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냥의 취향/책·영화·음악·여행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0. 7. 9.

알랭 드 보통의 여행 에세이, 여행의 기술. 2004년 출간된 책인데 이제야 내 손에 들어왔다. 2000년대 초반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이후 보통의 책을 다시 읽는 데 20년 가까이 걸렸네. 제목에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연상되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훌쩍 떠나는 여행을 꿈꾸지만, 그 여행의 이유나 목적, 방법 등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을 하지 않는다. 나만 해도 그저 어떤 나라에 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뿐. 물론 나름 2010년 전에는 그림과 미술관에 집중했었고 그 이후에는 와인(술)과 식도락에 몰두했다고 할 수 있었지만. 스노 보드 마니아 사이에서 쓰는 '관광 보딩'이라는 표현의 '관광'에 가까운 것이 나의 여행이 아니었던가. 보통은 여행을 통해 더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장소와 안내자(위인들)의 예를 통해 편안한 문체로 제시한다.

  • 출발: 기대에 대하여,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하여
  • 동기: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호기심에 대하여
  • 풍경: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 숭고함에 대하여
  • 예술: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 귀환: 습관에 대하여

특히 반 고흐의 얘기를 통해 풀어 간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챕터는 2010년 이전 여행을 떠올리며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열중해서 읽었던 챕터는 존 러스킨이 안내한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챕터다. 존 러스킨의 책을 따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공감. 특히 와인 러버로서 와인과 주류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구절이 많았다. 아래 문구에서 장소의 예를 와인으로 치환하면 와인을 묘사할 때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이 보이는 것 같다.

"러스킨은...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글을 써야 한다고, 그의 말로 하자면 "말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적절한 '말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충분한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분석하는 데 정확하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다. 호수가 예쁘다는 관념에 안주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천재의 증거는 못될 지 몰라도, 적어도 하나의 경험을 진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동기에서 나온 것임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러스킨의 '말 그림'은 어떤 장소의 생김새를 묘사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심리적 언어로 그 장소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는 많은 장소들이 미학적 기준이 아니라 심리적 기준에서 우리에게 아름답게 비친다는 점을 인식했다. 즉 색깔의 조화나 대칭, 비례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나 분위기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이해한다는 러스킨적인 목표..'

 

어쨌거나, 나의 여수-해운대 여행의 동반자였던 이 책은 여행을 떠나기 전이나 혹은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나 기차 안에서 읽기 딱 적당한 책이다. 구성도, 호흡도, 내용도. 

 

개인 척한 고냥이의 [알코올 저장고]

반응형

'고냥의 취향 > 책·영화·음악·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스키와 나  (0) 2020.11.08
<맥주 바이블>  (0) 2020.07.18
<버번 위스키의 모든 것>  (0) 2020.06.23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0) 2020.06.20
<토킹 어바웃 위스키>  (0) 2020.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