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EY @화양연가

양을 쫓는 모험, 아니... 양을 굽는 모험. 화양연화 아닌 화양연가에서. 원래 룸처럼 칸막이가 쳐진 개별 공간을 예약하기 어려운 집인데 코로나19 사태 때문인지 자리가 있었다. 몇 주 묵은 회포를 와인과 고기로 제대로 풀었음.

 

고기를 전부 구워주시기 때문에 먹기만 하면 된다. 남이 구워주는 고기 좋아♥  참고로 와인 콜키지는 병당 만 원.

 

 

사진도 제대로 안 찍고 메모도 안 했기에 그저 기억을 남기는 차원에서.

스파클러로 스타트. 

 

Louis de Grenelle, Saumur Ivoire Brut NV 

유자 같은 풍미와 특징적으로 드러나며, 시트러시한 산미가 길게 이어진다. 리의 풍미나 복합미, 크리미한 뉘앙스는 상대적으로 좀 부족한 편이지만, 스타터로 입맛을 돋우는 용도로는 제법 잘 어울렸던 와인. Ivoire는 영어로 Ivory, 그러니까 상아라는 뜻인데, 여러모로 Ivoire보다는 Citron 같은 게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나쁘진 않은데 데일리로 쓰기엔 가격이 살짝 비싸고, 그렇다고 좋은 자리에서 마시기엔 품격이 살짝 모자란 느낌이다.

 

시중에 흔히 보이지는 않는 루아르 지역 소뮈르(Saumur) AOC의 와인으로 슈냉 블랑(Chenin Blanc)과 샤르도네(Chardonnay)를 써서 양조한 후, 18개월간 리와 함께 (병) 숙성했다. Louis de Grenelle은 1859년부터 스파클링 와인만 만들어 온 생산자다. 

 

 

Kabaj, Luisa 2012 Goriska Brda 

마치 들판을 수놓은 꽃밭을 만난 듯, 대단히 향긋한 꽃 향기. 마치 뮈스카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톤이 좀 더 음성적이고 복합적이다. 거기에 상당히 드러나는 미네랄리티, 그리고 가벼운 바닐라와 구수한 토스티 힌트. 2012빈티지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첫인상은 신선하면서도 숙성 와인의 뉘앙스도 슬쩍 드러난다. 전반적인 밸런스, 구조감 모두 훌륭하고 우아하면서도 친근함까지 갖췄다. 지향점이 명확하면서도 매너 좋은 대중 정치인 같은 인상이랄까.

  

슬로베니아의 오렌지 와인. 오너 와인메이커 장 미셀 모렐은 프랑스인으로 슬로베니아인 카트자 카바이(Katja Kabaj)와 결혼해 이태리 콜리오(Collio)의 접경 지역인 고리스카 브르다(Goriška Brda)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고대 와인의 기원인 조지아의 와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그런데 거의 모든 와인을 프렌치 오크에서 1년 이상 숙성한다;;) 이 와인 또한 30일 간 이녹스, 나무, 콘크리트(inox, wood, concrete) 발효조에서 30일간 침용한 와인을 프렌치 바리끄에서 2년 이상 숙성 후 병입하여 6개월 안정화를 거쳤다. 사용한 품종은 리볼라 잘라(Ribolla Gialla=Rebula), 프리울라노(Friulano=Zeleni Sauvignon), 피노 블랑(Pinot Blanc=Beli Pinot), 말바시아(Malvazija)와 소비뇽 블랑(Sauvignon). 알코올 13%.

얼마 전에 마신 시비 피노(Sivi Pinot=Pinot Gris)도 상당히 맛있었는데 루이자도 훌륭하다. 그래서...

 

행사 중인 와인 모두 추가 구매했다. 레드(Merlot)도 궁금해서 사 봤는데 빈티지가 '13이라 괜찮으면 한 병 더 사서 셀러링했다가 아들이랑 마셔도 좋을 것 같다.

 

Kabaj Luisa 2010

그랬지님이 슬로베니아 와인과 카바이에 대한 개요를 잘 정리해 두셨다.

 

오렌지 와인의 거장, 카바이(Kabaj) 국내 출시

wine21.com의 런칭 소개 아티클도 참고.

 

 

Alejandro Fernandez, Alejairen Crianza 2016 La Manch

향긋한 꽃향과 달콤한 바닐라, 구수한 비스킷, 자두와 백도 같은 잘 익은 핵과 풍미. 오크와 과일 풍미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다. 산미가 조금 부족한 편이지만, 대신 양고기와도 맛있게 마실 수 있었을 정도로 바디가 좋고 풍미에 힘이 있다. 카바이 루이자에 살짝 밀린 감이 있지만, 다시 만난다면 구입의사는 확실한 와인.

 

리베라 델 두에로의 맹주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alejandro Fernandez)가 라 만차(La Mancha)에 새로운 와이너리 엘 빈쿨로(El Vinculo)를 세우면서 함께 만들게 된 화이트 와인. 2017년부터는 레이블이 (더 세련되게) 바뀌었고, 레드 와인과 같이 엘 빈쿨로라는 와이너리 이름을 붙인다. 홈페이지에서도 '레드 와인의 영혼을 지닌 화이트 와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마셔 보면 그 의미를 대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해발 650-750m 정도의 완만한 남향 점토&모래질 포도밭에 심어진 평균 수령 25년 정도의 아이렌(Airen) 품종으로 양조햐며, 24개월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 후 병입하여 6개월 안정화 후 출시된다. 

 

 

Thistle Wines, Pinot Noir 2015 Dundee Hills Oregon

명확한 초산향 아래로 미묘한 붉은 꽃과 베리, 구수한 풍미가 드러난다. 분명 잘못된 와인인데, 은근 마실만 하달까. 마치 홍초를 마시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 초산화만 되지 않았다면 상당히 매력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버린 몸;;;

 

수입 단종 와인이라는데(심지어는 와이너리가 문을 닫았다고 하신 것 같...), 내추럴 와인이고 이산화황을 사용하지 않는단다. (사용하지 그러셨어요...) 와인샵에 오픈된 것이 있길래 마셔봤는데 에나멜이나 초산 같은 향이 명확한 것이 faulty라고 봐야 할 수준이었다. 그런데 오묘하게도 입안에서는 붉은 꽃과 토스티한 뉘앙스가 제법 매력적으로 살아나는 느낌. 그래서 WINEY 멤버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여 한 병 구매해 봤다. 나를 빼고 4명 중 호는 1명뿐('호'일 거라고 예상한 한 명도 '부'로 돌아섰다;;). 좀 과하긴 했지...

 

Tolaini, Al Passo 2014 Toscana 

음, 산지오베제 중심(85%, 메를로 15%)라는 걸 알고 있어서 플로럴한 아로마와 붉은 베리의 향긋함, 가늘면서도 꼿꼿한 스타일... 이런 걸 기대었는데, 의외로 과일은 검고 두툼했으며 예리한 산미는 부족했다. 나쁘진 않았지만 뭔가 아쉽.. 

 

톨라이니(Tolaini)는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지역의 와이너리인데도 그랑 셀레지오네(Gran Selezione)를 포함해 산지오베제(Sangiovese) 중심의 와인보다는 국제 품종 중심의 와인을 더 잘 만드는 것 같다. 산지오베제 와인들은 품종의 특성을 잘 살리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본인들도 그걸 아는 건지 알 파쏘도 '15빈티지부터는 산지오베제(34%)의 비중을 줄이고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의 비율을 높였던데(각각 33%). 암튼 톨라이니는 앞으로 발디산티(ValdiSanti)만 살려서 가는 걸로.

Tolaini, Valdisanti 2014 / 톨라이니 발디산티 2014

 

...이외에도 두 병의 와인을 더 마셨는데 안타깝게 사진을 못 찍었다.

 

Rivera, Cappellaccio Aglianico 2011 Castel del Monte
와인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던 2006년쯤 자주 마셨던 추억의 와인. 당시엔 영한 빈티지의 쌩쌩한 와인이었는데 나름 10년이 된 올빈이 그 시절의 가격에 나왔길래 궁금해서 구매해 봤다. 알리아니코는 숙성 잠재력이 있는 품종이니 엔트리급 와인이라도 나름 괜찮게 변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결과적으로는 좀 아쉬웠다. 숙성 상태는 상당히 좋았지만, 그럼에도 과실 코어나 풍미의 밀도, 구조감 등이 모두 아쉬운 수준. 이 와인은 대략 5년 전후에는 마셔야 하는 와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태가 좋아 부담 없이 마시긴 괜찮으니까, 남은 한 병은 가족 모임 등에 편하게 오픈하면 될 것 같다.

 

Torbreck, Cuvee Juveniles 2015 Barossa Valley
의외로 아직까지도 풋풋한 허브향이 강하게 드러나며 스모키 미네랄과 함께 기대한 검(붉)은 베리, 자두 풍미가 진하게 드러난다. 전반적으로 탄탄한 구조와 골격이 느껴지면서도 신선한 산미 때문에 지나치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좋은 와인이지만, 역시 나에게 남호주는 원심력이 구심력보다 훨씬 크게 작용하고 있다. 

 

즐거운 모임이었음. 덕분에 스트레스가 화악 풀렸다.

 

개인 척한 고냥이의 [알코올 저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