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행 중 런치 코스를 예약한 팔레트. 제로 컴플렉스 출신 셰프님이 만든 레스토랑이다.
그냥 팔레트를 검색하면 전국 각지의 다양한 업체가 나오므로 '부산 팔레트'를 입력해야 한다. 저녁에는 단품 메뉴를 제공하는 와인바로, 점심에는 와인 페어링 옵션을 더한 코스 메뉴 중심의 다이닝으로 운영하시는 듯.
부산 웨스틴 조선 호텔에서 광안대교를 건너 20분 정도 걸린다. 부두가 부근 작은 다리를 건너 여기가 맞나 싶은 동네의 이 건물이 맞나 싶은 작은 빌딩의 3층에 있다. 외관도 찍을 걸...
엘리베이터 안에 붙은 안내판. 1, 2층은 횟집과 해산물 음식점, 4층은 어촌계와 불원이다. 그 사이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 와인바라니... 오묘한 느낌.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분위기는 바뀐다. 레스토랑 입구만 봐도....
가족과 함께 착석. 탁 트인 통창 덕에 의외로 전망이 좋다. 바로 앞에 선착장이 있고, 아파트들도 멀리 보이니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다.
오늘의 메뉴. 날자가 명기되어 있는 걸로 보아 구성이 매일 바뀌는 모양이다. 핵심 재료만 명기되어 있는데, 요리를 내며 부재료와 조리 방식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신다.
코스에 맞춘 와인 페어링 3종(70ml) 메뉴. 내추럴/오렌지 계열의 와인들만 쓰신다고 알고 있다.
페어링한 와인들. 오렌지-화이트-레드 구성이다.
스타터로 두 가지 핑거 푸드로 구성된 스낵.
오른쪽은 푸아그라 무스와 애플잼을 올린 브라운 버터 토스트. 왼쪽은 프로마주 블랑, 대저토마토, 수박 타르타르를 올린 타르틸렛. 입맛을 돋우기에 딱 좋은 맛과 사이즈다.
훈연한 초당 옥수수와 오이 피클, 허브에 다시로 만든 그라니따를 곁들여 송어알을 올렸다. 복합적인 맛을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포인트. 한여름엔 더욱 좋을 것 같다.
때마침 제공된 식간빵.
빵에 올려 먹으면 또 별미다. 설컹설컹한 얼음인 그라니타를 빵 위에 올렸는데 이렇게 잘 어울리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음.
첫 번째 페어링 와인, 칸티나 마르코 메를리(Cantina Marco Merli). 이탈리아 움브리아 주 페루자 부근에 위치한 와이너리로 비오디나미와 내추럴 생산 방식을 적용해 와인을 만든다고.
Cantina Marco Merli, Vino Bianco Venco 2016 Umbria / 칸티나 마르코 메를리 비노 비앙코 벤코 2016 움브리아
움브리아에서 주로 재배하는 그레케토(Grechetto) 품종 100%로 양조한 오렌지 와인. 살짝 탁한 느낌의 진한 앰버 컬러에 오렌지 와인 특유의 꼬릿함과 꿈꿈한 향이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단감과 곶감 사이의 그 어딘가에 걸리는 풍미. 그 뒤로 살구 등 핵과 향과 은은한 꽃향기와 가벼운 견과 뉘앙스가 서서히 드러난다. 제법 느껴지는 타닌감을 기반으로 강건한 구조를 형성하며, 가볍게 씁쓰름한 여운이 긴 여운을 선사한다.
가볍지만 복합적인 풍미를 지닌 초당옥수수 디시와 의외로 훌륭한 마리아주를 보여주었다. 살짝 비릿함이 느껴질 수 있는 음식의 맛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면서도 복합미는 상승시켜주었달까.
다음은 옥돔.
팬 프라잉 한 제주산 옥돔에 피클링한 미역, 표고버섯, 생강 다시 소스, 덴뿌라 크럼을 곁들였다. 곁들인 재료들이 마치 조리퐁 같은 인상을 주었는데, 옥돔과 곁들여 먹으니 식감과 풍미 양쪽이 모두 살아났다.
역시 이탈리아, 토스카나 마렘마 지역의 화이트.
Valdonica, mersino Vermentino Maremma Toscana 2018 / 발도니카 메르시노 마렘마 토스카나 베르멘티노 2018
해발 500m 화산토양에서 재배한 베르멘티노 100%로 양조한 내추럴 와인. 금빛 옐로 컬러에 신선한 미네랄과 우아한 흰 꽃 향기가 잘 어우러진다. 이어지는 은은한 허브와 자두 캔디, 백도와 시트러스 풍미. 미디엄 바디에 깔끔한 스타일. 옥돔과는 희다는 것을 관통하는 마리아주랄까... 깔끔하게 어우러지는 페어링이다. 굿굿.
그런데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면, 두 번째 마신 와인의 임팩트가 첫 와인에 비해 조금 못 미쳤다는 점. 첫 번째 와인의 구조와 바디, 풍미의 밀도가 더 강렬했기 때문에 두 번째 와인이 상대적으로 밀리는 느낌이었다. 앞의 와인도 푸드 페어링 관점에서 보면 훌륭했기에 불만은 없지만... 와인 순서로 봤을 때는 앞의 오렌지 와인을 조금 더 가벼운 것으로 쓰시거나, 펫낫(Pet-Nat) 같은 걸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메인 디시, 살치살.
비장탄으로 구운 에이징 살치살에 야채 주(jus)와 적양파 피클, 마늘쫑을 곁들였다. 야채 소스의 캐러멜라이즈드 된 맛이 살치살과 아주 잘 어울렸다. 마늘쫑의 아삭한 식감과 풋풋한 맛 또한 신의 한 수.
세 번째 레드 역시 이탈리아.
장화의 앞축인 칼라브리아 지역의 토착 품종인 말리오코(Magliocco) 품종 100%로 양조했다. 빈티지에 따라 사용되는 품종이 조금씩 다른 모양. 검색해 보니 2016년 빈티지는 말리오코와 가르나차 네라(Guarnaccia Nera), 그레코 네로(Greco Nero) 등을 블렌딩했다.
말리오코는 보통 말리오코 칸니노(Magliocco Canino)로 불리는데, 가벼운 붉은 베리 풍미와 높은 알코올을 지닌 와인을 생산하는 품종이다. 종종 칼라브리아의 대표적인 레드 품종인 갈리오포와 혼동되는데, 그 모양과 풍미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리오코 쪽이 갈리오포보다 컬러가 더 짙다고.
L'Acino, Chora Rosso 2018 Calabria / 라치노 코라 로쏘 2018 칼라브리아
은은한 바이올렛, 농익은 (검)붉은 베리, 커런트 아로마. 입에서는 매끈한 질감에 상쾌한 신맛이 느껴지는데, 이태리 남부 레드 와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선한 느낌이다. 가벼운 철분 느낌과 함께 감칠맛이 느껴지며, 검붉은 베리의 풋풋한 뉘앙스가 매력적이다. 미디엄 정도의 가뿐한 바디감에 여름에도 비교적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스타일. 레이블에서 받은 인상이 곧 와인의 느낌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10개월 숙성했다.
페어링 와인들. 파인 다이닝에 기분 좋은 낮술이라니, 순식간에 휴가 기분이 +1 증가했다.
멀리 서울에서 왔다고 감사하게도 메뉴에 없던 라자냐를 추가로 주셨다. 이국적인 향신료 풍미에 사워 소스와 고수를 곁들이니 완전 취저.
배뻥한 상태로 마지막 디저트. 피클링한 사과와 샐러리 오일을 곁들인 소렐 그라니따.
디톡스 허브티와 함께 나왔는데 뭔가 달콤한 감귤/시트러스류의 향이 감돌면서 맛은 드라이해서 깔끔하니 좋았다. 소렐 그라니타와도 냉온의 조화랄까, 오묘하게 어울리는 느낌.
상큼한 마무리. 매우 만족스럽다.
부산이라 자주 갈 수는 없겠지만 해운대/광안리 방문 예정인 분께는 강추. 부산 가서 국밥이랑 회만 먹기 심심한 분이라면 방문해 보길 권한다.
20200708@팔레트(부산 용호동)
개인 척한 고냥이의 [알코올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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