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강화 와인의 인기가 덜한 한국에서도 가장 인지도가 낮은 마데이라. 하지만 전문인이나 일정 수준에 도달한 애호가라면 마데이라의 매력에 듬뿍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었다.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의 블로그 스크랩입니다.
“마데이라(Madeira)와 비견될 와인은 없다.”3년 전쯤 세미나에서 마데이라 전문가 후이 팔카웅(Rui Falcão) 씨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가. 5대 샤토의 기세가 등등한 보르도(Bordeaux)를 비롯하여 로마네 콩티로 유명한 부르고뉴(Bourgogne), 살롱이나 크룩 같이 럭셔리한 메종들이 가득한 샹파뉴(Champagne) 등 쟁쟁한 와인들이 즐비한 마당에 웬 듣보잡(?)이...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발언에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 확실한 개성, 빼어난 풍미,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숙성 잠재력까지. 마데이라는 다른 와인과 비교하기에는 너무나 다른 품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715년 빈티지, 그러니까 300년 묵은 마데이라를 시음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 맛은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경이로운 경지란다. 단순히 음용할 수 있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을 넘어 독특하고 뛰어난 맛을 영겁의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시겨 나간다는 의미다. 불멸의 와인이라 불릴 만하다.
마데이라의 탄생
그렇다면 마데이라란 무엇인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와인인가. 사실 앞에서 언급한 개성, 풍미, 숙성 잠재력 등 마데이라의 품격은 바로 생산지역과 생산방식에서 유래한다. 마데이라는 아프리카 모로코 서쪽 해안에서 약 640킬로미터 떨어진 포르투갈령 화산섬이다. 매우 가파르고 고도가 높아 포르투갈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 있을 정도. 마데이라가 포르투갈어로 ‘나무 혹은 삼림’을 뜻한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원래 숲이 울창한 섬이었다. 그런데 15세기 초 마데이라 동쪽에 상륙한 포르투갈인들이 숲에 불을 질렀다. 불은 수년간 타올랐고, 타고 남은 재들은 원래 비옥했던 토양을 더욱 비옥하게 만들었다. 연중 평균 온도는 섭씨 21-22도. 7월에도 비교적 시원하고, 12월 조차 춥지 않고 온화하다. 이렇게 비옥한 토양과 온화한 기후에서 마데이라 사람들은 사탕수수와 옥수수, 바나나 등 각종 농작물을 재배한다. 사람이 살기에는 나쁘지 않은 환경이다.
그런데 사실 포도 재배에는 그다지 좋은 조건이 아니다. 안개가 자주 끼어 일조량은 적고, 북쪽 해안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포도가 완전히 익기 어렵다. 게다가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마데이라의 고산지역을 지나며 많은 비를 뿌린다. 연간 강수량은 600mm를 넘고, 습도가 높으니 병충해도 쉽게 발생한다. 심지어 연중 온화한 기온 또한 의외의 복병이다. 포도가 한창 생리적으로 성숙해야 할 여름에도 온도가 별로 오르지 않아 힘들고, 다음 해를 위해 휴지에 들어가야 할 겨울엔 온도가 높아 나무들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포도가 생리적으로 성숙하거나 완숙하기 어렵다는 것은 와인을 만드는 데 최악의 조건이다. 마데이라를 양조하는 과정은 그 악조건을 극복하고 맛있는 와인을 만들려는 노력과 경험의 산물이다. 이런 점은 언뜻 샹파뉴와 닮았다. 프랑스의 주요 와인 산지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샹파뉴 역시 포도를 완숙하기 어려웠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최고의 와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바로 병입 2차 발효를 통한 스파클링 와인 생산이다. 그에 비해 마데이라가 선택한 방법은 주정 강화였는데 이는 마데이라 섬의 독특한 입지 조건과 관련이 있다. 15세기 이후 이른바 대항해시대를 맞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배들이 급증했고, 마데이라 섬은 대서양을 횡단하는 선박들의 보급기지가 되었다. 이런 배들에 실린 마데이라 와인에는 긴 항해를 견디기 위해 브랜디나 사탕수수로 만든 주정을 첨가는데, 다른 와인들과 달리 적도를 지나면서 맛이 더욱 좋아졌다. 마데이라는 항해 중 선체를 안정시키는 바닥짐의 역할까지 겸해 배 아래에 가득 실렸고, 그 새콤달콤한 맛으로 긴 항해 내내 선원과 승객들의 고난을 달래 주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주정 강화, 그리고 열화
위의 탄생 과정에서 알 수 있듯, 마데이라를 만드는 과정의 핵심은 알코올 첨가를 통한 ‘주정강화’와 숙성 과정에서의 ‘열화’다. 강화에 사용되는 주정은 포도로 만들며 성격이 중성적이다. 알코올 함량은 94-95%로 상당히 높은 편. 발효 중인 와인에 주정을 넣으면 발효가 멈추는데, 이때 남은 당분의 양에 따라 단맛의 정도와 색상이 달라진다. 주정을 넣은 후 숙성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대중적인 마데이라를 만드는 ‘빠른 방법’과 고급 마데이라를 만드는 ‘느린 방법’이 있다. 두 방법 모두 기본적으로 와인을 데워서 공기에 노출시킨다는 점은 동일하다. 다른 와인에서는 금기시하는 이런 방법이 바로 마데이라의 독특한 풍미를 형성하는 원천이다. 빠른 방법은 에스투파젬(Estufagem)이라고 불리는데 그야말로 스토브(estufa)로 와인을 데운다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와인이 담긴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 구리 코일을 감아 섭씨 50도 정도의 물을 순환시켜 3개월 이상 데운다. 이후 나무통으로 옮겨 병입 전까지 2~5년 정도 숙성한다. 느린 방법은 나무통에 넣어 3층 건물의 지붕 아래,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비교적 서늘한 환경에서 몇 년간 숙성한다. 적정 기간이 지날 때마다 한 층씩 아래로 내려오며, 마지막 단으로 내려온 마데이라는 병입 후 적정한 시기에 출시한다. 이런 방법을 오크통을 쌓아 놓는 선반 이름을 따서 칸테이루(Canteiro)라고 부른다. 칸테이루 방식으로 만든 마데이라는 장기 숙성의 영향으로 병을 오픈한 뒤에도 6개월 이상 무난히 음용할 수 있으며, 그 이후에도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즐길 수 있다. 칸테이루는 주로 10년 이상 숙성한 마데이라만을 사용하는 고급 블렌디드 마데이라와 빈티지 마데이라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빈티지 마데이라 중 콜헤이타(Colheita)는 5년 이상, 후라스케이라(Frasqueira)는 20년 이상 배럴 숙성 후에 출시한다. 생년 빈티지의 후라스케이라를 만나려면 무조건 성인이 되어야 하는 셈이다. 대학 졸업 이후 생년 빈티지를 찾아 마데이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멋있을 것 같다.
다섯 가지 품종, 혹은 스타일
마데이라의 레이블에는 다섯 가지 품종을 표기할 수 있다. 세르시알(Sercial), 베르델료(Verdelho), 보알(Boal, 영어로는 부알 Bual), 말바지아(Malvasia, 혹은 맘지 Malmsey), 그리고 틴타 네그라 몰레(Tinta Negra Mole)가 바로 그 주인공. 이중 틴타 네그라 몰레는 전체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품종임에도 레이블에 표시되지 않다가 2015년에야 품종 표기가 허용되었다. 틴타 네그라 몰레는 피노 누아와 그르나슈의 교배종(crossing)으로 앞의 네 품종과 달리 레드 품종인데, 껍질을 사용하지 않고 화이트로 양조한다.
포르투갈이 1986년 EU에 가입하기 전엔 마데이라 와인의 레이블에 틴타 네그라 몰을 제외한 네 품종 중 하나가 관행적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게 그야말로 되는 대로 적어 넣은 것이라 실제 사용한 품종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에는 EU 규정에 따라 해당 품종을 85% 이상 사용했을 때만 품종을 표기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숙성한 기간과 스타일 정도만 표기한다. 재미있는 점은 각 품종 별로 와인의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 세르시알이 가장 드라이하며 베르델료는 미디엄 드라이, 보알은 미디엄 스위트, 말바지아는 스위트 와인이다. 틴타 네그라 몰레의 경우 레이블만 봐서는 스타일 파악이 어려우며 백레이블을 확인해야 알 수 있다. 세르시알은 주정강화와인에서는 드물게 산뜻함과 날카로움이 잘 살아있는 타입으로 가장 높은 포도밭에서 재배한다. 수확이 늦고 재배가 어려워 생산량이 가장 적다. 베르델료는 특징적인 꿀과 스모키 뉘앙스로 식전주와 식후주 양쪽 모두 활용할 수 있다. 보알은 적당한 단맛에 곁들여지는 말린 과일, 특히 건포도 풍미가 특징이다. 말바지아는 가장 달콤한 맛에 걸맞은 풍만한 질감을 겸비하고 있다.
[빈티지 마데이라 와인들]
어떻게 마실까
마데이라를 마실 때는 차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온도가 높으면 알코올이 튀고 와인이 지닌 잠재력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데이라의 독특한 풍미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너무 작은 잔 보다는 보르도 와인용 글라스처럼 보울이 큰 잔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데이라는 스타일에 따라 식전주 혹은 식후주로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음식과 즐겨도 의외로 잘 어울린다. 특히 스위트한 계열의 경우 페킹 덕이나 캐러멜 소스를 사용한 음식들과, 드라이한 계열의 경우 생선회 등 해산물과 잘 어울린다. 그러고 보니 마데이라는 제주도와 자매결연을 맺은 섬 아니었던가. 다음 제주도 여행길엔 마데이라 한 병 챙겨서 각종 해산물과 함께 마셔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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