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마지막 날 출근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온 족발. 성신여대역 사거리 부근 오백집왕족발인데 상당히 괜찮다. 족발 잡내를 확실히 잡는 동시에 약재나 부가물의 향이 과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단맛도 강하지 않고.
그렇다면 와인 안주로 딱이지. 최근 와인앤 모어에서 저렴하게 사온 피노 누아 한 병 꺼냈다.
명색이 불곤 피노인데 16900원이다. 같은 생산자의 45년 수령 올드 바인 피노 누아는 19900원. 외려 너무 싸서 불안해지는 가격인데, 데일리 와인 드링커로서 안 마셔볼 수는 없지. 와인앤모어에서 취급하는 물건이니 기본은 할 거라는 믿음도 있고.
와인 자체는 처음 보는 녀석인데 레이블 오른쪽 아래에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에르베 케흘랑(Herve Kerlann). 그의 외가로부터 이어받아 5대째가 되는 네고시앙으로, 부르고뉴 와인을 주로 취급한다.
샤토 드 라보흐드(Chateau de Laborde)는 1678년 본 부근에 지어진 성으로 그 규모와 스타일 등으로 인해 루이 14세가 질투할 정도였다고. 1704년에 3.85ha 정도의 포도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소유주가 프랑스 대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등 이런 저런 부침을 겪다가 1998년 에르베 케흘랑 부부가 매입했다. 이후 케흘랑은 꾸준히 샤토 드 라보르드를 내세운 와인을 만들고 있다.
Chateau de Laborde(Herve Kerlann), Bourgogne Pinot Noir 2014 / 샤토 드 라보흐드(에르베 케흘랑) 부르고뉴 피노 누아 2014
옅은 체리 교자상 컬러에 따를 때부터 살살 피어나는 붉은 베리와 체리 아로마. 가벼운 미네랄과 스파이스 힌트도 살짝 스친다. 생각보다 괜찮다 싶었는데 한 모금 머금으니 산미가 좀 튀는 감이 있고, 많지 않음에도 탄닌이 살짝 거칠게 드러나는 게 아쉽다. 그래도 앵두나 석류, 아세로라 같은 작은 붉은 베리 풍미에 시간이 지나며 감초 풍미와 농가 뉘앙스가 가볍게 드러나 즐길 포인트가 존재한다.
구매가를 고려하면 나름 밸류 와인. 특히 음식과 함께 곁들이긴 괜찮아 보인다. 족발과도 잘 맞았음.
홈페이지에도 소개를 보면 코드 샬로네즈(Cote-Chalonnaise)의 메르퀴레(Mercurey)와 페르낭-베르줄레스(Pernand-Vergelesses) 북쪽 에셰브롱(Echevronne) 마을의 30년 수령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양조한다. 스템을 제거한 후 3일간 섭씨 12도에서 저온 침용 후 온도 제어되는 오픈 뱃에서 7일간 발효한다. 펌핑 오버와 펀칭 다운은 하루에 2회 시행하며 이후 섭씨 15도에서 4일간 냉각 안정화(Cold setting)한다. 12개월 오크 배럴(15% new)에서 숙성 후 가볍게 필터링하여 병입. 편안한 와인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적절히 사용한 것 같다.
따를 때 잔에 떨어지는 와인 컬러가 너무 옅다 싶었는데 다 따르고 나니 꼭 그렇지도 않네. 3천원 더 비싼 '비에이유 비뉴'는 어떨까.
개인 척한 고냥이의 [술 저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