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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주/우리술·한주

감홍로 푸드 페어링 with 숯불구이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0. 5. 10.

감홍로를 들고 연천 부모님 댁에 왔습니다. 전날이 어버이날이기도 했지만, 사실 마음은 콩밭(?)에 있었죠.

 

바로 요거! 소화 잘 되는 고기♥  부모님 댁 한편에 화덕이 있어서 고기 굽기가 참 좋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매주 가서 고기를 굽고 싶다는... 고기 사서 도착하자마자 판을 벌립니다.

한우 1+등급 갈비살은 사진 찍을 시간도 없이 불판에 올라가 버렸습니다. 와이프의 급한 마음도 저랑 비슷했나 보네요ㅋㅋㅋ

 

그 뒤를 항정살과 갈매기살이 받치고 있습니다. 너무 사랑스러운 조합입니다^^;;

 

텃밭에서 직접 기른 싱싱한 상추, 치커리 같은 쌈야채들도 준비합니다. 

 

진귀한(?) 것들도 있어요. 아버지가 직접 키우신 엄나무에서 딴 엄나무순입니다. 두릅이랑 비슷하게 생겼죠? 지난번에 왔을 땐 두릅도 있었는데, 그건 이제 너무 자랐다고 하네요. 

 

요건 당귀입니다. 여성분들에게 그렇게 좋다는데, 다행히 와이프 입맛에도 맞아서 엄청 먹었습니다 ㅎㅎㅎ 엄나무순이나 당귀 모두 고기랑 아주 잘 어울려요.

 

전날부터 내리더 비가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지만, 비 따위가 우리를 막을 순 없습니다. 파라솔 치고 고기를 굽습니다. 

 

맛있는 고기가 잘 구워지고 있으니 좋은 술을 준비해야겠죠?

 

감홍로 등장! 육당 최남선이 전라도 죽력고, 황해도 이강주와 함께 조선 3대 명주로 꼽았다는 술입니다. 3대 명주 중에서도 감홍로를 제일 앞에 두었다고 하죠.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 오는 전통 깊은 술입니다.

 

감홍로(甘紅露). 이름부터가 참 예쁩니다. 달고 붉은 이슬이라니... 게다가 '로(露)'라는 글자는 임금님께 진상하는 술에만 붙일 수 있는 표현이었다고 하니, 감홍로가 얼마나 귀한 술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옛 이야기 속에도 감홍로가 자주 등장합니다.

판소리 「수궁가」에는 토끼의 간을 얻으려는 자라가 토끼를 유인하기 위해 '용궁에 감홍로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말합니다. 「춘향전」에서는 감홍로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춘향이가 이몽룡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함께 나누려 향단이에게 가져오라 시킨 술이 바로 감홍로입니다. 나중에 춘향이가 변사또에게 핍박받는 부분에서 감홍로가 다시 등장합니다. 춘향을 잡으러 온 변학도의 사령에게 춘향 엄마인 월매가 감홍로를 취하도록 먹이거든요. 임무도 잊고 마시게 되는 술이 바로 감홍로인가 보네요^^;;

요즘으로 치자면 영화 007 시리즈에 샴페인 볼렝저(Champagne Bollinger)가 등장하는 것과 유사하려나요. 차이라면 볼렝저는 돈을 내고 PPL을 한 것이지만 「수궁가」나 「춘향전」에서는 그냥 감홍로를 언급했다는 것이겠죠. 이렇게 유명한 작품들에 등장할 만큼 감홍로가 조선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감홍로는 국내 유일하게 이기숙 명인이 만들고 있습니다. 이기숙 명인은 1986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문배주 기능 보유자인 故 포암(浦巖) 이경찬 선생의 딸로, 집안에 전해지던 비법을 남편과 함께 재현했다고 합니다. 이기숙 명인은 2012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전통식품 명인 제43호로 선정되었습니다. 

 

감홍로는 소주를 두 번 증류한 소주에 용안육, 계피, 진피, 정향, 생강, 감초, 지초 등 7가지 약재를 그대로 넣어 침출한 후 숙성시켜 만듭니다. 위 유튜브 동영상에 제조 방법이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계피, 생강, 감초 등은 익숙하지만 나머지 약재는 조금 생소하죠? 동영상 섬네일에 약재들이 담겨있는데요. 정향못처럼 생겼는데 클로브(clove)라고도 하죠. 상쾌하면서도 달콤한 향을 냅니다. '치과'를 연상시키는 향입니다. 진피는 쉽게 말하면 귤 껍질을 말린 겁니다. 정향이나 진피 모두 서양에서도 맥주, 리큐르 등을 만들 때 자주 사용하는 재료들입니다. 용안육은 용의 눈을 닮은 과일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용의 눈을 본 사람이 있을까요? ㅋㅋㅋ 어쨌거나 달고 독특한 향기가 있다고 합니다. 지초는 꿀풀과 식물인 백리향을 말린 것으로 매운 성질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곱 가지 약재의 독특한 향이 부드럽게 어우러져 알코올 함량 40%의 제법 도수가 높은 술임에도 불구하고 마시기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게다가 약리작용으로 인해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고 소화와 혈액순환을 돕는다고 하네요. 맛도 좋지만 '과음하지만 않는다면' 몸에도 좋은 술입니다. 


두둥! 고기도 두어 점 집어먹어 배를 채웠으니 이제 맛을 봐야겠죠?

 

이기숙 명인, 감홍로

일단 잔에 따라 놓은 붉그스름한 주색이 참으로 일품입니다. 잘 익은 연시나 곶감이 연상되기도 하네요. 계피나 정향 등 스윗 스파이스의 향이 은은하게 올라오는 것이 더욱 입맛을 돋웁니다. 서둘러 입에 가져다 대면 가볍게 톡 쏘는 느낌이 부드러운 질감을 타고 목으로 흘러듭니다. 40%라는 알코올이 무색할 정도로 편안합니다. 신기하게도 높은 알코올 특유의 식도를 태우는 느낌도 거의 없네요. 높은 알코올은 독하게 느껴지기보다는 풍성한 향을 더욱 향기롭게 피우는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묵직하기보다는 섬세하고 우아하며 정감 있는 술입니다.

다양한 식사의 반주나 디저트와 함께, 혹은 소화를 위해 감홍로만 딱 한 잔 따라 놓고 즐기기도 좋을 것 같아요. 아버지도 "오, 이 술 좋다."를 연발하셨고 독한 술을 안 드시는 어머니도 맛있다며 한 잔을 다 드셨습니다. 물론 여러 번 끊어 드셨지만요^^

 

한우 갈빗살에 이어 한돈 항정살, 

그리고 갈매기살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ㅎㅎㅎ

 

감홍로 덕분에 소박한 어버이날 행사를 잘 치루었네요^^ 명절 선물로도 좋을 것 같으니, 추석에 처가 내려갈 때 한 병 준비해야겠습니다. 감홍로 홈페이지나 스마트 스토어 같은 곳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어요. 전통주는 온라인/택배 구매가 가능하니까요.

 

사족을 붙이자면,

저녁엔 (많이) 매콤한 낙지볶음과 함께했는데... 매운 음식과는 페어링하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향신료의 고운 향들을 제대로 느끼기 어려운 데다가, 매운맛이 강한 알코올 기운을 끌어내서 술이 독하게 느껴집니다. 맵지 않은 음식, 혹은 디저트나 과일 류와는 대체로 무난하게 잘 어울리니 맵고 짠 음식만 좀 피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좋은 술은 제대로 맛봐야 하니까요.

 

개인 척한 고냥이의 [알코올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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