 쉽고 독특한 향이 있어서 식용으로도 인기를 얻으며 퍼져나가고 있는 중. 청향, 청수와 같이 한국 기후와 토양에 맞는 양조용 포도들이 많이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비티스 비니페라 품종들도 적절한 지역을 찾아 재배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더해서.

 

 

튀김의 마무리로 관자를 넣은 야채튀김.

 

캬~ 때깔 좋고 맛 좋고!

 

 

메인 디시는 생 참기름을 두른 팬에 구운 저민 돼지 안심. 볶은 참기름과 새콤한 된장 소스가 곁들여졌다.

 

메인과 매칭한 와인은 충북 단양 에델농원의 '에델 미디엄 스위트'. 매실로 담근 와인으로 진한 골드 컬러에 진한 매실 향과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드라이한 미감에 은근한 산화 힌트가 느껴지며, 신맛이 길게 피니시까지 이어져 깔끔하다. 안심의 깔끔한 풍미와 새콤하고 고소한 된장 소스, 그리고 매실 와인의 달콤함이 아주 잘 어우러졌음.

 

 

후식은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을 꿀과 버무려 만든 한과. 셰프님들이 누름틀로 직접 눌러 만드는 광경을 동영상으로 찍었어야 했는데 아쉽다.

 

곁들인 와인은 충북 영동 도란원의 '샤토 미소 스위트 로제'. 샤토 미소는 아시아 와인 트로피에서 5년 연속 수상했으며,  광명와인동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이라고 한다. 밝고 영롱한 체리 레드 컬러에 어울리는 딸기와 붉은 베리, 체리 향이 가득한 달콤하고 편안한 와인이다.

 

 

와인 리스트. 솔직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와인을 만드는 분들의 시도와 용기에는 응원을 보내면서도 품질은 글쎄...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생각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한국 와인은 분명 각자의 개성을 갖춘 무시 못할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게 더욱 희망적이다. 

 

많은 분들의 노력에 정말 기립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기회 되는 대로 진지하게 마셔 봐야겠음.

 

 

그리고 이후 이어진 술자리는.... 감사합니다ㅋㅋㅋㅋ  항상 흥겨운 자리를 만들어주시는 제육원소 화이팅!!

 

 

20190901 @제육원소(쌍림동)

개인 척한 고냥이의 [알코올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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