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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주/와인

Argiano winemaker's dinner / 아르지아노 와인 메이커스 디너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19. 11. 11.

아르지아노 와인 메이커스 디너(Argiano winemaker's dinner).

10월의 마지막 밤에 청담동 프렌치 비스트로 '6-3'에서 진행됐다.

 

 

도열한 와인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부터 슈퍼 투스칸 솔렝고(Solengo)와 수올로(Suolo)까지 아르지아노를 대표하는 와인들이 모두 출동했다.

 

 

솔렝고 매그넘 보틀. 너무 흥분했는지 초점이 날아갔네;;; 정신머리도 날아가고

 

 

새로 출시되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왼쪽 것이 일반 브루넬로, 오른쪽 것은 수올로 포도밭의 포도로 양조한 싱글 빈야드 와인이다. 그런데 레이블이 이상하다. 왕관과 방패 모양의 익숙한 아르지아노 문양이 없다. 새로 출시하면서 레이블을 바꾸는 건가 싶었지만 레이블이 너무 엉성한 것 같아서 의아했다.

 

게다가 브루넬로는 규정상 최소 4년 이상 숙성하고 빈티지로부터 5년째 되는 해에야 출시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15년 빈티지는 등장할 수 없는 빈티지 아닌가!

 

 

의문은 질문 하나로 아주 쉽게 풀렸다. 얘들은 시음을 위한 샘플 보틀이라는 것. 레이블의 빈티지 아래에 적힌 'Campione per degustacione prodotto non in commercio'라는 문구가 바로 '시판되지 않은 제품 시음 샘플'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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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올로도 매그넘 보틀로 준비되었다. 참고로 수올로는 2015년 빈티지부터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비냐 델 수올로가 새롭게 출시되면서 더 이상 IGT로는 출시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구글링을 해 보니 Suolo IGT는 2013년 빈티지까지만 검색된다. 그런데 2014년 빈티지는 IGT로도, 브루넬로로도 출시되지 않는 걸까?

 

 

아르지아노(Argiano)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대표하는 와이너리 중 하나다. 1580년 시에나의 귀족인 페치(Pecci) 가문이 그들의 빌라(Villa, 귀족의 주거지로 프랑스의 샤또와 유사한 개념)와 함께 와이너리를 설립한 것이 시초로, 이후 여러 귀족 가문의 손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1930년대 브루넬로 품종으로 양조한 와인을 와인 박람회에 출품해 좋은 평가를 받는 등 품질을 유지했으며, 1967년에는 브루넬로 컨소시엄(Brunello Consortium)의 창립 멤버로 참여해 브루넬로 DOC(1968년)와 DOCG(1980년)의 확립에도 공헌했다

 

아르지아노 와이너리의 발전과 명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은 친자노(Cinzano) 백작부인인데, 1992년 와이너리를 구입하고 사시카이아를 양조한 지아코모 타키스(Giacomo Tachis)를 고용해 슈퍼 투스칸 와인 솔렝고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그리고 브루넬로의 다른 유명 와이너리인 Col d'Orca를 소유한 Francesco Marone Cinzano의 누나이기도 하다.) 2008년 아르지아노는 브루넬로 와인에 다른 품종을 섞었다는 의심으로 불거진 스캔들(Brunellopoli)에 연루되면서 고초를 겪었으나 2013년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2013년 브라질 출신의 사업가 안드레 에스테베스(Andre Esteves)가 아르지아노를 구입하였으며,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숙성 창고 증축하고 새로운 숙성 기술을 도입하였으며, 포도밭에 대한 연구를 통해 떼루아를 제대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2016년부터는 알베르토 안토니니(Alberto Antonini)가 컨설팅 와인메이커로 참여하고 있다.

 

 

오늘의 와인 리스트. 서빙 전 담당자와 비노비노 홍이사님의 테이스팅을 통해 순서가 일부 바뀌었다. 기본급 부르넬로만 최근 빈티지를 먼저 서빙하고, 뒤의 와인들은 모두 올드 빈티지를 먼저 제공했다.

 

이번 디너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10년 전쯤의 빈티지와 최근 빈티지의 비교 시음을 통해 아르지아노의 과거와 현재의 스타일 변화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망의 첫 와인.

 

Argiano, Brunello di Montalcino 2015 / 아르지아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2015

 

조명 때문에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지만 영롱하게 빛나는 루비 컬러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따를 때부터 확연하게 드러나는 퍼퓨미한 아로마! 향긋한 바이올렛 향과 함께 붉은 베리와 체리, 커런트, 붉은 자두 등 상큼한 붉은 과일 아로마가 밀도높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드라이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미감에 력적인 정향과 세련된 바닐라, 그리고 이탄 같은 연기 뉘앙스가 과일 풍미 주변을 살짝 감싸 안는다  촘촘한 타닌과 적절한 산미가 균형잡힌 구조감을 이루는 것이 숙성 잠재력도 훌륭하지만, 아직 어린 시음 샘플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음용성 또한 갖추고 있다.  딱 내 스타일의 브루넬로. 

 

 

뒤이어 브루넬로 2009년과 비교 시음.

Argiano, Brunello di Montalcino 2009 / 아르지아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2009

 

오리지널 레이블을 보니 반갑다^^;; 10년이 지나니 쿰쿰한 숙성 부케가 살짝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검불은 베리 풍미 아래로 삼나무, 오크 바닐라, 버섯, 말린 꽃잎 등 다양한 향기가 피어난다. 입에서는 자두, 커런트, 블루베리 풍미에 크리미한 뉘앙스. 상당히 둥글어졌음에도 15년 빈티지에 비해 확연히 두툼한 타닌, 그리고 비교적 묵직한 바디감. 어쨌거나 술술 넘어간다. 맛있다. 

 

두 와인을 비교한 것 만으로도 스타일의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브루넬로 09 빈티지는 프렌치 바리끄를 중심으로 숙성한 응축되고 묵직한 스타일이라면, 15 빈티지는 커다란 슬라보니안 오크를 중심으로 숙성해 가볍고 산뜻하면서도 장기 보관 또한 가능한 스타일이다. 2013년 소유주가 바뀐 이래 100% 오가닉 농법을 적용하고 있으며, 오랜 숙성이 필요한 전통적인 스타일에서 즉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세련된 스타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한다.

 

 

 

 

Argiano, Suolo 2010 Toscana / 아르지아노 수올로 2010 토스카나

스윗 스파이스와 흑연, 블랙커런트와 완숙한 검은 베리 아로마의 향연. 입에 넣으면 묵직한 느낌에 에 벨벳 같은 질감, 블랙베리와 블루베리 풍미에 곁들여지는 발사믹 뉘앙스, 시나몬, 감초와 스파이스. 파워풀한 스타일로 아직도 충분한 숙성 여력이 있어 보인다.

 

 

Argiano, Brunello di Montalcino Vigna del Suolo 2015 / 아르지아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비냐 델 수올로 2015

분명히 같은 밭에서 나오는 와인이라고 들었는데 이건 뭐 빈티지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확연히 다른 와인이다. 밝은 작은 베리아로마와 체리 리커, 시나몬 캔디, 약간의 가죽 힌트. 무엇보다 향기의 밀도가 어마어마하며 과일 풍미는 농익은 느낌임에도 불구하고 붉은 느낌이 강하며 어필하는 산미와 함께 신선한 인상을 남긴다. 기본 브루넬로에 비해서는 좀 더 미묘하고 복합적인 느낌.

 

 

아르지아노 포도밭의 떼루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세일즈 매니지 리카르도 보기(Riccardo Bogi) 씨. 대단히 열정적인 친구다.

 

 

 

리카르도 씨가 보여 준 몬탈치노와 아르지아노 포도밭의 특징을 3D로 설명하는 동영상.

 

 

비냐 델 수올로(Vigna del Suolo)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4.4ha 크기의 라임스톤 토양의 포도밭으로, 1965년 산지오베제 그로쏘(Sangiovese Grosso = Brunello)를 식재해 아르지아노 소유 포도밭 중 나무의 수령이 가장 오래되었다.  포도의 색이 변하는 베레종(Veraison) 시기가 되면 그루 당 4-5송이의 포도만 남기고 그린 하베스트를 실시해 풍미를 응축시킨다고 한다.

 

 

Argiano, Solengo 2007 Toscana / 아르지아노 솔렝고 2007 토스카나

매콤하게 톡 쏘는 스파이스와 강렬한 허브향으로 인상적인 첫 인상을 선사한다. 진한 검은 베리 풍미에 발사믹 뉘앙스, 그리고 동물성 부케. 풀 바디에 밀키한 질감, 강건하고 단단하며 묵직하다. 모든 것을 갖춘 거대한 풀아머(full armer)의 느낌.

 

솔렝고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메를로(Merlot) 등 보르도 품종과 시라(Syrah)를 블렌딩해 만드는 슈퍼 투스칸 스타일 와인이다. 새 프렌치 오크통을 사용해 숙성한다.같은 슈퍼 투스칸 타입이라도 브루넬로 품종을 사용하는 수올로와는 그 결이 완전히 다르다. 물론 2015년부터 슈퍼 투스칸 수올로는 사라지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수올로의 시대가 열렸지만. 

 

 

Argiano, Solengo 2017 Toscana / 아르지아노 솔렝고 2017 토스카나

 

코를 대면 확연히 어린 인상과 함께 바이올렛 향기와 미네랄이 가벼운 느낌을 준다. 입에서는 블랙베리, 블루베리, 블랙커런트, 라즈베리 등 검(불)은 베리 풍미에 감초와 캐러멜 같은 달콤한 뉘앙스가 살짝 곁들여진다. (미디엄) 풀 바디의 강건한 와인이지만 확실이 07 빈티지보다는 날렵하고 가뿐한 느낌. 

 

 

2007년 빈티지가 왼쪽의 '네오 지옹'이라면 2017년은 유니콘 건담 풀아머 같달까;;;; 갖출 건 다 갖추고 무진장 복잡해 보이지만 기본 몸체는 탄탄하면서도 간결하다.

 

 

기존의 아르지아노 와인들도 분명 훌륭하시만, 새롭게 출시되는 와인들이 훨씬 세련되고 단아한 느낌이다. 게다가 편안한 첫인상과는 달리 대단한 잠재력을 숨기고 있는 고수와 같은 인상이랄까. 이런 수준이라면 부르고뉴 피노 누아 애호가에게 추천하더라도 상당한 호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함께한 음식들.

 

 

감자 밀푀유에 올라 앉은 단새우.

 

 

훈제 치즈크림, 하몽, 피스타치오, 다시마를 곁들인 구운 양배추.

 

 

위의 크림은 빵으로 싹싹 긁어 드심.

 

 

수란, 홍합, 구운 테린을 곁들인 무늬오징어 먹물 리소토.

 

 

강건한 스타일의 레드와인들이 줄줄이 서빙되었지만 해산물 요리들과 매칭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심지어 잘 어울렸음.

 

 

허브 감자, 훈제 파프리카, 사랑초를 곁들인 문어. 먹는 데 정신이 팔려서 사진 따위는 뒷전;;;

 

 

알감자와 탄두리 감자칩을 곁들인 어린 양갈비.

 

 

솔렝고와 아주 좋은 페어링이었음. 사실은 부르넬로와도.

 

 

오랜만에 참석한 디너였는데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감사한 분들과 나눈 변화하는 와인 스타일에 대한 대화도 즐거웠고.

 

 

20191031 @ 6-3(청담동)

개인 척한 고냥이의 [알코올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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