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여행을 다녀오면서 안동소주를 사 왔다. 좌로부터 박재서 명인의 45% 안동소주와 35% 안동소주, 그리고 조옥화 명인의 45% 안동소주 2병. 박재서 명인의 35% 안동소주는 대중화를 위해 알코올 함량을 낮춘 것으로 35%보다 더 낮은 22%도 있다. 조옥화 명인은 오직 45% 안동소주만 판매한다.
안동소주는 이강주, 문배술, 감홍로, 죽력고 등과 함께 상당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전통 증류주 중 하나. 그런데 보통 한 사람에게만 부여하는 명인(기능보유자) 타이틀을 안동소주에는 두 명에게 부여했다. 왜일까?
그건 두 명인의 술 빚는 방식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명인들도 홈페이지 등 관련 자료를 통해 내세우는 포인트가 상당히 다르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나름 서로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고 차별성을 부각하려는 느낌이랄까. 두 분 사이는 괜찮으십니까?
일단 박재서 명인의 안동소주.
이름이 '명인 안동소주'다. 그리고 케이스부터 각종 자료에 이르기까지 '가양주'임을 강조한다. 전통식품 명인 6호 박재서 씨는 반남박씨 가문의 25대손으로 조모 및 어머니 등으로부터 집안의 전통 비법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거기에 '제비원 안동소주'의 제조명장이었던 장동섭 씨에게도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가문의 비법에 현대화 양조 기법을 접목했다는 점을 포인트로 내세우는 듯싶다. 1992년 '(주)안동소주'를 설립했고 1995년엔 전통식품 명인 6호로 인증되었다.
박재서 명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삼단사입으로 술을 빚는다는 점이다. 삼단 사입은 한 번에 술을 빚지 않고 세 번에 나누어 쌀과 누룩, 물 등의 재료를 투입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잡균의 번식이 억제되고 효모의 증식이 활발해져 양질의 술을 얻기가 쉽다.
이런 3단 사입과 유사한 방법을 예전 사케 관련 책을 읽을 때 여러 번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3단 빚기'라고 번역이 되어 있었는데 잡균을 억제하여 깨끗한 사케을 얻고 효모가 알코올에 내성을 키우도록 도와 발효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안동소주의 3단 사입과 목적이 같다!) 다만 사케의 3단 빚기는 4일 안에 이루어지며, 유지하는 온도가 2단은 섭씨 9-10도, 3단은 7-8도로 훨씬 낮은 차이가 있다. 이렇게 만든 모로미(醪)를 15도 전후의 온도에서 14-20일 정도 발효하니까 발효 온도 또한 안동소주보다 낮다. 아마 박재서 명인이 제비원 소주에서 배워서 안동소주에 접목한 방법이 바로 3단 사입이 아닐까 싶다. 제비원 소주의 방식은 일본에서 넘어온 것일 가능성이 높고. 일본 것을 배워와서 싫다거나 나쁘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외려 좋은 방법, 효율적인 방법이 있으면 남의 것이든 적의 것이든 배워야 한다. 적극 환영임.
명인 안동소주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안동소주 제조방법인 너무 간략화되어 있고 실제 출시 제품의 생산방법과도 다를 것 같다. 저런 소줏고리로 대량생산 제품을 만들 리가 없... 어쨌거나 명인 안동소주는 쌀로 누룩을 띄우고 3단 사입으로 양조한 청주로 불이 직접 닿지 않는 중탕식으로 감압증류를 하며, 증류 후 100일 정도 숙성을 통해 화근내를 제거해 부드러운 술맛을 낸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안동 소주의 유래를 13세기 고려시대 원나라의 침략에서 찾고 있다. 몽고의 일본 침공의 병참기지가 안동에 있었고 그때 안동에 소주 빚는 방법이 본격 전래된 것이 아니겠냐는 것. 고려시대에 권문세족 사이에 소주가 유행이었고 민간요법으로 소주가 사용되었다는 것 또한 논거로 들고 있다.
반면 조옥화 명인의 안동소주는 민속주임을 강조한다.
민속주 안동소주는 안동소주·전통음식 박물관에 들러서 직접 구매했다. (박재서 명인 것은 하회마을 입구 직판장에서 구매)
조옥화 명인은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 전후 정부의 민속주 발굴 작업의 일환으로 1987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2호로 지정되었다. 전통식품 명인 20호로 인증은 2000년. 박재서 명인보다 전통식품 명인 인증은 늦었지만 무형문화재 지정은 빨랐다. 그리고 민속주 안동소주 제조면허도 1990년에 박재서 명인보다 먼저 냈다. 현재는 며느리와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다고 한다.
입구에는 작년에 다녀간 <알쓸신잡 2> 멤버들과 찍은 사진이 떡 하니 걸려 있다. 사진 속 인물들이 아마 아들과 며느리인 듯.
시음 장소에서는 <알쓸신잡 2>의 안동소주 박물관 방영 부분을 반복해서 상영하고 있었다^^; 참고로 방송에서 '저런 고급 주안상을 내는 대갓집에 짚신은 안 어울린다'라고 지적했던 곳(위 사진!)에 가 보니 짚신이 가죽신으로 바뀌어 있었음.. 섬세하셔라^^;;
입구에 있는 시음주를 한잔 따라서 천천히 음미하며 전시관을 관람했다. 일단 이름부터 '민속주 안동소주' 다. 이게 상당히 중요하다. 민속주라고 하면 한 집안의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많이 만들어 마셨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성격이 가양주가 아니라 민속주라는 얘기다.
1999년에 한국을 찾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생일상을 차린 것도 소개하고 있다. 안동소주뿐만 아니라 전통 음식에 관해서도 조예가 깊으신 듯. 민속주와 전통음식을 연계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안동소주 제조 과정을 소개하는 장소. 오른쪽 옆에 보이는 것이 밀로 띄운 누룩이다.
대단히 간략화된 제조과정 소개. 아래 소줏고리 단면도에서는 부글부글 끓는 모습과 효과음을 재현해 놓았다. 귀엽^^*
홈페이지에서는 조금 더 설명을 덧붙여 놓았지만 이 역시 전통적인 제조방식. 실제 시판되는 안동소주가 어떤 시설에서 어떻게 제조되는지 궁금하다. 체험 신청을 해 보아야 할까. 조만간 꼭 체험해야지. 그러고 보니 '찾아가는 양조장' 프로그램들을 시간 될 때마다 찾아다니며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말이 삼천포로 샜는데, 조옥화 명인의 민속주 안동소주는 누룩을 밀로 띄우며 3단 사입이 아니라 한 번에 술을 빚는다. 또한 빚은 술이나 증류한 소주의 숙성이나 증류방식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고 있지 않다. 사실 이런 디테일들이 궁금한데.. (이후 추가) 전 전통주갤러리 관장을 역임한 이현주 님의 <한잔술, 한국의 맛>에 따르면 민속주 안동소주는 소주고리와 같은 상압 증류 방식을 사용한다고 한다.
명인 안동소주와 달리 안동소주의 기원을 신라에서 찾고 있다. 당나라 시대에 이미 중국에서 소주를 마셔 왔으므로 긴밀한 외교 관계를 맺고 있던 신라에도 소주가 소개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혹은 당시 신라와 교역을 했었던 아라비아에서 증류 기술이 넘어왔을 수도 있다는 추측 또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얘기들은 추측일 뿐 근거가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내 생각엔 원나라 침공 이전부터 소주를 만들어 왔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끌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명인 안동소주와도 대립각을 세우고) 솔직히 유래에 대해서는 명인 안동소주에서 제시하는 몽고 유입설이 좀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이후 추가) 하지만, 허원 님의 <음주탐구생활>에서는 신라시대 유물 중 일부 술잔 크기가 지나치게 작은 걸로 보아 증류주용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신라시대부터 증류주를 만들고 즐겼을 가능성도 분명 있다는 이야기다.
두 안동소주의 차이를 정리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
명인 안동소주 |
민속주 안동소주 |
기능 보유자 |
박재서 명인 |
조옥화 명인 |
성격 규정 |
가양주 |
민속주 |
유래 |
고려시대 (몽골) |
신라시대 (당 or 아랍) |
누룩 |
쌀누룩 |
밀누룩 |
재료 |
멥쌀 100% |
멥쌀 100% |
전술 양조 |
3단 사입 |
한 번에 양조 |
증류 방법 |
중탕식 증류 |
직접 가열 |
증류 후 숙성 |
100일 |
언급 없음 |
박재서 명인의 것은 오래전에 몇 번 마셔 본 경험이 있는데 꼿꼿한 인상에 주질이 깔끔하고 맑은 느낌이 기억에 남는다. 조옥화 명인의 것은 이번 방문 때 한 잔 시음해 보니 첫인상은 조금 거칠지만 마실 수록 푸근하고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얼른 제대로 마셔 보고 싶다. 가급적 증류주를 즐기는 애주가 여러 사람과 함께 의견을 나누며 천천히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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